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성인봉을 오르다

2012. 10. 28. 10:55도보여행기/울릉도 독도를 찾아서

(2)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성인봉을 오르다

      2012. 10. 17  화요  흐린 후 비

 

우리나라 동해의 끄트머리에는 두 개의 섬이 있는데 울릉도와 독도이다. 울릉도는 신생대 제3기와 제4기에 있었던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鐘狀火山의 정상부로, 조면암. 안산암. 현무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두화산맥이 남동쪽으로 길게 뻗어 동해상에 울릉도를 솟게 하고, 그 여세를 몰아 동남 해상에 독도를 비롯한 많은 화산을 분출시켰다. 울릉도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5각 형태로 형성되어 있다. 섬의 중앙부에는 최고봉인 성인봉(986.7m)이 있고, 그 북쪽 비탈면에는 칼데라화구가 무너져내려 생긴 나리분지·알봉분지가 있다. 나리분지 안에는 중앙 화구구(火口丘)인 알봉(卵峰·538m)이 있다. 중앙에 있는 알봉을 중앙 화구구로 볼 때 이중화산(二重火山)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화산체이므로 평지는 거의 없고 해안은 대부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초의 일정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여행지가 울릉도. 독도 여행인가 보다.

울릉도의 바다 날씨가 항상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일정을 조정할 수밖에 없다.

이른 새벽 눈을 뜨니 부두에서 퉁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따끈한 오징어 내장탕으로 조반을 든 후 성인봉 등반길에 오른다.

아내와 같이 하는 성인봉 등반이기에 가장 힘들지 않은 코스를 택하기로 한다.

"KBS 중계소 코스는 비교적 비탈길이 없고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로가 가장 완만해서 처음 성인봉을 오르는 사람에게는 가장 적격이다."라고 

이야기 한 성인봉을 천 번 넘게 오른 안내등반가 최대성 씨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걸어서 만 리 길을 가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있듯이, 천 번 이상 성인봉을 올라본 자가 이야기한 것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 

 

울릉도 중앙부의 성인봉(聖人峰)은,

산의 모양새가 성스럽게 생겼다하여 성인봉이라 불렀다 한다.
또, 아주 오랜 옛날 나물을 뜯던 한 소녀가 신령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성인봉은 연평균 300일 이상 안개에 싸여 있어 그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울릉도 4륜구동 택시를 타고 KBS 중계소를 지나  민가가 있는 삼거리 산행 들머리에서 하차한다.

  

삼거리 산행 들머리에 있는 민가

 

좁은 산길 둔덕에는 주황색 열매 꼬투리를 가득단 꽃대가 바람이 흔들거리고 있다.

둔덕 너머 산기슭 경사진 산채밭에는 경작용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울릉도의 밭들은 대개가 경사가 25도 이상이 되어 모노레일에 의지해 농사를 짓고 있다.

도동항과 망향봉 너머 수평선 위로 붉은빛이 물들고 있다.                                                                      

 

도동항과 시가지 망향봉 너머 수평선 위가 붉게 물들고 있다.

많은 산행인들에게 추월을 당하며 지그재그 산길을 걸어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나 능선 위에 올라선다.

교각에 당도하니 가는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나무 숲은 단풍이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빼욱히 도열한 너도밤나무 아래에는 고사리가 푸른 융단처럼 깔려 있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팔각정에 도착한다.

팔각정에 올라 우의를 벗고 배낭을 풀고 비를 피한다.

저동항과 관모봉이 안개에 뒤덮혀 희미하게 보인다.

팔각정 안은 내리는 비를 피하는  등산객들로 가득 차인다.

안개에 뒤덮혀 저동항이 희미하게 보인다

 

계속  머물 수 없어 비를 맞으며 산을 오른다.  안평 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바람등대에 도착한다.

자욱한 안개가 낀 골을 타고 쉬임없이 바람이 불어온다.

가늘어졌다 굵어졌다 하는 비를 맞으며 성인봉에 도착하니 하얀 안개에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잡목과 마가목 섬조릿대로 둘러싸인 성인봉 정상

울퉁불퉁한 바위 군 위에 "聖人峰" 각자가 되어있는 표지석이 하얀 안갯속에 비를 맞으며 서 있다.

 

구름 속에 내가 떠 있다

김 길 남

 

구름 속에 내가 떠 있다
칼날처럼 깎인 성인봉 능선 상에
바람 소리 벗 삼아
살아가는 나무들은
모두가 낯 설은 표적뿐인데

 

우유 빛 구름들은

사뿐 가쁜 춤을 추고
멀리 하늘과 맞닿은 바다는
무슨 빛을 발하는지
분간 키 어렵구나

 

뽀얀 구름
아니 안개인지도 몰라
그들은 내 시야를 가리고
바람은 내 눈에 표적을 남기면서
젊음의 생동처럼 바빠도 달아나고

 

꿈 결 그려보던 울릉도는
오직 구름과 바람과
하늘과 맞닿은 바다 빛은
정녕 푸른 건가 하얀 건가
심수아 삼숭 하여라

성인봉 표지석

 

비에 젖은 무성한 섬조릿대 길을 헤치며 정상에서 북쪽으로 20m 떨어진 전망대로 향한다.

섬조릿대와 마가목이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다.

하얀 안갯속에 깃꼴겹잎을 펼치고 있는 마가목이 신비롭게 보인다.

붉게 단풍이 든 잎이 인상적이다.

 

가는 비는 여전히 내린다.

전망대에 서서 망연히 하얀 안개로 뒤덮인 허공을 바라본다.

"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如火焚枯草 滅盡無有餘)..." 하고 중얼거린다.

"안개여! 마른풀을 불태우듯 흔적조차 없어지이다." 염원해 본다.

 

강한 바람으로 오슬오슬 추위가 느껴진다.

우비에 빗물이 스며들었다며 아내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배낭 속에 넣어 두었던 두꺼운 옷을 꺼내 덧입히고 보온병에 담아 온 뜨거운 물로 컵라면을 조리하여 같이 먹는다,

뜨거운 물을 마시게 하니 추위가 가신 듯 화색이 돈다.

산에서 추위를 녹이는 데는 뜨거운 물이 가장 좋은 듯하다.

 

염원이 깊으면 이루어진다 하였던가

문득 앞을 바라보니 강한 바람이 안개를 몰아가니 송곳산이 불현듯 얼굴을 내민다.

아!  송곳산!  탄성이 절로 난다.

파노라마처럼 산 능선을 보여주곤 순식간에 다시 안갯속에 파묻힌다.

이러기를 서너 차례 반복한 후 안개 장막은 더 이상 시야를 열어주지 않는다.

안개는 영원히 침묵 속에 든 듯하다.

섬조릿대와 마가목이 빼욱한 성인봉 전망대

 

안개 속에 깃꼴겹잎을 펼치고 있는 마가목

 

마가목 깃꼴겹잎에 붉게 든 단풍이 인상적이다.

 

강한 바람이 안개를 몰아가니 송곳산이 불현듯 얼굴을 내민다.

 

안개가 흩어지니 언뜻언뜻 송곳산 산 능선이 보인다

 

  

 

성인봉을 중심으로 미륵산, 형제봉 그리고 말잔등 나리령으로 이어지는 해발 600m 이상의 산등성이를 따라 형성된 원시림은 1967년 7월에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되었다. 성인봉 원시림에 자생하는 식물은 약 750여 종이 있다. 너도밤나무, 우산고로쇠나무, 섬피나무, 섬단풍나무, 섬벚나무, 두메오리나무, 섬조릿대, 섬말나리 등의 울릉도 툭 산식물과 산나물들이 들어차  있으며, 갖가지 활엽수로 울창한 원시림의 바닥에는 공작고사리, 일색고사리 등이 가득 차 있다.

  

나리분지로 가기 위해 계단 길로 내려선다.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자욱한 안갯속에 구불구불한 나무들이 몽환적으로 보인다.

원시의 비경인 듯 신비롭게 보인다.

 

 

 

 

첫 번째 계단이 끝나기 직전 공터에 "성인수" 샘터가 있다.

높은 석축 아래 불쑥 내민 용머리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돌확에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성스러운 산 성인봉아래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받아 성인봉을 담아 마신다.

울릉도는 화산이 분출한 화산섬임에도 다른 섬과 달리 샘터가 많고 물이 좋다.

오가던 등산객들이 지나치다 우리를 보고 다시 돌아와 샘물을 받아 마신다.

 

성인수

 

완만을 능선길을 따라 걷는다.

단풍이 물들어 가는 나무 숲

아름드리 고목이 이따금 눈에 보인다.

비는 서서히 그쳐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무 숲은 안갯속에 파묻혀 있다.

 

 

 

 

 

 

비 맞은 낙엽을 밟으며 능선길을 걷는다.

나뭇잎 하나 머리 위에서 빙글 원을 그리며 발 앞에 툭! 떨어진다.

성인봉 원시림에서 보내온 가을의 전령사다.

나뭇잎은 잎맥 따라 노랗게 물들어 있다.

  

"일엽지추(一葉知秋)"

나뭇잎 하나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오는 것을 안다 하였다.

"산승불해수갑자 일엽락지천하추(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天下秋)"

산에 사는 스님은 세월을 헤아리지 않아도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으로 천하가 가을인 것을 안다고 했다.

이곳 나리분지가 머지않아 알봉홍엽(卵峰紅葉), 나리금수(羅里錦繡)로 변할 것이다.

"一葉知秋" 나뭇잎

 

 

단풍이 들고 있는 원시림

 

보호목 울타리를 두른 500년 된 섬피나무 고목이 보인다.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또 버려 몸을 허공 같이 비우고 있다.

텅 빈 마음과 허공을 머금고 있는 고목

500년 간 수행한 수행자의 고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千思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천 갈래만 갈래 온갖 생각들도

붉게 타는 화로에 떨어진 한 점 눈이로다.

진흙으로 빚은 소가 물 위를 걸으니

대지와 허공이 다 찢어진다.

 

청허 서산대사의 임종게이다.

'삶과 죽음에 차별을 두니 번민하고 갈등한다.

삶과 죽음의 차별에서 벗어날 때 붉게 타오르는 화롯불 속에 눈 한 점이 떨어져 흔적 없이 사라지듯 모든 생각들이 증발하여 소멸된다.

진흙으로 빚은 소가 물속을 걷는다면 물에 씻겨 궁극에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물과 흙의 경계가 없어지고 모든 것이 하나로 결합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란 시공간도 대지와 허공이 따로 존재하지 않게 된다.

차별을 버리고 합일의 세계로 가는 짧은 순간이 바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인 것이다.'

 

버리고 또 버려 몸을 허공같이 비우고 있는 섬피나무

 

500년 수행한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목

 

원시림 속의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걷다 보니 어언 '뺍째이등'을 지나 알봉전망대에 도착한다.

데크로 만든 전망대에는 긴 의자들이 놓여 있다.

배낭을 풀고 오랜만에 휴식을 취한다.  앞을 바라보니 먹구름 속에 하늘이 열려 있다.

미륵봉 형제봉은 안개에 파묻혀 있고 송곳산 능선, 알봉과 알봉분지, 나리분지가 바라보인다.

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이달 하순경이면 아마도 알봉홍엽(卵峰紅葉 : 알봉의 붉게 타는 단풍), 나리금수(羅里錦繡 : 나리동의 비단 단풍)를 완상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인봉 북쪽에는 동서 1.5㎞, 남북 2㎞의 삼각형의 칼데라(caldera)가 있다. (*칼데라=분화구) 칼데라의 중앙에는 북서에서 남동방향의 높은 곳이 있어서 칼데라를 둘로 구분한다. 북동쪽의 나리동이 있는 칼데라 저(caldera底, 349m)는 남서쪽의 알봉[卵峯] 마을이 있는 저지(433m)에 비하여 100m가 낮다. 이는 칼데라의 형성 시에 동부의 단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칼데라 전체를 나리분지(羅里盆地)라고 부르며 울릉도에서 평지가 가장 넓은 곳이다. 칼데라의 중앙에 있는 높은 곳의 북단에는 응회암(凝灰岩)과 조면암의 경석(輕石)으로 된 알봉(538m)이 있다. 알봉의 위치는 칼데라의 북쪽 기슭 가까이에 있으며 중앙화구구(中央火口丘)로 볼 수 있다. 칼데라는 북쪽으로 열려 있고 서·남·동쪽은 높은 암벽으로 포위되어 있는데 이것은 외륜산에 속한다. 중앙에 있는 알봉을 중앙화구구로 볼 때 이중화산(二重火山)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 나리분지는 전국 제일의 다설지역이다. 성인봉을 중심으로 한 곳에는 식물만도 300여 종이 분포하고 있고, 이 가운데 특종식물이 40여 종이나 된다. 섬피나무·너도밤나무·섬고로쇠나무 등 희귀 수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알봉전망대에서 머물며 안개가 걷히기를 오랫동안 기다리다 계단을 밟고 내려선다.

가파른 계단의 연속이다.

계단이 끝나고 계곡을 건너 넓은 평평한 길로 접어든다.

신령수에 도착한다.

가지런히 쌓은 돌틈으로 샘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신령수

 

알봉분지의 투막집에 도착하니 비가 그친다.

나리분지는 미륵봉 형제봉 나리봉 말잔등 및 성인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성인봉은 유일하게 이곳 투막집 근처에서 조망할 수 있는데 안개에 파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 받으니, "돌핀해운인데 지금 울릉도에 계시느냐?" 묻는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10월 18일 독도행 '돌핀호'배편이 풍랑으로 운행이 결항되어 신용카드 결제분을 환불 처리해 드리겠다고 한다.

"그러면 언제 독도행 배가 출항하느냐?" 물으니 10월 19일 출항을 하는데, 좌석은 이미 마감되었다고 한다.

"먼저 예약한 사람에게 다음 선편 예약에 우선권을 주게 되어 있지 않느냐?"  이의 제기를 하니, 한참 상의하는 듯하더니 19일 오후 2시 30분에 출항하는

'독도사랑호' 배편으로 예약 처리해 주겠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포기했던 독도행이 이루어지게 되니 마음이 밝아지며 활기가 넘쳐 오른다.

옆에 있던 아내가  "독도행이 결정되니 갑자기 딴 사람이 된 듯 생기가 넘치네" 라며 같이 즐거워한다.

투막집

 

기운이 솟구치고 걸음걸이가 가벼워진다

숲 길을 조금 걸어가니 왼쪽 길가에 '울릉국화와 섬백리향 군락' 표지판이 보인다.

안쪽 길로 들어가니 보호망 속에 구절초와 흡사한 울릉국화가 만개해 있다. 

바람이 불 적마다 하얀 물결을 일으키며 너울거린다.

은은한 향이 코 끝에 묻어난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쇄락해진다.

 

한 때 울릉국화는 울릉도 전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나 섬바디를 목초로 대대적으로 파종한 뒤부터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섬백리향 역시 그 향기가 좋아 무분별하게 사람들이 채취하여 울릉국화와 같은 처지가 되어, 지금은 나란히 같은 보호망 안에서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두 종 모두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종이다.

 

울릉국화(鬱陵菊花)

이 식물은 울릉도 나리분지에서 자라고 있는 특산식물로 섬백리향과 더불어 천연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40㎝ 정도로 자라며 지하경이 옆으로 뻗으면서 퍼져 가고 있다. 잎은 구절초처럼 가늘게 갈라지고 두꺼우며 털이 없고 윤채가 있다. 꽃은 희고 총포에 털이 없다. 꽃은 9-10월에 피며, 열매는 11월에 익는다. 염색체의 수는 구절초와 같은 수인 n=36이며 구절초와의 구별이 어렵다. 섬에서 자라온 탓인지 잎에 윤채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섬백리향

꿀풀과의 낙엽반  관목이다. 키가 10cm도 안되고 꽃의 크기도 1cm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이 식물은 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무이다.

땅바닥을 기듯이 옆으로 퍼지면서 많은 가지를 치는 탓에 풀처럼 보일 뿐이다. 산림청에서 지정한 '희귀 멸종위기식물'이자 울릉도 특산식물이다.

6-7월 경에 붉은빛을 띤 보라색의 작은 꽃이 피는데, 꽃향기가 매우 진해서 백 리까지 퍼져나간다고 한다. 백리향이라는 이름도 거기서 비롯되었고, 낮보다는 밤에 더 향기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람이 불적마다 하얀 물결을 일으키며 너울거리는 울릉국화 울릉국화 주변에 납작하게 퍼져 있는 식물이 섬백리향이다.

 

  

울릉국화

 

물기를 머금은 고즈넉한 너도밤나무 숲길을 걷는다.

푸른 활엽수가 울창한 숲에는 섬쑥부쟁이(부지깽이나물) 흰 꽃과 섬바디 열매가 지천으로 보인다.

붉은 열매 송이가 푸른 숲 속에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천남성! 하고 이름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새발 모양의 잎 중앙에 흰색 무늬가 있다.

어- 천남성과 잎이 다르네. 

제주도에 자라는 섬남성이다.

이름을 정정하여 다시 부르니 더욱 다정히 다가온다.

너도밤나무 숲길

 

섬쑥부쟁이(부지갱이나물)

 

섬남성 : 새발 모양의 잎 중앙에는 흰 무늬가 있다.

 

성인봉 정상과 알봉전망대에서 오래 머문 관계로 8시간이 걸려  나리동 스 종점에 도착한다.

시간을 보니 15시 15분이다.

천부로 나가는 버스는  17:00에 있다.

시간이 넉넉하여 '늘 푸른 산장'에 배낭을 풀고,  아내에게 젖은 옷을 갈아입게 하고 행장을 정리한다.

산채비빔밥을 시켜 늦은 점심을 든다.

17;00시 버스에 탑승한다.  차는 가파른 산길을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오른다.

나리전망대를 지나니 아찔한 내리막 급경사 급커브 길인데도 능숙하게 운전한다.

울릉도 운전기사의 운전 솜씨는 인정해 주어야 한다.

 

약 20분 걸려 해안일주도로에 도착한다.

버스가 왼쪽 천부항 쪽으로 급커브를 틀어 돌아 나가니 건설 중에 있는 수중전망대가 보인다.

멀리 송곳산과 공암 사이 바다에 붉은 해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여기서 내려서 주세요"하고 다급히 소리치니, " 기사가 여기서 내리시게요? "  '예!" 하고 대답한다.

버스가 정차하자 아내와 같이 하차하여  왕해국이 가득 핀 해상공원에 들어선다.

송곳산과 공암 사이 수평선 바다 위에 둥근 해가 찬란한 황금빛을 뿌리며 황홀히 빛나고 있다.

 

성인봉 정상에서의 아쉬운 조망을 보상해 주기 위해, 천부항 앞바다는 진즉부터 황홀한 해넘이를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햇덩이는 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황홀한 황금빛을 뿌리며 서서히 바다로 떨어지고 있다.

밀려오는 파도 위로 붉은빛이 너울 거린다.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 부서지며 흰 포말을 일으킨다.

해가 바다에 떨어져 사라진 후 후광이 수평선 위를 붉게 물들인다.

철썩거리는 해조음이 들리는 까만 바다를 바라본다.

하루를 마감하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방점을 찍는다.

 

낙조 (落照)

       엄 원 용

 

오호                         
저기                         
붉은 얼굴을 보라.             

 

서쪽 하늘을                 
곱게 장식하는               
사랑의 몸짓           
황홀한 불놀이, 불놀이야

 

불길 따라 시간이 타고 있다.
어두워가는 세상도 타고
내 마음도 탄다.

 

온 세상을
마지막으로
아름답게 장식하는 꽃
신비의 꽃밭이다.

 

아름다워라.
이제 제 할 일 다 하고
때가 되매
황홀한 몸짓 조용히 거두며
말없이 명상의 나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