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日沒)
2019. 11. 10. 22:41ㆍ시 모음/시
일몰(日沒)
박 인 걸
하루 종일 걸어온 길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서산마루에 간신히 걸린 해는
마지막 노을을 온 누리에 붓는다.
허공을 건너는 머나먼 길은
아찔하고 두려운 모험이지만
무사한 행로의 감사함을
황홀한 빛으로 외어 올린다.
일제히 기립한 나무들은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때마침 날던 청둥오리 떼도
두 발을 가슴에 모은다.
파란(波瀾)의 날을 곱게 끝내고
숙면(熟眠)에 드는 태양처럼
나 살다 곱게 늙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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