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주를 사색해야 하는 이유

2019. 3. 5. 23:50천문, 천체/천문, 천체

60억 km 밖에서 본 '창백한 푸른점(pale blue dot)' 지구                                      사진 출처 : NASA

 

1990년 2월 14일 명왕성 궤도 부근에서 보이저(Voyager) 1호 우주선이 우리 태양계를 되돌아보고 찍은 지구인데 창백한 푸른 점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70억 인류가 사는 보금자리라는 걸 생각하면 인류는 우주 속에서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이 이미지를 찍는 것은 원래 계획에 없었지만, 당시 보이저 영상팀의 멤버였던 칼 세이건의 아이디어로 촬영하게 되었다.

 

우리가 우주를 사색해야 하는 이유

 

강화도 서쪽 끄트머리에 퇴모산(退帽山)이라는 나지막한 산 하나가 오뚝하니 서 있다.

높이라야 해발 338m. 다릿심 좋은 이는 30분이면 정상을 밟는다. 그 4부 능선쯤 되는 중턱에 있는 우리 집은 해가지면 사위가 적요하고,

그믐밤이면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이다.

대체로 그런 사정인지라 겨울밤 10시쯤 마당에 나서면, 방패연처럼 남쪽 하늘에 덩그러니 걸려 있는 별자리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오리온자리다.

온 하늘을 뒤덮고 있는 88개 별자리 중에서 드물게도 일등성 두 개를 뽐내고 있는 오리온은 삼성 아래 아름다운 성운 하나를 달고 있다.

예쁜 나비 모양을 한 오리온 대성운은 시력 좋은 사람이라면 맨눈으로도 볼 수 있다.

지금도 별들이 태어나고 있는 이 성운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약 1,500광년. 초속 30만 km의 빛이 1,500광년을 달려가야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오리온 대성운은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합병하고, 유럽의 프랑크 왕국이 이름을 떨치던 무렵인 1,500년 전에 

오리온성운을 출발한 빛인 셈이다.

이처럼 우주를 보는 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우주의 먼 과거로 달려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밤하늘의 별 밭을 거닐다 보면 늘 그렇듯 우주의 역사와 그 종말을 생각하게 된다.

138억 년 전 조그만 '원시의 알'에서 태어난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

태초의 우주에서 원시 수소구름들이 수억, 수십억 년 동안 서로 뭉친 끝에 2천억 개가 넘는 은하들을 만들어내고, 그 2천억 은하들이

지금 광막한 우주공간을 어지러이 비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하늘의 수많은 별들 역시 어버이 되는 수소구름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인간은 그 별의 일부로 몸을 만들고 생명을 얻어 태어났다.

별이 없었으면 인류도, 나도 없었을 것이다. 별과 우리의 관계도 그처럼 밀접하다.

우리가 매일 보는 아침에 뜨는 별, 태양은 우리 은하에 속해 있는 4천억 개 별 중 평범한 한 개의 별에 지나지 않는다.

일생의 거반을 지나고 있는 태양도 60억 년 후에는 종말을 맞는다.

별도 인간처럼 태어나고, 늙고 , 죽는 일생을 사는 것이다.

 

 지구를 떠나 13년 동안 60억 km를 날아간 보이저 1호가 명왕성 궤도 부근에서 지구를 찍어 보낸 사진 속 창백한 푸른 점 하나가 바로 지구다.

과장 하나 없이, 지구는 우주의 티끌 한 점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조그만 이 행성 위에서 아옹다옹 살고 있는 우리 70억 인류도 알고 보면 우주 속에서 참으로 외로운 존재이며,

우리네 삶이란 얼마나 찰나의 티끌 같은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광대무변한 우주와 억겁의 시간을 생각하노라면, '나'라는 존재는 무한소의 점 하나로 소실되고, 종국에는 딱히 '나'라고 정의할 만한, '

나'라고 주장할 만한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나와 너라는 차이까지 흐릿해지고, 물(物)과 아(我)의 경계마저 아련해지고 만다.
 우리가 우주를 사색하는 것은, 인간이 우주 속에서 얼마나 티끌 같은 존재인가를 깊이 자각하고, 장구한 시간과 광막한 공간 속에서 자아의 위치를 찾아내는 분별력과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우주 속의 작은 모래알 지구에 사는 우리는 눈앞의 현실에 함몰된 나머지, 우리 머리 위의 현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산다. 현대인의 우주 불감증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밤에 집 바깥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면, 또 하나의 거대하고 견고한 '우주'라는 현실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건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현실 자체인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 저 광막한 공간에서 기적처럼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보면 늘 떠올리게 되는 문구가 하나 있다. 은하계 속에서 우리 태양계의 위치를 맨 먼저 알아내 인류에게 알려준 미국의 천문학자 알로 새플리의 말이다."우리는 뒹구는 돌들의 형제요, 떠도는 구름의 사촌이다."

< 이광식의 '천문학 콘서트' 중에서 >

 

겨울철 별자리 오리온    - 지리산 법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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