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산 정상에서 곰이 떨어져 죽은 웅석봉(熊石峰)

2012. 8. 28. 12:03나를 찾아 걷는 길/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4) 산 정상에서 곰이 떨어져 죽은 웅석봉(熊石峰)

     (내리 한밭마을-지성마을-지곡마을-지곡사-선녀탕-왕재-웅석봉-청계임도-탑동마을-단속사지-청계마을)

     2012. 7. 11. 수요  비

 

비 내리는 소리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전나무에 비 내리는 소리는 가슴을 적신다.

아련한 빗소리 들으며 전전반측하다  밤늦게 잠이 들었다.

방 덧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에 퍼뜩 잠을 깬다.

시간을 보니 새벽 6시다.

 

문을 열고 방을 나서니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젊은 주인이 나오며 "비가 많이 내리니 식사하시고 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천천히 가셔도 돼요"하며 인사한다.

서울에 살다 귀농한 젊은 부부가 화목하게 사는 곳이다.

집안 구석구석 주인의 손길이 안 간 곳이 없다.

허름한 농가 집 내부를 공방같이 아름답게 꾸몄고, 화장실에는 '비우소' 욕실에는 '닦으소'라는 표지목을 달아 놓았다,

또한 안주인은 정갈한 음식 솜씨를 자랑한다.

 

방문록을 부탁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비우소' '닦으소'의 멋이 있는 집

효가 백행의 근원이라 생각하는 반듯한 마음을 가진 집

격조있는 공방 같은 아름다움이 있는 집

호박잎과 풋고추, 쑥국, 어머니 밥상 같은 최고의 음식 잘 먹고 갑니다.

화목하고 아름다운 부부의

소구발원 꼭 이루소서

 

 "뭇새들이 멀리 날아가 버리고

구름만이 홀로 한가로이 떠도는구나

사뭇 바라보아도 싫지가 않은 것은

오로지 저기 저 지리산 뿐인 것을"   

<* 끝의 詩句는 이백의 '獨坐敬亭山'의 시로 경정산을 지리산으로 바꾼 것임 >                            

 

  

방에 있는 통나무 좌탁과  목각품

 

 

 

방 벽에는 잣송이, 소나무 새순 가지를 망에 넣어 걸어 놓아 솔향이 은은히 풍긴다.

 

정갈한 밥상

어제 저녁은 호박잎 풋고추 약초장아찌 그리고 쑥국의 쑥향이 입에 가득하였고 , 오늘은 따끈한 미역국과 정갈한 반찬이다. 

조반을 마치니 비가 잦아지기 시작하여 행장을 꾸린다.

일기예보로는 오후부터 개인다 하였기에 '지금은 비록 비가 오지만 산 능선에 오르면  운해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산행이 될 것'이라 

내심 생각하며 웅석봉을 오르기로 한다.

젊은 부부는 어제 내린 폭우와 지금도 내리고 있는 비로 웅석봉 산행을 걱정한다.

산 넘어 건너 마을에 도착하면 전화 한통 넣어 달라고 한다.

우의를 걸쳐입고 하직하고 집을 나서 농촌 들길을 걷는다.

파릇한 들 저멀리 웅석봉이 운무에 파묻혀 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르신네" 하며 부르는 소리가 있어 뒤돌아보니 젊은이가 달려오고 있다.

아침 식사하고 먹겠다고 밥상에 올려놓았던 약봉지를 들고 빗속을 뛰어 온 것이다.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수철-어천간 지리산 둘레길 도보여행 시 산청읍 내리 한밭마을에 있는 '구들장민박' ( 010-3928-5222 )을 추천하고 싶다.   

 

산청읍 옥산 내리교를 건너자마자 왼편 경 호강 따라 둘레길을 1km 정도 걸어가면 한밭마을이 나온다

통영대전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지성마을 지곡마을을 지난다.

내리 저수지 위 지곡 사지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비가 세차게 뿌리기 시작한다.

  

웅석봉이 운무에 파묻혀 있다.

 

'지곡 사지'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산청지곡 사지(山淸)

경상남도 기념물 제225호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내리

 

지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응진스님이 창건하였으며, 당시의 이름은 국태사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혜월스님과 진관스님이 절에 머물면서 불법을 크게 펼쳐 300여 명의 승려가 머물고 물방앗간이 12개나 될 정도의 큰 절로 성장하여 선종 5대 산문의 하나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추파스님(1718-1774)이 '유산음 현 지곡사기'에서 영남의 으뜸가는 사찰이라 평할 정도로,  그 교세는 조선 말기까지도 유지되고 있었던 것 같다. 현재 절터에는 거북머리 비석 받침대 2기가 남아 있으며, 그 밖에도 부서진 석탑 조각과 주춧돌, 대웅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70m 이르는 석축, 돌로 만든 우물, 돌계단 흔적과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 종 모양의 부도 2기와 비석 등이 있어 대사찰의 흔적을 전해준다. 지금의 지곡사는 1958년에 한 스님에 의해 중건된 것으로, 본래의 지곡사 가람 배치와는 무관하다. 무상한 세월과 함께 절은 흔적만 남았지만, 지곡사에서 멀리 황매산을 바라보면 산이 마치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신비감을 더해 준다.

 

지곡사 앞 주차장

 

 

 

 

천 년 전 옛 지곡사의 유적인 깨어진 석물들은 무성한 잡초에 묻혀 있다.

가득히 핀 화려한 노란 원추천인국과 대비되어 잡초에 덮인 깨어진 석탑 조각과 거북머리 받침대 등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저수지 너머 멀리 구름에 덮인 하늘을 응시한다.

누워있는 부처 형상의 황매산을 그리면서....

운무에 파묻혀 있는 웅석봉을 바라보기도 하며, 쏟아지는 빗줄기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쉼터를 서성인다. 

1시간 30여 분 참고 기다리니 비가 잦아든다.

  

거북받침대 석탑조각 등 옛 지곡사 유적 석물이 남아 있다.

 

원추천인국과 저수지 너머 멀리 황매산이  구름 속에  묻혀 있다.

 

 

쉼터

 

쉼터 곰 형상의 식수대

 

 

 

 

웅석봉에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다.

 

 

초가을 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 그 까닭을 안다
몸이 젖어서 안으로 불붙는 외로움을 만드는
사람은 그 까닭을 안다
후두두둑 나무기둥 스쳐 빗물 쏟아지거나
고인 물웅덩이에 안개 깔린 하늘 비치거나
풀이파리들 더 꼿꼿하게 자라나거나
달아나기를 잊은 다람쥐 한 마리
나를 빼꼼히 쳐다보거나
하는 일이 모두
그 좋은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외로움이야말로 자유라는 것을
감기에 걸릴 뻔한 자유가
그 좋은 사람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 안다

 ( 좋은 사람 때문에  / 이성부 )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지곡사 앞을 지나 계곡을 따라 난 길을 걷는다.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하다.

 

현재의 지곡사

 

 

 

 

                                                                                               

차단기를 지나 계곡을 따라 이어진 임도를 따라 걸어 오르니 우레 같은 물소리가 들리는 선녀탕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왼편 임도는 십자봉을 지나 웅석봉 오르는 길이고, 등로 표시가 없는 정면의 선녀탕 쪽으로 이어진 희미한 산길은 곰골로 

이어지는데 웅석봉 정상으로 접근하는 짧은 길이지만 길도 희미하고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위험 구간이다.

당초 목표는 이 길로 올라 가려했으나 간밤의 폭우로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물줄기와 사면의 돌들이 반질반질하여 엄두를 내지 못한다.

 
두 계곡이 합수하는 지점 바로 위에 있는 선녀탕

간밤의 폭우로 굉음을 내며 폭포가 떨어지고 있다.

이곳이 바로 한국자연보존협회에서  '한국명수 1백 선'으로 선정한  선녀탕이다.

 

 

'한국명수 1백선'으로 선정한  선녀탕

 

 

선녀탕

 

선녀탕 삼거리에서 우측 왕재로 오르기로 결정한다.

무리 지어 붉게 핀 하늘말나리가 이 길로 어서 오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이 길로 어서 오르라 말해주는 하늘말나리

 

계곡의 폭포와 암반들이 줄줄이 보인다.

빗줄기가 세차다 여리다 반복하며 내린다.

비를 맞으며  푸른 숲을 배경으로 하늘말나리는 붉은 꽃을 피워 산중을 밝히고 있다.

발길을 멈추고 빗물인지 땀인지 흐르는 물기를 훔치며 하늘말나리를 바라본다.


여름이 운이 좋아
푸른 녹음을 만나 머물러가는 계곡
괜스레 비바람이 몰아치더라.
개울물이 바위와 함께 조잘대는데
장마가 그 꼴 못 보고
오락가락 훼방을 놓더라.
하늘말나리 해를 보며 다소곳이 웃는데
심술궂은 장맛비
고개도 못 들게 퍼부어 대더라.

사랑이야 달콤했지, 아름다웠지.
그러나 이별은 속으로 터지는 아픔이더라.
길고 긴 그리움이더라.
사랑은 짧고 그리움은 길고 길더라. 뭐 이런 말이지.

바람이 불더라.
심술 굳은 비바람이 불어대더라.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이
흐르는 눈물 씻어주는 건
그래도 바람이더라.
흐르는 눈물 감춰주는 건
그래도 비더라. 

( 여름 계곡 /  제산 김 대식 )

 

 

 

 

 

 

 

 

  

 

 

비를 맞으며  숲 속을  환히 밝히는 하늘말나리

 

 

하늘말나리

 

웅석봉의 속살을 보며 산길을 걷는다.

짙푸른 녹음, 암반 위를 흐르는 계곡수, 때로는 폭포.

나뭇잎은 퍼붓는 비를 맞으며 환호하고 있다.

이끼긴 바위

야생화가 숨어 있다.

비를 맞아 푸른 물기를 뿜어내는 끝이 뾰족한 타원형 잎을 단 산수국

남색꽃이 둥글게 모여 핀 산방꽃차례가 가지 끝에 달려 있고, 가장자리에는 꽃잎처럼 생긴 하얀 장식꽃이 둘러 피어 한껏 멋을 내고 있다

 

푸른 나비
떼 지어
꽃으로 피었다

그 꽃 위로
하늘빛 내려와
나비방석 빚어 놓았으니
잠시 쉬었다 가자

다리 쭉 뻗고 앉아서
긴 호흡으로
가뿐 숨 고르며
갈 길, 서둘지 말고

가만히 봐
푸른 나비가
꽃으로 핀
저 고요한 날갯짓

(산수국  /  최원정) 

산수국

 

 

 

 

 

 

 

 

  

하늘을 가린 짙은 숲 속 산길을 걸어 오른다.

이끼가 가득한 잡석지대에 닿는다.

골짜기 돌밭길을 따라  힘들게 오르니 잡초와 잡목이 들어찬 숯가마터가 나온다.

산길은 가팔라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파른 산 사면으로 지그재그로 나 있는 된비알 산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지그재그 길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수통의 물은 바닥이 보여 아껴 먹는다

흐르는 땀과 빗물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작은 공터가 있는 왕재에 도착한다.

비는 그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배낭을 풀고 바위에 앉아 수통을 꺼내 "웅석봉 아래 옹달샘이 있으니까" 하고 수통의 물을 다 마신다.

사방은 안개에 파묻혀 시계 제로다.

웅석봉에 올라갔다 날씨 때문에 하산길을 변경하여 다시 밤머리재로 회귀한다는 산악회원 그룹을 만난다.

 

 

 

 

 

  

 

 

 

 

왕재에 서 있는 이정표

 

 

사위가 안개에 파묻힌 능선길을 걸어 헬기장에 도착한다.

빗물이 고여 있는 헬기장은 안개가 자욱하다.

헬기장에서 비에 휩쓸려 파헤쳐진 소로를 따라 옹달샘으로 내려선다.

잡초 우거진 속 옹달샘에는 물이 흘러넘치고 있다.

빗물인지 샘물인지 뒤범벅된 물을 수통에 떠 배 부르도록 마시고 수통에 물을 채운다.

터리풀이 비를 맞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웅석봉 아래 헬기장

 

 

 

헬기장 아래의 옹달샘

 

 

산불 감시초소를 지나  운무에 뒤덮인 바위군 웅석봉 정상에 선다.

사방은 운무망망(雲霧茫茫) 일뿐이다.

 

산청산악회에서 세운 1099m 웅석봉 정상 표지석

검은 돌(오석) 양면에는 바위 위에 서 있는 반달곰을 음각하였다.

참으로 돋보이는 비석이다.

이때껏 산을 올랐지만 그림이 그려진 정상 표지석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물결쳐가는 지리산의 장대한 모습을 조망할 수 없어 유감이지만, 반달곰이 그려진  정상 표지석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밖에... 

 

웅석봉(熊石峰)은 글자 그대로 곰바위산이다.

이 지방사람들은 곰바위산이라 부르는데, 유산(楡山) 또는 웅석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웅석봉은 산세가 험하고 가팔라 산 정상에서 곰이 떨어져 죽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또 산세의 모양이 곰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산세가 웅장한 만큼 수려한 계곡도 많다. 정상을 중심으로 뻗어 내린 곰골과 어천계곡, 청계계곡, 딱바실골 외에도 남릉에서 발원하는 백운동과 실골 같은

골짜기는 경관이 뛰어나고 물이 맑기로 유명하다.

웅석봉의 정상에 서면 천왕봉에서 중봉 하봉 두류봉 쑥밭재 왕등재 밤머리재를 거쳐 웅혼한 기상으로 물결쳐가는 지리산의 장대한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동북으로는 황매산(1,104m)과 가야산(1,430m)이 아스라하다.

산아래로는 경호강(鏡湖江)이 산자락을 휘돌아 흘러내려 남강에 이르고, 대원사 골짜기도 가깝게 다가선다."

 

운무망망한 웅석봉 정상에 서서 마음의 눈으로 물결쳐가는 지리산의 장대한 모습을 그려본다.

천왕봉에서 출발하여 장대하게 뻗은 태극종주 길을 걸어 이 웅석봉까지 걸어 다시 한번 이 정상에 서는 날이 있으면 좋겠다.

 

 

검은 돌(오석)에  반달곰을 음각한 웅석봉 정상 표지석

 

 

  

 

 

웅석봉의 삼각점

 

 

 

바위군 위에 서 있는 웅석봉 정상 표지석

 

 

 

 

 

 

 

 

 

 

 

 

 

 

탑동마을 어귀

 

하산길은 어천 방향 길이다.

얼마간 걸어 내려가니 가파른 돌길이 시작되는데 바람을 동반한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집중하여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가파른 경사진 돌길과 험한 산길을 걸어 어천 운리 간 임도에 1시간 걸려 도착한다.

임도에 내려서니 갑자기 비가 장대비로 변하여 양동이로 물을 퍼붓듯이 쏟아진다.

앞을 보니 임도 삼거리에 정자 쉼터가 있다.

정자 마루에 배낭을 풀고 우의를 벗는다.

비바람 강풍 속에 쉬임 없이 장대비가 쏟아진다. 

임도에는 물이 흘러넘친다. 

시간은 오후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행장을 다시 꾸려 우의를 입고 탑동마을 가는 임도 따라 장대비 속을 걷는다.

온몸은 물에 빠진 듯 젖었고 등산화는 물이 차 철버덕거린다.

장대비를 맞으며 철벅거리는 임도를  2시간 걸어 탑동마을 어귀에 도착하니 비가 잠시 그친다.

산으로 운무가 피어오른다.

청계저수지를 바라보며 탑동마을로 향한다.

다시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정당매를 지나며 마을사람에게 이곳에 민박할 곳을 물으니 이곳에는 현재 민박처가 없다고 한다,

단속사 옆에 있었는데 현재는 수리 중이라 휴업 중이라 한다.

동서 탑이 서 있는 단속사지 앞 정자 쉼터로 들어 장대비를 피한다.

배낭을 풀고 전화기를 꺼내어 산청군 둘레길 안내소로 전화하여 이 근처 민박처를 물으니, 탑동마을에는 없고 

다소 안쪽으로 올라가면 청계에 민박처가 있다며 전화번호를 가르쳐 준다. 민박처에 전화하면 차로 픽업해 줄 것이라 한다.

전화하니 할아버지가 자동차로 픽업하러 나온다.

청계민박에 배낭을 푼다.

 

그 산에 역사가 있었다 / 이 성 부

 

오랫동안 나는 산길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산이 있음에 고마워하고
내 튼튼한 다리를 주신 어버이께 눈물겨워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는 일이야말로 나의 넉넉함
내가 나에게 보태는 큰 믿음이었다
자동차가 다녀야 하는 아스팔트 길에서는
사람이 다니는 일이 사람과 아스팔트에게
서로 다 마음 안 놓여 괴로울 따름이다
그러나 산길에서는 사람이 산을 따라가고
짐승도 그 처처에 안겨 가야 할 곳으로만 가므로
두루 다 고요하고 포근하다
가끔 눈 침침하여 돋보기를 구해 책을 읽고
깊은 밤에 한두 번씩 손 씻으며 글을 쓰고
먼 나라 먼 데 마을 말소리를 들으면서부터
내가 걷는 산길이 새롭게 어렴풋이나마
나를 맞이하는 것 알아차린다
이 길에 옛 일들 서려 있는 것을 보고
이 길에 옛사람들 발자국 남아 있는 것을 본다
내가 가는 이 발자국도 그 위에 포개지는 것을 본다
하물여 이 길이 앞으로도 늘 새로운 사연들
늘 푸른 새로운 사람들
그 마음에 무엇을 생각하고 결심하고 마침내 큰 역사 만들어갈 것을 내 알고 있음에랴!
산이 흐르고 나도 따라 흐른다
더 높은 곳으로 더 먼 곳으로 우리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