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3. 10:09ㆍ좋은 글/좋은 글
나는 그동안 누구를 찾아다녔던가?
지눌을 찾아 다녔던가? 송광사를 찾아다녔던가?
송광사 승보전에서 다시 [심우도]는 다시 한번, 나로 하여금 '자기를 찾으라'라고 한다.
지눌 스님을 찾아서
- 송광사의 심우도 이해
산에 가면 절이 있다. 절에 가면 부처님이 계신다. 그래서 '절은 산의 마음이고 산은 절의 뜰이다.' 그러나 부처님만을 뵈러 절에 가진 않는다. 나는 절에 가면 전각의 좌우후면을 돌아 벽화를 본다. 벽화 속에서 부처를 만나고 화상을 만나고 고승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림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 교훈이 있다. 불교 벽화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중 많은 사찰이 심우도의 벽화를 그리고 있다. 그동안 한국사상의 순례를 나서면서 돌아본 의성의 고운사에 있었고 포항의 오어사에도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이제 이곳 대승선종 승보종찰인 송광사의 승보 전에도 심우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
'심우도(尋牛圖)'는 선(禪)의 수행 단계를 소와 동자에 비유하여 도해한 그림으로서, 자기의 참마음을 찾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단계로 나누어 그렸다 하여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보명(普明)의 심우도와 확암(廓庵)의 심우도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데, 대부분 확암의 심우도가 많다. 10단계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하는, 김영환 <<우리 사찰의 벽화이야기>>에서 頌과 해설을 참조하였습니다.>
① 소를 찾아 나선다.(尋牛)
② 소 발자국을 발견한다.(見跡)
③ 소를 발견한다.(見牛)
④ 소를 잡는다.(得牛)
⑤ 소를 길들인다.(牧牛)
⑥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騎牛歸家)
⑦ 이제 소는 잊어버리고 안심한다.(忘牛存人)
⑧ 사람도 소도 모두 본래 공(空)임을 깨닫는다.(人牛具忘).
⑨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返本還源)
⑩ 중생 구제를 위해 저자거리로 나선다(入廛垂手) 10단계의 수행단계를 선시(禪詩)를 통하여 이해해 본다.
▣ 一. 尋牛(심우)
송(頌)
망망발초거추심 (茫茫撥草去追尋)
수활산요로갱심 (水闊山遙路更深)
역진신피무처멱 (力盡神疲無處覓)
단문풍수만선음 (但聞楓樹晩蟬吟)
망망한 수풀을 헤치고 소의 자취를 찾노니
강물은 넓고 산은 험하여 길은 더욱 깊기만 하다.
힘이 다하고 기력이 떨어져 지쳐도 찾을 길이 없는데
다만 숲 속 나뭇가지엔 매미 우는 소리만 들리네.
심우(尋牛)는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속을 헤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처음 수행을 하려고 발심(發心)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禪)이 무엇인지 참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에 임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바로 자기를 찾는 결심의 단계를 말한다.
▣ 二. 見跡(견적)
송(頌)
수변임하적편다 (水邊林下跡偏多)
방초리피견야마 (芳草離披見也마) (마 - 잘, 어찌, 그런가)
종시심산갱심처 (縱是深山更深處)
요천비공즘장타 (遼天鼻孔즘藏他) (즘 - 어찌)
물과 나무 아래 수많은 발자국
풀이 우거졌으나 이를 헤치고 찾아본다.
비록 이곳이 산이 깊고 골짜기가 깊다 해도
요천(遼天)의 비공(鼻孔)이 어찌 그것을 감출 수 있겠는가
견적(見跡)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을 묘사한 것으로서, 참마음과 자기를 찾으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것으로 상징해서 표현한 그림이다.
▣ 三. 見牛(견우)
송(頌)
황앵지상일성성 (黃鶯枝上一聲聲)
일난풍화안류청 (日暖風和岸柳靑)
지차갱무회피처 (只此更無回避處)
삼삼두각화난성 (森森頭角畵難成)
나뭇가지 위에 지저귀는 금빛 꾀꼬리
따뜻한 날 화창한 바람에 언덕 위 버들가지 푸르네.
다만 이것이니 어찌 다시 회피할 것인가?
삼삼한 두각 그림으로도 그릴 수 없노라.
견우(見牛)는 동자가 멀리 있는 소를 발견한 것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는 오랜 노력과 공부 끝에 자기를 찾고 본성을 깨달음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음을 상징하고 있다.
▣ 四. 得牛(득우)
송(頌)
갈진정신획득거 (渴盡精神獲得渠)
심강역장졸난제 (沈强力壯卒難除)
시유재도고원상 (時有재到高原上) (재 - 겨우, 비로소/실사변)
우입연운심처거 (又入煙雲深處居)
정신을 가다듬어 소를 얻었지만
사납고 힘이 세어 다루기 어렵도다.
어느 때는 높은 산 위에 이르고
혹은 깊은 구름 속에 숨으려 한다.
득우(得牛)는 동자가 소를 붙잡아서 막 고삐를 낀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경지를 선종(禪宗)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 하는데, 마치 땅 속에서 아직 제련(製鍊)되지 않는 금광석을 막 찾아낸 것과 상태라고 한다. 이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색으로 표현하는데, 아직 탐진치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거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 검게 표현한다. 아직 삼독에 물들어서 거칠고 일순간의 탐욕을 다스릴 길이 없다. 더욱 정진하고 공부에 힘써야 하는 상태이다.
▣ 五. 牧牛(목우)
송(頌)
편색시시불리신 (鞭索時時不離身)
공이종보입애진 (恐伊縱步入埃塵)
상장목득순화야 (相將牧得純和也)
기쇄무구자축인 (羈鎖無拘自逐人)
채찍과 고삐를 쉼 없이 사용하여 곁에서 여의지 말라
그대가 한 걸음 한 걸음 애진(埃塵)으로 들어감이 두렵다
그러나 끌어내어 길들이고 순화되어
채찍과 고삐에 구애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사람 따르네
목우(牧牛)는 거친 소를 길들이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때의 소의 모습은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삼독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서, 자신을 다스리고 자기 마음을 유순하게 길들이는 단계다. 선(禪)에서는 이 목우의 단계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그래서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자신의 호를 목우자(牧牛子)라 하였다. 깨달음이란 외부의 경(境)에 의해서 오직 자신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소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잡아서 늦추지 말고 머뭇거리는 생각이 싹트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곧 부처이나 아직 이 마음은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 六. 騎牛歸家(기우귀가)
송(頌)
기우이려욕환가 (騎牛이麗欲還家) (이 - 비스듬할 이 / 책받침+베풀 시)
강적성성송만하(羌笛聲聲送晩霞)
일박일가무한의 (一拍一歌無限意)
지음하필고진아 (知音何必鼓唇牙)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네
강적의 피리 소리 저녁노을 속에 울리고 있네
한 박자 한 곡조마다 무한한 뜻이 담겨 있으니
그 지음 어찌 헛된 말하리
기우귀가(騎牛歸家)는 동자가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며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의 소는 완전히 흰색으로서 동자와 일체가 되어서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때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가히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본성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하고 있다. 이제 내가 내 마음을 타고 본래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 七. 忘牛存人(망우존인)
송(頌)
기우이득도가산 (騎牛已得到家山)
우야공혜인야한 (牛也空兮人也閑)
홍일삼간유작몽 (紅日三竿猶作夢)
편승공돈초당간 (鞭繩空頓草堂間)
소를 타고 본향으로 돌아오니
소는 간 곳 없고 사람은 한가롭다
해가 석 자나 떴는데도 늦잠을 자니 오히려 꿈이려니
소용없는 고삐와 채찍은 초당간에 던져두노라
망우존인(忘牛存人)은 집에 돌아와서는 그동안 애쓰며 찾던 소는 잊어버리고 자기만 남아 있다는 내용이다. 본래의 자기 마음을 찾아 이제 나와 하나가 되었으니 굳이 본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八. 人牛具忘(인우구망)
송(頌)
편삭인우진속공 (鞭索人牛盡屬空)
벽천요활신난통 (碧天遼闊信難通)
홍로염상쟁용설 (紅爐焰上爭容雪)
도차방능합조종 (到此方能合祖宗)
채찍과 소와 사람이 모두 공하니
맑고 푸른 하늘 먹고 높아 소식 전하기 어려워라
끓는 솥에 어찌 흰 눈이 남아 있겠는가
이에 이르러 비로소 조종(祖宗)과 하나가 되도다
인우구망(人牛具忘)은 소를 잊은 다음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는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서 텅 빈 원상(圓象)만을 그리게 된다. 객관적인 소를 잊었으면 이번에는 주관적인 자신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본성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를 모두 비웠으니 자타가 다르지 않고 내외가 다르지 않다. 전부가 오직 공(空)이다.
▣ 九. 返本還源(반본환원)
송(頌)
만본환원이비공 (返本還源已費功)
쟁여직하약맹롱 (爭如直下若盲聾)
암중불견암전물 (庵中不見庵前物)
수자망망화자홍 (水自茫茫花自紅)
본향으로 돌아옴도 이미 헛된 공이니
모두 장님과 귀머거리와 같이 되어
암자에 앉아 앞의 것을 보지 않아도
물은 저절로 잔잔하고 꽃은 스스로 붉다
반본환원(返本還源)은 이제 주객이 텅 빈 원상 속에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비침을 묘사한다.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라.'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모두 하나같이 사랑한다.
▣ 十. 入廛垂手(입전수수)
송(頌)
노흉선족입전래 (露胸跣足入廛來)
말토도회소만시 (抹土塗灰笑滿시) (시 - 뺨(思頁) / 頁부 + 생각 思)
불용신선진비결 (不用神仙眞秘訣)
직교고목방화개 (直敎枯木放花開)
가슴을 헤치고 맨발로 거리에 서니
흙을 바르고 재투성이지만 얼굴 가득한 웃음
신선의 비결 쓰지 않고
바로 가르쳐 마른나무에 꽃이 피게 한다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은 포대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의 제도에 있음을 상징한 것이다. 표주박 차고 거리에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집마다 다니며 스스로 부처가 되게 하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불국(佛國)을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심우도는 볼 때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이는 그림이다. 때론 소가 본성으로 나타나고 때론 소가 실존으로 나타난다. 아직도 '소와 동자의 관계가 나와 무슨 소용 있는가' 묻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소를 잡지 못했다. 내 마음을 나는 아직도 모른다. 이틀 동안 나는 다산을 찾아다녔던가? 지눌을 찾아 다녔던가? 송광사를 찾아다녔던가? 내 마음을 찾아 다녔던가? 대체 찾은 것은 그 무엇인가? 송광사에서 얻은 시(詩)를 되새김하며 차를 돌려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종일 봄을 찾아도
봄은 안 보여
짚신이 다 닳도록
온산을 헤매었네
봄 찾는 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니
울타리의 매화나무에
꽃 한 송이 피어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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