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한강 소묘(素描)
2023. 10. 28. 11:17ㆍ사진/풍경
가을 소묘
김 동 현
가을, 삽상(颯爽)한 바람.
하늘은 그대로 강으로 더불어 정사하여 푸른 피를 마구 흘려놓는데
이 땅의 어딘들 시심(詩心)을 돋우지 않는 곳이 있으랴
허옇게 팬 갈대꽃이 바람품으로만 헤집어 드는 것은
누구를 향한 한없는 그리움과 사념의 몸짓인데,
푸른 산빛은 한 귀퉁이씩 그 빛을 바래만 가고…….
길섶엔 점점이 모자이크해 박은 코스모스
신파의 프리마 돈나처럼 수줍게 흰빛, 자짓빛, 선홍으로 꾸며
바람을 안고 가볍게 궁글어,
머슴애 뛰는 가슴을 마구 헤집어 놓고…….
바람이 인다.
갈잎은 굴러 사내의 긴 그림자를 앞서서 끈다.
바람통에 제 영혼을, 온통 하늘이 하얗도록 날리고는
억새는 눈부신 죽음으로 찬란히 눕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