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을 지폈다

2013. 10. 13. 21:22시 모음/시

  

봉화 만산고택(奉化 晩山古宅)에서

 

군불을 지폈다

원성

 

군불을 지핍니다. 타닥타닥 뼛속 쪼개는 소리.
따스한 화기는 가슴을 데우고 그렇게 쪼그려 앉아 불을
바라보노라면 보송보송한 아련한 기억들이 불꽃
속에 그려집니다. 가슴에 번져 오르는 붉은 불기운에는
한없는 그리움이 밀려오고 붉어진 피부는 당장 터질
것만 같아서 한층 더 웅크려 봅니다. 일렁이는
불길 속에 얼굴들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손 닿으면
부서져 버리는 나의 환영은 연기와 함께 허공 속으로
날아가 흩어집니다. 심향은 먼 하늘 향해 실낱같이
타오르며 곧 잊혀지겠지. 끝내 검은 숯구덩이만 덩그러니
불씨조차 죽어 버린 그곳에서 차가운 아쉬움만
쓸어내었습니다. 군불을 지필 때면 언제나 반복되는
나의 서정에 하루에 눈물 한 번은 꼭 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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