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인돌, 복분자 길을 걷다

2011. 1. 25. 11:38도보여행기/고창 고인돌 질마재따라 100리길

 

고창 고인돌 질마재  100리 길을 걷다

 

북극의 기습으로 한반도가 꽁꽁 얼어 붙었다.

연일 영하 16-17도의 한파가 몰려와 몸을 잔뜩 움츠러들게 한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내일 부터 호남 서해안 지방에 내리던 눈도 그치고 추위도 다소 누그러질 것이라 한다.

두 해 전 쌓인 눈으로 발목까지 푹푹 빠지며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며 변산반도를 걸었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엄청난 폭설로 길이 두절되어 되돌아 나오기도 했고, 하늘도 땅도 온통 흰색이었던 그날,

걷고 또 걸었던 그 열정의 발걸음과 숨결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는 듯하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것은 도보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걷기의 역사>를 쓴 레베카 솔닛은,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는 움직임은 사유의 움직임을 자극한다.

마음은 일종의 풍경이며 실제로 걷는 것은 마음속을 거니는 한가지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마음 속을 거닐기 위해 사유의 움직임을 자극하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1) 고인돌, 복분자 길을 걷다

     2011. 1.20.  목  맑음

 

 

   

센트럴시티 호남고속터미널에서 07:00발 고창행 버스에 탑승한 후 3시간이 조금 지나니 고창터미널에 도착한다.

죽림리 가는 군내버스로 환승하니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고인돌박물관 앞이다.

버스에 내려 앞을 바라보니 온 산야는 눈으로 덮여있다. 

오늘의 일정상 시간이 충분치 않아 고인돌박물관 관람은 후일에 하기로 하고, 고인돌교를 건넌다.

산기슭에 고인돌이 밀집해 있는 것이 보인다.

1680개 고창 고인돌 유적지에 잠들어 있는 고인돌의 숫자다.

 

 

 

 

"굄돌을 가지고 있는 돌' 고인돌

돌을 고인 돌을 고인돌이라 한다.

순수한 우리나라 말이다.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지만, 묘 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산기슭에 올라 점점이 눈 속에 파묻힌 고인돌 군과 멀리 도산리 상갑리 일원의 산야를 바라본다.

3,000년 세월이 녹아든 점점의 고인돌이 눈을 뒤집어쓰고, 눈 덮인 고창의 넓은 산야를 굽어보고 있다.

 

 

 

 침묵의 이정표
- 고창의 고인돌군에서

권 천 학

 

끝내 열릴 것 같지 않던 어둠의 터널
완강하게 막아서던 빛에 눈멀고
대물려 묵힌 종갓집 간장 같은 침묵이
가슴을 짓눌렀다

 

한 천 년쯤은
살을 털어 물로 보내고
뼈는 갈아 흙으로 보내고
한 천 년쯤은
바람소리 휘휘 감아올리는 귀를 열어
빛의 수레바퀴에 걸려 넘어지는
떫고 시린 세상소리도 들었고
또 한 천 년쯤은
목젖 떨리는 말들을 꿀꺽꿀꺽 삼키며
덮고 누운 흙이불 위에
무덕무덕 들꽃으로 피워 올렸으니

 

이제는
주저앉은 채 말하지 않아도
일어서는 돌, 선돌이 되고
드러누워서도 생사를 떠받치는
굄돌, 고인돌 되어서
들꽃 같았을 한 세상 접고
또 한 천 년쯤 다시 견뎌야 할
한 덩이 침묵의 이정표로 선다

 

 

눈 덮인 산기슭을 오른다.

오베이골로 향하기 위해 매산재를 넘는다.

오베이골은 오방골의 전라도 방언이다.

오방(五方)은 동서남북 중앙의 다섯 방위인데 송암. 매산. 용계. 운곡 등 다섯 갈래 길로 나뉘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눈 덮인 오베이골

나무들은 잎을 모두 버리고 앙상히 침묵하며 서 있다.

400여 평의 생태습지 연못도 눈으로 뒤덮여 있다.

 

 

 

잎을 버린 왕버들이 신비롭게 서 있다.

오베이골 옆 발자국 없는 눈길을 따라 걷는다.

 

 

소망의 종을 쳐 본다.

땡! 땡! 땡 !

허공으로 메아리 져 간다.

 

  

                 

                                        소망의 종 

 

 

오베이골 습지를 벗어나니, 소나무 사이로 시원한 운곡저수지가 나타난다.

새들이 후드득 무리 지어 날아오르더니 멀리 사라진다.

 

雲谷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골이 되는 마을

얼어붙은 물가로 흰 눈이 쌓였고 물가운데는 새들이 무리 지어 앉아 있다.

한 무리의 새들이 날아올라 빙빙 선회하다 산 뒤로 사라진다.

 

 

운곡저수지는 영광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발전 용수 취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운곡천 다리를 건너니 '동양최대고인돌'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뽀드득 소리를 내는 눈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니 산기슭 울울한 소나무 아래에 커다란 돌덩이가 보인다.

표지석에는 "韓國最大 雲谷支石墓'라 새겨져 있다. 높이 5m, 가로길이 7m이고 무게는 300여 톤이다.

3,000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인돌이다.

 

 

 

 

고인돌 뒤에서 고인돌과 같이 눈 덮인 산야를 망연히 굽어 본다.

 

고인돌

염 창 권

 

죽음이 너무나 가벼워서
날아가지 않게 하려고
돌로 눌러 두었다.
그의 귀가 너무 밝아
들억새 서걱대는 소리까지
뼈에 사무칠 것이므로
편안한 잠이 들도록
돌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그대 기다리며
천년을 견딜 수 있겠는가

 

 

커다란 느티나무와 돌탑을 지나 운곡서원을 지난다.

 

 

 

 

운곡저수지를 돌아 나가니 734번 지방도로와 만난다.

눈 쌓인 운곡저수지 옆 도로를 한참 걸어가니 장살비재 이정표가 나온다.

발목까지 빠지는 짐승 발자국만 있는 눈길을 리본을 따라 장살비재를 넘는다.

 

 

 

전망이 툭 트인다.

복분자 농장 뒤로 멀리 선운산이 보인다.

 

 

 

  

수직 절벽의 할머니바위가 보인다.

 

 

 

바  위

유 치 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忘却)하고
흐르는 구름
먼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고창의 젖줄 인천강을 따라 걷는다.

전북 5 대강 중의 하나인 인천강은 고창군과 아산면의 생명수이다.

이 강은 맹매기 샘에서 발원하여 병바위를 거쳐 줄포만으로 흐른다.

길이는 31km이다.

조선 영조 36년 여지도에 水名되었으며, 이 강에는 참게. 은어. 풍천장어. 다슬기가 살고 있다.

얼어붙은 강 눈 덮인 인천강의 설경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조형물인 눈 속의 참게는 마치 하늘로 기어오르는 듯하다.

 

 

  

인천강에 매료되어 걷다 보니 아산초교 입구가 보인다.

 

 

아산초등학교에는 커다란 나무가 운동장가로 서 있는데 참으로 운치가 있다.

학교 뒤로 큰 암봉 두락암이 우뚝 서서 학교를 굽어보고 있어 더욱 분위기를 장중하게 느끼게 한다.

 

 

 

학교 뒤로 돌아가면 병바위로 가는 길이 있다.

묘지 옆길 산기슭을 올라 넘어가니 울울한 소나무와 쭉쭉 뻗은 낙엽송 숲길이 나타난다.

 

 

 

  

병바위가 보인다.

병바위에는 그 운치에 걸맞은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병바위를 비롯해 우뚝 솟은 바위산과 봉우리로 주변경관이 빼어난 이곳은 예로부터 금반옥호(金盤玉壺)와 선인취와(仙人醉臥)의 명당으로 불렸다.

이는 '선인들이 금소반에 술상을 차려놓고 술과 풍류에 취해 누워있는 형상'이라는 뜻으로 그만큼 경치 좋고 풍수 좋은 곳을 뜻한다.

병바위는 선인들이 술에 취해 술병을 거꾸로 엎어놓은 모양을, 인근에 있는 금반등을 금으로 만든 소반을, 전자암은 어류와 육류 안주를 뜻한다고 한다.

 

 

 

 

 

눈 쌓인 산길을 걸어오다 보니 지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체된 모양이다. 반암마을로 들어서며 뒤돌아 보니 병바위 뒤 구름 속에 저녁 해가 지기 시작한다.

 

 

 

반암마을은 신선이 놀러 왔다는 선인취와(仙人醉臥) 전설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지금도 병바위는 신선이 마시다 남은 술이 인천강으로 끊임없이 흘러들고 있다.

반암교위에서 걸어온 길을 바라본다.

인천강에 노을이 지고 있다.

어둑어둑해지는 길을 부지런히 걸어 선운사 입구 삼인리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지고 깜깜하다.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푼다.

몸을 움직이기 싫어질 정도로 피곤하여야 여행자는 잠자리에 들 때 만족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