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창평들과 슬로시티를 걷다

2009. 12. 25. 14:25도보여행기/원림과 정자문화의 담양을 찾다

 

(2) 창평들과 슬로시티를 걷다    

      2009.12.22  ()   맑음

 

 

 

 

 

새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깜깜하다. 벌써. 아침 7시인데도

7시 20분 숙소를 출발하여 어둑어둑한 길을 걷는다.

논밭에는 잔설이 남아 싸늘하게 하얀빛을 토해내고 있다.

찬기운이 도는 길을 걸어 대나무박물관으로 향한다.

오늘이 동지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서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고 한다.
이날이 지나면 하루 낮 길이가 1 분씩 길어진다 한다.

금년의 동지시는 2009 1222 02:47분이다.

이 시각부터 음의 기운에서 양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이다.

겨울의 최정점에 이르렀는데 실은 이때부터 양의 기운이 싹튼다 한다.

동짓달 긴긴밤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동지팥죽 먹던 기억이 난다.

따끈하게 덮혀진 구들목 방에서 팥죽과 같이 먹던 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가 생각난다.

그때에는 눈도 많이 내렸었지.

강아지 좋아라 뺑뺑 돌며 뛰어다니고

얼음을 지치다 방에 돌아와 꽁꽁 언 손 녹이던 빨간 화롯불이 생각난다.

 

 눈 오는 밤에 

              김 용 호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아.`.`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왕대

 

 

맹종죽

 

   

오죽

 

       

해장죽

 

     

금죽

 

       

업평죽

 

 

조릿대

 

                                       

한국대나무박물관 옆길로 걸어간다.

 

 

이 들길을 걸어가,  들길 저 끝 오례천을 건너면 면앙정이 있다.

들에는 잔설이 햇빛에 빛나고 있다.

잔설이 남아 있는 우측 넓은 들판 너머 저 멀리  삼인산과 병풍산이 바라 보인다.

                

삼인산(564m)은 사람 '人'자 3개를 겹쳐놓은 형국의 산이다.

 

 

삼인산

 

    

 

 

들을 걷는다. 텅 빈 들을 보며 텅빈 들에서 들려 오는 소리없는 소리를 듣는다.

 

 

메마른 벼밑동만 있는 텅빈 들판에서 봄을 잉태하는 모습을 본다.

상념 속에 길을 걷다 보니 벌써 오례천을 건넌다.

 

                        

 

 

오례천 대추교를  건너 잔설이 남아 있는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걸아간다.

제월리 서봉마을 앞을 지난다.

제월봉 기슭에 면앙정 표지석이 보이고 면앙정을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길 오른편으로는 대숲이 울울하다. 댓잎이 사각거리는 소리는 낸다.

 

 

면앙정

 

 

제월봉의 산자락이 내려오다 갑자기 용머리 같이 쳐든 언덕에 면앙정이 있다.

"면앙정은 정자의 이름이면서 송순의 호이기도 하다. 면앙이란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사심이나 꾸밈이 없음을 말한다.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던 그는 김안로 일파가 세력을 잡자 고향으로 돌아와 뒷산에 정자를 짓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 3년여 은거,  김안로 일파가 실각하자 다시 조정에 나아가 몇 차례 부침을 겪으면서도 77세에 의정부 우참찬에 이르기까지 관직생활을 했다. 은퇴 후 9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면앙정에 머물며 많은 가사를 남겼다. 또한 김인후, 임억령, 고경명, 정철, 임제, 양산보, 김성원, 기대승, 박순 등이 좋은 경치와 노학자를 찾아 이곳을 드나들며 시 짓기를 배우고 즐겼다. 면앙정이 호남 제일의 가단을 이루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송순이 지은 '면앙정가'는 면앙정 주변의 산수 경개와 계절에 따른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며 즐긴 것을 노래한 가사이다.

면앙정가는 정극인의 '상춘곡'과 더불어 호남가사문학의 원류이며, 정철의 '성산별곡'에 영향을 미쳤다 한다.

면앙정을 내려와 887번 도로를 건너 봉산을 지나고, 연동리 연동로터리에서 29번 도로로 진입하여 걷는다.

조금 걸어 유산 교을 건너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왼쪽 큰 행길 옆 언덕 위에 송강정이 보인다.

 

                        

송강정

 

 

  

 

      

 

 

송강정(松江亭)은 조선 선조 17년 송강 정철이 대사헌을 지내다 당시의 동인과 서인의 싸움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후 창평에 내려와 세운 것이다.  죽록정을 고쳐지어 송강정이라 일컬었다. 정면에는 송강정, 측면에는 죽록정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송강가사 중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지은 산실이 바로 이곳이다.                 

 

사미인곡을 옮겨 본다.

 

이 몸이 태어날 때에 임을 따라 태어나니,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인연이며 이 또한 하늘이 어찌 모를 일이던가?
나는 오직 젊어 있고, 임은 오직 나를 사랑하시니,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없다.

 

평생에 원하되 임과 함께 살아가려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엊그제에는 임을 모시고 광한전에 올라 있었더니,
그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에 내려왔느냐?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꼬?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하는구나.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하구나.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이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꺾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꽃잎이 지고 새 잎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비단 포장은 쓸쓸히 걸렸고, 수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 비어 있다.
연꽃무늬가 있는 방장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길던고?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실을 풀어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앉혀 두고,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고 험하구나.
천 리 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갈꼬?
가거든 열어 두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

 

하룻밤 사이의 서리 내릴 무렵에 기러기 울며 날아갈 때,
높다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알로 만든 발을 걷으니,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임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임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을 비추어,
깊은 산골짜기에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천지가 겨울의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의 날아감도 끊어져 있다.
소상강 남쪽 둔덕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따뜻한 봄기운을 부치어 내어 임 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임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 올려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청사초롱을 걸어둔 옆에 자개로 수놓은 공후라는 악기를 놓아 두고,
꿈에서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바치고 기대어 있으니,
원앙새를 수 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이 밤은 언제나 새울꼬?

 

하루도 열두 때, 한 달도 서른 날,
잠시라도 임 생각을 말아 가지고 이 시름을 잊으려 하여도
마음속에 맺혀 있어 뼛속까지 사무쳤으니,
편작과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아, 내 병이야 이 임의 탓이로다.
차라리 사라져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향기가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임께서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 송강가사(松江歌辭) 성주본(星州本)>

 

 

 

 

창평을 가기 위해 차가 분주히 다니는 길을 피해 한적한  창평들을 걷는 마을길을 택하기로 한다.

도보여행은 가급적 차가 다니지 않는 마을 길을 걷는 것이 좋다. 

증암천을 건너기 위해 유산 교을 다시 건너 유산리로 향한다.

88 고속국도 토끼굴을 통과하여 부동마을로 들어섰다 길을 잘못 잡아 되돌아 나와  88고속국도 앞에서 좌측길로 들어선다.

성덕마을을 지나고 절산사거리를 지난다.

연화촌을 지나 연화교를 건너니 삼거리다.

우측 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걸어가니 88 고속국도와 다시 만난다. 고속국도밑 토끼굴을 지나니 창평천 다리를 건너니 창평시장이다.

 

                        

 

 

이 일대가 바로 창평 국밥촌이다.

시각이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침 7시 20분에 출발해 이곳까지 6시간 40분이 걸렸다.

하루 한 끼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창평전통시장 내 '시장국밥집'은 3대가 80년 동안 국밥집을 해온 원조 국밥집이다.

'따로국밥'에 죽엽탁주를 주문하여 시장기를 달랜다.

 

창평 슬로시티를 걷고 나면 오늘의 도보여행을 끝마쳐야 할 것 같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이기 때문이다.

 

                        

 

 

창평파출소 옆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첨탑교회가 보이고, '차 없는 거리 조성, 다 함께 참여합시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아름다운 담장길을 걸어간다.

              

 

 

 

 

고재선 가옥은 개방되어 있다.

 

고재선 가옥

 

 

 

 

        

슬로시티 이곳저곳 골목길을 걸어본다.

한옥 고택의 정취를 느껴본다.

 

                        

 

 

 

 

슬로시티를 둘러보고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까지 걸어가 보기로 한다.

명옥헌원림을 향하여 걸어간다.

창평시장 앞을 지난다.

의항리를 지나  한참을 걸어가니 오강리다. 그린모텔이 보인다.

시각은 오후 4시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배낭을 풀고 하루 유숙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