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 일월대(日月臺)

2014. 10. 25. 10:49사진/풍경

일월대(日月臺)

□일월대는 한자문화에 살았던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어낸 지리산 천왕봉의 별칭이다. 조선시대 지리산 천왕봉을 오른 수많은 선비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개 천왕봉의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선비들은 몇 날을 걸려서 지리산에 오른 후에는 소위 양반의 지체로 천왕봉에서 풍찬노숙을 서슴없이 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염원인 지리산의 일출과 일몰을 마음껏 감상하고서 기록에 남기기도 했다. 일찌감치 500년도 훨씬 전부터 그들은 광대무변의 지리산에서 해돋이와 달뜨기의 최고 명소는 오직 천왕봉이라고 기록을 통해 인구에 회자를 시키고서는 이름조차 일월대라고 불렀던 것이다. 선비들이 남긴 천왕봉의 일출과 일몰을 찬탄한 기록들은 오랜 세월을 이어져 오면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빌미가 되어주었다.

 

□일월대의 명칭 등장과 각자(刻字)의 등장 시기.

선인들의 지리산유산기 즉 일명 유두류록은 국역이 되어서 전하는 작품이 대개 100여 편이다. 당시 지리산 유람에서의 등산 코스는 천왕봉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한 경우와 청학동 등 신선 세계 유람을 목표로 한 지금의 쌍계사~불일암코스 두 가지 코스로 정해져 있었다. 노고단 반야봉 코스 및 기타 지능선 코스를 등정한 기록들이 있기는 하지만 십 여편 이내이다.

​그 중 천왕봉을 등정한 기록이 40여 편으로서 일월대를 언급한 작품은 기행시 형식의 기록을 포함하여 약 20여 편에 이른다. 천왕봉을 일월대라고 부른 시기는 대개 17세기 중반 이후부터이다. 1464년에 기록된 이륙의 “지리산록”을 시작으로 김종직의 “유두류록(1472)” 김일손의 “속두류록(1489)” 남효온의 “지리산일과(1487)” 박여량의 “두류산일록(1610)” 유몽의 “유두류 산록(1611)”에 이어지는 15세기와 17세기 중엽 이전의 두류록 들에서는 일월대라는 지명 언급이 없다. 이후 17세기 중엽, 박장원의 “지리산기(1643년)”에서부터 일월대라는 고유명사가 등장한다.

이후 일월대 각자(刻字)의 등장은 근세에 들어오면서일제강점기의 작품과 1960년대의 지리산 산행 기록들에서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일월대 각자는 언제 누가 새겼나?

앞서 언급한 근세의 작품인 <강계형>의 기록과 <하종락>의 기록에서 각자를 쓴 사람은,

 해서(楷書)체의 글씨로 새긴 “日月臺” 각자 좌측에  나란히 있는 “鄭泰鉉 書”의 주인공인 정태현(1858~1919) 임을 알 수 있다. 강계형의 기록, “... 새로 새긴 대의 이름자는 크기가 팔뚝 만한데 정죽헌이 쓴 글씨이다.”에서 정죽헌(鄭竹軒)은 정태현(鄭泰鉉)의 호(號)이다. 정태현(1858~1919)은 일두 정여창의 후손(9 세손)으로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함양선비이다.

 

< '지리산 아흔아홉골'에서 발췌 >

 

지리산 천왕봉 상단 일월대 전경 - 달빛으로 인해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새벽별이 찬란히 빛난다.사진 위쪽으로 시리우스(Sirius), 오리온(Orion)이 빛나고 있다.

 

멀리 반야봉과 지리산 연봉이 바라보이는 천왕봉 정상 바로 옆 아래 바위에 해서체 '日月臺' 각자, 그 옆에 '鄭泰鉉 書' 각자가 있다.

 

일월대(日月臺)에서 바라본 일출

 

일출을 기다리는 산님들

 

 

 

"1807년 (순조 7년) 천왕봉을 올랐던 함안((咸安)의 선비 안치권은 일월대에서 목격한 천왕일출을 두고  "동쪽 하늘이 붉은 비단 속으로 들어가고 자주색 구름이 푸른 바다를 삥 둘러 감싸고 있을 즈음에 화륜(火輪: 해를 상징)이 막 솟아오른다.

​동반(銅盤: 구리 쟁반) 같고, 우약(竽籥: 악기의 일종) 같고, 신기루 같았다. 가라앉는 듯 떠오르는 듯을 세 번 한 후에 하늘 끝으로 솟아올랐다. 구름도 점차로 옅어지고 붉은빛도 조금씩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날이 밝았다."라고 하면서 과연 한평생의 일대장관이라고 적었다."

 

지리산 일몰 풍경

 

지리산 일몰 풍경

 

지리산 해질녘 풍경

 

일월대(日月臺)에서 바라본 보름달이 뜬 지리산 연봉 풍경. 멀리 반야봉과 노고단이 보이고, 사진 상단으로 별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조선시대 지리산 산행의 장을 열었던 김종직은 1472년(성종 3년) 8월에 천왕봉에서 노숙의 밤을 보내면서, 중추의 밤하늘에 달이 떠오르니 천지(天地)와 사방(四方)이 서로 한데 연하여, 마치 큰 바다 가운데서 하나의 작은 배를 타고 올라갔다 기울었다 하면서 곧 파도 속으로 빠져 들어갈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