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랭이논과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며 걷다

2012. 8. 15. 00:19나를 찾아 걷는 길/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2) 다랭이논과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며 걷다

(매동마을-중황마을-상황마을-등구재-창원마을-금계마을-의중마을-벽송사-송대마을-세동마을)     

2012. 7.9  월요  맑음

 

새벽 4시 30분 출발하기 일어나 행장을 수습하고 밖을 보니 깜깜하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야  할 시각인데도 산속 마을이라 깜깜하다.

5시 가까이 되어 민박집을 나서 매동마을 둘레길을 걷는다.

언덕에 올라 앞을 바라보니 지리산 자락 마을과 산들이 운무에 묻혀 있다.

매동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매화꽃을 닮아 매동(梅洞)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뒷산 기슭은 온통 고사리밭이다.

멀리 피어 오르는 새벽 운무를 즐기고 있는데 민박집 할머니가 걸어 올라오신다.

"이른 새벽 어디 가십니까?"하고 물으니,  고사리를 꺾기 위해 밭으로 간다 한다.

매동마을에서는 중계탑을 목표로 하고 걸어 올라야  지리산 둘레길이 나온다.

 

 

 

 

 

 

 

 

 

 

중계탑 뒤 동녘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다.

해가 떠 오른다. 

동녘 햇살이 퍼진다.

소나무가 붉게 물들여진다.

고사리밭 너머 멀리 산 허리에 띠를 두른 운무도 불그무레하다.

 

저편 산마루 새벽안개
산허리 엮어 들어서고
산새 풀어헤친 운무
영롱한 아침 이슬로 남긴다

희뿌연 아침 햇살
발끝 무지개 꿈으로 맺히고
초롱한 산새 소리
기지개한 가슴에 앉는다

지난날 꿈의 여운
맴돌다 어지러워 멈춰 선다
걸어온 아침 발자국엔
촉촉한 과거로 젖어 있다

 -지난 꿈  / 이 재 기

 

 

 

 

 

 

 

 

 

길을 걷다 길 위에 서서 길가에 청초하게 핀 달맞이꽃을 본다.

 

달을 마중하며 핀다 하여 '달맞이꽃'이라 부른다.

뿌리잎이 땅바닥에 방석처럼 펼쳐져 있고 줄기에 어긋난 피침형 잎은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보인다.

줄기 윗부분에 해맑은 노란 꽃을 피웠다.

 

당신은 아시지요?
달님

당신의 밝은 빛
남김없이 내 안에
스며들 수 있도록
이렇게 얇은 옷을 입었습니다

해 질 녘에야
조심스레 문을 여는
나의 길고 긴 침묵은
그대로 나의 노래인 것을,
달님

맑고 온유한
당신의 그 빛을 마시고 싶어
당신의 그 빛깔로 입었습니다

끝없이 차고 기우는 당신의 모습 따라
졌다가 다시 피는 나의 기다림을
당신은 아시지요?
달님

             달맞이꽃 - 이해인

 

큰달맞이 꽃

 

 

 

 

 

  이른 시간이라 쉼터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숲길을 걸어간다.

산새들이 요란하게 지저귀기 시작한다.

건듯건듯 바람이 불어 흐르는 땀을 씻어준다.

 

 

 

 

 

묵답을 지난다.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사람손이 떠난 논밭, 묵답

 산업화의 물결 따라 농부는 논밭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다.

 한때 고추가 익고, 벼가 고개 숙이던 논밭은 농부의 발걸음이 끊기자 나무가 들어서 이제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땅의 본능을 볼 수 있다."

싸리나무에는 나비 모양의 붉은색 꽃이 촘촘히 피어 있다.

 

 

 

참싸리나무 꽃

 

 

 

중황마을 상황마을 다랑이 논이 바라 보인다.

군데군데의 쉼터를 지난다.

  

 

 

 

 

 

 

중황 쉼터

 

 

천년초밭이 보인다.

천년초는 한국 토종 선인장으로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백년초와 달리 영하 20도에서도 잘 자란다 한다.

천년초 밭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자락의 새벽 풍경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천년초 밭 너머로 펼쳐진 새벽 풍경이 아름답다.

 

 

천년초

 

 언덕길을 걷는다.

지리산 능선을 시원히 조망하며 걷는다.

 

 

 

 

 

 

 

 

  

자귀나무에는 기다란 분홍색 수술이 부챗살처럼 펴 있다.

공작새가 깃털을 활짝 펼친듯한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는 자귀나무꽃이 신비롭게 보인다.

밤이 되면 마주 보는 잎이 2장씩 포개져 마치 잠을 자는 것 같다 하여 '자귀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개망초가 하얗게 흐드러지게 핀 길을 걷는다.

 

 

 

 

 

논둑길 쉼터

조망이 아름다운 언덕에 있는 시원한 쉼터이다.

채마밭은 잡초 하나 없이 깨끗이 정 돼 돼 있고 기화요초가 자라고 있다.

배낭을 푼다.

주인장에게 이곳이 최고의 쉼터라고 말하니 연실 감사하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주인장이 '구절초 식혜'라며  마셔보라 한다.

살얼음이 낀 차가운 식혜 한 사발을 마시니 속이 서늘해진다.

구절초의 씁쓸한 뒷맛이 묘하게 입안을 개운하게 한다.

잔치국수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포도나무에는 터질 듯 탱글탱글 포도알이 익어가고 있다.

봉숭아, 곰솔, 우담동자, 석죽, 등이 보인다.

마을 뒤쪽 삼봉산이 1,187m의 높은 산이라 물이 잘 마르지 않으며, 또한 논에 댈 저수시설도 해놓아 물 걱정은 하지 않는다 한다.

잣 한 봉지를 사들고 하직하고 길을 떠난다.

 

  

 

 

 

 

 

 

 

 

탱글탱글 영글어가고 있는 포도알

 

봉숭아

 

 

곰솔

 

우담동자

 

석죽

 

작은 쉼터를 지나 다랭이논을 따라 산 쪽으로 올라가 본다.

시원한 다랭이 논 조망을 기대하였으나 실망이다.

 

 

 

둘레길 따라 상황마을로 향한다.

도라지꽃 봉오리가 앙증스럽다.

호두나무에는 호도알이 굵어가고 있다.

 

 

 

 

 

상황마을의 다랭이논이 조망된다.

층층으로 된 작은 논배미가 끝없이 이어져 있다.

아침 햇살로 선명하게 찍히지 않고 뿌옇다.

등구재를 향하여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다랭이논과 마을이 아득히 바라보인다.

 

 

 

 

 

 

 

매동마을에서 금계 가는 둘레길에는 군데군데 쉼터와 민박집이 많이도 있다.

등구재에 오르기 직전에도 쉼터가 두 군데나 있다.

 

 

 

등구재에 도착한다.

거북등을 닮아 붙여진 이름 등구(登龜)재

경남 창원마을과 전북 상황마을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고갯길이다.

조선시대 창원마을 사람들이 쌀과 한지를 팔러 인월장에 가기 위해 등구재를 넘었고,  또한 새색시가 꽃가마 타고 넘던 옛길이다.

서쪽 지리산 만복대에 노을이 깔릴 때, 동쪽 법화산 마루엔 달이 떠 올라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고갯길이다.

삼봉산과 금대암 가는 이정표가 서 있다.

 

 

 

 

 

 

 

 

  

등구재를 넘어 나무계단으로 잘 복원된 옛길을 따라 걸어 내려간다.

옛날 논에 댈 물을 얻기 위해 만들었던 조그마한 저수지가 보인다.

지금은 야생동물들이 물을 마시는 생명의 옹달샘이 되었고 새들이 모여들어 살고 있다.

 

 

 

논에 댈 물을 얻기 위해 만들었던 저수지  -지금은 야생 동물들의 옹달샘이 되었다.

 

창원마을 내려서는 길에는 초록색을 배경으로 붉은 자귀나무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붉은 자귀꽃과 다랭이논, 겹겹의 산능선이 어우러져 풍광이 아름답다.

창원마을은 조선시대 국가 창고가 있었을 정도로 쌀이 풍부했었고 한지 생산지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등구재를 넘어 창원마을 다랭이논을 바라보며 길을 걸을 때는 풍요로움을 이 느껴진다.

땅도 기름지고  조망과 경치가 수려하다.

숨 돌릴 사이 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광에 도취되어 길을 걷는다.

지리산 주능선이 선명히 조망된다.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장터목 연하봉 촛대봉 세석 영신봉....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가며 걷는다.

 

이백(李 白)이 지은 '독자경정산(獨座敬亭山)'이라는 제목의 시가 생각난다.

경정산을 지리산으로 바꾸어 읊어 본다.

 

뭇새들이 멀리 날아가 버리고

구름만이 홀로 한가로이 떠도는구나

사뭇 바라보아도 싫지가 않은 것은

오로지 저기 저 지리산뿐인 것을

붉은 자귀꽃과 다랭이논,  겹겹의 산능선이  어우러져  그림처럼 아름답다.

 

 

 

 

 

 

 

 

 

 

 

 

 

 

 

 

 

 

 

창원마을을 지나 언덕길을 굽이굽이 돌아 금계마을로 내려선다.

햇볕이 따가워지기 시작한다.

시간을 보니 10시 50분을 넘어서고 있다.

쉼터 '나마스테' 안내판의 글들이 예사스럽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마음으로, 천왕봉 칠선계곡 보며 잠시 쉬었다 가세요

천연꿀 팥빙수  등등"

마당에 벽돌 건물 모서리 앞 캔버스에 기대어 서 있는 화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삶에서의

발전은

참된 지혜에 따른다.

 

참된 지혜는

느낀 것을 실감하고

생각한 것을 알며

 

자기 앞에

다가오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여는 것

 

건물 옆을 돌아 목재로 만든 테라스로 올라선다.  

앞을 바라보니 두리봉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이 품 안에 들어온다.

지리산 천왕봉을 정원으로 끌어들인  쉼터 '나마스테' 다.

테라스 난간에는 두 곳에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 있다.

 

가난을 스승으로 청빈을 배우고

질병을 친구로 탐욕을 버렸네

고독을 빌려 나를 찾나니

천지가 더불어 나를 짝하누나

산은 절로 높고 물은 스스로 흐르는데

한가한 구름에 잠시 나를 실어 본다

바람이 부는 대로 맡길 일이지

어디로 흐르던 상관할 것 없네

있는 것만을 찾아서 즐길 뿐

없는 것은 애써서 찾지 않나니

다만 얽매이지 않으므로

언제나 즐겁구나

 

 

"당신에게 자신의 침묵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낸다면 두려움 없이 당신 마음의 홀로 있음 속으로

나아갈 용기를 가진다면, 그리고 외로운 이들과 더불어 그 고독을 나누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면,

당신과 하나님은 모든 자리 가운데서 한 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빛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나는 내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안다. 하지만 어떻게 위험을 두려워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한 위험이 내게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나는 두렵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을까 봐."

- 토마스 머튼

 

 

주인장에게 팝빙수를 청하니 잠시 기다린다 한다.

그런데 젊은 청년인 주인장은 다리를 절고 있다.

벽에 붙은 히말라야 고봉을 뒷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의 인물이다.

히말라야 산악 등정을 하다 다친 듯 보인다.

그러나 청년은 이미  꿋꿋이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어디서 왜 어떻게 다쳤느냐  물으며 과거사를 들추고 싶지 않다.

 

고요한 달밤에 거문고를 안고 오는 벗이나
단소를 쥐고 오는 벗이 있다면
굳이 줄을 골라 곡조를 아니 들어도 좋다.

 

이른 새벽에 홀로 앉아 향(香)을 사르고
산창(山窓)에 스며드는 달빛을 볼 줄 아는 이라면
굳이 불경(佛經)을 아니 배워도 좋다.

 

저문 봄날 지는 꽃잎을 보고
귀촉도 울음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라면
굳이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구름을 찾아가다가 바랑을 베고
바위에 기대어 잠든 스님을 보거든
굳이 도(道)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

 

해 저문 산야에서 나그네를 만나거든
어디서 온 누구인지 물을 것이 없이
굳이 오고 가는 세상사를 들추지 않아도 좋다.

-멋진 사람 / 해안

 

 

테라스 의자에 앉아 천왕봉 아래로 흐르는 칠선계곡이 어느 산줄기 사이로 흐르는지 가늠해 보고 있으려니 팥빙수를 내 온다.

분쇄된 수북한 얼음과 팥 과일을 섞은 후 입안에 한술 떠 넣으니 시원함과 함께 천연꿀의 향이 입안에 가득해진다.

주인장에게 명품 팥빙수 잘 먹고 간다며 하직하니 고맙다며 웃음 짓는다.

 

 

 

 

 

 

두리봉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이 조망된다

 

 

 

천연꿀을 넣은 명품 팥빙수

 

파전 안내판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재미있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파전 안내판

 

금계마을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의 의탄교를 건너기 전 마을이다.

의평, 의중, 금계마을을 합쳐 의단이라 한다.

냇물을 건더 다니는 징검다리를 노디라 하는데 건너기 전 마을이라는 뜻에서 노듸목(金鷄)이라 했다.

정감록에 나오는 금대산 밑에 금계동이고 이곳이 지리산 피난민이 하나둘 모여서 이룬 마을이다.

서쪽에는 감투바위 동쪽에는 둥둥 바위 북쪽에는 맹맹이바위 물방울골 새벌들 홍골등이 있으며 1520년 벽송사를 창건한 벽송대사가 법계정심대사 곁을

떠나다가 되돌아서 도를 받은 살바탕(벽송정)도 있다.

 

 

 

 

 

 

예전에는 의중 의평 추성리로 가기 위해서는 징검다리나 섶다리로 건너야 했지만 지금은 의탄교로 건넌다.

의탄교를 걷다 뒤를 돌아보니 채석장에 커다란 부처상이 건립되고 있다. 

 

의탄교

 

 

의탄교 아래로 흐르는  엄천강

 

 

 

채석장에 건립되고 있는 부처상

 

의탄교를 건너니 멀리 큰 나무가 보인다.

수령 620년 된 느티나무로  의평마을 당산나무다.

네 가지로 갈라진 노거수 느티나무는 수고가 22m나 되고, 나무 둘레가 6.4m나 되는 거대한 당산나무다.

나무아래 널따란 평상에는 마을 어르신들이 눕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하며 부채질을 하고 있다.

매년 음력 초삼일에는 풍년과 마을의 평온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낸다.

 

 

 

 

수령 620년 된 의평마을 당산나무

 

의중마을로 가는 둘레길을 가기 위해 다시 조금 되돌아 나와  가파른 산기슭을 오르니 평평한 곳에 도달하는데 노송과 대나무숲이 둘러쳐 있다.

언덕을 내려서니 의중마을이다.

 

 

 

 

 

의중(義仲) 마을은 칠선계곡 입구에 있는 마을로,

고려시대 의탄소(숯)라는 지방특산물을 중앙에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행정구역인 소(所)의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의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의중마을 입구에서 언덕길을 오르니 죽포 대다.

죽포 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변에는 대숲이 울울하게 자라고 있다.

  

 

 

 

 

 

 

 

멀리 산 능선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사방으로 튼실하게 뻗은 뿌리를 바탕으로 800여 년 풍상을 겪으며 자라 온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다.

의중마을 당산나무다.

독특하게도 매년 7월 7일 칠석날 당산제를 지낸다 한다.

 

 

 

 

 

의중마을 당산나무

 

 

 동강 수철 둘레길과 벽송사로 가는 갈림길이다.

둘레길 안내문을 보며 벽송사 길을 택하여 산길을 걷는다.

 

 

 

 

묵묵히 산길을 걷는다.

이 길은 불공을 드리려 절을 찾아가던 옛길이다.

약초와 산나물을 캐러, 땔감을 하러 오려 내렸던 길이기도 하다.

구불구불한 노송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

산 오솔길을 뒤덮고 있는 하얗게 꽃이 핀 개망초 군락을 헤치며 앞으로 나간다.

꽃잎과 꽃가루가 옷에 묻으며 흩어진다.

키는 작지만 빽빽하게 자라는 대나무 신우대 숲을 지난다.

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묘법연화(妙法蓮華)' 각자가 있는 바위가 보인다.

  

 

 

구불구불한 노송의 아름다운 자태

 

 

 

개망초가 하얗게 흐드러지게 피었다.

 

 

 

시누대 숲길

 

 

 

묘법연화 각자가 있는 바위

 

 

차도로 오른다. 서암정사 가는 길이다.

서암정사를 둘러보고 곧바로 차도 옆의 나무사다리를 짚고 산기슭으로 올라 산길을 걸어 벽송사로 향한다.

다시 차도로 내려선다.

산기슭에 촘촘히 법문이 세워져 있다.

한국 선불교의 종가임을 웅변해 주고 있다.

구절 귀절 청량한 법문을 읽으며 더운 줄 모르고 산길을 걸어 오른다.

왕방울 눈과 주먹코를 한 금호장군, 호법대신 두 나무장승이 우뚝 서서  벽송사를 지키고 있다.

이 나무장승은 원형을 모조하여 조각한 장승이다.

 

 

 

 

 

절 입구 양편에 서 있는 금호장군 호법대신 나무장승

 

 

 

금호장군  - 여장승

 

 

 

호법대신   - 남장승

 

 

 

 

 

 

 

 

 

 담장 뒤로 보이는 당우에는 '지리산벽송사'라 쓴 현판이 단정히 걸려 있다.

경내는 한 점 티끌 없이 깨끗하다.

 

 

 

 

 

  

절 입구 노천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나무장승의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해, 100여 년 전 일제초기에 제작된 당초 절 입구에 있었던 

나무장승을 이곳 경내에 보호각인 장승각을 짓고 이전하였다.

이 나무장승은 순천 선암사 앞에 있었던 나무장승과 함께 조각 솜씨가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왼편에 서 있는 금호장군은 1969년 산불이 났을 때 머리 부분과 코 부분이 타버려 없어졌고 또한 심하게 썩어 몰골이 참담하다.

호법대신은 왕방울 눈 하나를 빼고는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나  이 역시 많이 갈라지며 썩어가고 있다.

이 장승들이 비록 단단한 밤나무로 만들어졌으나,  눈 비바람을 맞으며 오랜 세월을 보내 갈라지고 터지고 썩어 빛바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왕방울 눈과 뭉툭한 주먹코 일자형 입과  수염,  무서운 것 같으면서도 순박하고, 위풍당당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에 친근감을 느낀다.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든 장승이기도 하다.

 

장승각

 

 

 

참담한 몰골의 禁護將軍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護法大神

 

장승각 옆 돌확에는 대통을 타고 흐르는 물이 흘러넘친다.

붉은 잎과 푸른 잎이 물 위에 떠 있고 밑바닥에는 나무 열매가 보인다. 

대통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돌확 속의 가득한 물은 파문이 일고 있다.

명징(明澄)한 물속을 바라본다.

삼라만상 우주가 들어 있다.

  

 

 

 

 

먼저 발길을 삼층석탑과 미인송 도인송이 있는 절 위쪽으로 향한다.

푸른 대숲에서는 청정한 기운이 퍼져 나오고 있다.

뒷산에는 푸른 소나무(碧松)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3기의 석종형 부도와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삼층석탑은 원래 벽송사 대웅전 동편에 세워 놓은 것이데 사찰이 아래로 옮겨져 탑만 남게 되었다.

사찰 창건이 1520년이므로 그때에 탑도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상륜부에는 복발과 모발이 남아 있다.

삼층석탑 뒤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미인송 도인송 사이로 겹겹의 능선과 멀리 아스라이 지리산 주능선이 보인다.

긴 세월 묵묵히 이곳을 지키며 서 있는 미인송과 도인송이 미끈하고 훤칠하다.

벽송사 전경이 한 눈이 들어온다.

수려한 풍광이다.

 

"벽송사(碧松寺)는 조선 중종 시대인 1520년 벽송지엄(碧松智嚴)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절이다. 조선시대 불교의 선맥(禪脈)에서 보면 벽계정심, 벽송지엄, 부용영관, 경성일선, 청허휴정(서산), 부휴선수, 송운유정(사명), 

청매인오, 환성지안, 호암체정, 회암정혜, 경암용윤, 서룡상민 등 기라성 같은 정통조사들이 벽송사에서 수행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

아울러 선교겸수한 대 종장들을 108분이나 배출하여 일명 “백팔조사 행화도량”(百八祖師 行化道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벽송사는 지리산의 천봉만학(千峰萬壑)을 앞뒤 동산과 정원으로 하여 부용(芙蓉:연꽃) 이 활짝 핀 것과 같은 부용만개(芙蓉滿開), 혹은 푸른 학이 알을 품고 

있다는 뜻의 청학포란(靑鶴抱卵)의 형국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시작된 지리산 빨치산들의 암약(당시 벽송사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됨)으로 말마암아 국군에 의해 방화되어 완전 

소실되는 슬픈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60년대 이후 구한 원응(久閒元應) 대사의 원력에 의해 중건된 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옛날 선종의 최고 조정에 벽송선원을 낙성하여 을유년(2005년) 하안거에 개원하여 눈 푸른 납자들이 수선정진할 수 있는 선찰종가(禪刹宗家)로 

거듭나게 되었다."

 

 

푸른 대숲

 

 

 

석종형 부도

 

 

 

삼층석탑

 

 

 

병풍처럼 둘러쳐진 碧松 (푸른 소나무)

 

 

 

 

 

미인송

 

 

  

 

 

도인송

 

 

 

 

미인송과 도인송

 

 

 

벽송사 전경

 

 

벽송사 경내 안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수국이 소담하게 피어 있다.

티끌 한 점 없이 깨끗이 비질된 도량에는 정적만이 감돈다.

참선정진하는 하안거 기간이다.

'결제지역 출입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고 대나무로 가로막아 출입을 막고 있다.

원통전 산신각 뒤로 미인송과 도인송이 보인다.

 

청허당 서산대사의 시가 생각난다.

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진댄

不須胡亂行  그 발자국을 어지럽게 하지말라.

今日我行蹟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는
遂作後人程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

 

또한 부용선사는 다음과 읊었다.

부질없는 세월 아득히 소림을 생각하다

어느덧 구레나룻은 희어졌구나.

세존 설법 당시 그 옛날은 소리도 없고

성도 하신 그때엔 모든 향기도 끊어졌다.

그루터기인양 좌선하니 일체분별 사라지고

바보처럼 지내노니 시비심 일어나지 않네.

헛된 생각일랑 산문 밖으로 날려 보내고

온종일 세상일 잊고 푸른 산만 마주한다.

 

적요만이 감도는 청정도량에 서 있으니 몸도 마음도 쇄락해지고 눈도 초롱초롱해진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식수대로 향한다.

대통으로 흘러나오는 물을 연거푸 받아 마신 후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운다.

 

기와불사를 하고 돌아서니 스님 한 분이 나오신다.

송대마을을 가고자 한다 하니 저 쪽 언덕으로 오르면 된다 하며 손을 들어 길을 안내한다.

 

 

 

 

 

 

 

 

원통전 뒤로 도인송과 미인송이 보인다

 

 

 

 

 

 

언덕을 올라 돌아가니 둘레길 안내판이 서 있다.

가파른 산길을 30분 정도 오르니 송대마을 2.8km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에서 상내봉(1,160m)을 오르는 능선이 벽송능선이다.

선들바람이 불어와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촘촘히 하얀 페인트로 '송대마을 화살표' 이정표가 그려져 있다.

40여분 능선 길을 걸어가니 출입금지 팻말과 함께 로프로 길을 막아 놓았다.

송대삼거리다.

이 로프를 넘어서 곧장 능선길을 따라가면 상내봉으로 간다.

좌측 산기슭 길을 따라 송대마을로 향한다.

매미소리 산새소리가 들린다.

철조망이 나오고 작은 계곡이 앞에 나타난다.

무더위로 인해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배낭을 풀고 신발을 벗고 흐르는 계곡에 탁족을 하니 몸이 서늘해진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니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피어오른다.

두 군데의 철조망을 지나 계곡을 건너 차도 위로 올라선다.

송대마을이다.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어설프게 그려진 이정표가 보인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상내봉 와불상이 바라다 보인다.

 

 

 

 

 

 

 

 

 

송대 삼거리에 있는 출입금지 표식과 로프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이정표

 

 

 

상내봉 능선 와불상     상내봉(1,160m)이  누워있는 부처 머리에 해당된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견불사가 보인다.

견불사로 올라가 바라보니 능선 뒤 삼봉산이 누워있는 보살상처럼 보인다.

  

 

 

뒤편  삼봉산(1,187m)이 누워있는 보살상처럼 보인다.

 

 

강렬한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귀나무는 붉은 꽃을 화사하게 피어 내고 있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머문 해도 이십여 년
 고고한 너의 향기에
 나그네 발걸음도 멈춘다
 
 침묵 속으로 들어온
 망향에 지친 몸
 실바람이
 땀방울 훔쳐낼 때
 분화하는
 좁쌀 같은 꽃망울
 새색시 볼처럼 아름답다
 
 그리움이 고독 넘는 날
 풍경화 고이 품고
 밤마다 움츠리는 당신은
 합환목合歡木사랑

      -자귀나무 / 김길자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언덕 위 고양터 마을회관을 바라보며 무심코 아스팔트 길 따라  걷는다.

용유교와 용유담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길을 꺾어 엄천강을 따라 걷는다.

자귀나무와 마찬가지로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향하여 피는 배롱나무 붉은 꽃이 보인다.

배롱나무꽃 너머 멀리 용유교와 용유담이 바라보인다.

40여분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다 '

대구댁 소나무쉼터' 간판에 마을 위쪽으로 화살표가 그려진 것을 보고 길을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언덕 위 고양터 마을회관으로 올라 길을 따라 마적동으로 들어갔어야  세진대를 거쳐 이곳 세동마을까지 오게 된다는 것을...

세진대를 물으니 세동마을로 들어가 마을 뒷길을 따라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둘레길 걷는 사람들이 농작물에 손을 대 마을 사람들이 이정표를 모두 없애 버렸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피땀 흘려 가꾼 농작물에 손을 대는 사람이 있다니....

 

세동마을 대구댁 소나무쉼터 민박집이 보인다.

오늘 새벽 5시에 숙소를 출발하였는데 지금은 저녁 6시를 넘어서고 있다.

무더위 속에 장장 13시간을 걸었다

세진대 소나무쉼터는 내일 새벽에 가 보기로 하고, 이곳 세동마을 민박집에 배낭을 풀고 하루 유숙하기로 한다.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건
매서운 비바람이 아닙니다
뜨거운 태양이 아닙니다
바로 길섶에 핀
자그마한 제비난초 때문입니다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자기를 봐달라고
흔들거리는
저 들꽃의 몸부림 때문입니다

그대여,
이 세상 여행하면서
물 한 잔 간절히 그리우면
언제라도 제비난초 핀 들녘으로 오세요
그 자리엔
그대 지친 발걸음
잠시 씻을 수 있게

그대 향한 내 눈물이
샛강이 되어 여러 갈래로 흐를 테니까요

 

- 그대 지친 발걸음  /  김현태

  

자귀나무 꽃

 

 

 

고양터 마을회관

 

 

 

배롱나무꽃 너머 용유교와 용유담이 보인다

 

 

 

세동마을 대구댁 소나무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