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 연못 속에 피어 오른 성혈사 나한전

2011. 10. 6. 23:32문화유적 답사기/이백(二白)의 남쪽 자락 영주.봉화

이백(二白)의 남쪽 자락 영주(榮州). 봉화(奉化) 

(1) 아! 연못 속에 피어 오른 성혈사 나한전(羅漢殿)

  

태백산 소백산 산줄기가 뻗어 내린 남쪽 산자락으로 소백산에서 발원한 남원천 금계천  죽계천  사천의  물줄기가 흘러내려 모여 

평야를 이룬 영주는 북쪽은 단양, 동쪽은 봉화, 서쪽은 문경. 예천에 접해 있다.

이중환이 쓴 인문지리서인 '택리지'에는 小白山  太白山을  이백(二白)이라 일렀고,  二白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은 '신이 알려준 

복된 지역'이라고 하였다,

  

성혈사 가는 길에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을 보기 위해 잠시 들린다.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영주 순흥 벽화고분(榮州 順興 壁畵 古墳)

사적 제313 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산 29-1

 

이 벽화고분은 비봉산 남쪽 산록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던 것을 1985년 대구대학교 박물관과 문화재 관리국이 공동으로 발굴 조사한 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신라 영토에 있는 석실분 중 몇 기 안 되는 벽화고분 중의 하나로, 무덤의 내부는 널방(玄室)과 입구에서 널방으로 연결된 널길(墓道)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덤이다. 널방의 크기는 동서 약 3.5m, 남북 약 2m, 높이 약 2m 정도로 평면 직사각형의 모양이다. 널방은 거칠게 다듬은 화강암을 이용해 벽에서 천장으로 갈수록 좁아지도록 쌓았으며, 천장은 2개의 큰 돌을 나란히 덮어 마감하였다. 봉분은 지름 14m, 높이 4m인 둥근 모양의 봉토분이다. 무덤 널방의 동쪽 벽면에는 서조(瑞鳥) 그림이, 남쪽 벽면에는 사람과 글씨, 북쪽 벽에는 산과 연꽃, 구름무늬, 서쪽 벽에는 나무와 집, 수문장으로 추정되는 역사가 그려져 있다. 널길의 서쪽 벽면에는 뱀을 손에 잡아 감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동쪽 벽에는 눈을 부릅뜬 힘센 장사의 그림이 있다., 이 무덤은 삼국시대의 회화는 물론, 당시의 종교관, 내세관 그리고 고구려와의 문화교류 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분은 도굴로 인해 몇 점의 토기편만 출토되어 정확한 축조시기를 알 수 없으나, 벽면에 '己未墓像人名'의 묵서명이 남아 있어 6세기 후반경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내문)

순흥 읍내리 고분 모형  진짜 무덤은 이곳에서 500미터 위 비봉산 중턱에 있다.

 

널길 동쪽 벽면의 역사  코는 뭉툭하고 크며 눈이 부리부리한 고구려 벽화에 많이 등장하는 서역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널길 서쪽 벽면의 역사    잠방이 차림의 반나체로 오른손으로 뱀의 목을 왼손으로는 꼬리를 틀어지고 달려 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널방 벽면에 그려져 있는 반절 연화문

 

  

북쪽 벽면에는 산과 신기한 새와 흐르는 듯한 구름과 활짝 핀 연꽃이 그려져 있다.

 

  

동쪽 벽면에는 봉황(원안에 그려졌으므로 까마귀 곧 고구려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새인 삼족오로 보기도 함)이 북쪽을 향해   날개를 펴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서쪽 벽면에는 부채를 든 여자와 담으로 둘러싸인 집 울안에 버드나무가 그려져 있다.

 

  

남쪽 벽면에는 먹으로 쓴  2행 9자 "己未中墓像人名" 글씨와 물고기 모양의 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고분 뒤편 익어 터지는 아주까리 열매

고분 앞의 붉게 익어 가는 감

가을의 정취에 잠시 빠져 든다.

 

 

 

 

소백산 기슭의 유순한 기운이 감도는 순흥

'송림지' 지나 배점리 순흥초교 죽계구곡 입구 삼거리를 지나 성혈사를 향한다.

사과밭 길로 들어선다.

주렁주렁 붉은 사과알들이 가슴속에 알알이 박힌다.

이곳 순흥에 들어선 이후 줄곧 마음이 평화스럽고, 환히 밝아져 예사롭지가 않았다.

 

이중환은 그의 저서인 '택리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예안 안동 순흥 영천 예천 등의 고을은 이백(二白)의 남쪽에 위치하였는데 여기가 신이 알려준 복된 지역이다"라고.

그렇구나.

이백의 남쪽 자락  복된 지역이었음을...

 

 

아직 단청도 하지 않은 새로 지은 누각 아래 돌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聖穴庵'이라는 현판을 단 법당이 두 팔을 벌린 듯 서 있다.

성혈사(聖穴寺)는 성현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는 사찰 남쪽에 있는 굴, 즉 ‘聖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성혈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여지고 있으나, 사찰 창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나한전에 통일 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조비로자나불(石造毘盧舍那佛)을 보아 적어도 9세기 후반 이전에 성혈사가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법당에 들어 부처님께 참배한다.

 

 

 

 

 

 

 

 

 

법당 옆 작은 언덕 위에는 엉성하게 지은 정자가 보이는데 '含湛亭'이라는 편액을 달고 있다.

'즐거움을 머금은 정자'?

작은 연못을 거느리고 있는 운치 있는 정자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돌계단을 오르니,  나무 홈통을 흐르는 물이 연못에 떨어져 파문을 일으킨다.

금붕어가  이리저리 노닐고 있다.

주변 우거진 숲에는 머루와 다래와 익어가고,  산기슭 언덕 위에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팔과 눈처럼 만지송(萬枝松)이 가지를 펼치고 웃으며 서 있다.

 

작은 언덕 위의 함담정(含湛亭)

 

 

함담정(含湛亭) 편액

 

  

함담정 옆의 작은 연못

 

 

함담정에서 바라 본 만지송(萬枝松)

 

산신각에 오른다.

산신탱화 앞에는 이채롭게도 목각한 산신상이 또 모셔져 있는데 아름답고 친근감이 간다.

눈을 동그랗게 뜬 얼굴 표정이 귀여운 호랑이 등에 올라앉은 흰 눈썹, 하얀 긴 수염을 기른 백발의 산신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약간 윗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친근감을 느낀다.

또한, 오른손에 큰 붓을 들었고, 양손 위로는 긴 실타래가 올려져 있다.

산신상 좌우에 시립 한 동자가 서 있는데,  한 동자는 합장하고 머리를 뒤로 한껏 저치고 산신을 올려다보고 있고, 

다른 한 동자는 공양물(과일)을 들고 눈을 감고 고개를 옆으로 지긋이 호랑이에 기대고 있다.

동자의 표정이 천진난만하고 무구하여 모든 시름을 잊게 한다.

 

산신각 뒤로 만지송이 보인다.

 

 

산신탱화와 산신목각상

 

 

이제 나한전 계단을 올라선다.

범상치 않은 특이한 모양의 석등 2기가 보인다.

거북모양을 하고 있는 하대석 위에는 간주석(竿柱石)을 감싸고 있는 한 쌍의 용(龍)이 조각되어 있는데, 머리는 사자의 얼굴인데 매우 친근감이 있다.

이 용은 앙련(仰蓮)의 상대석과 4개의 화창(火窓)이 뚫려있는 화사석(火舍石)을 받치고 있다.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에는 연꽃봉우리 모양의 보주가 올려져 있다. 
석등 2기 중 동측의 석등은 하대석 거북의 머리가 파손되어 떨어져 나갔고, 거북의 등 문양도 희미하다.

 

석등에 관련된 자료가 없어 안타깝다. 

 

나한전 앞의 범상치 않은 예스런 석등으로 인해 나한전이 더욱 눈부시게 다가온다.

석등 뒤로 나한전 꽃살문을 바라보니 머리가 쭈뼛해지며 눈이 시려 온다.

아!   이 눈 맛

 

가운데 어칸은 연못 속의 세계를 표현한 꽃살문이다.

연꽃과 연잎이 가득한 연못에는 물새, 물고기, 개구리, 동자, 용, 새 등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두루미가 물고기를 채기 위해 물속으로 돌진하고, 용은 꿈틀꿈틀 연꽃사이를 누비고 있다.

낚아챈 물고기를 문 물새가 막 비상하기 위해 두 다리를 모아 굽히고 있다. 

물고기를 노리는 두루미 부리를 피하여 황급히 달아나는 물고기 모습이 보이고,

연잎 배 위에 앉은 동자승은 오른 다리를 약간 치켜들고 연줄기 노를 저으며 연꽃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며 연못을 관찰하고 있다.

연잎 위에는 개구리가 오수를 즐기고 있고, 게는 엉금엉금 기어가고, 물고기는 유유히 유영하는 한가로운 연못 풍경도 보인다.

두루미도 유유히, 물고기도 유유히 한가로운 모습도 보인다.

연못의 자연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연꽃에서 태어난 세계, 연화장세계이다.

나한전은 연못 속에 피어오른  '연화장세계'인 것이다.

 

서측 협칸은 육 판화 무늬  꽃살문이고,  동측 협칸 동쪽문은 모란꽃 무늬 꽃살문이다.

모란꽃은 1단계 맨 위 꽃봉오리부터 점차적으로 피어 5단계 맨 아래는 만개한 모란꽃을 조각하였다.

2단계 반개한 모란꽃에는 두 마리의 새가 마주 보며 노래하고 있다.

아마도 이 모란꽃 꽃살문은 수행의 과정을 표현한 듯하고, 부처님 전에 올리는 공양화인 듯하다. 

 

 

 

 

 

영주 성혈사 나한전 (榮州 聖穴寺 羅漢殿)
보물  제832호

 

성혈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지형에 따라 건물을 자연스럽게 배치한 성혈사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곳이다. 임진왜란(1592) 이후 새롭게 지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1984년 수리를 할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 명종 8년(1553)에 처음 지었고 인조 12년(1634)에 다시 지었음을 알 수 있다. 건물 규모는 앞면 3칸·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앞문의 창에 조각을 만들어 장식하였는데, 특히 가운데 칸에서 물고기, 게, 동자상, 연꽃, 새 등의 뛰어난 조각과 공예기술을 엿볼 수 있다  <문화재청>

 

                       

(가) 나한전

 

 

 

 

 

 

 

(나) 석등

범상치 않은 특이한 석등 2기

 

 

 

 

 

 

서측에 있는 석등

 

   

 

 

 

 

동측에 있는 석등     거북머리가 깨어져 없어졌다.

 

  

화사석 화창(火窓)으로 보이는 맞은 편 석등

 

 

 (다) 나한전 꽃살문 

 

  전면 어칸과 양 협칸에 꽃살무늬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좌우 협칸은 문살을 원형으로 구성하고 원 안쪽에는 육 판화(六瓣花) 무늬로 장식하였다.

  동측 협칸은 서측 협칸과 달리 동쪽문에 모란꽃무늬 장식을 덧달았다.

  어칸의 꽃살문은 문살에 조각무늬를 덧붙인 것으로,  문양은 연꽃을 바탕으로 하여 물고기, 물새, 개구리, 동자, 용, 새 등 

  자연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서측 협칸의  육판화(六瓣花) 무늬 꽃살문

 

   

어칸은 연못의 자연세계를 표현한 꽃살문

 

 

물고기를 노리는 두루미 부리를 피하여 물고기가 황급히 달아나고 있다.

 

 

두루미가 물고기를 채기 위하여 물속으로 돌진하고 있고, 용이 연꽃사이를 누비고 있다.

 

  

연잎 배위의 동자가 오른 발을 약간 치껴들고 연줄기 노를 저으며 연꽃세계를 관찰하고 있다.

 

  

연잎 위에는 개구리가 오수를 즐기고 있고, 게는 엉금엉금 기고 ,물고기는 유영하는 한가로눈 모습이다.

 

  

물고기를 입에 문 물새가 막  비상하기 위해 두발을 모두어 굽히고 있다.

 

  

두루미도 유유히 물고기도 유유히.  만개한 연꽃 한쪽의  꽃잎이 제껴져 있다.

 

 

     동측 협칸의 동쪽문,   모란꽃 무늬 꽃살문

모란꽃은 맨위 꽃봉우리 부터 점차적으로 피어 맨아래에는 만개한 모란꽃을 조각하였다.

 

  

2단계 반개한 모란꽃에는 두 마리의 새가 마주보며 노래하고 있다.

 

  

맨 아래  만개한 모란꽃

 

동쪽 문으로 나한전에 들어 부처님과  열여섯 분 나한에 참배한다.

머리 들어 우러르니 결가부좌하고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은 둥근 얼굴에 원만한 미소를 짓고 있다.

불단에는 석고로 조성된 비로자나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16분의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좌우 이름표 붙인 나한상 한분 한분 다가가니, 각자의 개성을 드러낸 다양한 표정과 모습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또한 한결 밝게 한다.

 

16분 나한은 재상의 아들인 빈도라 바라다 바자,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는 가나가바차, 전생의 기억을 아는 가나가 바라타자, 수빈타, 나쿠라,

바다라, 카리카, 바자라푸트라, 중생교화에 힘쓴 지바카, 판타카, 라후라, 나가세나, 안 가다, 바나바시, 아지타, 수다판타카이다.

 

(라) 석조 비로자나불좌상과 16 나한상

 

 

영주 성혈사 나한전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유형문화재 제02호

 

성혈사 나한전 안에 봉안되어 있는 이 불상은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고 지권인을 맺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옷 주름의 표현이 약간 경직되고 형식화된 몸체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후반기(9세기 후반)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릎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윤곽석이 비교적 자연스럽고, 곡선으로 처리된 옷주름 등으로 보아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 불상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대좌는 불단에 가려 있어서 세부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3단으로 된 연화좌인 것은 확실하며, 불상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양손은 파손되어 보수하였고 양 무릎의 끝부분이 약간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안내판)

 

 

 

 

 

 

 

다양한 표정과 모습을 한 나한(羅漢)

 

  

 내부 단청은 퇴색됐으나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가득 달린 연등으로 천정을 잘 볼 수 없지만 나한전 내부의 빛바랜 장엄한 모습에 숙연해진다.

  

(마) 나한전 천장 내부

 

 

 

 

 

 

 

 

 

 

 

 

 

 

(마)  성혈사 전경

 

 

 

 

 

되돌아 걸어 나오니 경내에 염불 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진다.

갈 길 바쁜 나그네의 발을 붙잡는다.

백골단청 누각에 앉아 맞은편 법당에서 울려 나오는 염불 소리를 무념무상 고요한 마음으로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