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0. 17:18ㆍ시 모음/시
풀꽃
이 성 선
맑은 마음을 풀꽃에 기대면
향기가 트여 올 것 같아
외로운 생각을 그대에게 기대면
이슬이 엉킬 것 같아
마주 앉아 그냥 바라만 본다.
눈 맑은 사람아
마음 맑은 사람아
여기 풀꽃밭에 앉아
한나절이라도 아무 말 말고
풀꽃을 들여다보자.
우리 사랑스러운 땅의 숨소릴 듣고
애인같이 작고 부드러운
저 풀꽃의 얼굴 표정
고운 눈시울을 들여다보자.
우리 가슴을 저 영혼의 눈썹에
밟히어 보자.
기뻐서 너무 기뻐
눈물이 날 것이네.
풀꽃아
너의 곁에 오랜 맨발로 살련다.
너의 맑은 얼굴에 볼 비비며
바람에 흔들리며
이 들을 지키련다.
솜다리
김 승 기
우주를 안아 보려는 꿈이
높은 산을 오르게 했을까
설악(雪嶽)의 암석 위에서
이슬 먹고 피는
꽃이여
솜털로 온몸을 둘렀어도
비바람 치는
벼랑 끝
바위를 붙잡은 손이
얼마나 시릴까
하늘을 가까이하려면
그만한 아픔쯤이야 견뎌야겠지
그래도 그렇지
한여름에도
뼛속까지 저려 오는 추위 아랑곳없이
어쩜 그렇게도 따뜻하게
웃음 지을 수 있을까
일생을 살면서,
차가운 마음자리
흐리고 눈비 올 때마다
푸근하게 햇살 비춰 주는
너는 내게 거울이다
풀꽃 사랑
이 성 선
나는 너에게 가서 떨리고 싶다.
너도 나에게 와서
떨리는 작은 꽃이 되어 다오.
너에게 나의 순결을 주고 싶다.
나에게 젖은 가슴을 다오.
풀잎 이슬을 다오.
우리는 어두운 바람
별 아래서만 조금씩 얼굴 비추며
서로에게 눈물짓는 풀꽃
나에게 떨리는 눈동자가 되어 다오.
나는 네 가슴에 작은 풀꽃등으로 피고 싶다.
별처럼 꽃처럼
나 태 주
불타는 대지 위에
홀로 되어 있는 꽃처럼
어두운 밤하늘 한복판에
혼자 눈떠 반짝이는 별처럼
짧은 인생길 짧지 않게
지루한 세상 지루하지 않게
살다 가리니 오로지
아름다이 숨 쉬다 가리니
어디만큼 너는 나의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는 것이냐
어디만큼 너는 나의 꽃이 되어
숨어 웃고 있는 것이냐.
엉겅퀴 꽃
유 진
따스운 햇살아래 토닥토닥 자랄 때는
먼발치에 스쳐도 움츠려드는 미모사처럼
수줍고 해맑은 모습이었습니다
녹록지 않은 세상 하나씩 알아 가면서
두려움마다 가시가 돋았습니다
거친 비바람에 휘청 휘청 흔들릴 때마다
눈물처럼 가시가 돋았습니다
지루한 장마 걷히고 고추잠자리 떼로 날 무렵
온몸 돋은 억센 가시를 방패막이로
자존심의 꽃대 도도하게 세웠을 때는
피멍 든 외로움만 슬프게 남았습니다
허리 굽은 뒤에서 무거운 등 짐 부려놓을 줄
비로소 아는 나도 한 때는
수줍고 해맑은 모습으로 이름 없이 살다가
자취 거두며 고요히 지는
작디작은 꽃잎이고 싶었습니다
작은 들꽃
조 병 화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나 나나 이 세상에선
소유할 것이 하나도 없단다
소유한다는 것은 이미 구속이며
욕심의 시작일 뿐
부자유스러운 부질없는 인간들의 일이란다
넓은 하늘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소유라는 게 있느냐
훌훌 지나가는 바람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애착이라는 게 있느냐
훨훨 떠가는 구름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미련이라는 게 있느냐
다만 서로의 고마운 상봉을 감사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존재를 축복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인연을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게 기원하며
이 고운 해후를 따뜻이 해 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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