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수렴동을 오르며

2014. 1. 6. 07:33나를 찾아 걷는 길/대청봉 표지석은 잘 있더이다

(1) 수렴동을 오르며

       2013.12.29 일요

  

백담탐방지원센터를 지나니 산길은 눈에 덮여 있다.

백담계곡에 가로 놓인 강교江橋를 건너 소나무 빽빽한 은선도를 굽어보며 가파른 언덕을 넘는다.

원교를 지나니 '內雪嶽百潭寺'

일주문이다.

마음을 닦는 다리, 수심교修心橋를 건너 금강문을 들어선다.

백담다원 앞 뜰 담장가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진 빗돌이 있다.

  

李聖善  詩

 

나 죽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저 물 속에는

산그림자 여전히 혼자 뜰 것이다

                  이성선 / 山詩. 30  나 없는 세상

 

  

설악의 품에 안겨 설악산과 더불어 살다 간 설악의 시인 이성선

산. 별. 나무. 달과 함께 수행자로 살았던 시인 이성선

그의 시에서는 산내음이 난다.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눈이 푸르러진다.

  

 겨울산

      산시 13

 

겨울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홀연 놀란다

나무는 오간 데 없는데

나 혼자 나무 향기를 맡는다

 

  

백담사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절 마당을 쓴다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산에 걸린 달도

빗자루 끝에 쓸려 나간다

조그만 마당 하늘에 걸린 마당

정갈히 쓸어 놓은 푸르른 하늘에

푸른 별이 돋기 시작한다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아나고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저 멀리  소나무가 빽빽히 자라는 백담계곡의 은선도가 바라보인다

 

       

수심교

 

  

 

                                                                                  금강문金剛門  

  

이성선 시비

 

     

   

 

 

백담사

 

        

타박타박 눈길을 걷는다.

소나무 전나무 숲에 둘러싸인 눈 덮인 영시암이 바라보인다.

눈이 오고 난 후에야 소나무 전나무의 푸르름을 실감할 수 있다.

영시암을 오르니 눈보라가 휘날려 눈을 뜰 수 없디.

조선 숙종 때 장희빈의 아들 세자 책봉에 반대하던 영의정 김수향이 사약을 받은 후,  그의 아들 삼연 김창흡三淵金昌翕은 세상에 뜻이 없어 

다시는 인간세상에 나가지 않겠다 맹세하며 설악산 깊은 골에 찾아들어 집을 짓고  영시암永矢庵이라 하고 은거하였다.

영시(永矢)란 길이 맹세한다는 뜻이다. 그는 " 삶은 괴로워 즐거움이 없고/ 세상 모든 일이 견디기 어려워라/ 늙어 설악산중에 들어와/ 여기 영시암을 지었네"라는 글을 남겼다

 

 

소나무 전나무 숲속의 눈 덮힌 영시암

 

       

 

                                                                              영시암(永矢庵)

 

 

두 볼이 빨갛게 얼어 하산하는 산님들을 본다.

가벼워진 배낭 무게 탓인지, 아니면  탐진치 삼독을 버려 마음이 가벼워진 탓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긴 철제다리 건너 수렴동 대피소가 보인다

깊은 산중 지붕에 눈을 인 아담한 대피소

 

취사를 하여 소주 한 잔 곁들인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침상에 오른다.

양 옆이 휑하니 비어 있다.

침상에 앉아 이성선 시인의 '설악을 가며'를 읊조린다.

 

수렴동 대피소 구석에 꼬부려 잠을 자다가

밤중에 깨어보니 내가 아무것도 덮지 않았구나

걷어찬 홑이불처럼 물소리가 발치에 널려 있다

그걸 끌어당겨 덮고 더 자다가 선잠에 일어난다.

먼저 깬 산봉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쫓겨서

옷자락 하얀 안개가 나무 사이로 달아난다

그 모습이 꼭 가사자락 날리며

부지런히 산길을 가는 스님 같다

흔적 없는 삶은 저렇게 소리가 없다

산봉들은 일찍 하늘로 올라가 대화를 나누고

아직 거기 오르지 못한 길 따라 내 발이 든다

길 옆얼굴 작은 풀꽃에 붙었던 이슬들

내 발자국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물소리가 갑자기 귀로 길을 내어 들어오고

하늘에 매달렸던 산들이

눈 안으로 후드득 떨어진다

오르지 못한 길 하나가 나를 품고 산으로 숨는다

   

한밤중 화장실을 가기 위해  대피소 문을 나선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할퀸다.

칠흑 같은 밤

하늘엔 보석을 뿌려 놓은 듯 별들이 총총하다.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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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략>

 

 이성선의  '별을 쳐다보며'

 

전전반측 잠 못 이루는 수렴동대피소의 밤이다.

 

 

 

 

수렴동 대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