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12. 15:34ㆍ도보여행기/한강 물길을 따라 걷다
(2) 신비스러운 한강 발원지 검룡소
2011.5. 4. 수요 흐림
새벽 민박 방문을 열고 나서니 새벽일을 하기 위해 주인도 일어나 밖으로 나오신다.
수인사를 나눈 뒤 금대봉골을 향하여 사박사박 걷는다.
여명이 터오고 있다.
산새들이 우짖기 시작한다.
먼 데서 닭울음소리가 들린다.
넓게 새로 조성된 주차장을 지나니 흙길이 시작된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라 새긴 표지석이 우뚝 서 있다.
인적 없는 산 오솔길을 걷는다.
새소리 물소리가 적막한 산중을 흔들어 깨운다.
물길은 참 아름답다.
물가로 내려가 연둣빛 나무잎사귀 그리고 바위를 부딪치며 흐르는 여울물 소리를 듣는다.
산길을 걷는다. 귀룽나무 산뽕나무 물푸레나무 까치박달나무 복자기나무가 보인다.
우짖는 산새소리, 여울물 소리가 우렁우렁하게 들린다.
연둣빛으로 변해가는 산색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대덕산과 검룡소가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세심교를 걷는다.
잎갈나무 낙엽이 쌓여 있는 잎갈나무 숲길을 걷는다.
이 숲길의 이름이 서낭목이다.
대부분의 침엽수는 상록수로 겨울에 잎이 남아 있지만 잎갈나무는 낙엽이 진다. 그래서 낙엽송이라고도 한다.
서낭목이 숲길을 넘어서니, 넓은 밭이 나오는데 한가운데로 검룡소에서 나오는 물이 흐르고 있다.
옛날에 서씨. 천 씨. 이씨네가 살던 터이다.
그래서 세집모테라고 부른다.
모텐슨 모퉁이와 같은 말인데 세집모테는 가마솥처럼 움푹하게 생긴 지형으로 1~2 가구가 살기에 족한 피난처와 같은 땅이다.
호랑버들 딱총나무 털댕강나무 고추나무 괴불나무 등등 나무 이름을 불러보며 걷는다.
낙엽사이로 노란 괭이눈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태백의 광명정기 예 솟아 민족 젖줄 한강을 발원하다'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보인다.
검룡소(儉龍沼)!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 기슭 “검룡소”와 그 일대 계곡은 특이하고 아름다운 지형․지질학적 경관을 이루고 희귀한 동식물상이 있다.
검룡소 위쪽 금대봉 기슭의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터굼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검룡소에
모여서 다시 솟구친다.
“검룡소”는 석회암반을 뚫고 하루 2천 톤 가량의 지하수가 솟아 나오는 냉천(冷泉)으로 사계절 9℃ 정도의 수온을 유지하고, 20m 이상
계단상 폭포를 이루며 오랜 세월 흐른 물줄기로 인해 깊이 1-1.5m, 폭 1-2m의 암반이 푹 파여서 그곳으로 물이 흐르는데 용틀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암반 주변에는 물이끼가 푸르게 자라고 있어 신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강은 여기 금대봉을 시작으로 정선 영월 충주 양평 김포 등 평야와 산을 가로질러 서울을 비롯한 5개 시. 도를 지나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를 지나 서해로 흘러가는 514.4km의 장강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고자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 소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이 지금의 폭포이며 인근에서
풀을 뜯다가 물먹으러 오는 소를 잡아먹기도 해 동네사람들이 메워 버렸다고 전해진다.
1986년 태백시와 태백문화원에서는 메워진 연못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검룡소는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하늘이 들어 있다.
용출하는 물을 떠서 마셔 본다.
차가운 기운이 머리를 쇄락하게 만든다.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운다.
검룡소에서 용출한 물은 20여 미터 계단상 폭포를 이루어 움퍽 파인 암반을 용이 용틀임하듯 흘러내린다.
움퍽 파인 바위가에 자라고 있는 푸른 이끼는 신비로움을 준다.
커다란 나무줄기에도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다.
신비로운 기운을 느낀다.
검룡소에서 용출하여 힘차게 꿈틀거리며 암반을 흘러내리는 저 물은 우리 겨레의 젖줄이 되어 이 강토 이 산하를 적시며 쉼 없이 흘러가고 있다.
검룡소(儉龍沼)에서
趙 世 用
여기는
강원도 대덕산 금대봉골
천 삼백리 아리수(阿利水) 발원지
석회 암반을 뚫고
꿀럭꿀럭 용출하는 석간(石澗) 벽계수
살아 있는 용 되어
골짜기 바윗돌을
이리 깎고 저리 깎으며
쉼 없이 휘틀며 흐르다가
임계천 송천을 아우르는
정선 아우라지 지나
영월 단종(端宗) 피눈물 담아
두물머리 양수리에서
천하 명산 금강산 싣고
금강천 가평천 홍천강을 지나온
북아리수와 하나 된
낮엔 해 구름 흐르고
밤엔 달빛 흐르는
한 [大, 一] 강 아리수 되어
도도히 서해로 흘러간다
반만년 오랜 역사
수많은 사연
모두모두 삼켜 버리고
흐느끼듯 어깨를 들먹이며
말없이 흘러만 간다
검룡소에서 용출된 물과 위의 골에서 내려오는 물과 합하여 시원스레 흘러내려가는 물을 망연히 바라본다.
"서울의 젖줄이면서 한국의 젖줄,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젖줄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강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렸던 강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중국의 위나라와 진나라 때의 지리지에는 이 강을 대수(臺水)라고 하였고, 광개토왕릉비에는 아리수(阿里水)로 올라 있다. 삼국사기의 백제 건국설화에는 이 강의 이름을 옥리하(玉里河)라 불렀고, 신라는 상류를 이하(泥河) 하류를 왕봉하(王逢河)라 불렀다. 고려 문헌에 한강은 큰 물줄기가 맑고 밝게 뻗어 내린 긴 강이라는 뜻으로 열수라고 불렀으며, 모래가 많기 때문에 사평도(沙平渡) 또는 사리진(沙里津)이라고도 불렀다. 한강의 명칭에 한(漢)이라는 글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중국문화를 도입하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 부르고 있는 한강 및 한수 또는 경강이라 불렀는데, 한강은 본래 우리말인 한가람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아리', 즉 '알'은 고대에 크다거나 신성하다는 의미로 쓰였는데, '한'도 이와 비슷한 뜻이다.
한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대동지지' 등 옛 문헌들에는 한강의 발원지를 오대산 우통 수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초기의 학자였던 권근은 기문에 우통수를 이렇게 적고 있다. '오대산 서대 장령 밑에 샘물이 솟아나는데 그 빛깔이나 맛이 특이하였다. 무게도 보통 물보다 무거웠고 사람들은 그 샘물을 우통수(于筒水)라고 불렀다. 우통수는 바로 한강의 수원이다. 사람들은 우통수의 빛과 맛이 변하지 않음이 마치 중국 양자강의 경우와 마찬가지라는 뜻에서 중령이라고도 불렀다. 중령이란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물 이름인데 여러 줄기의 냇물이 모여서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지만 중령의 물만은 다른 물과 어울리지 않고 그 찬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고사를 말하는 것이다.' 한강의 발원지가 오대산 우통수에서 지금의 태백시 검룡소로 바뀐 것은 1918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실측 조사한 결과에 의해서다. 오대산 우통수와 태백시 창죽동까지 골지천 길이를 계측한 결과 골지천이 32.5km가 길었다. " (한강역사 문화답사 / 신정일)
한강 물길 따라 걷기 첫걸음을 내딛는다.
검룡소에서 용출한 물길을 따라 걷는다.
서낭목이 잎갈나무 숲길을 사박사박 걷는다.
암반에 이끼가 자라는 아름다운 물길을 지난다.
안창죽 외딴집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아침을 짓고 있는 모양이다.
산기슭 밭에는 호밀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간밤에 내린 비로 호밀에는 아직 물방울이 맺혀있다.
녹비식물인 호밀은 소먹이로 사용하기도 하고, 또 호밀 밭을 갈아엎으면 비료로 쓰이기도 한단다.
갈대가 무성한 냇가에 정자가 있다.
이름하여 검룡사(儉龍舍)란 편액을 달고 있다.
창죽교를 건너 골지천을 따라 쉼 없이 발걸음을 내딛는다.
파란 호밀 밭이 싱그럽다.
둔덕에는 무성히 자란 꽃다지가 노란 꽃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상사미에서 삼척시 도계읍 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건의령(巾衣嶺 蹇衣嶺)이 보인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삼척 육백산 기슭 마읍(馬位)의 궁터에 유배와 있을 때 고려의 충신들이 그를 배알하고 돌아오면서 이 고갯마루에
이르러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불사이군(不事二君)하겠다고 하였기에 그들이 입던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건
고개라 하여 건의령(巾衣嶺)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골지천 건너 자작나무 군락이 보인다.
군락을 이룬 자작나무 숲이다.
도로를 따라 걷는다.
파란 호밀 밭과 하얀 피부의 자작나무가 멋있는 풍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자작나무 숲을 거닐다
반 기 룡
자작나무 숲을 거닐며
자작자작 타오르는 생을 상상하다가
자작나무처럼 추운 곳에서 자란 나무가
오히려 곧고 바르게 자란다는 생각을 하였다
추운 겨울에도 거룩한 인내의 삶을 영위하고
하얀 색깔 숲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자작나무는
삶의 토양은 거칠지만 그 안에서 올곧게 직립하며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허기진 아픔과 온몸으로 단련된
냉기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자작나무 숲을 거닐며
무병장수라는 미명하에
수액채취로 신음하는 모습을 생각하다가
자작나무로 만든 팔만대장경을 생각하다가
충치예방 하는 자일리톨 껌을 씹으며 거닐다가
그만 저녁노을 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말았네
밭 둔덕에 피어있는 꽃다지가 아름답다.
노란 꽃길 따라 걷는다.
꽃다지 사랑
최 영 희
어쩌지요
시린 봄볕에 노랗게 타는 마음
보일지 몰라
그대, 즐겨 걷던
들 섶, 곳곳이 피어도
내, 그대 부르는 소리
들릴지 몰라
밤마다
멍울 진 가슴
한 끝씩 터트리는
눈먼, 귀 먼
그댄
스치는 바람
저만치, 소월님의 진달래는,
'지르밟고' 가라 시지만
사랑하는 이 마음은
들녘 끝까지 피워
태우리라.
냉이꽃
김 귀 녀
냉이꽃이 피었다
하늘 향해
옹알이하는 냉이꽃
말 거는 엄마에게
대꾸하는 모습이네
조잘대며
찰랑거리며 핀 꽃
알맞은 햇살이 등을 다독이는 날
논둑 밭둑가에 나왔네
두리번두리번
세상을 처음 보는
아기처럼
상사미 마을도 지나고 하사미 마을도 지난다.
길섶에는 노란 민들레가 꽃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귀네미골 입구도 지난다.
장승이 서 있고 솟대가 서 있는 조탄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도릉정(桃陵亭)이 보인다.
도릉정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앞을 바라보니 언덕 위에 커다란 나무가 우뚝 서 있다.
수령 470년 된 노거수 전나무
태백시 삼수동 조탑리에 있는 이 나무는 마을의 옛 지명이 도릉골로서 과거 도릉사라는 절이 있었으며, 수목 바로 옆에 성황당이 있어
당산목으로 가치 있는 나무이며 마을의 상징수 이기도 하다.
나무 높이 40m, 나무둘레 4.5m인 아름다운 나무다.
미끈하게 쭉 뻗은 전나무
굵은 나무줄기의 껍질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나무아래에는 성황당을 새로 짓느라 공사 중이다.
노가재 오르는 언덕에서 바라보니 마을과 전나무의 아름다운 풍경이 바라보인다.
전나무는 곧게 자라 오르다 윗부분에서 약간 구부러져 자라고 있다.
노가재 산기슭에 할미꽃이 많이도 피어있다.
노랑무늬붓꽃도 보인다.
지각산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길을 따라 산 허리를 돌아 내린다.
숙암교를 건너 둥지터로 들어간다.
검룡소에서 발원된 물이 광동호로 들어간다.
둥지터 취수펌프장에서 물 건너 바라보이는 산이 지각산 (찌걱산)이다.
지각산은 암산이고 물 건너 암산을 파고든 고 갯등을 숫산이라 한다.
지각산에 내려다보면 암산과 숫산의 모습을 환히 볼 수 있었는데...
광동댐을 만들기 전 찌걱산 아래에는 맑은 계곡이 흐르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한다.
젊은 남녀가 이곳을 지날 때는 꼭 바람이 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두타산 청옥산에서 흘러내린 번천이 광동호로 흘러든다.
댓재로 가는 갈림길 숙암삼거리를 지난다.
시원한 광동호 모습이 드러난다.
광동호의 풍광을 즐기며 광동호 따라 걷는다.
도 지난다.
오늘 묵기로 예정했던 곳으로 전화를 하니, 혼자 묵기에는 방이 너무 크고 방이 냉방이라 힘들다고 하여, 지치기도 하고 식사도 해야겠기에 오늘은 하장에서 유숙하기로 한다. 하장에 마침 모텔이 있어 방을 잡고 배낭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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