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안동신세동칠층전탑을 찾아서

2010. 11. 14. 15:25나를 찾아 걷는 길/퇴계의 발자취를 찾아 걷다

퇴계(退溪)의 발자취를 찾아 걷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져도 변하지 않고 빛나는 것, 사람들이 아무리 눈앞의 이욕을 쫓느라 타락을 하여도 끝내 그들에게 

사람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영원한 근본 바탕, 그것을 찾는 구도자가 되어 그 길을 찾아 정비하고 

한 시대의 젊은이들 앞에 밝혀 주어 조선 선비의 정신세계를 터 닦아 주신 분" <퇴계가 우리에게> 退溪  李愰(1501-1570)의 

발자취를 찾아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으로 향한다.

 

(1) 안동신세동칠충전탑을 찾아서

     2010.11.10.  맑음

 

안동버스터미널에 하차하니 시간은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태사묘, 신세동칠층전탑, 임청각, 동부동오충전탑을 답사하고  천등산의 봉정사와 개목사를 찾는 것이 오늘 일정이다.

터미널 건너편 태사묘 이정표를 따라 걷다보니 멀지 않은 거리에 태사묘가 있다.

태사묘는 안동시 북문동에 자리잡고 있으며 고려의 개국공신인 김선평, 권행, 장정필 3명 태사(太師)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법흥동을 향하는 길 고가도로 교각마다 그린 소나무가 마치 고가도를 떠받치고 있는 듯하다.

이색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철길 옆 방음벽이 쳐진 길로 들어가니 임청각이 나타나고 멀리 탑이 보인다.

칠 층 전탑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위풍당당하게 우뚝 솟아 있다.'안동신세동칠충전탑'은 국보 제16호이다

법흥동에 세워져 있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법흥사에 속해있던 탑으로 추정된다.

'신세동 칠 층석탑'으로 명명된 것은 국보로 지정될 때 옆 동네 이름을 잘못 붙인 해프닝이라 한다. 탑 옆으로 고성이 씨 답동파 종택과 중앙선 철길 방음벽이 구축되어 있어  탑은 협소한 공간에 갇혀 있는 형세이다. 흙으로 만든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규모가 장대한 이 전탑은 상승감이 있으면서도 안정감이 있고 비례가 아름답다. 


"탑은 1단의 기단(基壇)위로 7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8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세워놓았고, 기단 남쪽 면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1층 몸돌에 만들어진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향하도록 하였다.
 진한 회색의 무늬없는 벽돌로 쌓아 올린 탑신은 1층 몸돌에 감실을 마련하였고, 지붕돌은 위아래 모두 계단모양의 층단을 이루는 일반적인 
전탑양식과는 달리, 윗면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 놓아 아쉬움을 남기는 이 탑은 7층이나 되는 높은 층수에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탑임에도 
매우 안정된 자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에 속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또한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자취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목탑을 모방하여 전탑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칠 층 전탑

 

 

언덕에서 바라본 고성이 씨 답동파 종택과 칠증전탑

 

1층몸돌에 만들어진 감실과 계단 기단의 윗면을 경사지게 시멘트로 발라 놓았다

 

 

 

   

팔부중상

 

  

칠 층 전탑에서 조금 가면 임청각(보물 제182호)이 있다.

임청각은 중종 14년(1519)에 고성이 씨 이명이 지은 집으로 원래는 99칸의 집이었으나 일제시 중앙선 철로가 부설되면서 행랑채와 부속채가 철거되어 현재 70여 칸만 남아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성룡의 생가이며, 그의 아들과 손자 삼대에 걸쳐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이다. '用'자를 가로 누은듯한 독특한 평면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별당 형식의 정자 건물인 군자정은 청각의 사랑채로서 평면이 '丁'자를 옆으로 누인 형태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퇴계 이황의 친필로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에서 따온 것이다. 건물 앞으로는 낙동강과 영남산 자락에 터전을 잡은 건물이 자연환경과 잘 어울린다.

 

군자정

 

 

 

 

 

 

 

걸었던 길을 되돌아 나와 큰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안동역에 도착한다.

 

안동역

 

안동역 옆 관광안내센터가 있는 옆길을 돌아 들어가면 주차장 옆에 아름다운 동부동오충전탑과 당간지주가 숨어 있다.

숨어서 피는 들꽃처럼 건물 뒤 외진 곳에 숨어서 피어 있는 아름다운 오 층 전탑이다.

고탑의 향이 묻어나고 있다.

 

안동동부동오충전탑 (보물 제56호)

"탑은 무늬 없는 벽돌로 5층을 쌓았다. 몸돌에는 층마다 불상을 모시기 위한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했고 특히 2층 남쪽면에는 2구의 인왕상(仁王像)을 새겨두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사용한 것에서 오는 제약 때문에 처마 너비가 일반 석탑에 비해 매우 짧다. 밑면의 받침수는 1층부터 차례로 10단·8단·6단·4단·3단으로 줄어들었고 처마 끝에는 기와골을 받기 위해 총총한 나무를 얹고 4층까지 기와를 입혀 놓았다. 이러한 지붕모양은 탑신의 감실과 더불어 목탑양식의 흔적을 보여준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다. 이 전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동국여지승람』이나『영 가지(永嘉誌)』에 기록된 법림사(法林寺)의 전탑으로 추정된다. 『영 가지』에 법림사전탑이 7층이라는 점, 조선시대에 크게 보수를 하였다는 점, 탑의 머리장식은 법흥사탑(法興寺塔)과 같이 금동제였으나 임진왜란 직후 명나라 군인들이 도둑질해 갔다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지금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동부동오충전탑

 

                                   

 

오 층 전탑 2층 감실 남면 인왕상

 

안동운흥동당간지주(안동시유형문화재 제100호)

"이 당간지주가 속해 있던 절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동쪽에 있는 동부동 5층전탑과 같은 절의 유적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때 일부가 파손된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아무런 조각을 새기지 않아 간결하며, 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꽂는 둥근 받침돌이 놓여 있다. 기둥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을 파 놓았다."

운흥동 당간지주

 

 

당간지주와 오 층 전탑

 

앞쪽으로는 건물신축 기초공사를 위하여 땅을 파니 문화재가 발굴되어 공사가 중단되고 있다고 한다.

된장찌개백반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봉정사행 버스에 탑승하니 시간은 14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