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나무를 보다
2019. 7. 10. 13:48ㆍ시 모음/시
늙은 나무를 보다
이동순 (1950- )
두 팔로 안을 만큼 큰 나무도
털끝만 한 싹에서 자랐다는 노자 64장
守微*편의 구절을 읽다가
나는 문득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 감동은 대개
이렇게 오는 것이다
그래서 숲으로 들어가
평소 아침 산책길에 자주 만나던
늙은 느릅나무 영감님 앞으로 다가갔다
느릅은 푸른 머리채를 풀어서
바람에 빗질하고 있었다
고목의 어릴 적 일들을 물어보아도
묵묵부답
다람쥐가 혼자 열매를 까먹다가
제풀에 화들짝 놀라 달아난 그 자리에는
실낱처럼 파리한 싹이 하나
가느다란 목을 땅 위로 쏘옥
내밀고 있는 참이었다
* 수미 : 노자가 쓴 <도덕경>의 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