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날

2010. 2. 4. 13:57시 모음/시

       

 

                    

 

눈 내리는 날

원성 스님

눈이 내립니다.
동 튼 산하에 하얀 융단을 드리우고
콧날 시큰거리는 냉한 기운을 머금은 어여쁜 눈꽃이
고목 잔가지 올라앉은 모습이 손님을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간밤에 달 언저리에 실낱 같은 달무리지더니
별이 흐르는 서남쪽으로 냉기가 불어치더니
오늘은 꿈결 같은 눈이 나를 반깁니다.

눈이 옵니다.
가슴 벌려 맞이하려 하여도
손 닿으면 닿자마자 사라져 버리는
따스한 어머니 속삭임 같은 애틋한 눈이 내립니다.

이런 날이면 빈 마음에 앙금이 맺힐 듯
무어라 이름도 없는 것이 와서는 눈가에 머뭅니다.
분명 눈이 녹아 버렸기 때문일 거야
얼른 두 눈을 훔쳐 버립니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내 볼 위에는 눈보다 더 서글픈 아련함이 녹아 내립니다.
지상으로 떨어지는 하얀 눈발이 천상을 그리워하듯
깊은 산 속 홀로 하늘을 쳐다보는 심정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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