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해 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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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 해 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걸음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2019.02.01 -
6월의 장미
6월의 장미 이 해 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 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의 넝쿨 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속에 피워낸 기쁨 한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2010.06.18 -
봄 편지
봄 편지 이 해 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힌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두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 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2010.02.26 -
잎사귀 명상
잎사귀 명상 이 해 인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뾰죽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 잎 어긋나기 잎 돌려나기 잎 무리지어나기 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2009.08.19 -
오동꽃
오동꽃 이 해 인 비 오는 날 오동꽃이 보라빛 우산을 쓰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넓어져라 높아져라 더 넓게 더 높게 살려먼 향기가 없어도 괜찮다 나는 얼른 꽃 한 송이 되어 올라갔습니다. 처음으로 올라가 본 오동나무의 집은 하도 편안해 내려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오실래요?
2009.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