(1) 파주,고양 길에서 삼각산(三角山)을 바라보다

2015. 8. 17. 17:12나를 찾아 걷는 길/서울의 진산(鎭山) 삼각산(三角山)

 서울의 진산(鎭山) 삼각산(三角山) 

(1) 파주, 고양 길에서 삼각산(三角山)을 바라보다

         ( 2015. 7.27-  8.5 )

  

산은 멀리서 바라보아야 산이다.

산은 멀리서 보아야  감동적이다.

의주길을 걸어 서울로 들어올 때 겹겹의 산릉선 위로 불끈 솟아오른 웅장한 삼각산이 나타났다 또 사라졌다 한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기 때문이다.

파주, 고양의 마을길과 들길, 그리고 산길을 걷다 능선 위로 홀연 치솟은 장엄한 삼각산은 황홀감에 젖게 하고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원래 삼각산은 고려의 왕도 개성에서 한양으로 들어올 때 보이는 모습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고 한다.

깎아 세운 듯이 우뚝 솟은 산봉우리가 마치 세개의 뿔과 같았으므로 옛사람들이 "삼각산(三角山)"이라 이름 붙였다.

 

또한 옛 사람들은 시를 지어 이 산을 영탄(詠嘆)하였다.

하늘로 우뚝 솟은 푸른 부용화 세 떨기

아득히 피어오르는 안개와 노을은 몇만 겹이런가

그 옛날 누대에 오르던 일 뇌리에 떠올리니

해는 서산에 지고 스산한 절간에선 문득 종소리가 들리어 오누나.

 - 고려 吳洵

 

세 봉우리 깎은 듯이 내민 것 아득한 태곳적 일

신선의 손바닥 하늘 가르키는 그 모습 천하에 드물리

소년 시절부터 이미 이 산의 진면목 알았거니

사람들 하는 말 등뒤엔 양귀비 살진 모습이라네

- 고려 李穡

 

세 떨기 꽃송이처럼 기이한 저 봉우리, 마치 하늘에 닿을 듯

가없는 저 대기엔 구름과 안개만 첩첩하네

쳐다보니 날카로운 모습 장검처럼 꽂혔는데

가로보니 어슷비슷 푸른 연꽃 솟았네

언젠가 두어해 동안 산사에서 독서했고

2년간 한강가에서 머물기도 하였네

그 누가 산천이 무정하다 했던가

오늘 와 마주하니 피차에 처량하네.

- 石灘 李存吾

 

높은 삼각산 봉우리 하늘을 찌를 듯

그 위에 오르면 북두칠성도 딸 수 있어

비구름을 불러일으키는 저 봉우리

왕실을 만세토록 평안케 하리로다.

 - 東峰 金時習

 

  동국여지승람에는,

"삼각산은 양주 지경에 있다. 일명 화산(華山)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때에는 부아악(負兒嶽)이라 일컬었다. 평강현의 분수령에서부터 이어진 산봉과 중첩한 멧부리가 일어났다 엎드렸다 하면서 잇달아 뻗어 와서 서쪽으로 양주 서남쪽에 이르러 도봉산이 되고, 또 삼각산이 되니 실로 경성(京城)의 진산(鎭山)이다.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 비류(沸流)와 온조(溫祚)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漢山) 지역에 이른 후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살펴본 곳이 곧 이 산이다."

 

부아악(負兒嶽)은 삼각산의 원래 이름으로서 백제 때부터 불려지다가 고려시대에 삼각산으로 바뀌었다.성호 이익은 '유북한기'에서, "옛날 백제 시조 온조가 일어날 때에 그의 열 신하와 함께 한산의 부아악에 올라가 살 만한 땅을 살펴본 일이 있었는데,  지금의 백운봉(白雲峰)이 그 곳이다."하였고, 식산 이만부의 '삼각산기'에도, "그 당시(백제의 개국)의 부아악이 곧 지금의 삼각산이다. 그런 까닭에 신라도 역시 이 산을 부아악이라 칭하였다."

부아악의 원래 의미에 대해 여암 신경준의 '삼각산기'에는,  "삼각산은 우리 나라 국도(國都)의 진산(鎭山)이다. 4악(岳)중에서 중악(中岳)이 되며, 중사(中祀)에 실려 있다. 경성 북쪽 30리에 있다. 산이 다 석봉(石峰)이다.  그 상봉(上峰)을 백운대(白雲臺)라 하며, 그 옆에 국망봉과 인수봉이 있다.

세 봉우리가 깎아 세운 듯이 하늘로 치솟아 있으므로 삼각산이라 이름 붙여졌다.  일명 화산(華山)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 부아악(負兒嶽)이라 일컬었는데,  그 상봉의 배후에 한 석봉(石峰)이 가까이 붙어 있어서  마치 애를 업은 것과 같은 형상이므로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하였다.

또한 불승(佛僧) 성능(聖陵)이 쓴 '북한지(北漢誌)'에도, "인수봉은 삼각산의 첫 번째 봉우리이다. 사면이 순수한 암석으로 되어 깎아 세운 듯 서 있는데, 한 바위가 이 봉우리 동쪽에 혹처럼 붙어 있으므로 또한 부아악이라고도 하였다."

오늘날 많이 부르고 있는 북한산이란 명칭은 1711년(숙종 37)에 축성된 북한산성을  근거로 남한산성과 대비하여 서울 북쪽에 위치한 산이라는

의미로 1900년대 초부터 사용된 명칭이다.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아 국토를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고양  대자산에서 바라 보이는 삼각산

 

 "의주대로"는 대부분 원형이 보존되어 지금의 56번, 78번 도로의 형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도로 폭이 좁아 인도가 확보되어 있지 않으니 도보 여행이 어렵다.

원래의 남한 지역의 의주대로는 한양에서 벽제관을 거쳐 파주의 임진나루까지 이지만, 경기도에서 조성한 옛길 '의주로'는 삼송역에서 벽제관지 

임진나루를 거쳐 임진강역까지 조성하여 놓았다.

그래서 이 길을 따라 걷기로 한다. 

 

임진각(臨津閣)

한국전쟁과 민족대립의 아픔이 새겨진 곳이며,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며 통일을 염원하는 곳이다.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은 끊어진 철로 위에 서 있는 경의선 장단역의 녹슨 증기기관차...

철조망에 걸려있는 통일을 염원하는 울긋불긋한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국군포로 12,000여 명이 귀환하였던 자유의 다리 끝에도 철조망이 쳐져 있다.

 

망배단(望拜壇)...

개풍 출신의 원로시인 인소리(印少里)가 지은 시 '망향'이 심금을 울린다. 

 

望鄕

오십 년 끊긴 안부가

바람으로 서 있다

목이 멘 이산의 아픔

불러보는 사람아

송악산 솔밭 사이로

고향 하늘 보인다

 

망향의 아픈 구비

얼마를 울었을까

핏금진 산하에서

귀향(歸鄕)을 꿈꾸나니

그 언제 사랑하는 사람과

고향 땅을 밟을까

 

반백 년 침묵 속에

한 맺힌 임진강아

神의 손도 비켜간

상흔(傷痕)을 찍어내어

피 묻은 모반(謀反)의 땅에

둥근 해를 띄어라

          

  

임진각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망배단, 자유의 다리, 녹슨 증기기관차 그리고 임진강 끊어진 다리와 새로 건설된 다리가 보인다

 

  

 

 

 

 

장단역의   녹슨 증기기관차

 

  

통일을 염원하는 울긋불긋한 리본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자유의 다리-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국군 포로 12,000여 명이 이 다리를 건너 귀환하였다

 

 

 

 

임진각

 

경의선 임진강역 맞은편 들길로 내려서서 걷는다.

임진강 따라 설치된 민통선 철책선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한다.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장산 1리 마을회관을 지나 산등성이 장산전망대에 오르니 임진강이 두 갈래로 초평도를 감싸고 유유히 흐르고 있다.

초평도 너머 아스라이 고려왕조 500년 도읍지 개성과 송악산이 바라보인다.

장군봉 천덕산 덕물산 진봉산 도라산 송악산 극락봉 덕진산성 백학산 마식령산맥줄기 해마루촌이 임진강 너머 아스라이 연면(連綿) 히 이어가고 있다.

 

하얗게 핀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장종국 시인의 "들꽃이외다"를 읊조린다.

 

들킬까 숨어 핀 꽃 아니외다

꺾일까 봐 가냘픈 게 아니외다

온갖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 낮게 핀 들꽃이외다

때로는 외로운 연인들이 흘리고 간

밀어의 조각을 외우며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외치며

누구도 알아주는 게 싫어서 핀 들꽃이외다

덜 크고 덜 아름다워도 깊은 하늘 향해

가슴을 벌리고 있나이다

밤마다 자리 잃은 별들의 나누는

이야기를 먹으며 핀 들꽃이외다

그리고 오래오래 피기 싫어 진실이 무언지

알지 못하고 질 들꽃이외다

 

 

장산전망대(1)      임진강이 두 갈래로 초평도를 감싸고 흐른다

 

 

 

장산전망대(2)         초평도 너머 왼쪽 끝이 송악산이다

 

 

 

 

장산전망대(3)    장군봉 천덕산 덕물산 진봉산 도라산 송악산 극락봉 덕진산성 백학산 마식령산맥줄기 해마루촌이 임진강 너머로 아스라이 둘러쳐 있다

 

임진리 나루터 마을을 지난다.

화석정을 지척에 둔 임진강 남안이 임진나루다.

이곳은 북쪽의 동파나루와 연결되는 곳으로, 고려 조선시대에 개경과 한양을 오고 가던 길목이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노거수 느티나무 두 그루와  향나무 한 그루가 무심히 흐르는 임진강을 굽어보고 있다.

벼랑가에는 율곡 이이(1536∼1584)가 자주 들러 시를 짓고 학문을 연구하던 화석정(花石亭)이 서 있다.

화석정에서 바라보는 임진강의 풍광이 아름답다. 

화석정 난간에 서면 서울의 삼각산도 아득히 보인다는데 지금은 구름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노거수 느티나무 두 그루는 좌우에 우뚝 서서 수호신처럼 화석정을 지키고 있다.

화석정 안에는 율곡이 여덟 살 때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가 걸려 있다.

 

花石

八歲賦詩

 

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

숲 속정자에 가을 이미 깊이 드니,
시인의 시상(詩想)이 끝이 없구나.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을 향해 붉도다.

 

산 위에는 둥근달이 떠오르고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고?
울고 가는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임진리 나루터마을 입구

 

 

 

 

이곳 임진강 남안이 임진나루고 건너편이 동파나루다 - 지척에 화석정(花石亭)이 있다

 

 

  

화석정에서 바라보이는 임진강 풍광(1)

 

 

 

 

화석정에서 바라보이는 임진강 풍광(2)

 

 

花石亭 중앙 편액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花石亭

조선 세종 25년(1443)에 율곡의 5대 조부인 이명신이 처음 지었으며, 성종 9년(1478)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없어진 후 80여 년 동안 터만 남아있다가, 현종 14년(1673)에 율곡의 후손들이 다시 지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다.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다시 짓고 1973년 정부의 유적정화사업 때 건물에 색을 다시 칠하고 주위를 정리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건물이다. 정자 안에는 율곡이 8세 때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와  ‘화석정중건상량문’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6 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이율곡의 花石亭 詩碑  - 율곡이 8세 때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가 새겨져 있다

 

 

의주길 표지목과 표식리본을 따라 마을길을 걷고 들길을 걷고 산길을 걷는다

파주의 진산이라 불리는 봉서산(鳳棲山, 213m)은 고대 전설에 나오는 봉황이 깃들어 즐기며 노래하던 곳이라 하여 봉서산이라 부른다.

파주시와 파주읍의 중심에 있는 봉서산은 문산포구를 바라보는 경기 북부의 군사 요충지다.

삼국시대 백제가 축조한 봉서산성에서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이 행주대첩에서 승전을 거두고 이 산성으로 돌아와 수비를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봉서산 전망대에 오르니,

푸른 하늘엔 흰 구름이 천변만화하며 기이한 형상을 만들고 있다.

겹겹의 산릉선 위로 아득히 푸른빛을 띤 삼각산과 주 능선이 누워 있다.

오! 아름답다.

문산 포구와  아득한 개성 북녘 하늘 아래로 산줄기가 흐르고 있다.

 

우뚝 솟은 기이한 형상 몇만 겹인고

구름 속에 솟아 나온 푸른 연꽃 같구나

신령한 빛 길이 황금의 세계를 비추고

맑은 기운 길이 흰 옥 같은 산봉에 머무르네

 

우뚝한 산등성이와 멧부리는 달빛을 머금고

깊디깊은 골짜기엔 신선의 자취 숨기고 있네

맑게 노니는 이들 다시 높은 산정에 올라가

큰 바다 내려보며 가슴 한번 상쾌하게 하고 싶네

 - 聖能

 

 

봉서산 (213m)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에 위치하고 있다

 

  

봉서산(鳳棲山 )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1)

 

  

 

 

봉서산(鳳棲山 )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2)

 

   

 

 

 

문산 포구와   아득하게 개성  북녘 하늘 아래로 산줄기가 흐르고 있다.

 

  

 

 

봉서산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 (1)

 

 

 

봉서산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 (2)

 

  

   

봉서산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 (3)

 

  

 

봉서산 자락의 파주향교

 

 

장지산 용암사 쌍미륵이 바라 보인다.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양지말길을 걷다 무심코 뒤를 돌아본다.

홀연, 눈앞을 가로막는 것은 하늘을 떠받들 듯 우뚝 치솟아 있는 장엄한 삼각산이다.

하늘은 회색구름이 몰려와 덮이고 삼각산 영봉 위로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황홀한 순간이다.

오! 가슴에 천천히 감동이 밀려온다.

더위에 지친 심신에 단비를 뿌려주 듯 생기를 되찾는다.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양지말길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 (1)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양지말길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 (2)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양지말길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 (3)

 

   

 

 

 

장지산 기슭의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쌍미륵이라 불리기도 한다

 

  

 

 

 

 

 

보물 제93호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坡州 龍尾里 磨崖二佛立像)

 

 

대자산(大慈山, 210m) 은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과 고양동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산이다.

대자산의 산세는 북쪽으로 파주시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통일로변 공릉천에 닿는다.

산기슭에는 최영장군의 묘소와 성녕대군 등의 묘소와 고양향교가 있다.

 

대자산에서 고향향교로 내려오는 산기슭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이곳에서 삼각산이 아름답게 조망된다.

인수봉 숨은 벽 백운봉 만경대 노적봉이 깎아놓은 뿔처럼 바라보이고 주 능선이 길게 누워 있다.

푸른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있다,

아! 아름답다.

산은 멀리서 바라보아야 산이다.

산은 멀리서 보아야 감동적이다.

 

 

고양   대자산에 바라보이는 삼각산 (1)

 

 

 

 

고양   대자산에 바라보이는 삼각산 (2)

 

  

 

 

최영 장군 묘

 

   

 

 

고양 향교

 

 

고양시에서는 고양힐링누리길 8개 코스를 조성하여 놓았는데,

이 중 고양 송강누리길과 고양동누리길, 그리고 고양 한북누리길을 걸으며 삼각산을 조망하였다.

 

고양 송강누리길

고양시 덕양동 원신동 송강들 옆 공릉천변은 운치 있는 길이다.

천변을 걷다 보니 삼각산 영봉이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구름 속에 장엄하게 치솟아 있다.

지천으로 핀 노란 원추천인국이 바람에 흔들린다. 

능선 위로 솟아오른 삼각산이 한 떨기 연꽃 같다.

흰 구름이 뭉실뭉실 마구 피어올라 푸른 하늘에 가득하다.

이글 거리는 뜨거운 태양 아래 서서 바라보는 이 삼각산의 황홀한 풍광은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지천으로 핀 노란 원추천인국과 산릉선 위로 솟아오른 삼각산은 장엄하기만 하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삼각산

 

  

고양시 덕양구 신원 고양 송강누리길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공릉천변을 걷는다.

공릉천 징검다리에 서서 바라보이는 삼각산의 풍광은 또 다른 감흥을 일으킨다. 

수면 위로 보이는 웅장한 삼각산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수련 같다.

 

 

공릉천을 건너는 징검다리   -  메타세쿼이아가 공릉천변에 도열하고 있다

 

 

 

 

공릉천  징검다리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은 물 위에 떠 있는 수련 같다.

 

 

 

 

 

고양시  관산동 공릉천 둔치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

 

 

 

고양 한북누리길을 걷다 보면 지축동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과 의상봉 능선이 아름답다.

한미산 흥국사(漢美山 興國寺) 경내에서는 삼각산 암봉 머리 부분이  조망된다.

  

 

 

지축동에서 바라보이는 삼각산과 의상봉

 

 

 

漢美山   興國寺에서 조망되는 삼각산(1)

 

  

 

漢美山  興國寺에서  흥국사에서 조망되는 삼각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