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격포의 채석강 적벽강 수성당을 가다

2010. 1. 21. 13:26도보여행기/부안 변산반도를 걷다

(4) 격포의 채석강 적벽강 수성당을 가다

      2010. 1.14. 목요   맑음

                                      

 

 

06 :00에 일어난 창문을 열어보니 별들이 총총 보인다.

TV에서는 간밤 7cm의 눈이 내렸다고 한다.

배낭을 꾸리고 스팻치를 두르고 스틱을 꺼내 들고 숙소를 나서니 07:20분이다.

누구도 발걸음을 하지 않은 도로 위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채석강 해수욕장가는 길을 따라 걸어간다.

 

"채석강은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 일대 1.5km 층암 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바닷물의 침식을 받은 수성암층 절벽이 마치 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며 곳곳에 해식동굴이 있다.

이곳의 경치가 당나라 이태백이 배 타고 술 마시다가 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비숫하다고 해서 채석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은 변산반도의 최서단으로 옛 수운의 근거지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전라우수영 관하의 격포진이 있던 곳이다.

 

채석강과 연이은 격포해수욕장을 지나 후박나무 군락이 있는 연안을 거쳐 수성당이 있는 용두산을 돌아 대마골 여우골을 감도는 2km가량의 해안선은 적벽강이라 불린다.  이 역시 중국의 적벽강만큼 경치가 좋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말 그대로 붉은색을 띠는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져 특히 석양 무렵의 경관이 볼 만하다."

 

채석강 격포해수욕장에 도착한다.

백사장 내려가는 계단은 눈에 파묻혀 있다.

'아침식사 됩니다' 라고 쓰인 식당에 들어가니 '백합죽'을 들란다.

신발을 벗는 절차가 복잡하여  방에 걸터앉아 식사를 한다.

물때를 물으니 잘 모른다.

국립공원 관리 사무소에서 알 터인데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바라보니 물은 빠져있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을 헤치고 바닷가 백사장으로 내려선 후 채석강 층암 절벽 채석강  암반길을 걷는다.

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층암 절벽의 채석강은 쌓인 눈으로 희한한 설경을 연출하고 있다.

 

"채석범주( 採石帆舟)"는 채석강 연안에 떠 있는 배들이 아름다운 채석강과 어우러진 경관으로 변산 8경 중의 하나인데,
범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채석강과 적벽강은 문화재청에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3호로 지정하였다.

       

 

             

 

                 

 

                

 

                

 

             

 

 

 

 

채석강  /  용 혜 원

해 저무는 저녁에
채석강을 걸어보았다

바위와 파도가 만나
이루어놓은
태고적 신비가 눈앞에 펼쳐진다

세월이 흘러가며
만들어 놓은
그림들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솜씨 좋은 석공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들어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겹겹이 쌓아놓았으면
이리도 아름다운가

석양이 물드는데
채석강을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그 아름다움을 바다를 향해
가슴이 터지도록 노래하고 싶었다

 

 

단단한 백사장을 걸어가 '해넘이 채화대'에 도착한다.

            

 

 

이곳 '해넘이 채화대'는 아름다운 낙조 관망대다.

설경 속의 파란 하늘과 바다의 관망 또한 아름답다.

채화대 아래 암반에는 칠산 바다의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상이 있는데 '노을 공주'라고 부른다.

오늘은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리조트 진입 도로의 눈을 치우느라 많은 직원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멀리 용두산이 보인다.

아침 햇살을 받아 흰 눈이 눈부시게 빛난다. 

 

                       

 

                 

 

 

설경의 해안, 나무에 핀 설화, 눈 덮인 도로와 산야,  만물이 아름답고 찬란하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 편안하게 홀로 눈 길을 천천히 걷는다.

             

 

 

뒤 돌아 보니 설화가 핀 나무 뒤, 바다 저 멀리 닭이봉과 봉화봉이 보인다.

이렇게 설경에 취하여 걷다 보니 어느덧 죽막마을 입구 표지석이 보인다.

 

                        

 

                    

 

 

푸른 댓잎에는 설화가  피어 있다.

푹푹 발이 빠지는 눈 속을 걸어 들어간다.

 

죽막(竹幕) 마을

"수성당집의 동남 등성이 일대는 예전엔 나라에서 관리했던 죽전(화살) 밭이었다. 그래서 화살용 신우대를 베어 저장막에 갈무리하였다가 서울로 수송하였다 하며 그래서 ‘대화살 저장막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대막골(竹幕洞)이다. 옛 시절의 전쟁에서는 화살이 중심무기였으므로 죽전 밭은 무기 공장이나 다름없이 중요하였으므로 나라에서 관리하였을 것이다.
<동국여지승람> 부안현의 토산(土産) 조를 보면 “竹箭 : 出都邇串及 凡島”라 하여 ‘대화살이 도이곶이와 모든 섬에서 난다’고 하였는데 도이관은 ‘도이곶이’로 지금의 죽막동 마을 위 수성당 등성이를 말한다. 지금도 이 일대에는 2~3m 높이의 신우대밭이 매우 무성하다.
대막골 해변 언덕에는 천연기념물 제123호인 후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앞 해변에는 부안수산종묘시험장이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부안수산종묘시험장

 

                                                                                                             

 

눈이 쌓여 후박나무 군락지를 못 보았다. 아마도 그냥 지나쳐 온 모양이다.

'국립수산과학원 부안수산종묘시험장'앞을 지난다.

고려 때부터 이곳에는 막을 쳐서 신우대를 베어다 저장한 대화살 저장막이 있었다고 한다.

죽막동은 화살의 생산지였다.

작은 언덕을 오르면 바로 수성당이 나올 것 같아 죽막동 마을 주민에게 물으니,  눈이 허리에 올 정도로 쌓여 그 길로 갈 수 없으니 큰길로 나가 돌아서 가라고 한다.

 

적벽강 해안이다.

적벽강은 채석강으로부터 해안선을 따라 북으로 2km쯤의 수성당 옛 어살(漁箭)을 맸던 살꾸미(箭九味) 옆에 있다. 대막골(竹幕洞)의 누에머리(蠶頭) 등성이 수성당(水聖堂)에서부터 해안을 북으로 돌면서 높은 절벽을 이룬 것이 적벽강이다.

  

쌓인 눈으로 인하여 진입길을 찾지 못하여 적벽강 절벽밑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서 조망만 한 후, 수성당을 향하여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언덕길에 군인들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군부대 가는 길로 가다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눈이 쌓여 길로 보이지 않아  지나쳐서 군부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는 곳까지 가서, 왼쪽이 길인듯하여 쌓인 눈 속을 헤치고 들어가니 끊어진 철조망이 있는 벙커로 보이는 해안 절벽에 다다른다.

                   

 

                  

 

 

눈이 쌓인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내려오니 군부대 앞이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 내려와  들머리를 찾아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밭을 헤치고 들어가니 수성당이다.

 

수성당(水聖堂)!

신우대가 우거진 절벽 끝에 있다.

바다를 지키는 여신, 개양할미가 살고 있다.

 

수성당(水聖堂) 개양할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수성당은 칠산바다를 수호하는 해신(海神) 개양할미를 모시고 제사하는 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의 당집이다.

이 개양할미에 대한 해양설화는 꽤 흥미롭다. 서해의 칠산바다 일원의 길흉화복과 원화소복을 관장하고 있는 이 해신은 키가 구름 위로

솟게 크고 굽 나막신을 신고 서해바다를 걸어 다니며 너무 깊은 곳은 메우고 얕은 곳은 파서 고르게 했다는데 곰소 앞바다의 ‘여룬개’에

이르려 발이 빠져 치마가 젖었다고 한다. 화가 난 개양할미는 치마에 돌을 담아와 ‘여룬개’를 메웠다고 한다.

그랬어도 지금도 그곳이 깊어서 “깊기가 곰소 웅덩이 속 같다”라는 부안지방만의 속담이 있다.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이 할미는 딸만 8명을 낳았다.

이 딸들을 위도와 곰소 고창의 영신당, 돈지. 계화도. 새포. 대벌레 등의 당집에 배치하고 막내딸과 수성당에 깃들어 있다고 하여 이 당집을 ‘구낭사(九娘祠)’라고도 한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 1990년 무렵 수성당 주변을 발굴조사 하였었는데 이때 출토된 유물들을 분석한 결과 원삼 구시대 이래로 해양제를

지낸 제사 터였던 것으로 밝혔다." 

            

 

 

 

                 

 

              

 

 

수성당 앞에 서서 칠산 앞바다를 바라본다.

조기잡이 배들의 모습을 떠 올려 본다

칠산 바다의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며 수십 년 전만 해도 수많은 뱃사람들이 제사를 지냈던 곳이 이곳 수성당이다.

수성당은 수천 년 동안  이렇게 칠산바다를 지켜왔다.

 

                       

 

 

                       

누가 켜 놓았는지간밤의 대설에도 촛불 하나는 꺼지지 않고, 눈 속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

 

 

고사포 해수욕장을 목표로 해안길을 걸어간다.

한쪽은 제설차가 지나가 눈이 치워졌지만 한쪽은 아직 제설차가 지나가지 않았다.

차바퀴 자국을 따라 걷는다.

흰 눈 위로 반사되는 햇빛이 눈부시다.

천지만물이 찬란하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신비의 섬-하섬

전망대가 보인다.

 

                        

 

 

음력 1일과 15일 사리 무렵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면서 바닷길이 생겨 걸어서도 섬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하섬의 전설 : 옛날 옛적에 육지에서 노부모와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태풍으로 부모님이 탄 고깃배가 하섬까지 떠내려가서 돌아오지 못하자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용왕님께 빌고 빌어 효성이 가상해 용왕님이 바닷길을 열어 주었다고 한다. 그 후 아들은 효를 다해 부모님을 모셨다고 한다.

 

                       

 

                 

 

 

 성천마을 포구를 지나 한참을 가니 고사포 해수욕장이다.

 

                       

 

              

 

 

고사포 해수욕장은 백사장이 아닌 설사장이다.

흰 눈이 아득히 펼쳐져 있다.

 

                       

 

 

고사포 해수욕장 원광대 임해수련원 옆 구릉길을 올라갔더라면 이 마실길과 만날 것인데 눈이 쌓여 길을 놓쳤다.

이 번 도보여행길은 쌓인 눈으로 인해 해안 산책길을 걷지 못한 곳이 있어 유감이다.

 

도로에는 눈이 녹아 질퍽거리기 시작한다.

노리목마을을 지나  변산으로 가기 위해 큰 도로 밑을 통과한다.

차량들이 수 없이 오가기 시작한다.

차량들이 많이 다녀 눈이 녹은 도로에는 이제 흙탕물이 튀기 시작한다.

길을 걷기가 힘들어진다.

변산에 도착한다.

 

질퍽거리는 도로와 오가는 차량들로 더 이상 걷는 것이 부담스러워 도보여행은 여기서 끝마치기로 한다.

 

변산 버스정류소에서 시내버스에 오른다.

버스 기사에게 구암리 지석묘에 가려고 하니 가까운 길가에 세워달라고 부탁한다.

해안을 달려간다,

끝없이 뻗어나간 새만금 방조제가 보인다.

새만금전시장을 지나고 또 한참을 달린다.

"냇가 둑길을 따라 똑 바로 가면된다' 고 버스 기사가 친절히 일러주며 버스를 세운다.

 

냇가 뚝방길을 걷는다.

 

 

 

                       

 

               

 

 

태양이 구름뒤에 숨었다 얼굴을 내밀었다 한다.

흰 눈으로 뒤덮인 천지만물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별유천지다.

눈을 머리에 인 큰 나무가 있는 구암마을로 들어서 조금 가니 오른쪽에 '구암리 지적묘군'이 보인다. 

 

龜岩里!

"이 마을에는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史蹟) 제103호 선사시대(先史時代) 묘제(墓制)인 거대한 고인돌묘군(支石墓群) 13기가 마을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 고인돌의 옥개석(屋蓋石)이 마치 여러 마리의 거북들이 엎드려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여 「거북바위가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구암리(龜岩里)라고 한 것이다. 역사적 유물·유적에 의하여 생성된 사적지명(史蹟地名)이라 할 것이다."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扶安 龜岩里 支石墓群)                                         

사적 제103 호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석상리

 

이 지역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지석묘가 있는 곳이다.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는 지석묘는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나뉘는데, 이곳에는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 지석묘 13기가 있다.

받침돌은 4개를 고이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곳에 있는 지석묘 중에는 7개 혹은 8개를 받친 것도 있다.

상석의 두께나 길이 그리고 모양이 다양하여 거북모양을 한 것도 있다.  가장 큰 것이 길이 6.4m, 너비 5.12m, 두께 0.69m인데, 이는 남방식 지석묘에 사용된 상석 가운데에서도 매우 큰 것에 해당한다.

지석묘 밑에서는 돌칼과 돌화살촉 등이 발견되기도 한다.

 

     

 

 

                       

 

 

                        

 

 

                       

 

                      

                        

 

  

                       

지석묘 받침돌

 

                                                                                                                                   

당초 5박 6일의 여정이었으나, 폭설로 인하여 내변산 입산이 통제되어 부득이 내변산을 가지 못하고 3박 4일로써 이번 도보여행을 마친다.

하서면 농협 앞까지 걸어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부안읍 터미널에 도착한 뒤 서울행 고속버스에 오른다.

 

 모항에서   /   김 혜 선

 

그대 등 뒤에서 노을을 보았네

낮출수록 잘 보이는 것이 인생이라며

낮게 낮게 가라앉았네.

 

번지는 노을을 보며 나는 들었네

들녘의 곡식 기우는 소리

내 빈속의 바람소리

 

이루지 못한 꿈 하나씩 살라 먹으며

앉은뱅이꽃으로 주저앉은 내가 세월의 그늘 밑에서

뿌려지는 햇살 한 줌이고 사는 동안

닫아건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고

 

자기 몸을 낮추고 있는 그대 등 뒤에서 나는 보았네

두근거리는 꽃이 되는 날 있을 거라며

그대에게 노을꽃을 만들어 주는 어둠

 

그대 등 뒤에서 노을을 보았네

숙일수록 잘 보이는 것이 인생이라며

깊이 좀 더 깊이 고개 숙이고 있었네.

 

 

오오, 변산이여   /   김 민 성

 

변산에 해가 저문다
긴 밤이 오겠지
그러나 또 다른 새벽이 찬란하게
트이겠지
산이 높고 짙은데도
왜 당신은 빈손으로 오십니까
그저 오르고
그냥 돌아가기만 하다가는
산이나 바다는 너무나 길고
 당신은 너무 짧습니다
 (오오, 변산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