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 양 하

2019. 9. 30. 12:02시 모음/수필

 

명문장(名文章)은 깊이 생각하고 끝없이 상상하는 힘에서 나온다

李 御 寧

 

名文이란 어느 때 어디에서 누가 읽어도 감동을 받을 수 있게 한 글이다.

참으로 기량이 있는 상 목수는  못질을 하지 않는다. 못하나 박지 않고 집 한 채를 짓는다.

억지로 못질을 하여 나무를 잇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아귀를 맞추어 균형과 조화로 구조물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잘 다듬어진 글의 이미지와 리듬은 인위적으로 접속사를 붙이지 않아도 자석처럼 서로 끌어당기고 어울려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글의 앞머리만이 아니다. 글을 맺는 종지형도 마찬가지다.

名文이란 외우려고 해서 외워지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머릿속에 가슴속에 각인(刻印)된다.

구양수(歐陽修) 베개는 명문장은 깊이 생각하고 끝없이 상상하는 그 힘에서 나온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남들이 높은 베개를 베고 편안한 잠에 취해 있을 때 눈 떠 있는 자.

그 불면의 밤 속에서 어둠 속에서 명문은 알을 깨고 나온다.

 

지리산 천년송

 

설악산 권금성 안락암의 무학송(舞鶴松)

 

< 수필 >

나무

이 양 하(李敭河, 1904-1963)

 

 나무는 덕(德)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는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등성이에 서면 햇살이 따사로울까, 골짜기에 내려서면 물이 좋을까 하여, 새로운 자리를 엿보는 일이 없다. 

물과 흙과 태양의 아들로, 물과 흙과 태양이 주는 대로 받고, 후박(厚薄)과 불만족(不滿足)을 말하지 아니한다. 

이웃 친구의 처지에 눈떠 보는 일도 없다.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스스로 족하고,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스스로 족하다.

 

  나무는 고독(孤獨)하다. 나무는 모든 고독을 안다. 안개에 잠긴 아침의 고독을 알고, 구름에 덮인 저녁의 고독을 안다. 

부슬비 내리는 가을 저녁의 고독도 알고, 함박눈 펄펄 나리는 겨울 아침의 고독도 안다. 

나무는 파리 옴쭉 않는 한여름 대낮의 고독도 알고, 별 얼고 돌 우는 동짓달 한밤의 고독도 안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어디까지든지 고독에 견디고, 고독을 이기고, 고독을 즐긴다.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意思)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그야말로 바람장이 친구나,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올 뿐 아니라, 어떤 때에는 쏘삭쏘삭 알랑거리고, 어떤 때에는 난데없이 휘갈기고, 

또 어떤 때에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를 내놓고 달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 흥겨워 노래할 때, 노래 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무는 이 모든 것을 잘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 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 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달을 유달리 후대(厚待)하고 새와 바람은 박대(薄待)하는 일도 없다. 

달은 달대로, 새는 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 같이 친구로 대한다. 

그리고 친구가 오면 다행하게 생각하고 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행해하는 법이 없다.

 

  같은 나무, 이웃 나무가 가장 놓은 친구가 되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 나무는 서로 속속들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동정하고 공감한다. 

서로 마주 보기만 해도 기쁘고, 일생을 이웃하고 살아도 싫증 나지 않는 참다운 친구다.

 

  그러나 나무는 친구끼리 서로 즐긴다느니 보다는, 제각기 하늘이 준 힘을 다하여 널리 가지를 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더 힘을 쓴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항상 감사하고 찬송하고 묵도(黙禱)하는 것으로 일삼는다. 

그러기에 나무는 언제나 하늘을 향하여, 손을 쳐들고 있다. 

온갖 나뭇잎이 우거진 숲을 찾는 사람이, 거룩한 전당에 들어선 것처럼, 엄숙(嚴肅)하고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절로 옷깃을 여미고, 

우렁찬 찬가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理由)도 여기 있다.

 

 나무에 하나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명(天命)을 다한 뒤에 하늘 뜻대로 다시 흙과 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가다 장난 삼아 칼로 제 이름을 새겨보고, 흔히 자기 소용(所用) 닿는 대로 가지를 쳐 가고 송두리째 베어 가곤 한다. 

나무는 그대로 원망(怨望) 하지 않는다. 

새긴 이름은 도로 그들의 원대로 키워지고, 베어간 재목이 혹 자기를 해칠 도끼 자루가 되고 톱 손잡이가 된다 하더라도, 이렇다 하는 법이 없다.

 

나무는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意者) 요, 고독의 철인(哲人)이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다.

 

  불교의 소위 윤회설(輪廻說)이 참말이라면,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으련다.

 

 

멸리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나무들

 

눈 덮힌 나무 들 -설악산 대청봉 근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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