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무치게 그리운 섬 독도를 가다

2012. 11. 6. 11:10도보여행기/울릉도 독도를 찾아서

(4) 사무치게 그리운 섬 독도를 가다

    2012.10. 19. 목요  맑음

  

새벽에 눈을 뜨니 5시 30분이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도동항으로 나간다.

휘황한 전등불이 빛나는 뱃전으로 향하니  어슴푸레 도동항이 밝아오고 있다.

오징어 회를 주문하니, 대야에 살아있는 오징어를 건져 능숙한 솜씨로 배를 갈라 내장을 적출하고 한 번에 껍질을 벗긴다. 기계에 넣으니 채가 되어 나온다.

오징어회와 초장을 구입하여 숙소에 돌아와  컵라면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도동항 노점

 

오늘은 사동항에서 오후 2시30분 출항하는  독도행 배에 승선해야 하므로  봉래폭포만 가볍게 다녀오기로 한다.

폭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풍혈, 취수장을 지나니 울울한 삼나무 숲이 나온다.

줄기가 곧게 뻗은 푸른 삼나무 숲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싱거러운 향을 뿜어내고 있다.

삼나무는 수피가 벗겨져 적갈색을 띄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삼나무 숲

 

곧게 뻗은 삼나무 수피가 벗겨져 적갈색을 띄고 있다

 

계곡을 따라 철조망이 쳐진 길을 따라 걸어가니 폭포 소리가 들리다.

폭포 전망대에 올라 원시림 속 벼랑을 타고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본다.

 

봉래폭포는 낙차가 30여 미터에 이르는 3단 폭포로서 울릉도의 도동과 저동을 비롯한 남부 일대의 중요한 상수원이다. 이곳의 물은 북서쪽 나리분지에 모인 강수가 지하로 스며들어 지하에서 피압수가 되어 지표로 용출하는 것이다. 지표로 솟은 다량의 물이 지형의 기복을 따라 흘러 내림으로서 폭포가 형성되었다. 1일 유량은 약 3,000톤 이상이 된다.

 

봉래폭포는 울릉읍 주민들의 상수원이다.

화산섬의 폭포수라 물맛도 좋은 완벽한 천연수다.

원시림 속 벼랑을 타고 떨어지는 봉래폭포

 

울릉도 봉래폭포             

박 희 진

 

봉래폭포 가는 길의 바람굴, 너와집, 

삼나무숲을 보니
예사 폭포 아님을 알겠구나?

 

울릉도 제일폭포, 그것도 한눈에
들어오는 삼단 폭포?
그 앞에 함부로 가까이 못 가도록
이만치 서있는 觀瀑亭 올라가다?

 

모든 것이 움츠리고 잦아드는
겨울인데도 풍부한 水量,
하얗게 쏟아지는 자태가 눈부시다?
聖人峰이 안으로 간직했던
진수를 이곳에서 마음껏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나?
생명의 核이란 바로 물임을,
일체의 협잡을 불허하는 純粹란
이렇듯 순백임을,
흐름이자 멈춤이고 멈춤이자 흐름임을,
시간이자 영원임을?

 

폭포를 보노라면 언제나 그렇듯
나는 선 채로 물기둥 되고 만다?
時空이 하나로
확 꿰뚫리는 환희의 연속?
시간이 얼마나 흘러간 것일까?
나는 슬그머니 뒤로 돌아서다?
그러자 크게 고개를 끄덕이다?
골짜기 사이로
거기 바다가 들어와 있다?
하늘에 닿은 水平線 높이가
바로 폭포의 눈높이인 것이다?
아아, 그렇구나? 폭포와 바다는
늘 相見禮를 드리고 있는 것을?

 

 

사무치게 그리운 섬 독도

 

독도 전경 <사진출처 : 문화재청>

 

 

서시

 

 

보라 !

 

태양이 박차 오른 동해를 보라

 

갈매빛 물결에 닦아온

 

저 푸른 눈빛

 

여기에 내 모국의 언어가 있다

 

소멸할 수 없는 내 역사가 있다

 

때때로 무서운 탑상구름이나 검붉은 적란운이

 

하늘을 덮고

 

거센 돌풍이 바다를 뒤흔들어도

 

구름은 자취 없이 흩어지고 물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리 앞에

 

오직, 정직한 역사만이 민족의 장래를

 

영광스럽게 꽃 피운다는

 

엄숙한 말씀이 있다

 

 

세월이 물같이 흐르고

 

까마득히 흘러갈수록 새롭게 떠오른 그날

 

서기 512년 신라 22대 지증왕 13년을 기억하라

 

독도의 모도(母島) 울릉도를 병합하여 신라 영토로

 

복속시킨 이사부 박이종을 기억하라

 

자식이 어미를 따름 같이

 

일찍이 모도 울릉도를 따라

 

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을 거쳐

 

한반도의 분신으로 단련된

 

탄탄한 뼈와 살과 호흡을 헤아려 보라

 

이 지루하도록 긴 이야기

 

이 땅의 넋으로 점철된 걸음걸음마다

 

신라의 고매한 향기가 풍긴다

 

고려의 말발굽 소리가 휘몰아친다

 

조선의 맥박이 분주히 뛴다

 

안용복의 기개가 동해를 흔들고

 

홍순칠의 호령이 가슴을 친다

 

 

천오백 년의 시간으로 각인된

 

저 시원한 이마에 빛나는 이름

 

독도

 

천하에 당당한 대한의 명패

 

동해의 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닮아

 

평지가 될 때까지

 

눈 부릅뜨고 동해를 지켜갈

 

내 탄탄한 분신 - 독도

 

그대 기쁨으로 영화로운 관을 씌우라

 

오 축복의 땅 - 독도

 

그대 혼신으로 다정한 입맞춤을 하라

< 박정선의 서사시집 '독도는 말한다'에서 >

 

봉래폭포를 보고 멀미약을 구입한 후 숙소에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다.

단출한 차림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사동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간령 정류장에 내려 사동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선표를 끊는다.

전망대 역할도 하는 사동항 여객선터미널 옥상에 오르니 사동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독도사랑호"가  정박해 있는 것이 보인다.

사동항 여객선 터미널

 

"독도사랑호"

 

사람들로 꽉 들어찬 배 안은 설렘으로 충만되어 있다.

항해 중에는 갑판으로 나갈 수 없어 여객 선실에 갇혀 있어야 하니 사진 촬영도 용이하지 않다.

2시간 30여 분의 다소 지루한 항해 끝에 선창으로 독도가 보이기 시작하자 배안이 술렁인다

독도다!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한다

가슴 설레며 오늘을 기다려 온 우리 모두 아닌가.

독도가 보이자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사람들

 

동경 131°51'~131°53', 북위 37°14'00"~37°14'45"에 위치한 대한민국 동해 끝

우편번호 799-805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96

2개의 큰 섬인 동도와 서도 그리고 주변의 89개의 도서로 구성된 독도(獨島)

오랜 역사 속에서 우산도(于山島), 삼봉도(三峰島), 가지도(可支島), 요도(蓼島), 석도(石島), 독도(獨島)로 불러왔느니...

독도에 첫 발을 내려놓으니 짜릿한 감동이 밀려온다.

 

"아, 가슴이 온통 설렘으로 뛰고 있느니

갈매기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수백만 년을 들어도

오직 진실만을 잉태한 저 투명한 울림

저 투명한 진실 앞에

그대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기를 나는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

  

"대한민국 동쪽 땅끝" 표석 너머로 탕건봉, 촛대바위, 삼 형제굴바위가 손짓하며 반긴다.

파도가 연실 밀려와 해안가 자갈 위에 넘실댄다.

 

바다 수면 속에서 손잡고 있는 독도의 두 섬, 동도와 서도의 높이는 각각 해발 98.6m와 168.5m에 불과하나, 

해저로부터는 그 높이가 2,000m를 넘는다. 한라산 보다 더 높은 화산이다.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화산의 꼭대기에 나는 서 있는 것이다.

갈매빛 바다에 석양이 내리기 시작한다.

 

2,000만 년에서 2,500만 년 전 동해가 만들어졌다. 즉, 대륙판과 해양판이 충돌한 후 해양판이 대륙판 밑으로 침강하는 과정에서 일본 열도가 생겨났으며,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대륙지각이 맨틀의 상승 운동에 의해 쪼개지면서 틈이 생겨 점점 벌어져 바다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동해의 해수면을 뚫고 처음 섬으로 올라온 것은 울릉도가 아니라 독도라 한다. 신생대 3기인 460만 년 전에서 250만 년 전까지 화산 폭발을 통해 바위섬인 독도가 탄생한 다음 울릉도와 제주도가 그 뒤를 이었다고 한다.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칼을 갈았다는 숫돌바위를 본다.

선착장 옆 우뚝한 바위가 목을 쭉 빼고 하늘을 바라보는 바다사자를 닮았다.

바위에 옹기종기 앉아 괴이한 고함을 질러대던 바다사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독도 의용수비대장  홍순칠(1929-1986)이 쓴 "이 땅은 뉘 땅인데!" 수기에는,

1953년 4월 20일 의용수비대는 바다사자의 열병을 받으며 독도에 상륙하였고,  1954년 바다사자 숫자를 파악하였는데 약 700여 마리였다고 

한다. 또한 신발을 신은 채로 소라와 전복, 문어 등을 맨손으로 잡았고, 바다 색깔이 까맣게 보일 정도로 미역이 무진장하였다고 적고 있다.

또 그의 글에는,  1905년 바다사자 포획 독점권을 얻기 위해 일본인 나카이는 독도 '영토 편입 및 대하원'을 일본 정부에 제출했고, 일본은 

시네마현 고시 제40으로 우리의 영토인 독도를 자국의 시마네현에 편입시키고 나카이에 바다사자의 포획권을 허가하였으며, 1905년 이후

나카이는 매년 3,000두 이상을 포획하였다 하였고, 나카이의 바다사자 포획의 흑심만 없었더라도 오늘의 독도는 바다사자의 낙원으로,

또 동해의 유일한 서식지로 만인의 사랑을 받았으리라 하였다.

 

울릉도 출신 민간인으로 조직된 홍순칠외 32인의 '독도의 용수비대'는 독도를 수호한 우리시대의 마지막 의병(義兵)이었다.

 

숫돌바위

 

왼쪽부터 석양빛을 받고 있는 탕건봉과 촛대바위, 삼형제굴바위

 

동도와 바다사자 바위 사이 뒷편 평평한 바위가 해녀바위

 

독도의용 수비대장 홍순칠의 '독도 유감'이라는 글 일부를 옮겨 본다.

"독도!

참으로 외로운 섬이다. 그래서 이름 그대로 독도가 아닌가. 돌과 바다와 파란의 역사가 늘 함께하는 이 섬은 갈매기의 애절한 울음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하다.

....

이런 곳에 내가 소위 의용수비대를 조직, 이 섬의 수비 책임을 맡고 일하기 시작한 해는 1953년이었다. 그해 6월 일본정부는 우리가 전쟁의 와중 속에 있음을 계기삼아 해상보안청 및 출입구 직원 등 30여 명을 두 척의 순시함에 분승시켜 미국 국기로 위장, 이 섬에 와서 3번이나 상륙, 제멋대로 행패를 부리고 분탕치고는 돌아갔다. 물론 그들은 일본 영토 표지까지 세웠던 것이다.

....

나는 대원들과 함께 음료수마저 없는 무인도에서 젊음을 불살랐지만 동한난류가 연중 환류하여 겨울엔 눈이 유독 많이 내려 백설의 고장이라.."

 

괭이갈매기의 날갯짓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바다에 석양이 내려 깃을 찾아든 모양이다. 

붉은 해가 수평선에 떨어지고 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쉴 사이 없이 울려 퍼진다.

배가 출항하니 어서 빨리 승선하라고 독촉한다.

사진 찍을 시간도 용이하지 않은 선착장에서의 20여 분 체류는 독도에 대한 갈증을 풀기엔 터무니가 없다.

태극기가 해풍에 휘날리는 감판에 서서 수평선에 떨어지는 붉은 해를 바라본다.

풍랑이 거세져 배가 심하게 흔들려 승무원의 제지가 있을 때까지.

 

독도(獨島) / 박정진 

 

대륙의 꿈이 돌고 돌아 끝내 
동해에 돌산으로 숨은 섬  
바라볼 건 일출이요
들리는 건 파도와 괭이갈매기의 울음소리
깎아지른 암벽은 하늘을 치솟아 외로움을 내 품는데
그 틈새로 자주 빛 참나리 향을 품고 있다.
넌 대륙의 마지막 정절
일찍이 너같이 홀로 있다고 이름을 붙인 
당돌한 섬은 없었다.
넌 우리 의지의 결정
목숨 걸고 절벽에서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친 헌화가(獻花歌)의 
옛 신선, 예 살아있구나. 
이런 곳에 홀로 피는 꽃이나
그 꽃을 꺾어 바치는 마음이나
이런 곳에 홀로 박힌 몸뚱어리나  
모두가 꽃이다. 
동해 제일 끝에서 육중한 몸을 흔들어
맨 먼저 잠을 깨어 달려 나와 
일출을 온몸으로 받아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암청색 네 몸뚱어리, 넌
우리의 수호신.
동해 용왕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산골(散骨)한
문무대왕이 여기 나와 있구나. 
홀로 있지만 그 속에 두 세계 감춘
동 섬, 서 섬, 암 바위, 수 바위 
그대로 석화산(石花山)이로다.
육지로 육지로 달려와
바다와 하늘을 하나로 품는 네 모습 장하다. 
해동성인(海東聖人)이로다.
                                 

영토 표석

 

동도(東島)

 

서도(西島)

 

파도가 밀려와 해안가 자갈밭을 넘실 거린다

 

독도의 해넘이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독도 경비 대원들

 

태극기 휘날리는 갑판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해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