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관악산 삼성산 11 국기봉

2014. 5. 15. 19:17나를 찾아 걷는 길/관악산의 이모저모

(6)  관악산 삼성산 11 국기봉

 

 관악산(冠岳山)

차령산맥(車嶺山脈)의 중추를 이루는 경기도 안성군(安城郡)의 칠장산(七長山)에서 달기봉[鷄峰山광교산(光敎山) 등을 거쳐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이 서울 한강(漢江) 남쪽에 이르러 마지막 힘을 다해 불꽃처럼 솟아오른 산이 관악산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특별시 관악구(冠岳區)와 안양시(安養市과천시(果川市)에 속해 있는 산으로, 높이 629.1이다.
옛날부터 개성의 송악산(松岳山가평 화악산(華岳山파주 감악산(紺岳山포천 운악산(雲岳山)과 함께 경기도 오악(五岳)의 하나로빼어난 수 십 개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많고, 오래 된 나무와 온갖 풀이 바위와 울려서 봄·여름·가을·겨울의 철을 따라 변하는 산 모습이 마치 금강산(金剛山)과 같다 하여 소금강(小金剛)’이라 하며 많은 암자들이 있다.


현재 서울 관악구로 들어간 북쪽 골짜기에는 서울 대학교(大學校)가 있고, 과천 쪽인 남서쪽 기슭에는 정부제2종합청사가

자리해 있다. 이 산과 그 남동쪽 청계산(淸溪山) 사이에 과천시(果川市)의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서울 경복궁의 외안산(外案山)이 되는데(內案山은 서울 南山), 산봉우리의 모양이 불과 같아 풍수적으로 화산(火山)이 된다 해서 

이 산이 바라보이는 서울에 화재가 잘 난다고 믿어 그 불을 누른다는 상징적 의미로 산꼭대기에 못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을 

넣어서 불의 기운을 누르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옆 양쪽에 불을 먹는다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고 한다그러나 지금은 산꼭대기에 파 놓았다는 못의 흔적은 그 곳에 만들어 놓은 군사시설물로 인해 찾아 볼 수가 없다.
높이로 보아서는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강 유역 낮은 평지 위에 얹혀 있고, 또 주위에 큰 산들이 많지 않아 유달리 그 덩치가 커 보인다. 이 산은 옛부터 용마산(龍馬山: 서울과 구리시 사이삼각산(三角山덕양산(德陽山: 고양시 행주산성)과 함께 한양(漢陽: 서울외사산(外四山)의 하나로, 서울로 보아서는 남쪽 바깥 울타리격의 산이었다.


이 산이 화산이란 점을 의식했던 조선 이태조(李太祖)도 화환(火患)을 막기 위해 무학(無學)의 말을 따라 이 산에 연주(戀主

원각(圓覺) 두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서울의 남대문(南大門)을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光化門)과 관악산을 잇는 일직선상에 위치하게 해서 관악산이 덜 보이게 한 것이나남대문 현판을 세로로 세워 달게 한 것도 관악산의 불기운을 항시 막는다는 풍수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관악산의 한 봉우리인 호압산(虎壓山)능선에는 통일신라 때 판 것으로 추측되는 산상(山上) 우물(한우물)도 있는데, 이것도 관악산의불기운을 누르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근처 호압사(虎壓寺)라는 작은 암자 뒤 비탈에는 호랑이가 금방이라도 뛰어갈 듯한 모습의 범바위[虎岩]가 있는데이 호랑이(바위)가 날뛰지 못하게 억압하려 그 북쪽에 그를 위협하는 활에 해당하는 궁교(弓橋)와 사자에 해당하는 사자암(獅子庵)을 지어 두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바위(호랑이)가 날뛰면 금천현(衿川縣)의 지세가 쇠퇴하고, 금천현이 쇠퇴하면 결국 한양까지 재앙을 불러온다는 풍수설에 따라 조선 태조가 그런 장치를 했다고 한다.

관악산은 또 고려의 강감찬(姜邯贊)과 관련한 전설도 많이 지니고 있다. 그가 하늘의 벼락방망이를 없애려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벼락방망이 대신 이 산의 칡을 뿌리째 모두 뽑아 없앴다는 전설도 있고, 작은 체구인 강감찬이지만 몸무게가 몹시 무거워 바위를 오르면 그런 곳마다 발자국이 깊게 패었다는 전설도 있다전설을 뒷받침해 주듯 관악산에선 칡넝쿨을 별로 볼 수 없고, 곳곳의 바위에 아기 발자국같은 타원형 자국들이 보인다.

관악산은 그 바위가 다른 산의 바위들에 비해 잘 미끄러지지 않는 특성을 지녔다고 옛부터 사람들이 믿어 왔다. 그래서 그런지 산 곳곳에 그렇게 험한 바윗길이 많은데도 눈 덮인 겨울에도 조난 사고나 추락사 같은 사고 등이 별로 없었다.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관악산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관악(冠岳)’이라고 했다.
관악산은 옛 지도에는 관악(冠岳)’으로 많이 나온다. ‘()’ 자체가 ()’을 뜻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그 뒤에 다시 ()’자를 덧붙이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운악(雲岳북악(北岳치악(雉岳) 등이 모두 그와 같은 예들이다. 관악산은 청계산(淸溪山삼성산(三聖山)과 함께 금지산맥(衿之山脈)을 이루는데, 이 산맥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험준한 산세에 깊은 골짜기들을 간직한 관악산은 기암괴석이 갖가지 모습으로 곳곳에 박혀 있어 찾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골짜기와 등성이에 15개가 넘는 절·암자가 있음은 이 산이 잘 알려진 명산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삼성산(三聖山)

관악산 서쪽에 있는 산으로, 크게 보아서는 관악산의 한 봉우리라고도 할 수 있다. 최고봉은 높이 480인데, 서울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사이에 있다. 신림동의 서울대학교에서 남으로 4, 안양에서 북서쪽으로 5지점에 있다.
고려말에 지공·나옹·무학 등 세 고승이 이 산에서 수도했다 하여 산이름이 삼성산(三聖山)이 되었다고 한다.

또 세 개의 막을 지었던 산이라 하여 삼막산(三幕山)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세 막(암자) 중에 일막(一幕)과 이막(二幕)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불타 없어지고 지금 삼막사(三幕寺)만 남았다고 한다.
관악산과 형제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산에는 반월암(半月庵염불암(念佛庵상불암(上佛庵만월암(滿月庵천인암(千人庵

성주암(聖住庵약수암(藥水庵호압사(虎壓寺삼막사(三幕寺) 등의 많은 절과 암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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