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폭풍 한설에도 대청봉 표지석은 잘 있더이다

2014. 1. 13. 19:31나를 찾아 걷는 길/대청봉 표지석은 잘 있더이다

(3) 폭풍 한설에도 대청봉 표지석은 잘 있더이다

     2013. 12.31 화요

 

대피소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저녁 6시부터 침상에 자리 펴고 누웠다.

전전반측 깨었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동짓달 기나긴 중청대피소의 밤을 보냈다.

 

산님들의 부산한 소리로 잠에서 깨어난다.

밖에 나갔다 온 옆의 산님이 전하기를,  "국립공원직원 말에 의하면 오늘 일출은 보기 힘들 것"이라고..... 

일출이 되든 안되든 세찬 바람이 불어 눈보라가 휘날리는 상고대 핀 산길을 따라 산님들이 줄줄이 대청봉을 오른다.

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바람에 몸이 휘청거린다. 

"폭풍 한설에도 나 여기 잘 있소" 하는 듯 상고대가  허옇게 핀 대청봉 표지석이 우뚝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미 대청봉에는 수많은 산님들이 동해를 향해 서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구름이 장막을 치고 있다.

강풍이 구름을 몰고 가면 찰나적으로 해가 얼굴을 내민다.

그때마다 산님들의 탄성이 터진다.

 

구름에 가려 언뜻언뜻 보는 계사년 마지막 일출

내일은 청마의 해가 시작된다.

갑오년 새해의 첫 해가 떠 오를 것이다.

 

산님들이 제 갈 길을 가기 위해 뿔뿔이 흩어진다.

시시각각 하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간 흩어진다.

그럴 적마다 파란 하늘이 열렸다 닫혔다 한다.

동녘  햇살을 받은 대청봉 표지석이 불그스레 환한 미소를 짓는다.

찰나의 황홀이다.

천변만화하는 폭풍 한설 속의 대청봉

 산님들이 뿔뿔이 흩어진 뒤, 고적한 대청봉에 홀로 서서 세찬 바람으로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구름과 허공을 바라본다.

 

 

구름   

이 성 선 

 

구름은 허공이 집이지만 허공엔 그의 집이 없고
나무는 구름이 밟아도 아파하지 않는다


바람에 쓸리지만 구름은 바람을 사랑하고
하늘에 살면서도 마을 샛강에 얼굴 묻고 웃는다

 

구름은  그의 말을 종이 위에 쓰지 않는다

 

꺾여 흔들리는 갈대 잎새에 볼 대어 눈물짓고
낙엽 진 가지 뒤에 기도하듯 산책하지만

 

그의 유일한 말은 침묵
몸짓은 비어 있음

 

비어서 그는 그리운 사람에게 간다
신성한 강에 쓰고 나비 등에 쓰고
아침 들꽃의 이마에 말을 새긴다

 

구름이 밟을수록  땅은 깨끗하다

 

 

 

 

 

                                                  대청봉 표지석에 상고대가 허옇게 피었다  

 

 

 

 

 

동녘  햇살을 받은 대청봉 표지석이 불그스레 환한 미소를 짓는다.

 

                                                                       

 

                                                               양양이라네! 비석

 

  

양양이라네! 비석을 바라보며 오색 가는 하산길에 접어든다.

산 모롱이를 돌아서니 별천지가 기다리고 있다.

오! 상고대

세찬 바람에 하얀 구름이 흩어지며 새파란 하늘이 열린다.

다시 하얀 구름이 몰려오고 구름이 흩어지면 새파란 하늘이 열리기를 반복한다.

상고대가 햇빛에 반짝인다.

하늘은 짙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몽환적이다.

심해 속의 산호초 군락지 같다.

오오 이 삽시간의 황홀

대자연의 조화로 황홀한 설백의 진경으로 대청봉을 장엄하였다. 

 

 흰 눈은 높은 산에 와서 혼자

 오래 머물다 돌아간다

 새와 구름이 언제나 그곳으로

 향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 흰 눈은 높은 산에  山詩 12 - 이성선 >

 

 

 

 

 

 

 

 

 

 

 

 

무거운 배낭을 메고 대청봉을 오르는 산님들을 만난다.

하얀 입김과 함께 토해 내는 거친 숨결 소리

우정을 싹트게 하고 희망과 꿈을 싹트게 하는 저 헐떡이는 가쁜 숨결 소리를 나는 좋아한다.

 

산을 높이 오를수록 산새들의 울음소리도 청아해지 듯

높이 높이 산을 오를수록 우리의 마음도 명징明澄해졌으면....

 

큰 짐 지고 오르는 산님들을 보며,

설악산에 와서 나는 무엇을 배우고 하산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본다.

가벼워진 배낭 무게만큼만 이라도 마음을 비웠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