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담양읍 석당간과 오층석탑을 찾아서

2009. 12. 25. 13:01도보여행기/원림과 정자문화의 담양을 찾다

죽향의 담양을 가다

 

 

 

(1) 담양읍 석당간과 오 층 석탑을 찾아서

     2009. 12. 21. (월)  맑음

 

대밭이, 우리나라 대밭 면적의 4 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대의 고장 담양은, "북쪽으로는 전북의 순창군,동쪽으로는 곡성군, 서쪽으로는 광주시와 장성군, 남쪽으로는 화순군과 닿아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땅이였으며 백제와 신라를 거쳐 고려 성종 14년(995)부터 담주라 불리다가 그 후 담양으로 개칭되었다. 담양의 서북쪽은 노령산맥의 갈래로 추월산이 솟는 등 산지를 이루고 동남쪽 또한 무등산과 잇닿은 산들이 이어진다. 그 골짜기마다에서 흘러나온 물길들이 담양읍을 감돌고 수북,대전,봉산,창평,고서 등을 고샅고샅 적셔서 기름진 들판으로 만들고는 영산강을 이루어 남서쪽으로 빠진다.

그 덕에 예전부터 담양땅에는 큰 지주가 많았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봉건 시대의 식자층이 꽤 두텁게 형성되었다. 중앙 정계로 나아갔던 그들은 나이 들어 벼슬에서 물러나거나,더 흔하게는 16세기 조선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화의 와중에 권력에서 밀려나 고향으로 돌와와서는 각자의 연고에 따라 이곳 저곳에 정자와 원림을 꾸리고 자연에 묻혀 한 세월을 보냈다. 담양군 고서면과 봉산면 그리고 남면 일대에 점점이 흩어진 면앙정. 송강정. 명옥현. 식영정. 소쇄원. 독수정 등 그들이 이룩해 놓은 정자와 원림,별서들은 잇닿은 무등산 북쪽 자락의 취가정. 환벽당. 풍암정과 더불어 일대 정자문화권을 이룬다. 그 정자와 원림들은 한거와 수양과 은둔의 공간이면서 학문과 세상 일을 논하는 토론의 장이 되기도 했고, 또 선비들이 모이는 곳이었던 만큼 자연스럽게 문학의 산실이 되었다. 요컨대 그것들은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총체적인 문화활동의 터전으로, 그 위치나 꾸밈새는 그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또렷이 반영하고 있다." <한구문화유산답사에서>

 

 

아침 느직히, 호남고속터미널에서 10:10분발 담양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나른한 일상에서 벗어난다.

감았던 눈을 떠보니 차창밖으로 보이는 산야에는 흰 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다.

백암산 능선은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담양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13:40분 담양터미널에 도착한다.

 

배낭을 메고 죽녹원을 향하여 걸음을 떼어 놓는다.

관방제림 입구를 지나 향교교를 걸어 영산강을 건넌다.

죽녹원 입구에는 관광버스가 두 대가 서 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다리 옆에 '댓잎 호떡'을 팔고 있다.

댓잎을 갈아 넣어서 반죽하였다고 한다. 3개에 2,000원이다.

종이컵에 한 개씩 넣어 준다. 댓잎 호떡을 입안에 넣으니 따끈한 죽향이 느껴진다.

죽녹원엔 흰눈이 쌓여 있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걷는다.

겨울에도 푸른 잎을 지니고 있는 대나무

곧은 모양과 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아 지조 절개 강직을 상징하는 나무다.

쭉쭉 뻗어 오른 푸른 대나무 댓잎 사이로 태양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다.

사각거리는 댓잎의 소리....

눈이 시원해 지고,시원해지고, 마음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쇄락해진다.

쌓인 흰 눈이 푸른 대나무를 더욱 푸르게 만들고 있다.

                

 

            

 

              

 

         

 

 

상큼한 대밭을 이리저리 돌며 죽향에 빠져 본다.

                                      

대숲에 서서 

             신 석 정

대숲으로 간다
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자욱한 밤안개에 벌레소리 젖어 흐르고
벌레소리에 푸른 달빛이 배어 흐르고

 

대숲은 좋더라
성글어 좋더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더라

 

꽃가루 날리듯 흥건히 드는 달빛에
기적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

 

 오우가-죽-

 윤 선 도

                                   

나모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곳 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사시에 프로니 그를 됴하 하노라

 

                        

추월산

 

 

한 모롱이에서 추월산이 보인다.

추월산은 전남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산봉우리가 보름달에 맞닿을 정도로 높다는 의미이고, 산 능선이 스님이 누워있는 형상이다.

진귀종의 추월산 난이 자생하고 있고 노송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고 한다.

향교교를 다시 건너 흰 눈이 쌓인 관방제림 길을 걷는다.

200년이 넘은 팽나무. 느티나무. 푸조나무 등이 흰 눈을 배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1.2km 관방제림 구간 안의 나무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사브작 사브작 눈 길을 걷는다.  영산강 천변길을 걷는다.

우측으로 남산 팔각정이 보인다. 무지개를 그린 다리를 지나고, 추성경기장을 지난다.

                    

 

 

관방제림이 끝난다.

조금 걸어가니 장승들이 우뚝우뚝 서 있다.

토끼굴을 지난다.

학동리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나타난다. 

와! 나직한 탄성이 나온다.

거대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다.

              

거대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석양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석양에 물드는 관방제림길을 되돌아 나온다.

                     

 

 

담양군청을 향하여 길을 잡는다.

석당간과 오 층 석탑을 찾아 나선다.

군청을 지나니 앞쪽 멀리 오 층 석탑이 보인다.

                  

오층 석탑은 보물 제506호

 

 

담양읍 지침리 오층 석탑은 보물 제506호로, 백제계 탑의 특성을 잘 간직한 고려 시대의 탑이다.

2층 이상의 몸돌 아래에는 판석이 하나씩 끼워져 있는데, 이것은 고려 시대 탑에서 볼 수 있는 특색이다.

처마는 경사졌으며, 처마 밑은 수평을 이루다가 모서리에 이르러 가볍게 들려 올라갔고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높이가 7m이고 차분한 안정감을 주는 탑이다. 

              

 

 

논밭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오 층 석탑뒤로 석양이 지고 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붉게 물드는 석양 속의 석탑을 바라본다.

 

석당간이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갔다 왔다 한다.

행인에게 물어보아도 잘 알지를 못한다.

오층 석탑 앞 삼거리 건너편 큰길 바로 앞에 있는 것을 한 참 후에야 발견한다.

 

                        

석당간 (보물 제505호)

 

 

보물 제505호로 지정된 담양읍 객사리 석당간은,

"장방형 단층 기단 위에 장방형의 굄을 둔 후 그 위에 당간과 지주를 세웠다. 당간의 높이는 15m에 이르고 지주의 높이는 2.5m이다. 네모진 두 지주가 80cm의 간격을 두고 남북으로 마주 서 있고 그 사이에 당간이 끼워져 있다. 당간의 아랫부분은 팔각 돌기둥 세 개를 끝부분을 절반씩 깎아 내고 맞붙여 연결한 후, 구멍을 뚫고 지름쇠를 건너지르고 쇠테를 둘러 고정시켰으며, 그 위에 쇠로 된 원형의 당간을 이어 붙여 올렸다. 꼭대기에는 둥근 보륜이 얹히고 그 테두리에 풍경과 같은 방울이 달렸는데 지금은 두 개가 남아 있다. 맨 위에는 삼지창 모양의 장식이 달렸다."

 

이 당간은 기단과 지주 당간 보륜등의 장식까지도 잘 남아 있어서 조선 시대의 당간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석양이 물들 때 찾은 담양읍 오 층 석탑과 석당간은 나에게 충분한 감동을 선물했다.

어두워진 담양 군청 앞 길을 걸어간다.

음식점에서 죽순된장찌개를 주문한다.

된장찌개에 들어 있는,  곧음. 지조. 푸르름의 상징인 대나무 축소판 죽순을 먹으려니 괜히 면구스럽다.

항상 곧은 마음과  항시 푸르름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본다.

저녁을 먹은 후 바로 옆 '대나무이야기"숙소에서 배낭을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