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법천골의 가을 정취에 흠뻑 빠지다

2014. 10. 28. 08:02나를 찾아 걷는 길/아아 ! 지리 천왕봉

아아!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은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삼신산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세 신산(神山)인 봉래산(蓬來産). 영주산(瀛洲山). 방장산(方丈山)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을 봉래산에, 한라산을 영주산에, 지리산을 방장산에 견주어 인식하였다.

지리산은 백두산에서 흘러온 맥이 남쪽에서 서려 우뚝 솟았다 하여 예로부터 두류산(頭流山)이라 불렀다.

백두산 이남은 두류산의 조종자손(祖宗子孫)이 아닌 것이 없고, 명산대천 가운데 어느 곳도 이 산의 지엽(枝葉)이 아닌 것이 없다.

그리하여 두류산을 우리나라 모든 산의 으뜸으로 인식하였다.

 

유몽인은 유두류 산록(遊頭流山錄)에,

"나는 일찍이 땅의 형세가 동남쪽이 낮고 서북쪽이 높으니, 남쪽 지방 산의 정상이 북쪽 지역 산의 발꿈치보다 낮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또한 두류산이 아무리 명산이라도 우리나라 산을 통틀어볼 때 풍악산이 집대성이 되니, 바다를 본 사람에게 다른 강은 대단찮게 보이듯 이 이 두류산도 단지 한 주먹 돌덩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천왕봉 꼭대기에 올라보니 그 웅장하고 걸출한 것이 우리나라 모든 산의 으뜸이었다. 두류산은 살이 많고 뼈대가 적으니, 더욱 높고 크게 보이는 이유이다. 문장에 비유하면 굴원(屈原)의 글은 애처롭고, 이사(李斯)의 글은 웅장하고, 가의의 글은 분명하고, 사마상여의 글은 풍부하고, 자운의 글은 현묘한데, 사마천의 글이 이를 모두 겸비한 것과 같다. 또한 맹호연의 시는 고상하고, 위응물의 시는 전아 하고, 왕마힐의 시는 공교롭고, 가도의 시는 청아하고, 피일휴의 시는 까다롭고, 이상은의 시는 기이한데, 두자미(杜子美)의 시가 이를 모두 종합한 것과 같다. 지금 살이 많고 뼈대가 적다는 것으로 두류산을 하찮게 평한다면 이는 유사복이 한퇴지의 문장을 똥덩이라고 기롱 한 것과 같다. 이렇게 보는 것이 산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유몽인은 지리산 천왕봉을 올라보고 우리나라 모든 산의 으뜸이라 했으며, 문장에 비유하면 사마천의 글과 같고, 시에 비유하면 두보의 시와 같다 하였다. 사계절마다 마치 성지를 순례하듯 나는 지리산을 오른다.

지리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지리산 길을 수없이 걸어도 지리산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었고 경이로운 길이었다.

 

(1) 법천골의 가을 정취에 흠뻑 빠지다

      2014.10.22

  

중산리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안개비가 내린다. 30분 정도 걸어 오르니 천왕봉 등로 입구다. 

이끼 낀 바위 위에 돌 하나 세워져 있다.

"산을 위해 태어난 山사람 宇天 許萬壽 追慕碑" 다.

돌에 새겨진 비문의 글이 감동적이기에 옮겨 본다.

 

"산을 사랑했기에 산에 들어와 산을 가꾸며 산에 오르는 이의 길잡이가 되어 살다 산의 품에 안긴 이가 있다. 사람들이 일러 산사람이라 했던 그분 우천 허만수 님은 1918년 진주시 옥봉동 태생으로 일본 경도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재학 시 이미 산을 가까이하고자 님은 신살이의 꿈을 이루고자 30여 세에 지리산에 들어와 가없는 신비에 기대 지내며 산을 찾은 이를 위해 등산지도를 만들어 나눠 주기도 하고 대피소나 이정표시판을 세우기도 하고 인명구조에 필요한 데는 다리를 놓는 듯 자연을 진실로 알고 사랑하는 이만이 해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길을 개척해 보였다. 조난자를 찾아 헤매기 20여 년, 조난 직전에 사람들을 구출하거나 목숨을 잃은 이의 시신을 찾아 집으로 돌려보내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안전하게 옮겨 치료한 일 헤아릴 수 없으며, 지리산 발치의 고아들에게 식량을 대어주고 걸인들에게는 노자를 보태어 준 일 또한 이루 헤아릴 수 없으니 위대한 자연에  위대한 품성 있음을 미루어 알게 되지 않는가. 님은 평소에 "변함없는 산의 존엄성은 우리로 하여금 바른 인생관을 낳게 해 준다"라고 말한 대로 몸에 밴 산악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으니, 풀 한 포기나 돌 하나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일이나, 산짐승을 잡아가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되돌려 받아 방생 또는 매장한 일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네 어찌 된 일이랴. 님은 1976년 6월 홀연히 산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으니, 지리 영봉 그 천고의 신비에 하나로 통했음인가. 가까운 이들과 따님 덕임의 말을 들으면 숨을 거둔 곳이 칠선계곡일 것이라는 바, 마지막 님의 모습이 6월 계곡의 철쭉 빛으로 피어오르는 듯하다. 이에 님의 정신과 행적을 잊지 않고 본받고자 이 자리 돌 하나 세워 그 뜻을 이어가려 하는 바이다."

 

산을 사랑했기에 산에 들어와 산을 가꾸며 산에 오르는 이의 길잡이가 되어 살다 산의 품에 안긴 이 우천 허만수

宇天의 산 사랑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산을 위해 태어난 山 사람 宇天 許萬壽 追慕碑

 

안개비를 맞으며 울긋불긋 단풍이 든 지리산에 든다.

마치 온몸이 단풍에 물들어 환해지는 듯하다.

칼바위를 지나 출렁다리를 건너니  천왕봉. 장터목대피소 갈림길이다.

 

뇌성을 지르며 급히 흐르는 법천골의 물소리에 귀가 먹먹하다.

나무뿌리를 적시며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돌부리 산길에도 흐른다.

물 웅덩이, 다리 위에도, 이끼 낀 바위에도, 바위 투성이 산길에도 단풍잎이 떨어져 비에 젖어 있다.

단풍이 빚어내는 지리산의 심산미(深山味)다.

시인 이성선의  '숨은 산'이라는 산시가 떠 오른다.

 

땅바닥에 떨어진

잎사귀를 주워 들다가

그 밑에 작게

고인 물속

산이 숨어 있는 모습

보았다.

 

낙엽 속에

숨은 산

잎사귀 하나가

우주 전체를

가렸구나

    

점점 산길은 가팔라진다.

출렁다리와 철교와 목교를 지나니 지리산의 사막, 죽음의 계곡이라 부르는 너덜지대에 도착한다. 

거북모양의 바위를 보며 홈바위교를 건넌다.

폭포소리가 들린다.

유암폭포가 굉음을 내며 떨어진다.

몸에 이끼를 피운 자기 속을 다 비어낸 나무가 가지 끝에 잎을 달고 있다.

비우고 또 비웠나 보다.

안개비를 맞으며 비에 젖은 단풍이 빚어내는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진 하루다.

법천골의 물소리로 귀가 먹먹한 채 장터목에 도착한다. 

 

칼바위   (劍巖 )

 

 

출렁다리

 

 

계류

 

너덜지대

 

거북바위

 

홈바위교

 

계류

 

단풍

 

자기 속을 비운 나무

 

 

 

유암폭포

 

 

물 웅덩이 속에 산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