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송橘頌

2013. 3. 25. 08:32시 모음/漢詩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귤밭에서

 

 

귤송(橘頌)

굴원(屈原)

 

后皇嘉樹      천지간에 아름다운 나무가 있으니

橘徠服兮      귤이 우리 땅에 내려왔도다.

受命不遷      타고난 성품은 바뀌지 않으니

生南國兮      강남에서 자라는구나.

深固難徙      뿌리가 깊고 단단하여 옮기기가 어려우니

更壹志兮      한결같은 뜻을 지녔음이라.

綠葉素榮      푸른 잎에 흰 꽃은

紛其可喜兮   어지러이 즐겁게 하며

曾枝剡棘      겹겹의 가지와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서

圓果兮      둥근 과일이 맻혀 있도다.

靑黃雜   푸르고 누런 과일이 조밀하게 열리어

文章爛兮      색깔이 빛나는구나.

精色內白      매끄러운 겉 빛깔에 속이 희어서

類可任兮      중한 일을 맡길 수 있을 것 같도다.

紛縕宜脩      무성한 잎은 잘 가꾸어져서

姱而不醜兮   아름다워 밉지가 않구나.

嗟爾幼志糅   아! 너의 어릴 때의 뜻은

有以異兮      남다른 바가 있었지.

獨立不遷      홀로 우뚝 서서 변치 않으니

豈不可喜兮   어찌 사랑하지 않을 건가!

深固難徙      뿌리가 깊고 단단하여 옮기기 어려우며,

廓其無求兮   훤하여 따로이 바랄 게 없도다.

蘇世獨立      속세에 홀로 깨어 우뚝 서서

橫而不流兮   가로질러 속세와 아울리지 않는구나.

閉心自愼      마음을 굳게 닫아 스스로 삼가

不終失過兮   끝내 실수하지 않는구나.

秉德無私      덕을 지니어 사사로움이 없으며

參天地兮      천지의 조화에 참여하는구나.

願歲幷謝      원컨대, 세월이 다가도록

與長友兮      너와 더불어 우정을 오래 갖고 싶도다

淑離不淫      조촐히 세속 떠나 지나치지 않으며

梗其有理兮   단단하게 조리를 지켜가노라.

年歲雖少      나이는 어려도

可師長兮      본받을 만하고

行比伯夷      행실은 백이와 같아서

置以爲像兮   표상이 될 만하도다.

 

 

굴원屈原

BC 343경 중국 중부 초(楚)나라~ 289경 초나라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애국시인.

 

굴원은 양쯔 강[揚子江] 중부 유역의 큰 나라였던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의 친척이었던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아 20대에 벌써 좌도(左徒:侍從)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법령입안(法令立案) 때 궁정의 정적인 상관대부(上官大夫)와 충돌해 그의 중상모략으로 면직당하고 국왕 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굴원은 제(齊)와 동맹해 강국인 진(秦)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진의 장의(張儀)와 내통하고 있던 정적과 왕의 애첩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왕은 제와 단교했으나 결국 진에게 기만당하고 진의 포로가 되어 살해당하고 말았다. 회왕이 죽은 뒤 큰아들인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재상)이 되었다.굴원은 회왕을 객사하게 한 자란을 백성들과 함께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 강 이남의 소택지(沼澤地)로 추방되었다. <어부사 漁父辭〉는 그때 쓴 작품이다. 그는 유배지에서 무속적 민속의식을 관찰하고 그의 작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전설들을 수집했다. 맨처음 회왕에게 내쫓기어 유배되었을 때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 서정시 〈이소 離騷〉를 써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는 '만나다'의 뜻이고 '소'는 '근심'이라는 뜻이니 이소란 곧 '근심을 만나다'라는 뜻이다. 〈이소경 離騷經〉이라 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

"이것은 위로 당우(唐虞) 3후(三后)의 성왕을 법을 들어 말하고, 아래로는 걸(桀)·주(紂)·예(羿)·요(澆)의 패망함을 들어 말함으로써 군왕이 깨닫고 정도(正道)로 되돌아가 다시금 자기를 불러줄 것을 기원한 것이다."위의 글은 왕일(王逸)과 주자(朱子)의 〈이소경〉 서문의 한 토막이다. 굴원은 그토록 애타게 자기의 충정을 노래하다가 한 번 용서받은 바 있었으나, 다시금 참소를 받아 경양왕에 의해 멀리 양쯔 강 남쪽 강남지방으로 내쫓기는 몸이 되었다. 애국시인 굴원은 유배에 대한 절망감으로 강가를 하염없이 거닐며 시를 읊조리다가 〈회사(懷沙)의 부(賦)를 마지막으로 고결한 성품을 그대로 간직한 채 돌을 안고 미뤄 강[汨罷江:지금의 汨水]에 몸을 던졌다. 중국에서 음력 5월 5일에 벌어지는 유명한 용선(龍船) 축제는 이 애국시인의 유체를 찾던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굴원의 작품들은 고대 중국의 명시선집인 〈초사 楚辭>에 실려 있다. 이 시집은 후세 시인들이 굴원의 전설적인 삶에 대해 쓴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한부(漢賦)에 큰 영향을 주었고, 후대에 높이 평가되고 있다.

 < 趙允卿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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