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석사를 찾다

2009. 9. 26. 07:53도보여행기/선비의 고장 영주를 찾다

부석사 템플스테이

부석사 절 주차장까지 차로 오른 후, 부석사 경내로 들어선다.

옛적부터 마음에 담고 있었던 부석사를, 오늘 아내와 같이 찾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종무소 앞 좌우로 서 있는 석탑 앞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돌계단 너머 높은 석축단 위에 "봉황산 부석사" 현판이 걸린 고색창연한 2층 누각 범종루가 우리를  한참 굽어보며 반겨주고 있다.

종무소에 들려 눈 푸른 스님께 일박을 청하니 흔쾌히 응락하신다.

 

범종루

 

이제 비는 그쳤지만 구름은 여전히 조화를 부리고 있다.

돌계단을 밟고 석축단 위 범종루를 지나니,  일직선상이 아니고 각도가 꺾인 곳에 2층 누각이 보인다.

1층 현판은 안양문, 2층 현판은 부석사라 쓰여있다.

 

 

 

돌계단을 밟고 안양문을 통과하니 석등이 나타나고 그 뒤로 무량수전이 보인다.  

무량수전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안양문

 

석등과 무량수전

 

무량수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머무를 때 쓴 글씨라 한다

    

무량수전의  아미타불

 

석등 (국보 제17호 )

 

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 후반경에 건조된 목조 건축물로 대한민국 국보 제18호다.

부석사의 본전으로 보처없이 화엄도량에 서방극락세계의 주불인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신라형식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초석을 다듬어 놓고 그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주심포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목조 건물로서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안양루에서 앞을 바라보니, 시원하게 틔어 있다.

소백연봉은 피어 오르는 구름 속에 꽁꽁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량수전 옆으로 돌아가니 "부석사" 이름을 갖게 한 유명한 설화를 간직한 "부석(浮石)이 있다.

 

부석(浮石)

 

무량수전앞을 지나 삼층석탑으로 향한다.

많은 참배객들이 탑돌이를 하고 내려간다.

 

3층석탑(보물 제249호)

 

 

3층석탑(보물 제249호)

삼층석탑 앞에서 앞을 바라보니 무량수전과 안양루가  보이고 전각 지붕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그 너머로 소백연봉이 구름에 잠겨 보일 듯 마둣 저 멀리 아스라하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저녁예불에 참여하기 위해 사박사박 걸어 무량수전에 든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고려시대에 조성한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한다.

불상을 동향으로 배치하고 내부의 列柱를 통하여 아미타여래를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장엄하고 깊이 감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대들보 위쪽으로 천장을 막지않아 지붕 가구가 잘 보인다. 굵고 가늘고  길고 짧은 각각의 부재들이 서로 조화 있게 짜 맞춰진 모습은 오랫동안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무량수전 내부는 아미타불의 서쪽 배치로 내부의 공간이 길게 되어 깊이가 있어 장엄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배흘림기둥이 늘어 서 있는 사이로 보이는 아미타불은 한층 더 장엄해 보인다. 천장을 막지 않아 머리위가 높아 툭 트인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부처님께 삼배하고 방석 위에 가부좌한다.

고요히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힌다.

 

스님이 소종을 치며 종송을 한다.

"문종성번뇌단  (종소리 듣고 번뇌를 끊자)

지혜장보리생  (지혜를 길러 보리의 마음을 낼지니)

이지옥출삼계  (지옥을 여의고 삼계의 고통을 벗어나)

원성불도중생" (원컨대 부처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여라)

......

법고가 울린다. 흥겹고 장엄하게 법고가 울린다. 지상계 중생의 해탈을 위하여

목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수중계 중생의 해탈을 위하여

운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허공계 중생의 해탈을 위하여

범종이 울린다. 가슴에 여울지며 범종이 울려 퍼진다. 지옥계 중생의 해탈을 위하여

33회 범종을 치는 것은 도리천 33천 두루두루 종소리가 울려 퍼져 나가기를 빌기 위함이다.

......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오체투지 하여,

성심으로 절을 올린다.

......

장엄한 예불에 빠져든다.

.....

반야심경을 외우고,

천수경을 외운다.

 

저녁예불을 마치고 아내는 아내의 처소로, 나는 깜깜한 길을 걸어 나의 처소로 향한다.

아내가 내일 아침 공양이 끝날 때까지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묵언(默言)!

 

하늘을 바라보니 초승달이 외로이 떠 있다.

새까만 하늘에는 별들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다.

선원 처소로 돌아오니 방벽에 "默言" 두 글자가 선명히 보인다.

부석사의 밤은 이렇게 깊어만 간다.

 

2009.9.22  화요일 맑음

 

새벽에 눈을 뜨니 2시 37분이다.

눈을 감고 있다 다시 눈을 뜨니 3시가 약간 지나 있다.

목탁 소리와 함께 스님의 도량석 소리가 들린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사박사박 걸어 무량수전에 들어 삼배하고 가부좌한다.

도량석을 끝낸 스님이 들어와 소종을 두드리며 종송을 한다

"원차종성변법계  ( 원하옵나니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퍼져 )

철위유암실개명  ( 철위산의 짙은 어둠 모두 밝아지고 )

삼도이고 파도산  ( 삼도 모든 중생 괴로움 여의고 도산지옥 파괴되어 )

일체중생성정각" ( 모든 중생이 바른 깨달음 얻어지이다 )

..........

 

법고가 울린다.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리드미칼 하게 법고가 울린다.

온몸을 두드려 깨운다.

머리를 두드려 깨운다.

마음을 두드린다.

미몽에서 깨어나라고 해탈을 하라고 장엄하고 힘차게 울린다.

목어, 운 판을 두드린다.

범종이 울린다.

아침에 28번 범종을 치는 것은 욕계. 색계. 무색계 28 천상세계에 종소리가 두루두루 울려 퍼져 나가기를 빌기 위함이다.

.....

다게례를 한 후

.....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을 봉독 한다.

.....

이어 스님의 죽비소리에 맞춰 입정에 든다.

......

종료를 알리는 죽비소리에 선정에서 깨어난다.

반야심경을 외우고,

.....

아침예불을 마친다.

마음을 깨운 상큼한 아침이다.

 

3-40분은 기다려야 일출이 된다.

걸어오지 않고 자동차를 몰고 옆길로 부석사 종무소로 바로 올랐기 때문에 일주문과 천왕문을 보지 못하였다.

부석사는 석축과 돌계단이 특별하다.

"석축의 목적은 사찰을 짓기 위한 땅다짐에 있지만 석축 돌계단 그 자체에도 상징하는 바가 있다. 즉 극락에 이를 수 있는 16가지 방법 중 마지막 세 방법인 3품 3 배관의 9품 만다라를 형상화한 것이다. 천왕문에서 요사체로 오르는 세 계단이 하품단, 여기서 세 계단 오른 범종루까지가 중품단, 범종루에서 세 계단을 올라 안양루 밑을 지나 무량수전 앞마당에 다다르는데, 마지막 계단으로 상품단이다. 이렇게 상징화된 돌계단과 석축을 지나면서 극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부석사를 다시 보기 위해, 아내와 같이 일주문으로 걸어 내려가 일주문부터 다시 걷기 시작한다.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 현판이 걸려있다.

 

 

일주문 뒤로 봉황산이 보인다

"소백산 부석사"라 하지 않고 "태백산 부석사"로 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범종루에는 "봉황산 부석사"라 쓰여 있지 아니한가. 집에 돌아와 지도를 꺼내 살펴보고  자료도 찾아보니, 원래 고치령을 경계로 동쪽은 태백산 서쪽은 소백산으로 나누어졌었는데, 과거 소백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할 때 봉황산까지 포함했던 까닭에 현재에 이르러 소백산 줄기로 착각하게 된 것이다. 원래 봉황산은 태백산 줄기인 것이다.

 

일주문 옆 사과밭을 지나, 

은행나무 길을 걸어 오른다.

미끈하게 솟아 있는 당간지주가 보인다.

 

 

왕문 돌계단을 오른다.

 

 

 

 

9개의 층을 구분하는 석축

사천왕문을 지나 아름다운 석축을 보며 돌계단을 오르니  돌계단과 석축단위에  2층 누각 범종루가 보인다.

범종루에는 법고와 목어와 운 판이 있다. 

범종루 돌계단을 오르고 나니 각도가 꺾인 곳 석축 위 높은 곳에 2층누각 안양루가 보인다.

안양문 돌계단을 걸어 오르니 서방정토 아미타불이 계신 무량수전이다. 극락세계다.

석등 앞에서 뒤를 돌아보니 "안양루" 현판이 걸려있다.

 

삼층석탑 앞에서 다시 또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바라보니, 안양루는 정말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누 인 듯하다.  

소백산 연봉이 아스라이 보인다.

파란 하늘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흰구름이 길게 펼쳐지고 있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시가 걸려 있다.

그 시를 옮겨 본다.

 

 

부석사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처럼 헤엄치네.

백세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있네.

 

 

창건설화를 간직한 선묘 낭자를 모신 선묘각을 둘러본다

 

 

삼층석탑을 지나 뒷산을 오른다.

조사당. 취현암으로 향한다.

도토로가 떨어져 구른다.

정갈하게 비로 쓴 길을 걸어 오른다.

조사당 처마 밑에는 선비화가 자라고 있다.

"선비화(禪扉花)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아나고 잎이 피어 오늘에 이르렀다 하며,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서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다. 이 선비화의 학명은 골담초라고 부른다."

5월에 나비 모양의 노란색 꽃이 피는데 점차 붉은빛을 띤다.

 

조사당

 

철망에 갇혀 있는 선비화

 

응진전(나한전) 자인당을 향하여 산길을 오른다.

후드득! 도토리가 땅에 떨어져 구른다.

이렇게 부석사 템플스테이는 끝나 가고 있다.

 

미술사학자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장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부석사 무량수전" 편은 부석사 무량수전을 군두더기 없이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해 놓았다.읽고 또 읽고 싶은 아름다운 글이기에 그 전문을 여기에 옮겨 본다. 

 

부석사 무량수전                    

최 순 우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관해 온 목조 건축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이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무량수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야말로 석굴암 건축이나 불국사 돌계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니는 참멋, 즉 조상들의 안목과 그 미덕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밖에 없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 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 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이 무량수전 앞에서부터 당간지주가 서 있는 절 밖, 그 넓은 터전을 여러 층단으로 닦으면서 그 마무리로 쌓아 놓은 긴 석축들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이뤄진 것은 아마도 먼 안산이 지니는 겹겹 한 능선의 각도와 조화시키기 위해 풍수사상에서 계산된 계획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석축들의 짜임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나 고려 사람들이 지녔던 자연과 건조물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은 순리의 아름다움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섞어서 높고 긴 석축을 쌓아 올리는 일은 자칫 잔재주에 기울기 마련이지만, 이 부석사 석축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끼 낀 크고 작은 돌들의 모습이 모두 그 석축 속에서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희한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