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람, 구름이 있는 소박한 풍경

2013. 10. 30. 01:40나를 찾아 걷는 길/빛과 바람, 구름,비,안개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

(2) 바람, 구름이 있는 소박한 풍경

      2013.10.22

 

 

들판에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습니다.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찾아가 세상을 탓하고 나 자신을 탓합니다.

어린아이처럼 투정도 부려봅니다.

하지만 들판은 한결같이 반갑게 맞아줄 뿐입니다. 그리고 새들을 초대해 노래 부르게 합니다. 풀벌레를 초대해 반주를 하게 합니다. 구름과 안개를 초대해 강렬한 빛을 부드럽게 만들어줍니다. 해와 달을 초대해 춤판을 벌이게 합니다. 새로운 희망을 보여줍니다. 마음이 평온할 때면 나는 그 들판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지냅니다. 마음이 불편해져야 그 들판을 생각합니다. 그래도 들판은 즐거운 축제의 무대를 어김없이 펼쳐줍니다. 들판이 펼쳐놓는 축제의 무대를 즐기다 보면 다시 기운이 납니다. 그런 들판으로부터 받기만 할 뿐, 나는 단 한 번도 되돌려주지 못했습니다. 들판은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대신 언제나 나에게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나의 모습은 들판으로 나오기 전까지와는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들판을 만나고 오는 날에는 잠자리가 편안합니다.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 풀과 나무들은 온갖 시련을 홀로 견디며 무성하게 자랍니다. 소, 말, 노루가 주는 시련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홍수가 나면 뿌리째 뽑혀나갑니다. 가뭄이 계속되면 잎들이 다 말라버립니다. 하지만 풀과 나무들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가뭄이 들면 홍수를, 혹서기에는 혹한기를 떠올리며 참아냅니다. 때가 되면 태풍이 옵니다. 태풍은 온몸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어놓고 떠납니다. 이제는 사람들도 한몫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풀과 나무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뽑혀나간 뿌리로 땅을 짚고 새 줄기와 가지를 키워 올립니다. 부러진 줄기와 가지를 추슬러 새순이 움트게 합니다. 끊임없는 비극과 고통 속에서도 풀과 나무들은 비명 한번 내지르지 않고, 불평 한번 없이, 절대로 도망치는 법도 없이 묵묵히 새 삶을 준비합니다. 다가오는 비극과 고통이 그들을 오히려 더 강한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나에게도 비극과 고통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는 것입니다. 이때 들판은 나에게 가르쳐줍니다. 어떻게 하면 시련을 정장의 또 다른 기회로 만들 수 있는지를.... 그래서 나는 들판의 친구로 삽니다. 들판을 친구 삼아 나의 비극과 고통을 넘어섭니다. 아픔은 한동안 머물다 떠납니다. 행복과 즐거움보다는 불행과 슬픔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듭니다. 나의 친구, 들판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해줍니다.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아주 고요한 몸짓으로, 그렇지만 온몸으로.....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내 마음의 풍경'에서 

 

 

바람이 불어와  들판의 억새가 하얗게 반짝인다.

"자연에 말을 걸고 자연이 들려주는 신비한 음성을 사진에 담을 줄 아는 작가"  두모악 김영갑의 사진첩에 있는 구름언덕을 향하여 걷는다.

 

그가 그렇게도 좋아하여 자주 찾았던 곳이 둔지오름 아래 들녘이다.

 

구름언덕이 저 멀리 바라보인다. 

바람이 분다. 

언덕 위에는 구름이 몰려 있다.

맑은 하늘은 좀처럼 보기 어렵고 늘 구름이 끼어 있어 구름언덕이라고 하였는가.

 

바람과 구름 그리고 소나무가 있는 소박한 풍경이다.

언덕 옆 저 멀리 오름이 아스라이 보인다.

바람이 불적마다 구름은 변화하고 빛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활짝 핀 하얀 억새꽃이 바람에 눕는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아니라 대자연이 조화를 부려 내 눈앞에 삽시간에 펼쳐지는 풍경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주변에 펼쳐져 있는 흔하디 흔한 소재들을 통해 신비로움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빛, 바람, 구름, 안개, 비.... 이 모두가 조화를 이루면 제주도는 더욱 신비로움을 발한다. 동박새는 모른다. 동백꽃을 피우기까지 나무가 견뎌낸 고통의 시간을... 동박새는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눈, 비, 바람, 가뭄, 혹한과 무더위를... 동박새는 꽃이 떨어지면 동백꽃을 기억하지 않는다. 동박새는 다음 해 동백꽃이 피어야 다시 올 것이다.                                  김영갑의 '동박꽃은 동박새를 유혹하지 않는다'에서

 

 

'삽시간의 황홀'그 한순간을 위해 보고 느끼고, 찾고 깨닫고, 기다리기를 수 없이 되풀이했던 그 동백꽃을 피우기 위해 나무가 견뎌낸 고통의 시간이 있듯 인고의 고통 끝에야 '삽시간의 황홀'을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다.

오묘하고 경이로운 자연의 조화 속에 만들어지는 제주의 풍광인 '삽시간의 황홀'에 빠져 20년 가까이 제주 중산간 들녘을 돌아다녔던 그를 생각해 본다.

 

바람이 끊임없이 분다. 둥그런 선의 둔지오름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구름언덕 저 너머로 아스라이 오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 구름이 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구름언덕 풍경은 우리들 마음의 풍경이다.

 

 

구름언덕(1)

 

 

   

구름언덕(2)

 

 

  

둥그런 둔지오름과 알오름인 구름언덕 선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둔지오름

 

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이 오름은 표고가 282m이고, 비고가 152m이다.

'둔지'는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을 이르는 제주방언으로 '둔지'가 많은 지형이라는 데서 '둔지오름'이라 했다.

오르 북쪽 비탈에는 조림한 해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남쪽 비탈은 풀밭으로 듬성듬성 해송이 자란다.

남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가지고 있는데, 원지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화구 앞쪽에는 용암 부스러기로 이루어진 작은 구릉들이 많이 있다.

오름 주변에는 돌담이 둘린 무덤과 그렇지 않은 무덤들이 많은데 지형에 따라 돌담의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유택도시幽宅都市'라는 인상을 풍긴다.

 

 

둔지오름 표지석

 

 

  

둔지오름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오름인가 보다.

잡풀과 억새를 헤치며 둔지오름을 오른다.

보랏빛 산부추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구슬처럼 달린 빨간 열매를 들여다보노라니 그 뒤편으로 유택이 보인다.

제주도에서는 깻잎나물이라고 부르는 산박하 山薄荷

취산꽃차례에 입술 모양의 자주색 꽃이 핀 산박하 꽃이 보인다.
이름이 상큼하다.

금방이라도 싸하게 박하향이 풍겨 올 것 같다.

 

가을 들꽃

        김정호


슬픈 고독이 밀려온다 모두가 떠나버린 고요한 들판에 제 몸 비벼 바람을 만드는 들꽃은 계절을 재촉하는 새벽 비에 곱게 피었다 지더니 황금 햇살을 마시고 다시 자라나는 들꽃은 세월의 굴레를 벗고 사랑하는 이의 심장 소리처럼 눈부시도록 하얀 모습으로 내 곁에 다가와 눕는다

 

 

                                                           잡풀로 뒤덮인 오름길 입구

 

 

산부추

 

 

                                                                                                            ? 

산박하 山薄荷-새들이 날아들고 있는 듯하다

 

 

둔지오름 정상은 온통 수크령으로 뒤덮여 있다.

하얀 억새가 너울거린다.

서쪽으로 다랑쉬오름, 손자오름, 돝오름, 높은 오름, 아부오름이 보이고,  저 멀리 수많은 오름들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한라산은 구름 속에 묻혀 있다.

동쪽으로는 행원풍력단지  동남쪽으로는 지미봉, 우도, 성산일출봉이 바라보인다.

 

짙은 구름 사이로 빛이 쏟아지다가 다시 사라진다.

서쪽 하늘은 구름이 몰려 어두컴컴한데 동쪽 수평선 하늘 위는 밝고 파랗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조화다.

 

  

수크령으로 뒤덮인 둔지오름 정상

 

 

다랑쉬오름, 손자봉' 돝오름, 높은 오름, 아부오름이 바라 보인다

 

 

 

삽시간에 검은 구름이 몰려든다

 

 

  

행원리 풍력단지 모습이 보인다

 

 

지미봉, 우도,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먼나무 붉은 열매가 아름답다

 

 

오를 적엔 보지 못하였던 먼나무 붉은 열매를 내려 올 적에 본다

누렇게 퇴색한 나뭇잎을 달고 가지 끝에 풍성한 붉은 열매를 가득 매달고 있는 먼나무를 바라본다.

열매를 맺기 위해 이 나무가 이겨 낸 고통의 시간을 떠 올려 본다.

  

가을 뒷모습

            박 인 걸
유난히 높은 하늘과
붉게 물드는 잎사귀 사이로
알알이 익는 열매는
가을의 풍요를 연출하지만
치열했던 삶의 상처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나뭇잎마다 바람에 찢겨
걸레처럼 너덜대고
벌레에 갉힌 풀잎은
온갖 상처투성이다.

 

휘둘리던 갈대는
허리 꺾인 채 누웠고
꿈을 안고 날던 나비는
날개가 찢겨 푸득 인다.

 

광폭한 여름 햇살과
지겹게 쏟아붓던 폭우
사납게 불던 광풍에 
이지러진 傷痕들이다.

 

치열했던 생존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선택된 축복을
상처 입은 생명체들이
고운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