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8. 12:04ㆍ문화유적 답사기/나도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구름도 누워가는 와운(臥雲) 마을 천년송
2015. 1. 9
나무
류시화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집수리 이사 등으로 지난해 발을 묶었던 일들이 마무리되고 갑오년 새해를 맞아 처음으로 배낭을 꾸린다.
남원행 버스 차창 밖으로는 겨울의 텅 빈 들녘이 쉴 새 없이 다가왔다가는 사라진다.
잎이 떨어진 나목(裸木)들이 푸른 하늘에 잔 가지를 활짝 펼치고 서 있다.
매월당 김시습이 지은 한문 소설 '금오신화'에 실려 있는 '만복사저포기'의 무대였던 남원시 만복사 절터를 찾는다.
덕유산에서 뻗어 내린 교룡산 산줄기인 기린봉 기슭 남원시 왕정동
고려 문종 때(1046-1083) 창건되고, 정유재란 때 선조 30년(1597) 왜구에 의해 불탄 후 복원되지 못하고 폐사지로 남아 있다.
고려 초기 수백 명의 승려가 기거했었다는 거찰 만복사의 옛 영화로움은 볼 수 없고 덩그런 절터에는 석인상이 머리를 돌려 이곳을 찾는 나그네를
맞고 있다.
금당의 초석, 당간지주, 석대좌, 오 층 석탑, 석불입상 등이 남아 빈 절터를 지키고 있다.
절터 앞의 요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만복사저포기'의 줄거리를 더듬어 본다.
"전라도 남원에 사는 총각 양생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의 구석방에서 외로이 지냈다. 배필 없음을 슬퍼하던 중에 부처와 저포놀이를 해 이긴 대가로 아름다운 처녀를 얻었다. 그 처녀는 왜구의 난 중에 부모와 이별하고 정절을 지키며 3년간 궁벽한 곳에 묻혀서 있다가 배필을 구하던 터였다. 둘은 부부관계를 맺고 며칠간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양생은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다 딸의 대상을 치르러 가는 양반집 행차를 만났다. 여기서 양생은 자기와 사랑을 나눈 여자가 3년 전에 죽은 그 집 딸의 혼령임을 알았다. 여자는 양생과 더불어 부모가 베푼 음식을 먹고 나서 저승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며 사라졌다. 양생은 홀로 귀가했다. 어느 날 밤에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은 타국에 가서 남자로 태어났으니 당신도 불도를 닦아 윤회를 벗어나라고 했다. 양생은 여자를 그리워하며 다시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며 지냈다. 그 마친 바를 알 수 없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애달픈 이야기
'만복사저포기'를 읽고 나서 마음이 아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요천 위의 왕정교를 건너 남원전통시장을 거쳐 광한루원 가는 길 추어탕 전문점 '현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광한루원에 들어서니 가지를 둥글게 사방으로 펼친 장대한 팽나무가 우뚝 서 있다.
연못에 반영된 광한루와 나무들을 완상 하며 오작교를 건넌다.
요천 뚝길을 걸어 남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뱀사골행 버스에 오른다.
뱀사골 반선종합터미널에서 내리니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차로를 버리고 자연관찰로로 들어선다.
살얼음 사이를 흐르는 뱀사골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하다.
물소리가 더럽혀진 마음을 청정히 씻어준다.
잎이 떨어진 벌거벗은 나무들이 잔가지를 활짝 펼치고 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어루만지는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산중으로 들수록 공기가 차가워진다.
코끝이 찡해지고 물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무렵 와운골과 뱀사골의 물이 합수되는 곳에 요룡대(搖龍臺) 큰 바위가 보인다.
바위 모양이 마치 용이 승천하려고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치고 있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와운교를 건너 가파른 언덕을 올라 산 굽이를 돌아드니 와운마을이다.
멀리 정취 어린 산 능선이 흐르고 있다.
그 아래로 수형이 아름다운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와운마을
구름 운(雲) 자가 두 번이나 들어 있는 마을
지리산 명선봉에서 영원령을 타고 내려오는 마을
해발 750m
구름도 누워가는 지리산 첩첩산중 와운(臥雲) 마을이다.
이 마을 뒷산에는 임진왜란 전부터 자생해 왔다고 알려진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20m의 간격을 두고 한아시(할아버지) 송과 할머니(할머니) 송이 나란히 서 있다.
이 중에서 크고 오래된 할머니송을 마을 주민들은 '천년송(千年松)'이라 불러오며 당산제를 지내왔다.
수형이 아름답고 건강한 '지리산 천년송'(천연기념물 제424호)은 나이가 약 500 여살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는 20m, 가슴높이의 둘레 4.3m,4.3m,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18m에 달한다.
늘 푸른 기상을 지닌 소나무
천년송(千年松) 아래에 선다.
뿌리를 굳건히 땅에 내리고 뻗어 오른 우람한 둥치는 거북등처럼 껍질이 갈라져 있다.
천년송을 두 팔로 안아보고 손으로 쓰다듬으며 목을 젖혀 위를 올려다보니 붉은 가지가 꿈틀거리는 용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다.
오! 아름다운지고
머문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천년의 솔향이 코 끝에 묻어난다.
눈이 푸르러지고 머리가 명징(明澄)해진다.
소나무
유 자 효
생각이 바르면 말이 바르다.
말이 바르면 행동이 바르다.
매운바람 찬 눈에도 거침이 없다.
늙어 한갓 장작이 될 때까지
잃지 않는 푸르름.
영혼이 젊기에 그는 늘 청춘이다.
오늘도 가슴 설레며
산등성이에 그는 있다.
어제 오후 천년송 아래에 솔향 맡으며 오래 머물다 내려왔다.
와운가든 민박집에서 차려주는 버섯무침, 고추장아찌, 산채나물 등의 저녁 밥상은 어릴 적 시골 밥상의 정취였다.
그리고 정말로 오랜만에먹어보는 동치미의 찡한 맛이 압권이었다.
그날 밤 방에 앉아 퇴계 이황의 한시 '설야송뢰'를 읊기도 하며,
마치 눈 내리는 밤 같이, 천년송의 솔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이, 나래를 펼치며 긴긴밤을 보냈다.
雪夜松
籟
地白風生夜色寒
空山竿籟萬松間
主人定是茅山隱
臥聽欣然獨掩關
눈 쌓인 땅에 바람이 일어 밤기운 차가운데
빈 골짜기 솔숲 사이로 음악가락 들려오네
주인은 분명 모산의 은사로
문 닫고 홀로 누워 즐거이 들으리라
간밤 쩔쩔 끓는 방구들에 몸을 지진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개운하고 가볍다.
와운마을이 지리산 첩첩산중인지라 해가 늦게 뜬다.
민박집 옥상에 올라 바라보니 할머니송과 한아씨송이 나란히 바라보인다.
이른 아침 뒷산에 다시 올라 아름다운 수형의 반송(盤松)인 천년송(千年松) 앞에 선다.
까악 까악...날아올라 멀리 한 바퀴 비상하고 다시 돌아와 가지에 앉는다.
천년송 위로 이지러진 달이 떠 있다.
나무 아래로 솔방울이 여기저기 흩어져 떨어져 있다.
푸른 솔잎 사이로 올망졸망 달린 솔방울이 보인다.
천년송 줄기의 껍질은 밑동으로 내려올수록 갈라진 거북등처럼 보이고 위쪽으로는로는 용비늘처럼 보인다
장엄하게 하늘로 뻗어 오른 소나무,용틀임하듯 사방으로 가지가 뻗어나 있다.
긴 세월 온갖 풍상을 이겨내고 천년의 솔향을 오늘도 뿜어내고 있다.
한아시(할아버지) 송 아래로 가 올려다보니 붉은 가지가 사방으로 질서 정연히 뻗어 있다.
할머니송이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와운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멀리 고리봉과 정령치에 붉은 아침 햇살이 내리고 있다.
와운마을을 나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이른 아침 뱀사골 계곡을 오른다.
산을 항상
푸르게 젊게 해주는 건
산에 항상
솔바람 소리 흐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산이 항상 정다운 건
산 위에 항상
구름 떠가는 푸른 하늘이 있기 때문
아닐까?
내 죽어 묻힐 곳도 바로 거기.
흐르는 구름 보며 솔바람 소리 들으며
아랫녘 마을
대숲바람 왁자지껄 살아가는 내력
짐작해 알며.
내 죽어 묻힐 곳은
구름 일등으로 잘 보이고
솔바람 소리 일등으로 잘 들리는 곳.
거기... 거기.
솔바람 소리 4 - 나 태 주
지리산 천년송 (천연기념물 제424호)
지리산 천년송은 나이가 약 500 여살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는 20m, 가슴높이의 둘레는 4.3m이며,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폭은 18m에 달한다. 지리산의 구름도 누워간다고 이름 붙여진 와운마을의 주민 15인이 이 나무를 보호 관리하고 있어 상태가 좋고 수형 또한 매우 아름답다. 이 나무는 와운마을 뒷산에서 임진왜란 전부터 자생해 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20m의 간격을 두고 한아시(할아버지) 송과 할머니(할머니) 송이 이웃하고 있는데, 이중 더 크고 오래된 할머니송을 마을주민들은「천년송」이라 불러오며 당산제를 지내왔다 한다. 매년 초사흗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당산제의 제관으로 선발된 사람은 섣달 그믐날부터 외부 출입을 삼가고 뒷산 너머의 계곡(일명 산 지쏘)에서 목욕재계 하고 옷 3벌을 마련, 각별히 근신을 한다고 한다. 우산을 펼쳐 놓은 듯한 반송으로 수형이 아름다우며 애틋한 전설을 가진 유서 깊은 노거목으로 희귀성과 민속적 가치가 커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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