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봉화 북지리 마애불과 축서사

2011. 10. 11. 17:38문화유적 답사기/이백(二白)의 남쪽 자락 영주.봉화

(2) 봉화 북지리 마애불과 축서사

 

봉화땅은 태백산과 선달산이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 아래에 있다.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 상류가 봉화 땅을 관통하며 흐른다.

봉화는 중석, 납, 아연 등 광물질이 풍부하여 산간오지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철길이 놓였다.

'억지 춘양'이라는 말은 억지로 철길을 놓았다 하여 생긴 말이다. 

이 철길은 광물뿐 아니라  인근에서 벌채된 소나무를 춘양역에서 실어 날랐는데, 이곳 지명을 따 이 소나무를 '춘양목'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지역에는 많은 불교 유적이 있는데, 물야면 북지리에는 국보로 지정된 마애불이 있고,  그 인근에서 석조반가사유상이 발견되었다.

물야면 개단리의 문수산 축서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석조여래좌상, 석탑, 석등이 남아 있으며,  춘양면 서동리 춘양종합고등학교 교정 내 람화사 터에는 삼층석탑 2기가 잘 보존되어 있다.  각화산 각화사에는 태백사고지와 각화사 귀부가 남아 있다.

조선 중기 이래 안동의 사족이 이주해 곳곳에 동족 마을을 이루어 봉화에는 안동에 버금가는 종택이 많다.

봉화읍 유곡리에는 '삼남 사대 길지'의 하나로 꼽히는 권충재 유적이 있다.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을 찾아서

 

물야면 북지리 가계천을 건넌다.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는 코스모스가 활짝 웃고 있다.

 

 

현 지림사     좌측 보호전각 안에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옛 지림사터 야트막한 뒷산은 호랑이가 길게 누워있는 형상 호골산(虎骨山)의 끝자락이다.

범꼬리에 해당하는 부분 암벽에  마애불상이 있다.

이곳은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된 '지림사터'이다.

이 일대에 '한절(큰절)'로 불리던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너른 절 마당 왼쪽 끝 보호전각 안에 있는 마애불이 있다.

원래 이 불상은 감실안의 본존불로 조성된 보기 드문 신라시대의 거대한 마애불좌상이다.

현재는 감실의 석벽도 무너졌고, 불상도 장구한 세월 풍화되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고 얼굴 표정도 뚜렷하게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한절'의

본존불답게 압도하는 위엄이 보이고 자비스러운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봉화북지리마애여래좌상 (奉化北枝里磨崖如來坐象)

국보  제201호

 

경상북도 봉화군 북지리에는 신라시대의 ‘한절’이라는 대사찰이 있었고, 부근에 27개의 사찰이 있어 500여 명의 승려들이 수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자연암벽을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거대한 방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높이 4.3m의 마애불을 매우 도드라지게 새긴 것이다. 넓고 큼직한 얼굴은 양감이 풍부하며 전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서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듯하지만 체구는 당당한 편이며,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U자형의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까지 덮고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큼직하게 표현되어 불상의 장중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불상 뒤편의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분하였으며, 곳곳에 작은 부처를 표현하였고, 머리광배의 중심에는 정교한 연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불상을 만든 시기는 얼굴이나 신체에 표현된 부드러운 모습 등을 고려할 때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보물 제221호)과 함께 이 시기 영주·봉화 일대 불상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신라 불교조각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문화재청)

 

 

 

  당당한 체구에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에서 굵직한 주름을 이루면서 양팔을 거쳐 길게 늘어져 대좌까지 덮었고

  오른손을 가슴에 들고 왼손은 무릎에 나린 큼지막한 두 손을 표현하여 장중한 멋을 풍긴다.

  광배에는 신광 부분인 몸 양편 협시불인 화불이 각각 두 분씩 네 분이 새겨져 있고, 두광에는 깨지지 않은 부분에 두 분이

  있는데 전체가  다 있었다면 두광에 일곱 분이 새겨졌을 것이다.

등과 광배가 바위에 붙은 부조이지만 몸 전체는 매우 도드라지게 새겨 부처가 바위 안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

 

  

마애여래좌상 왼쪽 아래 협시보살처럼 보이는 화불   장구한세월의 풍화로 표정이 뚜렷하지 않다.

 

  

광배 두광에는 깨지지 않은 부분에 두 분이 있는데, 전체가 다 있었다면 두광에는 일곱 분이 새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두광에는 연꽃 모양과 그 주위에 불꽃 무늬가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마애불상 옆에는 법공양물이 있다.

'나를 다스리는 법'을 옮겨 본다.

 

"나의 행복도 나의 불행도 모두 내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니 결코 남의 탓이 아니다. 나보다 남을 위하는 일로 복을 짓고 겸손한 마음으로 덕을 쌓아라.

모든 허물(죄악)은 탐욕(탐)과 성냄(진)과 어리석음(치)에서 생기는 것이니 늘 참고 적은 것으로 만족하라. 웃는 얼굴, 두드럽고 진실된 말로 남을 대하고 모든 일은 순리에 따르라. 나의 바른 삶이 이웃과 사회와 나라 위한 길임을 깊이 새길 것이며 나를 아끼듯 부모를 섬겨라. 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할 것이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듯한 정을 베풀어라. 내가 태어나서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내가 지은 모든 선악의 결과는 반드시 내가 받게 되는 것이니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살아라. 선남선녀여, 하루 한 번 나를 돌아보고 남을 미워하기보다는 내가 참회하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살아라."

경북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지림사

 

새로 지은 법당 뒤편 암벽에는 감 실을 파고 돋을새김 한 불좌상 네 구가 있는데 형태는 뚜렷하지 않다.

그 옆으로 돋을새김한 삼층탑이 있는데 조각 솜씨는 소박하다. 

마애탑은  매우 희귀한데 이곳과 경주의  남산 탑곡사 구 층 마애탑과 칠 층 마애탑, 백률사 삼층마애탑 두 곳만이 알려져 있다.

 

법당 뒷편 암벽에 얕은 감실을 파고 불좌상 네구와 삼층탑을 돋을새김하였다.

 

  

암벽에 얕은 감실을 파고 불좌상을 돋을새김 하였다.

 

 

매우 희귀한  돋을새김된 삼층탑

 

  

 독수리가 사는 절 문수산 축서사를 찾아서

 

지림사에서 10km 정도 떨어진 축서사로 향한다.

물야면 개단리 동구 입구에는 축서사 가는 길 표지석이 서 있다.

붉은 사과알이 주렁주렁 매달린 산기슭 사과밭을 지나 한적한 산골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른다.

하늘이 가까워지는 적막한 깊은 산중에 '문수산 축서사' 일주문이 나타난다.

이곳부터 물야면 개단리 1번지 독수리가 사는 절 축서사 경내다.

태백 소백 이백지간 산줄기 연봉 중의 하나인 해발 1,206m의 문수산  800m 중턱 산간오지 서광이 뿜어져 나왔던 곳.

문무왕 13년 의상대사가 산에서 서광이 비치던 곳에 있던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절을 지어 축서사를 개산(開山)하였다.

 

문수산 축서사 일주문

 

축서사란 이름은 독수리 축(鷲), 깃들 서(棲), 독수리가 사는 절이라는 뜻이다.

독수리는 지혜를 뜻하니 곧 문수보살님이 나투신 절이라는 의미이다.

험준한 뒷 산세가 풍수지리학상으로 독수리 형국이어서 축서사라 하였다고도 한다.

 

 

 

보탑성전 누마루 아래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걸려 있다.

 

슬기롭게 사는 길

불자야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며 웃는 얼굴로 즐겁고 명랑하게 살아라. 비록 생활이 어렵고 괴롭더라도 행복의 그림을 그려라. 그린 것처럼 현실로 다가오리라. 인생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곤란은 그림자같이 따르는 것 참고 견디면 복이 되리라. 오늘 네가 가난하거든 베풀지 않았음을 알며, 네가 병들었거든 덕행이 없었음을 알며, 너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이가 있거든 업신여기고 괴로움을 주었음을 알며, 지금의 고통은 네가 스스로 지어서 받는 것,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랴. 밝은 내일을 바라거든 좋은 씨앗을 심어라. 입은 화의 문이니 지극히 조심하며, 몸으론 바른 행동만 하라. 사람은 모름지기 계율을 생명처럼 여기고, 부정한 것은 원수처럼 대하고, 청렴하고 결백하고 인격은 고상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느니라. 애욕보다 더한 불길이 없고, 성냄보다 더한 독이 없으며, 어리석음보다 더한 파멸이 없느니라. 사람을 대하되 자비와 친절로 예의를 갖추고 신의와 겸손을 잃지 말라. 생활은 검소와 절약을 신조로 삼고,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인색하지만 남에게는 희생과 봉사의 미덕을 쌓아야 하느니라. 보시하는 만큼 즐거움이 없으며, 기쁨을 주는 만큼 보람된 일이 없으며, 용서하는 만큼 아름다움이 없는 줄 알라. 미물이라도 내 몸처럼 보호하며 어질고 착하게 살아가면 정토가 가까우리라. 성공을 바라거든 근면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일하라. 어떤 환경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일념으로 수행하며 살아가라. 인생은 노력한 만큼 가치가 있느니라. 생애의 진정한 행복은 도에서만 느낄 수 있고, 도를 떠난 인생을 논할 수 없음을 알라. 청춘을 불사르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쳐도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으리. 무상은 신속하고 오늘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 백 년을 부끄럽게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이 살아라.

문수산 축서사

 

 

 

벽에 걸려 있는 글을 읽고 뒤를 돌아보니 일망무제의 소백산맥 연봉들이 펼쳐져 있다.

시원한 눈 맛.

최순우의 '부석사 무량수전'글이 생각난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 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 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이 축서사는 의상대사가 부석사 보다 먼저 창건한 절이니 부석사의 큰집에 해당된다.

 

 

 

보탑성전 주련의 글을 읽는다

摩訶大法王           위대하고 크신 부처님께서는
無短亦无長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으며
本來非黑白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지만
隨處現靑黃           곳에 따라 푸르고 누른빛을 띠시네.

 

 

 

보탑성전 누 아래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니, 병풍처럼 둘러쳐진 금강소나무의 푸른빛을 배경으로 순백색 사리탑이 우뚝 솟아 있다.

높이가 15.5m에 달하는 아(兒) 자형 한옥식 오 층 석탑이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니, 섬세하고도 화려하게 조각된 사리탑이다.

보노라면 경탄이 절로 난다.

 

"구석구석 눈길 닿는 곳마다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축서사 사리탑에는 드물고도 귀한 인연으로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소중히 모셔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앞에 서면 화려한 아름다움은 물론, 마치 2,500여 년 전 부처님을 친견하듯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하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때로는 투명하게 때로는 순백색으로, 축서서 사리탑은 때에 따라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 사리탑에는 괘불탱화(보물제 1379호) 복장낭에서 발견된 적사리 2과와 한 불자가 미얀마 박물관에서 기증받은 석가모니 진신사리 112 과가 모셔져 있다.

 

 

 

 

 

 

 

 

 

축서사 사리탑 뒤로 대웅전과  금강소나무 숲이 보인다.

 

  

 

                                     

선열당(禪悅堂) 주련을 옮겨 본다.

南坡猶自草靑靑      남쪽 언덕엔 아직도 풀이 푸른데
一葉井梧秋信早       우물가 오동 잎 떨어져 가을임을 알리네.
雁拖秋色過衡陽       기러기는 가을을 몰고 형 양을 지나니
無暇轉頭關外路       한가로이 머리 들어 밖에 길 볼 여가 없네.
白日靑天雷影忙       밝은 날 푸른 하늘에는 천동으로 바쁜데
南山石虎吐寒霞       남산의 돌 호랑이 찬 안개를 토하고
北海泥牛湧碧波       북해의 진흙 소 푸른 파도에서 솟는데
最後別調誰善應       최후의 특별한 곡조에 누가 능히 화답하랴.

 

 

 

심검당(尋劍堂)의 주련도 옮겨 본다.

雲山說有千萬事       운산서 설한 말 가운데 천만가지 일 다 있고

海天廣茫本無言         바다와 하늘 아득히 넓어도 본래 말이 없네.

黃鶯上樹千里目       나무 위에 노란 꾀꼬리는 천리를 보고

鶴入田地心豊富         전답으로 들어가는 학의 마음은 풍요롭네.

色求有色還非實         색을 구해 색이 있어도 본래 실체가 없는 것

心到無心始乃明         마음은 무심에 도달해야 비로소 밝아지니

行李整收方丈入         행장을 정리하여 方丈(방장)을 찾아오라

天雲散盡日輪晴         하늘의 구름 다 사라지고 해는 밝으리라.

 

대웅전 단청은 화려하고 꽃살문도 아름답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문수보살 관세음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셨다.

 

 

대웅전 주련을 옮겨 본다. 

萬代輪王三界主     만대의 윤왕이시고 삼계의 주인이신 부처님
佛身普遍十方中     부처님은 몸소 온 세상에 고루 나타나셔
廣大願雲恒不盡     넓고 크신 서원 항상 그치지 않으시니
三世如來一體同     삼세의 여래께서 모두가 다 같으시네.
雙林示滅幾千秋    쌍림에서 열반을 보이시고 몇 세월이 흘렀던고
汪洋覺海妙難窮     바다같이 넓은 깨달음 묘해서 다 알기 어렵네.

 

 

 

 

 

 

 

 

 

 

 

 

 

 

 

 

 

 

 

안에서 바라 본 대웅전 창호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보광전(普光殿)에는, 신라 문무왕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광배의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이 모셔져 있고, 그 앞뜰에는 고려시대 전기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등이 서 있다.

 

고요한 분위가 감도는 얼굴에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불

 

 

화려한 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목조광배(木造光背)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 (奉化 鷲棲寺 石造毘盧遮那佛坐像 및 木造光背)

보물  제995호

 

문수산(文殊山) 정상 가까이에 자리 잡은 축서사에 모셔져 있지만,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불상의 높이는 1.08m이며, 얼굴은 가는 눈, 꼭 다문 입, 반듯하고 넓은 신체에서 고요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주름이 평행 계단식으로 표현되어 다소 형식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릎 사이의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진 주름은 다른 불상들의 U자형과는 달리 물결무늬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평행 계단식 옷주름과 함께 9세기 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대좌(臺座)는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8각으로 상·중·하대를 모두 갖추고 있다. 하대에는 각 면에 사자 1구씩을 새겼고, 중대에는 손을 모으고 있는 인물상을, 상대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현재 불상 뒤에 나무로 만들어진 광배(光背)가 있는데 여기에는 화려한 꽃무늬와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원래의 돌로 만든 광배는 윗부분만 남아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에 많이 만들어졌던 비로자나불상 가운데 하나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244호)과 동일한 특징을 보여주어 당시 조각수법과 신앙형태를 알 수 있다. 석탑기에 의해 9세기 후반에 만들었다는 절대연대가 밝혀져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

 

  축서사석등 (鷲棲寺石燈)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8호

 

축서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8각 석등으로,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에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겼는데, 꽃잎의 끝마다 작은 꽃조각이 달려 있다.

그 위에 세운 가운데기둥은 약간 짧은 편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을 이어주고 있다. 윗받침돌의 밑면에는 아래와 대칭되는 연꽃조각을 두었다. 화사석은 네 곳에 창을 두어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하였는데, 짧은 가운데기둥에 비해 몸집이 커 보여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고 있다. 심하게 부서진 지붕돌은 특별한 조각을 두지 않았고, 꼭대기에는 지붕을 축소한 듯한 머리장식을 올려놓았는데 여덟 귀퉁이마다 조그마한 꽃조각이 솟아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

 

보광전과 축서사 석등

 

보광전에 석양이 길게 비추인다.

앞 뜰에 서 있는 석등에도 석양이 길게 비추인다.

석등의 긴 그림자가 보광전 앞 뜰에 그려진다.

보광전에 들어 비로자나불에 삼배하고 우러른다.

흰 채색을 한 석조비로자나불은 창호를 통해 들어온 석양빛으로  환히 빛나고 있다.

고요하고 온화한 미소가 가득히 번져 나온다.

아! 아름다운 불상.

석양빛을 받을 때 이 비로자나불상은 아름다움이 완성된다.

비로자나불 앞에 가부좌하고 앉아 눈을 감고 고요히 침잠한다.

 

석양빛을 받으며 서 있는 석등

 

보광전 문을 나서 앞 뜰로 내려서니 석등이 석양빛을 받으며 서 있다.

찬찬히 바라보니, 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겼는데 꽃잎의 끝마다 작은 꽃 조각이 달려 있다.

가운데 기둥은 금이 가 있는 것을 때워 놓았다. 

윗 받침돌 밑면에도 연꽃 조각이 있다.

화사석 창 주위에는 작은 구멍이 있으며 군데군데 흠집이 많고, 지붕돌은 심하게 부서져 있다.

꼭대기 머리장식 돌 여덟 귀퉁이마다 작은 꽃조각이 솟아있다.

금이 가고 깨지고 부서지고 흠집이 많은 색 바랜 석등의 모습에서 오랜 세월의 인고를 느낀다.

석양빛을 받고 서 있는 석등에서 천년의 세월을 읽는다.

 

그대 처마에'에의 시가 생각난다.

 

그대 처마에

석여공 스님 


그 절의 광명전 앞에는
돌꽃 잘 마른 석등이
햇살 아래 뜨겁게 서 있었어요
석등은 무엇으로 세상을 밝히나
석등 속을 들여다보았어요
석 등 안에는 어떤 꽃이 세상을 밝히나
들여다보았어요
기름등잔 하나 없이 세상의 먼지만 날아 앉아
거기 천 년 부스러진 곳에 몸 붙인
돌꽃만 있었어요
마음 없이 세상을 밝힌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요
어느 날 내 안에 피어나는 마음이
꽃처럼 환하면 그때
돌아보면 석 등 안에서도
은돌꽃 금돌꽃
그런 돌꽃이 피어나는 것인지
아무 말도 건네주지 않는 빈 꽃이어요
아직도 저 석등이 무엇으로 세상을 밝히는지 몰라요
다만 아는 것은
내 마음 환한 것 따라 등불도 환하다는 것뿐
그대 사는 처마에 달아드리고 싶은
마음등이라는 것뿐

 

 

보광전 주련을 보며 뜻을 새겨 본다.

報化非眞了妄緣      보신과 화신은 진실이 아니고 거짓된 인연이요,

法身淸淨廣無邊      법신은 청정해서 가없이 넓도다.
千江有水千江月      천강에 물이 있으니 천강에 달이 뜨고

萬里無雲萬里天      만리에 구름이 없으니 만리가 하늘이더라.

 

하늘에 있는 달은 하나이지만  수 없이 많은 천 개의 강마다 달이 뜬다.

만리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면 만리 그대로가 하늘이다.

 

 

 

이제 해는 소백산 연봉너머로 지며 황홀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석양을 끌어다 석등에 불을 밝힌다.

대웅전과 보광전 뜨락을 오가며 일망무제 소백산 연봉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황홀감에 젖는다.

 

지은 해로 석등의 불을 밝혔다

 

 

 

 

 

 

 

 

 

 

 

 

저녁 공양을 하러 가는 길에 바라보니 막 해가 넘어가고 있다.

 

 

 

초승달이 외로이 떠 있다

 

 

저녁예불 가는 캄캄한 산중의 하늘엔 초승달이 외로이 떠 있다.

별들이 보석을 뿌려 놓은 듯 초롱초롱 히 빛나고 있다.

헤일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바로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 

장엄한 저녁예불을 드린다.

 

숙소에 든다.

벽에는 간짓대를 잘라 두 끝에 끈을 달아 벽에 달아 매어둔 횃대가 있어 어릴 적 시골 고향집이 생각나게 한다.

 

 

 

오늘 무던히도 돌아다녔다.

몸은 고달프나 잠이 쉬이 들지 않는다.

전전반측하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목탁소리에 잠이 깬다.

새벽 3시

새벽예불을 위해 일어나 밖을 나서니, 깜깜한 사위 적막공산 밤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머리가 쇄락하다. 

가볍게 발을 놀려 법당에 들어 가부좌하고 앉아 눈을 감고 고요히 종성을 듣는다.

 

도량청정무하예 이른 새벽 스님들이 쓸어 놓은 도량은 티끌 한 점 없이 청정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