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모습을 드러낸 저자도(楮子島)

2023. 10. 27. 10:52사진/서울 풍경

 

□한강의 사라진 섬 저자도(楮子島)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과 금호동 4가 남쪽 한강 가운데 있던 섬으로 닥나무가 많아 저자도(楮子島)라고 불렸으며 속칭'옥수동섬'이라고도 하였다. 양주에서 발원한 중랑천이 청계천과 합류한 후 다시 한강과 만나는 지점을 '두루물이 합치는 곳'이라 해서 두물개 또는 두뭇개라하고 한자로 두모포(豆毛浦)라 썼는데, 저자도는 바로 이 두 물에 쓸려온 토사가 서로 만나 쌓여서 이루어진 삼각주이다. 두 물이 부딪히는 곳에 섬이 있어 물살이 유유하며 섬 안에는 구릉과 연못, 모래밭이 펼쳐져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 앞을 흐르는 한강만을 따로 경강(京江)이라 불렀는데, 두모포 일대는 경강의 동쪽에 있어서 동호(東湖)라 했다. 두모포와 그 서편의 입석포(立石浦), 그리고 저자도는 동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대표하는 자연물이었다. 조선 세조 때 권신 한명회(韓明澮)가 저자도 남쪽 대안(對岸)에 압구정(鴨鷗亭)을 지은 것도 그곳에서 보는 한강 풍광이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족과 세도가들이 저자도와 그 남북 대안에 여러 누정(樓亭)과 별장을 지었으며, 시인 묵객들도 이 섬을 소재로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렸다. 조선 성종 17년(1486)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저자도는 도성 동쪽 25리 삼전도(三田渡) 서쪽에 있는데, 고려 때 한종유(韓宗愈)가 여기에 별장을 두었다. 아조(我朝)에는 세종대왕이 섬을 정의공주(貞懿公主)에게 하사하였으며, 공주가 작은 아들 안빈세(安貧世)에게 물려주었다. 이에 정자를 수리하고 대대로 전하여 소유하였다"저자도는 조선시대의 행정 구역 상으로는 경기도 광주군에 속했는데, 10여 가구의 농가가 있었다. 조선말에는 철종의 부마 박영효(朴泳孝)에게 하사되었으며 1914년 일제가 경성부(京城府)의 행정 구역을 개정할 때에 경기도 고양군으로 이속(移屬)되었다. 1925년 을축 대홍수로 상당 부분이 유실되었고,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될 때 옥수정(玉水町)과 금호정(錦湖町)으로 나뉘었다. 이 당시 섬의 전체 면적은 36만 평이었다. 1970년 정부로부터 공유수면 매립 허가를 받은 현대건설은 저자도의 흙과 모래를 퍼내어 압구정동에 택지를 조성하는 데에 사용했다. 이로써 저자도는 한강 수면 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토사가 다시 쌓이면서, 1970년대 한강개발로 한강 수면 위에서 사라졌던 옛 저자도(楮子島)가 50여 년 만에 습지 형태의 모습으로 일부가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뚝섬에서 바라보이는 옥수동 강변 쪽에 자연 복원중에 있는 저자도 모습

 

습지 형태로 자연 복원되고 있는 옛 저자도(楮子島)에 철새들이 모여들고 있다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는 토사가 쌓여 2개의 작은 섬들이 형성되어 있으며, 괭이갈매기, 쇠백로, 왜가리, 논병아리, 청둥오리, 황조롱이 등이 서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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