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흰 연꽃으로 피어난 불뇌보탑佛腦寶塔

2014. 1. 11. 06:39나를 찾아 걷는 길/대청봉 표지석은 잘 있더이다

(2) 흰 연꽃으로 피어난 불뇌보탑(佛腦寶塔)

        2012.12.30  월요

 

뒤척이다 잠이 들었나 보다.

코펠 덜거덕거리는 소리에 퍼뜩 눈을 뜬다.

 

배낭 꾸려 구곡담 계곡 길에 들어 대청봉을 향한다.

모두 하얀 눈을 머리에 인 적막한 산길이다.

박두진 시인의 '설악부雪嶽賦'가 생각난다.

  

 

설악부雪嶽賦                  

 1
부여안은 치맛자락 하얀 눈바람이 흩날린다.
골이고 봉우리고 모두 눈에 하얗게 뒤덮였다.
사뭇 무릎까지 빠진다.
나는 예가 어디 저 북극이나 남극 그런 데로도 생각하며 걷는다.

파랗게 하늘이 얼었다. 
하늘에 나는 후우 입김을 뿜어본다. 스러지며 올라간다. 
고요--하다. 
너무 고요하여 외롭게 나는 태고! 태고에 놓여 있다.

 
2
왜 이렇게 자꾸 나는 산만 찾아 나서는 겔까? -- 내 영원한 어머니...
내가 죽으면 백골이 이런 양지짝에 묻힌다. 외롭게 묻어라.

 

꽃이 피는 때 내 푸른 무덤엔 한 포기 하늘빛 도라지꽃이 피고
거기 하나 하얀 산나비가 날아라. 한 마리 멧새도 와 울어라.
달밤엔 두견! 두견도 와 울어라.

 

언제 새로 다른 태양 다른 태양이 솟는 날 아침에 내가 다시
무덤에서 부활할 것도 믿어 본다.

 

3
나는 눈을 감아본다. 순간 번뜩 영원이 어린다... 인간들!
지금 이 땅 위에서 서로 아우성치는 수많은 인간들이
그래도 멸하지 않고 오래오래 세대를 이어 살아갈 것을 생각한다.

 

우리 족속도 이어 자꾸 나며 죽으며 멸하지 않고 오래오래
이 땅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한다.

 

언제 이런 설악까지 왼 통 꽃동산 꽃동산이 되어 우리가 모두 서로
노래 치며 날뛰며 진정 하루 화창하게 살아 볼 날이 그립다. 그립다

 

  

용아장성과 서북능선 사이의 깊은 골,  흰 눈으로 뒤덮인 구곡담계곡

백담사에서부터 백개의 연못에 얼굴을 비춰보아야 도달할 수 있는 대청봉

깊고 푸른 못은 꽁꽁 얼어붙어 흰 눈으로 뒤덮여 있으니 어찌하랴

설중송백雪中松栢을 즐길 밖에... 

눈 속의 소나무 잣나무의 푸르름을 완상 하며 걷는 즐거움이여...

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앙상한 나무 가지 위에서 '짹짹짹' 산새가 울며 이 가지 저가 지를 선회하며 따라온다.

다리를 건너다 눈 덮인 깊은 산중 경관에 도취해 서 있는데, 산새 한 마리 다리 난간에 날아와 앉는다.

앙증맞은 부리를 벌렸다 오므렸다 짹짹짹 짹짹짹..... 혼신을 다해 울기 시작한다.

가슴이 저려 오도록 서럽게 운다.

모이를 구하지 못해 배가 고파 우는 산새

 

배낭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새의 모이가 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산새에게 큰 빚을 진 기분이다.

 

상념을 내치며 휘적휘적 산길을 오른다.

가벼운 행장 차림의 하산하는 처자處子 산님이 말없이 꾸벅 절을 한다.

"예, 안녕하세요"

처자의 빨갛게 얼은 두 볼에서 능금향이 난다.

맑은 눈이 초롱초롱하다.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처자의 인사하는 말소리가  뒷전에서 들려온다.

 

  

배가 고파 우는 산새    -               모이를 주지 못해 큰 빚을 졌다

 

      

 

 

 

뿌리 뽑힌 큰 나무가  산길에 넘어져 있다.

누가 그 나무줄기에 사인펜으로 '不老門'이라 써 놓았다.

눈이 쓸려 내려온 아슬아슬한 사면을 걷는다.

용손폭포도 용아폭포도 쌍폭도 모두 얼어붙었다.

 

 

 

 

불노문  不老門

 

        

봉정골 입구다.  

옛적 처음 이곳을 오를 적에는 그리도 가파르고 높아 보였던 깔딱 고개가 오늘은 왜 이리도 수월해 보일까.

사자바위를 지나 산 모롱이를 지나 계단을 오르니 봉정암이다.

 

산길은 음악이다  / 이성선

 

대금의 한 연주자는 <음악의 최고 경지는 침묵이다. 이 침묵에 이르기 위하여 나는 나를 연주를 한다> 하였다.
그의 영혼이 울리는 대금 소리가 깊고 깊어져서 어느 날 침묵에 도달하고 그때 소리도 연주자도 사라져 마침내
침묵 속으로 들어가 그것과 하나가 되는 황홀경

 

겨울 산길은 침묵 속의 음악이다. 텅 빈 산을 혼자 들어가면 길은 행인을 위하여 연주한다.
낙엽 밟는 소리 들려주고 나뭇가지에 앉은 하늘의 집은 문을 열어 새소리 얼음장 깨지는 소리 산꿩 날아가는 소리
안개 흩어지는 소리를 낸다

 

밤길은 더 아름답다. 하늘은 구름 터진 사이로 풀을 기르고 달빛이 물을 주어 뿌려진 산봉의 별들.
으스스한 그 어둠빛에 나무들은 떨면서 별빛 튕겨 가야금 소리를 울린다.
이 봉에서 저 봉으로 옮겨가는 달의 발이 보인다


음악 산길. 더 깊이 들고 더 높이 올라 거기서 다시 산을 넘고 나를 넘어서면 갑자기 소리가 다 끓어진 곳.
드디어 큰 고요, 법열 속에 선다. 여기서부터는 구름과의 동행. 가는 자도 사라지고 보는 자도 사라졌다.
눈 안의 눈이 보고 귓속의 귀가 듣는 길. 혼자이고 둘이며 길 안에서 길 밖을 떠가는 흰 구름의 길.
아아, 음악 산길

 

머리에 하얀 눈을 인 윤장대輪藏臺를 바라보며 돌계단을 오른다.

산령각을 지나 높게 이어진 돌계단 끝 암반 위에 우뚝 서 있는 '석가사리탑'에 합장하고 우러른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 오 층 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佛腦寶塔’이라고도 부른다. 

용의 어금니 같이 삐죽삐죽한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장엄하게 뻗어가고 있다.

서북능선이 불뇌보탑을 위요圍繞하고 있다.

용아장성龍牙長城이 시작되는 첫 번째 암봉이며 용의 어금니에 해당되는 곳이다.

설악산 연꽃 기단 위에 우뚝 서 있는 불뇌보탑이 오늘은 층층이 흰 연꽃으로 피어났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 안한봉, 기린봉, 할미봉, 독성봉, 나한봉, 산신봉이 감싸고 있는 봉정암은,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慈藏)이 중국 당(唐) 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원효·보조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677년(문무왕 17) 원효가, 1188년(고려 명종 18) 지눌이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6·25 전쟁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전쟁 후 10여 년 이상 탑만 지키고 있던 봉정암에 다시 전각이 들어선  것은 1960년대 초반이었다. 그러다 1985년 봉정암은 대대적인 불사를 시작, 새로운 골격을 갖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적멸보궁에 들어 가부좌하고 앉아 정면 창문을 바라보니 '불뇌보탑'이 오롯이 그림처럼 보인다.

 

봉정암 / 이성선
달의 여인숙이다
바람의 本家이다
거기 들르면 달보다 작은
동자스님이
차를 끓여 내놓는다

 

허공을 걸어서 오지 않은 사람은
이 암자에 신발을 벗을 수 없다

 

 

겨울 산사에서 / 이 성 선

산이 깨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앉아
시를 쓸까 좌선을 할까 차를 마실까
별빛 내려와 쓸고 돌아간 도량을 돌까
물소리 올라가 얼어붙은 고요한 하늘 위로
산이 깨어나는 소리 하나만 걸려 있다
이것저것 다 놓아두고 그냥 바라보며
눈 안에 그 모습 하나 고요히 앉혀두자

 

  

이따금 산님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적요寂寥한 봉정암은 긴 침묵으로 들어갔다.

  

 

                                                            윤장대輪藏臺           

 

책장의 일종으로 불교에서는 경전을 넣은 책장을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에 의지하여 원형 또는 다각형의 나무장을 올린 뒤 여기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다.

 

경전은 경장뿐 아니라 율(律)과 논(論), 여러 고승들의 장소(章疏)도 함께 넣어 둔다.

 

《석문정통(釋門正統)》 탑묘지(塔廟志)에 따르면 사찰에 처음 윤장대를 설치한 것은 중국 양(梁) 나라 때의 선혜대사(善慧大士)

 

부흡 현풍(傅翕玄風)으로, 불도를 믿으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불경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한 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공덕이 같다고 하였다

 

 

 

                                                             층층이 흰 연꽃으로 피어 난 '불뇌보탑'     

 

 

다른 사찰의 여느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용의 어금니같이 삐죽삐죽한 용아장성 능선

 

       

 

                                                                                눈 덮인 봉정암     

 

 

봉정암 뒤편 소청산장 오르는 길이, 강풍이 불며 사면으로 눈이 쏟아져 내리며 산길을 덮어 버린다.

미끄러지며 한 참의 실랑이 끝에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고사목이 보인다.

폭풍 한설 속에서 견디며 자라는 뭉툭한 잣나무가 참으로 강인해 보인다.

잣나무 가지가 바람결 따라 휘어져 있다.

소청산장을 지나 강풍이 부는 소청봉을 오른다.

상고대가 아름답게 피었다. 저 멀리 중청의 둥근 레이더가 보인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대청봉도 바라보인다.

중 청산창에 도착하니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온다. 강풍이 끊임없이 분다.

잿빛 하늘에 눈보라가 대청봉 정상을 향하여 날아오르고 있다.

내일 새벽 대청봉 일출을 보기로 하고 가던 길을 멈추고 중청산장에 든다.

후끈한 산장 안은 북적이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새로 개축한 소청산장

 

 

 

                                                                               중청 레이더          

  

중청과 대청

 

       

 

                                                                   상고대 뒤로 보이는 중청산장과 대청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