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태하(台霞) 마을

2025. 2. 19. 10:32시 모음/기행문

울릉도 태하(台霞) 마을

 

울릉 일주 노선버스에 오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노선버스는 2007년 개통된 울릉터널 쉬운 길로 빠져나가지 않고, 마을 주민을 위해 8자를 그리는 울릉대교(일명 88 다리)를 빙글빙글 돌아 올라 사동고개를 넘어간다. 사동항, 통구미, 남양항, 학포항을 지나  태하터널을 지난 후 산길을 오른 후 "광서명각석문" 입구 이정표를 지나 울릉도 서북쪽 해안가로 달린다. 버스에서 내리니 100년 수령의 태하리 곰솔 숲이 반긴다. 마을에는 태하천이 흐르고 있다.

 

태하(台霞)는 오랜 옛날 우산국의 도읍지였다.

조선 태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울릉도 거주를 금하고 울릉도에 관리를 파견해서 주기로 순찰하며 관리하던 수토정책(搜討政策)이 철폐된 이듬해인 1883년(고종 20년) 54명의 이주 개척민이 처음 정착한 바닷가 마을이며, 개척 초기 울릉도의 치소(治小)가 자리했던 곳이기도 하다.

 

솔숲이 우거진 담장 안으로 들어서니 소나무 사이로 성하신당(聖霞神堂)이 보인다.

그 안을 보니 용모가 수려한 동남동녀(童男童女)가 모셔져 있다.

성하신당은 울릉도의 대표적인 성황당이다

매년 음력 3월 1일에 제사를 지내며 풍어, 풍년을 기원하고  배를 새로 만들어 처음 바다에 띄울 때 반드시 와서 빈다고 한다.

이 성하신당에는 조선 태종 때 울릉도 거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킬 당시 희생당한 동남동녀에 관한 슬픈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조선 태종 때 김인우는 울릉도 안무사(按撫使)를 명 받아 울릉도 거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기 위하여 병선 2척을 이끌고 이곳 태하동에 도착했다. 관내 전역에 대한 순찰을 마치고 출항을 위해 잠을 자던 중 해신이 현몽하여 일행 중 동남동녀 2명을 이 섬에 남겨두고 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출항을 명령했다. 그러자 갑자기 풍파가 일더니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이었다. 안무사는 문득 전날 꿈이 떠올라 일행 중 동남동녀 2명을 섬에 남겨두고 무사히 육지로 돌아갔다. 몇 년 뒤 다시 울릉도 안무사의 명을 받고 태하리에 도착하여 수색을 했는데, 그때 유숙하였던 곳에는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형상으로 백골화되어 있었다. 안무사는 동남동녀의 고혼을 달래고, 애도하기 위해 그곳에다 사당을 지어 제사 지내고 돌아갔다. 매년 음력 3월 1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어, 풍년을 기원하고, 처음 배를 띄울 땐 반드시 여기에서 제사를 올려 해상작업의 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지금의 관례가 되었다.

 

솔 숲 담장 앞에  之岸 이기애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성하신당 童男童女

 - 사랑의 힘으로

 

격랑의 세월 건너가는 이여, 그렇게

돌아와 섬이 되는 이여

목을 놓고 우짖는

저 파도소리

누구의 전생인가

그날그날 피어나는 꽃잎이거나

단 한 번의 낙화에도

홀연히 번져가는

저 향기는 또

누구의 슬픔인가

다만 동남동녀(童男童女) 우리 주검은

발원의 지극한 불길 되어 다시 살아나느니

사람아

우리에겐 이처럼 사랑이 있어

추위와 굶주림과 두려움

벗어나 있어

여기, 전설의 힘으로 지어진

영혼의 처소에서

칠 흑 어둠을 지나서도 길길이 뛰는 바다 

그 깊이를 다스린다.

 

수령 100년의 곰솔 숲
성하신당 담장 안의 곰솔
곰솔 숲 속에 있는 성하신당
성하신당에 모셔져 있는 용모가 수려한 동남동녀

 

 

해안가로 나가는 태하(台霞) 천변에는 오징어 덕장이 이어져 있다.

마을 사람들이 오징어를 대나무에 꿰어 연실 덕장에 내다 건다.

태하리는 서면의 복호폭포에서 태하항에 이르기까지의 태하천 수계 구역 일대의 마을이다. 이 마을은 길고 깊은 계곡으로 인한 계곡풍의 바람이 유명한 곳으로 특히 자연 바람으로 건조된 태하의 오징어는 유명하다.

 

바닷바람과 함께 석양의 노을까지 오징어를 말린다는 태하마을 오징어 덕장

 

 

밀려온 파도가  절벽 해안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며 포말을 일으키고 있다.
올망 졸망한 첩첩의 산들이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로 인하여 신비로운 태하 마을 해안 풍광(風光)

 

바닷바람이 시원히 불어오는 해안가에 다다르니, 밀려온 파도가 절벽 해안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며 포말을 일으키고 있다.

태하는 원래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하여 하여 황토구미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해안가 절벽 아래에 파인 굴 안 바위 벽 일부는 주황색에 가까운 황토로 덮여 있다.

동굴 안은 자잘한 돌이 깔려 있고 돌을 쌓아 만든 돌탑들이 가득하다.

 

황토구미 전설

삼척의 어느 사또가 관기를 데리고 선유놀이를 갔다가 급작스러운 돌풍을 만나 이 울릉도에 표착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이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준비된 식량이 있을 리 만무한 이곳에서 모두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리저리 먹을 것을 구하려 헤매었으나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허기에 지쳐 있었는데, 그중 누군가가 황토를 발견하고, 궁한 나머지 이 흙이라도 하고는 입에 조금 넣어 씹어 보았더니 그런대로 먹을만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흙을 먹고 모두가 연명을 했는데, 먹어 본 그 맛이 모두가 다르더라고 해서 이곳을 가리켜 황토구미라고 불렀다고 한다.

 

해안가 절벽 아래에 파인 황토굴 전체 외부 모습
해안가 절벽 아래에 파인 굴 안은 자잘한 돌이 깔려 있고, 바위 벽 아래 가장자리에는 돌탑들이 가득히 세워져 있다.

<사진 촬영 : 201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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