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線이 부드럽고 풍만한 용눈이오름

2013. 10. 31. 10:07나를 찾아 걷는 길/빛과 바람, 구름,비,안개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

 (3) 線이 부드럽고 풍만한 용눈이오름  

        2013.10.23

  

종종 안개비에 젖어 섬은 제 모습을 숨기고 나를 외롭게 만든다.

섬에서도 내가 사는 중산간 마을은 유독 안개가 많고 비가 잦다.  

광활한 초원의 목초지가 수평선까지 이어지고 소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군데군데 솟아오른 오름들은 이국적인 정취에 빠져들게 한다.

인기척이라곤 느낄 수 없는 중산간의 초원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이 부드럽고 볼륨이 풍만한 오름들은 늘 나를 유혹한다. 유혹에 빠진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밝은 밤에도, 폭설이 내려도, 초원으로 오름으로 내달린다.

그럴 때면 나는 오르가슴을 느낀다. 행복감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도시보다는 자연에서, 낮보다는 밤에, 나의 성감을 자극을 받는다.

건조한 곳보다는 습한 곳에서, 햇빛 쨍한 날보다는 안개 짙고 가랑비 내리는 날이면 발동이 걸린다.

여름이면 여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느낄 수 있는 오르가슴. 소나기 지나고 무지개 뜰 때면, 바람 심한 억새꽃 춤추는 한낮에도,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눈보라 속에서도 오르가슴은 찾아온다.

   .....

꿈속에서 몽정을 경험하듯 자연 속에서 오르가슴을 경험한다.

아침저녁 홀로 초원을 돌아다다 보면 오르가슴을 느낀다.

신선한 공기, 황홀한 여명, 새들의 지저귐, 풀 냄새, 꽃향기, 실바람.....

그 모든 것들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절묘한 조화를 부린다.

  .....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색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산간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귀로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

형상도 없는데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그 무엇이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 존재한다.

   ....

안개가 일순간에 섬을 뒤덮는다. 하늘도, 바다도, 오름도, 초원도 없어진다.

대지의 호흡을 느낀다. 풀꽃 향기에 가슴이 뛴다.

안개의 촉감을 느끼다 보면 숨이 가빠온다.

살아 있다는 기쁨에 감사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도, 끼니 걱정도 사라진다. 곰팡이 피어가는 필름 생각도,

홀로 지내는 외로움도 잊는다. 촉촉이 내 몸속으로 안개가 녹아내린다.

숨이 꽉꽉 막히는 흥분에 가쁜 숨을 몰아쉰다.

자연에 묻혀 지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이 기쁨, 그래서 나는 자연을 떠나지 못한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초원에도, 오름에도, 바다에도 영원의 생명이 존재한다.

대자연의  신비와 경외감을 느낌으로써 나는 신명과 아름다움을 얻는다.

초원과 오름과 바다를  홀로 거닐면, 나의 영혼과 기억 그리고 자연이 하나가 되어 나의 의식 속으로 스며든다.

<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 '오름에서 맞는 오르가슴'에서 >

 

 

용눈이오름  한자로는 龍臥岳, 龍臥峰

표고 247.8m에 비고 약 80m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산 26-47번지 소재

 

선이 부드러운 용눈이오름을 바라보노라니 낯익은 모습이다.

어디서 보았을까? 

기억을 한참 더듬는다.

경주 왕릉에서 보았던 봉긋한 線이다.

 

보드라운 풀밭을 돌아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하얀 갈대가 누웠다간 일어나곤 한다.

방목한 소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산 등성이가 유연히 흘러내린다.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이 갈대밭 너머로 바라보인다.

쉬임 없이 부는 바람이 만드는 하얀 갈대의 춤추는 향연을 보기 위해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춘다. 

바람은 자연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남북으로 비스듬히 누운 용눈이오름은 부챗살 모양으로 여러 가닥의 등성이가 흘러내려 오묘한 선을 빚어낸다.

등성이마다 왕릉 같은 새끼봉우리가 봉곳봉곳하다.

굼부리를 바라보며 푸근하고 부드러운 등성이를 오르내린다.

굼부리 둘레에는 큰 덩치의 세 봉우리가 둘러서 있다.

활처럼 휘어져 내린 낮고 작은 등성이가  큰 굼부리에 세 칸의 둥근 작은 방을 만들어 놓았다.

어미굼부리 속에 세 쌍둥이 앙증한 새끼굼부리를 품고 있는 것이다.

이 묘하게 생긴 굼부리가 용이 누웠던 자리 같다고 하여 '용눈이오름'이라고 하였다고.

 

활처럼 휘어진 능선,

부드럽게 흐르는 등성이의 충만한  선이 생동감에 넘친다.

어머니 젖가슴 같은 오묘한 능선을 따라  몇 바퀴든 자꾸자꾸 걷고 싶다.

 

김영갑 생각

 

그대는 가고 '숲 속의 사랑'은 다시 세상에 나와 바람과 햇살 사이로 그대가 걸어오는 듯 나뭇잎이 흔들리네. 물안개가 시야를 가리던 어느 날, 날더러는 감자 밭에서 시를 쓰라 하고 그대는 무거운 사진기를 짊어지고 사라졌지.

 

시는 무엇이며 사진은 무엇인가.

 

나는 시로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그대는 사진으로 시를 찍고 있었던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오름에 올라가 그대의 발자취를 읽고 있네.- 용눈이 오름에서 이 생 진 시인

 

 

 

 

 

 

 

 

 

 

  

억새 밭 너머로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

 

 

  

다랑쉬오름

 

 

  

굼부리 안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放牧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