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암괴석이 즐비한 관악산 암릉길

2013. 9. 13. 17:26나를 찾아 걷는 길/관악산의 이모저모

'카라부란'이 불어대는 沙河를 건너는 나그네를 꿈꾸며

 (1) 기암괴석이 즐비한 관악산 암릉길

  

금년은 유난히도 비도 많았고, 비 그친 후에는 하늘이 펄펄 끓는 듯 무덥고 지루한 여름이었다.

관악산 암릉길인 버섯바위능선, 학바위 능선, 자운암능선, 팔봉능선, 사당능선, 연주대 등을 오르내리며, 계류에 발 담그며 염천의 여름을 보냈다.

암릉 길 곳곳에 즐비한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관악산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었다.

 

관악산冠岳山(629m)

관악산(冠岳山)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고 했다. 예로부터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에 속했던 산이다. 최고봉은 연주대(戀主臺, 연주봉)이며 우뚝 솟은 자연 바위벽이다. 관악산은 본래 화산(火山)이라 하여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화기(火氣)를 끄기 위해 경복궁 앞에 해태를 만들어 세우고, 이 산의 중턱에 물동이를 묻었다고 한다. 또한 산정에는 세조가 기우제를 지내던 영주대(靈主臺)가 있다. 

 
팔봉능선의 낙타바위

팔봉능선

낙타바위를 바라본다.

낙타를 보면 사막이 생각난다.

  

"낙타는 다리가 길고, 부드럽고 넓적한 발가락이 2개인 발이 있어서 모래나 눈 위를 걸을 수 있다. 불리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콧구멍을 막을 수 있으며, 속눈썹이 2줄이고 귀 주위의 털도 길어서 모래먼지를 방지할 수 있다. 3일간 물을 마시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고, 며칠 동안 먹이를 섭취하지 않아도 활동할 수 있다. 등 위의 혹, 지방덩어리 때문이다. 1회에 57ℓ의 물을 마실 수 있으며, 임신기간은 1년, 수명은 40∼50년이다. 한 번에 500㎏의 화물을 운반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며, 장시간 물을 마시지 않고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가축화되었다. 단봉낙타는 서기전 3000년, 쌍봉낙타는 서기전 1800년경에 가축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반이나 승용(乘用) 이외에 고기는 식용으로, 젖은 음료로, 털은 직물에 이용되므로 사막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축이다."

 

붉은 해가 떨어지는 사막을 행렬 지어 가는 캐러반(상인)이 떠 오른다.

그리고, 求法을 위해 천축을 향하여 천산산맥을 넘기 위해 '카라부란'이 불어대는 타클라마칸 사막 사하沙河 속을 가는 순례승들이 생각난다.

 

끝없는 사막과 대협곡, 대설산을 넘어가야 하고, 코끼리 떼, 수풀 속에서 튀어나오는 사자, 갠지스강의 들소 떼와의 사투를 거쳐 천축에 도착한 순례승들이야 말로 대여행가이다. 목숨을 걸고 구법의 열정으로 그 어마어마하게 멀고도 먼 길을 걸어간 순례승들에게 경탄과 함께 깊은 경외감을 느낀다.

기껏해야 나는 만리 길 정도는 걸었을까?

  

" 기록을 남기지 않은 무명의 나그네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중에서 중화권의 入竺求法僧의 통계수치를 보면 3-11세기까지 약 180여 명에 달하는 이름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은 여행기라는 기록유산을 남기지 않았기에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점차로 사라졌다. 5세기의 法顯은 하얀 백지였던 그길 위로 첫발을 내디뎠고, 6세기 위나라의 송운과 혜상은 시대적 공백기의 가운데서 귀중한 서역 여행기를 남겼고,  7세기에 들어와서는 玄奘이 18년의 고행 끝에 장안성으로 돌아와서 대하기행기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를 남겨 커다란 족적을 남겼고, 그리고 해양실크로드의 백미인 <대당서역구법고승전>이 義淨에 위해 써졌고, 8세기에는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인 신라의 慧超가 역시 그 길을 따라 떠나서 실크로드의 심장부를 지나 저 멀리 아라비아 근처까지 다녀와 대미를 장식하면서 인류역사의 하늘 위에 찬연히 빛나는 별이 되어 지금까지 빛나고 있다 "     <  '대당서역기' 김규현  역주에서   >

 

 

뜨꺼운 암릉길을 오르내리며,

'카라부란' (흑풍黑風 ㅡ모래바람)이 불어대는 沙河를 건너는 나그네를 꿈꾸어 본다.

 

신경림의 시 "낙타"를 읊조려 본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 대림천계곡 

폭우가 내린 다음 날   대림천 계곡의 무명폭포

 

 

  

대림천 계곡

 

 

* 관악 주능선(KBS송신소- 팔봉의 국기봉 사이)

 

가물치바위

 

 

  

제2왕관바위

 

 

 

관음바위 (1) - 만두 모양의 바위와 관음보살 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관음바위(2)  - 관음보살이 합장하고 서 있는 듯하다

 

 

 

관음바위(3)  또는 불꽃바위

 

 

  

관음바위(불꽃바위)와 제2왕관바위 뒤로 KBS중계소가 보인다

 

 

* 팔봉능선

 

맷돼지바위

 

 

  

산신령바위

 

 

 

 

발바닥바위

 

 

  

팔봉능선 제3봉에서 내려다본 왕관바위

 

 

 

팔봉능선 제3봉에서 내려다 본 왕관바위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왕관바위    -약간 옆으로 뉘어져 있다

 

 

 

 

북쪽에서 바라본 왕관바위 - 두 스님이 합장하며  마주 보는  듯

 

 

 

  

지네바위

 

 

  

암벽 사이에 피어 자라는 닭의장풀(달개비)

 

 

  

개구리바위(-두꺼비바위)

 

 

 

왼쪽은  바둑이 형상(? ), 오른쪽은 엉덩이, 주먹을 쥔 모양 등등..

 

 

해산바위, 또는 개구멍바위 전경(1)

 

 

 

혓바닥바위

 

 

 

 

* 사당능선

 

하마바위

 

 

 

 

미소바위, 또는 목탁바위

 

 

 

 

해태바위

 

 

 

 

관악문(下)

 

 

 

관악문(上)

 

 

 

 

한반도 지도바위

 

 

  

관악문과 한반도 지도바위 전경

 

 

 

 

코끼리바위

 

 

            

 

횃불바위

 

 

 

솔봉   -암봉 위에 소나무 한 그루 서 있다

 

 

    

관악문에서의 조망

 

 

 

연주대를 향하여 직벽을 오른다

 

 

 

  

솔봉에서의 조망

 

 

  

 

 

 

 

 

 

 

 

 

솔봉의 소나무 - 암반 위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관악산 정상 표지석

 

 

연주대戀主臺  

           

연주대戀主臺

 

 

연주대(戀主臺)

관악산의 봉우리 중에 죽순이 솟아오른 듯한 모양을 한 기암절벽이 있는데, 그 위에 석축을 쌓고 자리 잡은 암자를 연주대라 한다. 원래는 의상대사가 문무왕 17년(677)에 암자를 세우면서 ‘의상대’라 이름했었는데, 고려 멸망 후 조선을 반대하며 고려에 충성을 다하던 유신들이 이곳에 모여, 멀리 개경 쪽을 바라보며 고려를 그리워하여 연주대(戀主臺)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셋째 왕자 충녕대군을 장차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 양녕과 둘째 효령대군이 궁을 나와 관악산에 입산 수도하면서,  이 연주대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지금의 건물은 3평 남짓한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와 나한들을 모시는 불당인 응진전이 있다. (문화재청)     

 

 

 

 

사자바위

 

 

 

 

독수리바위

 

* 버섯바위능선

 

버섯바위(1)

 

 

 

 

버섯바위(2)

 

 

 

 

* 학바위능선

 

삿갓승군바위(1)

 

 

 

 

삿갓승군바위(2)

 

 

 

 

삿갓승군바위(3)

 

 

  

소머리바위(1)

 

 

 

소머리바위(2)

 

 

 

 

*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 (奉天洞 磨崖彌勒佛坐像)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9호

 

서울 관악산 북쪽 중턱의 거대한 절벽 바위면에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불상으로,  미래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민머리에 상투 모양의 둥근 머리묶음이 낮게 표현되었으며 얼굴은 갸름한 편이다.
늘씬하게 표현된 신체와 둥글게 깎인 어깨 등으로 보아 상당히 우수한 조각가의 작품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1630년이라는 절대연대를 가지고 있어서 조선시대 조각사 편년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미륵존불(彌勒尊佛)’이라는 글을 통해 17세기 조선사회에도 미륵신앙이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17세기 조선시대 불상을 대표하는 기준이 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마애미륵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애미륵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