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6. 05:51ㆍ나를 찾아 걷는 길/雪嶽에 머물고 싶다
(4) 천년의 향기 이어 온 설악산 신흥사
2014.7.31
"길을 걷는 자만이 빚어낼 수 있는 풍경의 침묵"을 누리고 싶어 불현듯 걸망을 메고 속초행 시외버스에 오른다.
미시령터널을 빠져나와 차창으로 보이는 울산바위 풍경을 바라본다.
설악동 어귀 캔싱턴호텔이 들어선 곳
이곳이 설악산 신흥사 천년의 향기가 시작된 香城寺址다.
9층 석탑은 보이지 않고 호텔 맞은 편 도로 옆에 삼층석탑만이 외롭게 남아 옛 香城寺址 임을 말해 주고 있다.
푸른 소나무가 호위하고 있는 삼층석탑 뒤로 쌍천이 흐르고 노적봉이 건너다 보인다.
향성사는 신흥사의 첫 이름이다.
신흥사 사적기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652년(진덕여왕 6) 절을 창건하고 香城寺라 하였으며, 창건 당시 구층석탑을 만들어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계조암과 능인암도 함께 창건하였다고 한다. 절을 창건한지 46년 만인 698년(효소왕 7년)에 향성사는 능인암과 함께 불타버렸다. 그로부터 3년 후 의상대사가 능인암 자리(현재의 내원암)로 이건하여 중건하면서 선정사禪定寺로 개칭하였다. "승려가 정定에 들어 말이 없는 듯하고 고요히 앉아 벽을 쳐다보는" 수행처로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정사로 이름 지었던 향성사에 1642년 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되었고, 이로부터 2년 후 영서. 혜원. 연옥 세 고승이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 신인이 나타나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만 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神域이니라"고 말한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여 신흥사神興寺라 이름을 붙였다
조선 후기 신흥사 중창불사를 했고 능인암을 중창하여 내원암으로 개명한 용암 체조 스님은 신흥사가 부처님이 6년 고행하신 설산이며, 장차 미륵불이 출현하실 곳이라 해석하고, 아울러 수행자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처로도 최상의 조건을 지닌 곳이라 했다.
그가 쓴 '설악산신흥사 대법당 석 체기'에,"신흥神興이 신흥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세존 당시에는 설산에서 도를 얻으셨는데 하물며 신흥사의 십 리쯤 위에 홀로 빼어난 千尺高峰이 있으니 곧 미록봉이고, 만 길 층진 바위 아래 사람이 올라가지 못하는 곳을 돌아보면 굴이 하나 있어 금강굴이라 하며 또한 피팔라굴 이라고도 한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가섭존자가 금란가사와 벽옥기발을 가지고 미륵보살이 피팔라굴에서 출현하심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또한 이 굴의 형세를 살펴보건대, 음식을 끊은 승려가 머물고 있는 모습이요, 선정을 얻어 말이 없는 승려가 계율을 지키는 모습이며, 고요히 벽을 보고 앉은 승려가 소림사에 있는 듯한 모습이다. 제불조사들이 심인을 주고받던 아름다운 곳이다. 이 절이 이미 설산의 미륵봉 피팔라굴 아래 있으니 이런 까닭으로 신흥사가 되는 것이다."
1960년대 고암 상언과 제자 정호 성준이 원력을 세워 6.25 전쟁 동안 불타버린 건봉사를 대신해 본사로 승격하였다.
성준스님이 1975년 신흥사 주지가 된 후 일주문과 천왕문을 세우고 당우를 중수하여 신흥사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1995년 영동 지역 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이름을 神興寺에서 新興寺로 바꾸었다.
설악동 매표소를 지나 소로길로 들어서니 신흥사부도군新興寺浮屠群이 있다.
"수행의 고독과 침묵"을 웅변하고 있다.
"모든 삶의 종식 뒤에 남겨지는 비장한 아름다움"으로 山河大地現眞光 즉 "산과 물, 대지가 그대로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一指스님(1959-2002)은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이란 글에서 부도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썼다.
"산중의 햇살은 눈이 시리다. 나는 월정사 뒤켠의 소롯길 가에 있는 부도전으로 걸어간다. 20여 기의 크고 작은 부도들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이 부도전은 내게는 언제나 평화의 뜰이었다. 짙푸른 이끼가 덮이고 비바람에 씻긴 부도들을 바라보면서 '아, 그들의 고뇌와 깨달음이 마침내 저 작은 부도로만 남아 무언의 법문을 설하고 있구나'라는 상념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이 부도들은 일생을 한결같이 마음의 눈을 열고 삶의 질서와 영혼의 깊이를 다듬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心法의 회랑을 통과해 버린구도자들의 사리탑이다.
.... ....
더욱이 오래된 부도일수록 그 규모는 소박하고 오랜 풍우에 당호 석 자조차 마멸되어 마침내는 누구의 부도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 부도들도 있다. 이러한 부도들이야말로 삶과 죽음의 비밀을 깨달아버린 사람들의 지순한 망각을 상징하는 묘비인 것이다.
........
모든 기억의 종식을 선언한 저 부도들이야말로 모든 허식과 명리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니르바나의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간 구도자들의 신화적인 생애를 침묵으로 보여주는, 우리나라 절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그랬다. 절은 항상 망각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사찰의 역사가 아무리 오래되고 부유한 절이라고 할지라도 짙푸른 이끼가 덮이고 오랜 풍우에 얼마간 마멸된 부도들이 없는 절은 수행의 고독과 침묵이 없는 절이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닳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많은 부도들....
허식과 명리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열반을 향하여 묵묵히 걸어간 치열한 구도자들에게 합장하고 머리 숙인다.
고개를 드니 멀리 세존봉이 바라다 보인다.
부도 주위에는 꽃이 진 민들레가 하얀 공 모양의 열매를 달고 있다
치열한 수행 끝에 얻은 깨달음의 열매를 민들레 홀씨 되어 널리 널리 중생의 가슴에 심어 주려는 듯하다.
노적봉을 바라보고 있는 부도군浮屠群
1644년 신흥사 중건 이후의 역대 고승들의 부도 군으로 3개의 원당 모양의 부도와 16개의 석종형 부도가 있으며 이중 주인을
알 수 있는 것이 12개다. 신흥사 사적비, 용암당 대선사비 등 6개의 비석도 함께 있다.
설악산 일주문을 지나니 거대한 청동부처가 나타난다.
우리 민족의 최대 염원인 통일을 기원하며 조성한 통일대불 석가여래 좌상이다.
석가여래는 8각의 연화대 위에 결가부좌하고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가사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으며 가사의 주름이 자연스럽게 몸 전체를 감싸고 있다.
머리는 나발 형태에 정수리 부분에 육계가 봉긋이 솟아올랐으며, 얼굴은 방형에 가까우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인상적이다.
발원부터 조성까지 11년 세월이 걸렸고, 마침내 1997년 10월 25일 통일대불 점안식을 가졌다.
좌대 높이 4.3m, 대불 높이 14.6m, 광배 폭 14m, 아파트 6층 높이에 489개의 인조큐빅으로 장식된 무게 108톤이 되는 아시아 제일의
청동불상이다. 1992년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법화경. 화엄경 등 경전들 이복장 유물로 봉안되었다.
통일대불의 뒤쪽으로 돌아가니 대불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어 계단을 내려서니 내원법당이다.
법당 안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통일대불의 기단에 올라 8면 좌대에 돋을새김 한 16 나한의 수행과정을 둘러보며 앞을 바라보니 권금성이 눈앞에 서 있다.
세심교를 건너 극락교를 지나니 삼나무 두 그루 우뚝 솟아 있다.
전나무
아름드리나무를
껴안아 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여려 명이 둘러 안아도
못 안을 거대한 나무를
생명이 다해 몸을 바꾸듯
사목死木이 된 전나무는
400년을 살았단다.
100년도 못 사는
인간들을 향해
침묵의 언어로 하심下心을
가르치고 있다.
전나무를 지나니 사찰의 수호신이 있는 사천왕문이다.
차우 김찬균이 쓴 힘찬 필체의 四天王門 편액이 걸려 있다.
그의 편액에는 한반도 지도 모양의 독특한 두 인이 찍혀 있다.
한반도 지도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一切有心造'라는 글씨가 들어 있다.
비파를 연주하는 동방지국천, 검을 쥐고 있는 남방증 창천, 용과 보주를 쥐고 있는서방광목천, 탑을 받들고 있는 북방다문천이 지키고
있는 사천왕문을 들어서니 보제루가 정면으로 서 있다.
사천왕문 옆의 세 마리 거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감로수로 갈증을 푼다.
보제루 기둥에는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淸虛影
居士盦
有覺無修
無非佛事
白岳靑松
黃花翠竹
空山無人
水泣花開
맑고 깨끗한 그림자
앉아 있는 사람 덮으니
깨달음 있어도 닦지 않으면
불사가 아니로다
눈 덮인 흰 봉우리에 푸른 소나무
노란 꽃 가운데 솟은 푸른 대나무
텅 빈 산에는 인적 없는데
꽃은 피고 물은 울면서 흘러가네
보제루 앞 뜨거운 태양 아래 붉은 꽃을 피우고 있는 배롱나무가 보인다.
초당에 붉은색을 가득 채워 만당홍滿堂紅, 한 송이 지고 한 송이 피어 일 백일을 이어 붉은 색을 수놓는다 하여 목백일홍木百日紅,
자주색 꽃이 핀다 하여 중국에서는 자미화紫薇花, 줄기에 옴이 올랐다 하여 백양수伯痒樹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목백일홍
도 종 환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 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극락보전 아미타불 앞에 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낮추라고 보제루의 천장은 낮게 만들었다.
고개 숙여 보제루를 지나니 돌계단 위로 석등과 아름다운 자태의 극락보전이 바라보인다.
돌계단을 오르니 극락보전에 주련이 걸려 있는데 미려한 초서체다.
極樂堂前滿月容
玉毫金色照虛空
若人一念稱名號
頃刻圓成無量功
극락당 앞에 만월 같은 자태
옥호의 금색 광채 허공을 비추네
만일 사람들이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한 순간에 한량없는 큰 공덕을 이루리.
극락보전에 들어 아미타삼존불에 삼배하고 가부좌한다.
삼존불상 머리 위에는 각각 보궁형 닫집이 달려 있는데 천장에는 용을 조각하였다.
아미타불상 위에는 황룡을, 관세음보살상 위에는 녹색 용을, 대세지보살 위에는 청룡을 새겼다.
용이 네 개의 발톱을 세우고 여의주를 잡으려는 듯하다.
극락보전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어간의 창살문을 수놓은 솟을꽃살문과 협간을 수 놓은 빗살문이다.
솟을 꽃살문은 솟을 살이 교차되는 부분에 연꽃, 모란, 국화 등을 새겨 넣었다.
보제루 아래에서 바라다 보이는 극락보전
극락보전 이끼 낀 돌계단 소맷돌과 기단에 새겨진 조각을 바라보며 격조 높은 신흥사의 사격을 느낀다.
반원처럼 둥근 곡선을 이룬 소맷돌과 그 맨 앞쪽에는 용의 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소맷돌 측면에는 벽사를 의미하는 귀면상과 天地人의 三災 또는 우주 생성의 세 요소인 火水土를 상징하는 삼태극三太極 ,
그리고 飛雲, 眼象 문양을 새겨 놓았다.
기단 왼쪽 매끈한 흰돌 아래위로 활짝 핀 모란꽃과 해태를 돋을새김 하여 장식하였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한다.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神獸로 여기는 해태는 해치라고도 한다. 조각된 모양은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 뿔이 나 있다.
활짝 핀 모란꽃의 미려함, 웅크린 해태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
놀라움에 가슴이 뛴다.
아! 신흥사 천년의 향기가 풍긴다.
돌에 스며 있는 천년의 향.
'나를 찾아 걷는 길 > 雪嶽에 머물고 싶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신흥사의 산내암자 - 선지식의 향기를 찾아 (0) | 2014.08.10 |
---|---|
(3) 金剛門 들어 世尊峰을 바라보다 (0) | 2014.07.06 |
(2) 산솜다리 꿈 여무는 恐龍陵線을 넘다 (0) | 2014.07.05 |
(1)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설악 대청봉 (0) | 2014.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