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2019. 9. 21. 19:25시 모음/수필

 

 

< 수필 >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 어 령(李御寧, 1934 -  )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쪼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한 세월과 무한한 공간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싶은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색 행커치프... 태양과 구름과 소낙비와 바람이 증인...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의 욕망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가 죽어버린 흙속으로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를..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과 나뭇잎의 파동은 같은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공간이 흔들린다.

 

산딸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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