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2014. 10. 10. 15:56시 모음/시

회 나무 열매

 

산길

고 은

 

이상하다. 언제나 나의 산길에는
누가 조금 전에 간 자취가 있다.
그렇게도 익숙하건만……
늙은 떡깔나무는 외면한 채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듯하고
길은 부유(腐乳) 냄새가
이제까지 모여 있다가 흩어지는구나.

이상하다. 나의 산길에는
누가 조금 전에 간 자취가 있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걸어가면
내 발등은 먼저 간 자취로 떨리는구나.
그래서 빠른 걸음으로 가면
외딴 곽새가 V자(字) 가지에서 날라 가 버릴 뿐이다.

어느날 일몰(日沒)이 늦었다. 나의 산길에는
그때까지 아침 이슬이 마르지 않고 있다.
자꾸 둘레를 돌아다보면서
이윽고 부락암호(部落暗號)로 불러 보았다.
저 앞에서 누가 반말로 대꾸한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줄 어떻게 알겠느냐.

이상하다. 언제나 나의 산길에는
누가 조금 전에 간 자취가 있다.
이 산길은 간조(干潮) 바다까지 보다 멀고
먼 예리고 고개까지도 닿아 있다.
비록 다른 길이 있을지라도
나는 이 산길을 버릴 수 없구나.
왜냐하면, 여기서 누구인가 낯선 면모(面貌)를 만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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