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호국사찰 원원사지(鳳棲山 遠願寺址)를 찾아서

2013. 1. 10. 22:06문화유적 답사기/천년을 흐르는 신라의 숨결을 찾아서

천년을 흐르는 신라의 숨결을 찾아서

 (5) 호국사찰 원원사지(鳳棲山 遠願寺址)를 찾아서      

     2012.11.30.

 

삼국유사 신주편(神呪篇) 명랑신인(明朗神印) 조에는,

신라 서울 동남쪽 20여 리에 원원사(遠源寺)가 있는데, 세간에 이렇게 전한다.

"안혜 등 4 대덕(四大德)이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 등과 함께 발원하여 세운 것이며, 4 대덕의 유골이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묻혔으므로, 이 때문에 사령산(四靈山) 조사암(祖師岩)이라 한다."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봉서산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원원사 밀교(密敎)를 계승한 안혜(安惠)ㆍ낭융(朗融)이 김유신ㆍ김의원ㆍ김술종 등과 뜻을 모아 천년만년 신라의 영원을 서원하며 세운 절 원원사

신라의 호국사찰이며 밀교(密敎)의 중심도량인 원원사 옛 절터를 찾아 새벽길을 떠난다. 외동 버스 정류장에 하차하여 길을 건너 굴다리를 지나 모화리 마을을 걷는다.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마을길을 부지런히 걸어 마을을 벗어나자 산길로 접어든다.

원원사 절 어귀 길섶에는 미끈하게 다듬은 시비가 서 있다.

시인 오민필의 '산사로 가는 길'이 새겨져 있다.

 

원원사 가는 길은 풀벌레 오늘을 울고

더불어 사는 행로 진각을 만나리니

그윽한 천불전당에 목탁소리 생동한다.

 

달빛은 바람에 흘러 청태 낀 불탑 둘레에

업보 숨결 되짚으며 염주 알에 쉬노라니

고매한 사령 삼장의 뜻, 누리 가득 빛나네

 

옛 가람 홍법불도 세월 끝에 풍경 달고

비바람 건너와서 구국위업 귀감되니

혁혁한 배달 얼의 화신, 청사 깃을 여민다

험상궂은 금강역사를 바라보며 대숲 우거진 산길을 돌아드니 석축 위로 근래에 지은 원원사 천불보전이 보인다.

원원사 터는 천불보전 뒤 석축 높은 언덕 위에 있다.

 

 

                                                                            

 

평평한 돌을 깐 길을 걸어 오르니, 석축을 쌓은 높은 언덕 위로 두 기의 하얀 삼층석탑이 푸른 소나무 속에 빛나고 있다.

누런 가랑잎으로 덮인 둔덕에는 석축과  긴 돌계단이 보이는데, 고색이 도는 소박한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예스런 돌계단을 오르니 절터에는 노송이 울울하게 빙 둘러쳐 있다.

안혜 등이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 등과 함께 신라의 영원한 번영을 발원하며 세운 절 원원사

4 대덕의 유골을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묻었으므로, 사령산(四靈山) 조사암(祖師岩)이라고 했다는 삼국유사의 현장이다.

금당터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동. 서 2기의  삼층석탑과 석등이 옛 절터를 지키고 있다.

 

석탑을 가만히 바라보니 기단부 4면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십이지상을 조각하였는데 어떤 곳은 또렷하고 어떤 곳은 희미하다.

이들의 머리는 짐승이나, 몸체는 평복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며 옷자락을 하늘로 휘날리며 앉아 있는 모습이다.
1층 탑신부 4면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사천왕상이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이 또한 또렷한 곳과 뭉그러진 곳이 있다.

또렷한 곳은 유려하고 섬세한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한참이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군데군데가 깨어진 지붕돌과 몸돌에서 천년 세월을 읽는다.

석탑을 돌며 기단석과 탑신에 새겨진 사천왕상과 십이지상을 고요히 들여다본다.

 

용틀임하는 붉은 노송이 천년의 석탑을 옹위하고 있다.

갑옷 입고 무기 든 돌 속의 사천왕은 늘 언제나  푸른 솔향을 맡아 저렇게도 늠름한 모양이다.

천년만년 신라의 영원을 염원하는 옛 신라인의 아련한 흔적을 더듬는다.

 

"인적 드문 이곳에 앉아 있습니다.

탑 속 누군가가 걸어 나왔을 리도 만무한데

누가 오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몸에 닿는 기운은

눈에 보여지는 것과는 사뭇 다른가 봅니다 "

 

석축과 긴 돌계단고색이 도는 소박한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금당터에서 바라 보이는 동 서 삼층석탑과 석등

 

경주 원원사지 (慶州 遠願寺址) / 사적  제46호

봉서산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원원사는 밀교의 후계자들인 한혜·낭융 들과 김유신·김의원·김술종 들이 뜻을모아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절터에는 금당이 있던 자리와 2기의 3층석탑과 석등 그리고 부도가 남아 있다. 탑은 동쪽과 서쪽에 있는데 규모와 형태가 거의 같으며 일제강점기에 복원된 것이다. 탑에는 12 지신상과 사천왕상을 새겨놓았는데, 그 수준이 매우 높아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우수성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두 석탑 사이에는 석등이 있고 4기의 부도가 동쪽과 서쪽 계곡에 나누어져 있으며 모두 고려시대 이후 것으로 보인다. 원원사는 명랑법사가 세운 사천왕사·금광사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전기까지 밀교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고 조선 후기까지 명맥이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탑의 조각 수준으로 보아 당시 품격 있는 절이었음을 알게 한다. (문화재청)

                     

 

  

군데군데 깨어진 지붕돌과 몸돌에서 천년 세월을 읽는다

 

 

기단석에는 십이지신상 1층 탑신부에는 사천왕상을 돋을새김 하였다.

 

  

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慶州 遠願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보물 제1429호

 

동·서 쌍탑의 경주 원원사지 동ㆍ서 삼층석탑은 사적 제46호 경주 원원사지 안에 있다. 

원원사(遠願寺)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밀교(密敎)를 계승한 안혜(安惠)ㆍ낭융(朗融) 등이 김유신ㆍ김의원ㆍ김술종 등과 뜻을 모아 

호국의 사찰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동ㆍ서 삼층석탑(높이 약 7m)은 도괴되어 있던 것을 1931년 가을(조선건축사론 중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시대 일반형 

삼층석탑론(건축잡지 1933.11월호. 藤島亥治郞)에 경주고적보존회에서 복원하였다.
두 탑은 같은 구조와 양식으로 조성된 2중 기단의 삼층석탑이며, 하층기단 면석과 갑석 및 상층기단 면석은 각각 8매, 상층기단 갑석은 

4매로 구성되어 있다. 

상·하층기단의 면석에는 2개의 탱주와 우주가 있고, 하층갑석의 상면에는 2단의 상층 기단 괴임이 있으며, 상층갑석 4면의 각 기둥 

사이에는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십이지상을 조각하였는데 이들의 머리는 짐승이나, 몸체는 평복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며 옷자락이 

하늘로 날리고 있는 형상이다.
1층 탑신석 이상 3층 옥개석까지는 모두 1 매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1층 탑신에는 우주가 있고, 4면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각 층 옥개석의 하면에는 5단의 옥개받침이 있고 상면에는 각형 2단의 탑신 괴임이 있으며 상륜부는 

노반석과 강화석이 남아 있다.

 

사천왕은 늘 언제나 푸른 솔향을 맡아 저렇게도 늠름한 모양이다.

 

   

옛 절터 아래 근래에 세워진 원원사

 

  

천불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