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24. 06:49ㆍ천문, 천체/천문, 천체
"내가 묘사하는 길은 고작 1마일에 불과하지만, 그 길은 우주만큼이나 넓은 영역을 아우른다."
만약 어떤 풍경을 잘 안다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나는 이 길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붉은 어깨검정새들이 2월 말 개울가에서 둥지 트는 소리가 들리는 때를 정확히 예상할 수 있다.
물가 초원의 청개구리들이 개골대기 시작하는 순간도 알고,
그늘진 길가의 아네모네들이 다섯 장의 꽃잎이 달린 꽃망울들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때도 안다.
나는 매일 해가 언제 뜨고 지는지, 초승달이 언제 눈썹 모양으로 서쪽 하늘을 아름답게 꾸미는지도,
또 동쪽 하늘에 오리온자리가 언제 올라오는지도 안다.
37년간의 오랜 경험, 면밀한 관찰과 사랑에 힘입어 직감으로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풍경도 속속들이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아주 친숙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걸으면 단 하루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눈에 띄지 않은 날이 없었다.
어떤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하기도 했는데,
야생 매발톱꽃의 통꽃이라든지 개울가의 물총새, 곰보버섯 등이 그렇다.
돌멩이와 들꽃 하나하나가 이야기거리를 갖고 있다.
길에 있는 화강암 부스러기는 대륙들이 충돌했을 때 뉴잉글랜드를 가로질러 융기한 산맥의 한복판에 있었다.
개울가의 자주색 털부처꽃은 1800년대에 유럽에서 정원장식용으로 들여온 뒤 들판으로 무성하게 퍼져 나갔다.
밤중에 다리 밑의 개울로 반사된 아크투루스(목동자리의 일등별)의 별빛은 우주 공간을 떠돌다 40광년 만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풍경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쌍안경과 확대경도 도움이 되었다.
먼 소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붉은꼬리 말똥가리를 보는 데는 쌍안경이 제격이고,
분홍숫잔대의 오묘한 수술과 암술을 살피는데는 확대경이 제격이다.
나는 매일 이 길을 거닐면서 20세기 초의 자연주의자이자 아일랜드의 유명한 풍경 관찰자인 로버트 로이드 프래거에게 크게 고무되었다.
프래거는 일부러 자동차를 삼가고 "종종 발길을 멈추고 차근차근 살피고 주의 깊게 귀 기울이면서" 아일랜드 전역을 "경건하게" 걸었다고 말했다.
프래거처럼 경건하게 걷기를 열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길을 다시 37년 동안 걷는다고 해도 그렇게 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역시 아일랜드를 면밀히 관찰한 동시대 작가이자 지도 제작자인 팀 로빈슨은 "적절한 걸음'이란 걷고 있는 풍경에 어울리는 걸음이라고 정의한다.
'아란의 돌'에서 그는 적절한 걸음이란 지질학, 생물학, 신화, 역사, 정치에 주목하는 한편 걷는 사람의 의식도 포함하는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 걸음이나 혹은 잇달아 몇 발짝을 걸어 보는 정도는 전혀 적절하지 않다.
"걸음의 중요성을 망각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명예를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느 때라도 발밑에 뒤얽혀 있는 복잡한 특질들을
인식한다면 놀라운 덤을 얻게 될 것이다."
과연 놀라운 덤이다.
소용돌이 고비, 딱따구리, 강꼬치고기, 화강암 부스러기, 캐나다 산사나무, 월출(月出), 푸른 울새, 청개구리, 제왕나비, 암반 위의 빙하 흔적, 그리고 물론 수세기에 걸친 변화를 통해서 이 땅의 역사와 자연 세계에 대한
변덕스러운 애정사를 놀랍게 요약해 주는 나의 길의 인간사까지.
매걸음마다, 매해마다, 내가 지나간 풍경은 더 깊고 더 풍부하고 더 다채로워지면서 그것을 품고자 하는 마음을 언제나 넘치게 했다. 결국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길은 걸음 이상이 되었고 배움 이상이 되었으며 삶 이상이 되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삶과 우주를 이어 주는 끈이자 도(道)가 되었다.
길가에 뽑힌 잡초는 17세기의 범선을 타고 신세계로 가는 길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암봉의 상처는 기후를 바꾸고 빙하들이 뉴잉글랜 들을 가로지르게 했던, 수백만 년 전 세상 반대편에서 발생한 거대한 조산 활동을 환기시킨다. 내가 폐로 들이마시는 산소는 지구가 태아 나기 오래전에 죽은 별 속에서 만들어졌다. 모든 것이 그 밖의 모든 것과 연결되아 있다는 말은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한 장소를 잘 알게 되면 갑자기 모든 것이 연결된다. 앤 마이클의 소설 '덧없는 조각들'속 인물은 말한다." 한 풍경을 잘 알게 되면 다른 풍경들을 전혀 다르게 보게 된다. 그리고 한 장소를 사랑할 수 있게 되면, 때로 또 다른 장소도 사랑할 수 있다."나의 길을 많이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자, 광년과 영겁이 더 이상 그렇게 가까이하기 어려워 보이지 않게 되고, 열대 우림과 건조한 사막이 그렇게 멀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주의 깊게 사는 1분 안에 1000년이 담겨 있듯 적절한 한 걸음이 지구를 가로지를 수 있다. 내가 묘사하는 길은 고작 1마일에 불과하지만, 그 길은 우주만큼이나 넓은 영역을 아우른다. 나의 길은 특별한 길이 아니다. 오히려 그 길은 뉴잉글랜드의 전형적인 풍경 속의 평범한 길일뿐이다. 겨우 3000걸음만 걸으면 다 걸을 수 있다. 이 책의 요지는 그 평범함에 있다. 선입견을 버리고 주의를 기울이고 제대로 알고 경이를 받아들일 준비만 되어 있다면 어떤 길도 도(道)가 될 것이다.
< 쳇 레이모의 「1마일 속의 우주」 프롤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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