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승사 산내암자 윤필암.묘적암을 찾아서

2014. 9. 7. 09:06나를 찾아 걷는 길/한국 불교정화의 씨앗이 움튼 대승사

(2) 대승사 산내암자 潤筆庵. 妙寂庵을 찾아서

      2014.8.29

 비구니 선도량  윤필암

 

윤필암(潤筆庵)은 고려 우왕 6년(1380)에 각관覺寬이 창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1885년 고종의 명으로 창명滄溟이 다시 중건하였다.

1980년 대에 모든 전각을 다시 지어 현재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도량(禪道場)이다.

윤필암의 명칭은 의상대사가 사불산 미면사를 창건하고 원효대사가 인근 10리 거리의 화장사에서 수행할 때 의상대사의 이복동생인 

윤필거사가 토굴을 짓고 거주하며 세 분이 조석으로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윤필암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봉영사를 승가교육의 요람으로 만들고 비구니 율원장을 지낸 묘엄스님(1931-2011)이 출가한 곳이며, 성철스님이 사미니계를 주고

 묘엄이라는 법명을 주었다.

윤필암은 법당인 사불전과 관음전, 산신각, 선불장(禪佛場) 승당이 있고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3층 석탑이 사불전 뒤 암반 위에 있다.

 

암자 오르는 입구에 연못이 있다.

연못에는 화살촉처럼 깊게 파인 둥근 수련 잎으로 가득하고 비단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연못 속에  四佛殿 처마, 파란 하늘, 흰 구름이 들어 있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높이 쌓은 축대 위로 사불전이 보이고 흰 바위와 소나무가 보인다.

암벽과 푸른 소나무가 윤필암을 감싸고 있다.

입구 우측  화단에는 기화요초들이 자라고 있고 '용머리'  세 글자가 쓰인 빗돌이 서 있다.

돌거북의 입에서는 연실 감로수가 흘러나와 돌확을 넘친다. 

 

절 안에 들어서니 관음전 앞 마당가에 꽃범의 꼬리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작은 돌거북이 들어 있는 네모진 돌확에서 솟아난 감로수가 넘치어 둥근 돌확으로 흘러내린다.

네모진 마음을 갈고닦아 둥근 마음으로 만드는 수행의 과정을 웅변해 주고 있다.

돌확 옆으로는 고독. 정숙. 그리움 등의 꽃말을 가진 '선녀가 떨어뜨린 옥비녀 꽃'이라 불리는 옥잠화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어 진리에 대한

그리움을 더하고 있다.

 

사불전 옆 암벽 위에는 삼층석탑이 기웃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부처꽃이 활짝 핀 작은 연못 위의 돌다리를 건너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니 암벽 아래에 사불전이 있다.

四佛殿 편액 아래에 연꽃으로 장식한 큰 창에는 사불암 산봉우리와  푸른 하늘, 흰 구름이 반영되어 마치 외벽화인 듯 착각하게 한다.

주련에는 송나라 소동파의 여동생 蘇小妹가 지은 시가 걸려 있다.

 

月磨銀漢轉成圓

素面舒光照大千 

連譬山山空搾影

孤輪本不落靑天

 

달은 은하수에 굴러서 둥글어졌고

흰 얼굴은 대천세계를 비춘다

산산(원숭이)이가 팔을 이어 부질없이 달 잡으려 하지만

달은 본시 푸른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대천세계를 환히 비추는 밤하늘의 달은 은하수를 구르며 갈고닦은수행으로 둥글어진 것이라고 소소매는 노래한다.

이 시를 빌려 여기가 수행도량임을 빗대고 있다.

 

돌 난간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윤필암 전경과 사불암이 가까이 바라다 보인다.

사불전 뒤에는 높은 암벽과 푸른 소나무, 전각의 처마선이 어울려 아름답다

사불전에 드니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그 자리에는 큰 창을 설치해 四佛岩이 주불이 되게 하였다.

 

사불전과 연못 높이 쌓은축대 위로 사불전이 보이고 흰 바위와 소나무도 보인다.

 

비단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연못 속에 四佛殿 처마,파란 하늘,흰 구름이 들어 있다.

 

 

화단에는 기화요초들이 자라고 있고 '용머리' 글자가 쓰인 빗돌이 서 있다.

 

돌거북의 입에서 흐르는 감로수는 돌확을 넘쳐흐르고 있다.

 

 

암벽과 소나무로 둘러 싸인 윤필암

 

 

윤필암 관음전 적묵당

 

 

적묵당 윤필암 관음전 편액이 걸려 있다. 윤필암 편액의 潤자가 삼수 변이 없는 閏자로 되어 있다.

 

적묵당 뒤편은 출입금지 지역이다

 

 

네모진 돌확에서 둥근 돌확으로 감로수가 흘러넘쳐흐른다. 네모진 마음을 갈고닦아 둥근 마음으로 만드는 수행의 과정을 웅변해 주고 있다.

 

사불전으로 가는 연못 위의 돌다리

 

 

  

암벽 위에 삼층석탑이 기웃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사불전四佛殿

 

연꽃으로 장식한 큰 창에는 사불암 산봉우리와  푸른 하늘, 흰 구름이 반영되어 마치 외벽화인 듯 착각하게 한다.

 

  

암벽, 푸른 소나무, 사불전의 처마선이 어울려 아름답다

 

사불전 돌 난간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윤필암 전경과 사불암四佛岩이 가까이 바라보인다.

 

부처를 모시지 않고 그 자리에는 큰 창을 설치해 사불암이 주불이 되게 하였다.

 

 오묘한 적막이 흐르는 묘적암妙寂庵

  2014. 8. 30

  

아내가  "목탁 소리가 들려요" 하며 몸을 흔들어  눈을 뜨니 새벽 3시다.

도량석 소리가 귓가에 끊어졌다 이어졌다 들려온다.

찬 물에 세수하고 어슴푸레한 절 마당을 걸어 대웅전에 도착하니 벌써 아침 예불이 시작되었다.

스님의 독경에 따라 아침 예불을 올린다.

예불이 끝나고 대웅전에 고요히 가부좌하고 앉으니 머리가 쇄락해진다.진다.

  

묘적암妙寂庵은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창건하였다. 1668년 성일이 중건했고 1900년 취원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옹화상의 出家之處이고 역대 禪僧들의 수행처였으며, 근래의 禪僧 성철이 수행하였던 곳이다.

 

묘적암을 찾아가는 길가의 이끼 낀계단을 오르니 커다란 자연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이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꽃 대좌 위에 가부좌하고 오른손을 위로 올려 진리를 나타내는 손 모양을 하고 왼손은 복부에 놓여 있다.

연꽃무늬 장식이 머리 양쪽에 뿔처럼 솟아 있다.

 

바위가 약간 앞으로 숙여져 있고 갓바위가 설치되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용의주도하게 설계된 마애불이다.

옛날 이곳에 미륵암이 있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묘적암 입구가 보이는 길이 굽어진 곳에 샘터가 있다.

반야샘의 맑고 차가운 물을 마신다.

 

샘터 위 오솔길을 걸어 오른다.

2기의 동봉선사 동산선사 부도를 지나 숲길을 또 한 번 오르니 우거진 수풀 속에 나옹화상의 부도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큼지막한 이끼 낀 석종형 부도는 오랜 세월 풍우에 씻기어  당호조차 마멸되어  보이지 않는다.

이 부도에는 "화상의 발우가 부도 속에 간직돼 있으며 밑 면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어 닿으면 소리가 난다."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마멸되어 볼 수가 없다.

노송이 굽어보는 숲 속에 우두커니 서서 나옹화상의 행장行狀을 더듬는다.

 

나옹화상懶翁和尙(1320-1376)의 휘는 혜근惠勤이요 호는 나옹懶翁이며, 속명은 원혜元惠요, 거처하는 방은 강월헌江月軒이라 하며, 법호는 보제존자普濟尊者다. 속성은 아牙 씨인데 영해부 사람이다. 그 아버지의 휘는 서구인데 벼슬은 천관서령에 이르렀고 어머니는 정 씨다. 정 씨가 꿈에 금빛 새매가 날아와 그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 안에 드는 것을 보고 이내 아기를 배어 연우 경신(1320년)에  그를 낳았다. 그의 나이 20세 때 이웃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께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해 주는 이가 없었다. 슬픈 생각을 품고 공덕산 묘적암의 요연 선사를 찾아가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 요연 선사는 물었다.

"너는 무엇하려 머리를 깎는가?"

나옹은 대답하였다.

"삼계를 뛰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너는 어떤 물건인가?"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여기 왔을 뿐이거니와, 볼 수 없는 몸을 보고 싶고 찾을 수 없는 물건을 찾고 싶습니다. 어떻게 수행하여야 하겠습니까?'

"나도 너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보라."

그리하여 나옹은 요연 선사를 하직하고 여러 절로 돌아다니다가, 지정 4년 갑신(1344)에 회암사로 가서, 한 방에서 고요히 있으면서 밤낮으로

언제나 앉아 있었다.

그때에 일본의 석옹 화상이 그 절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승당에 내려와 선상을 치며 말하였다.

"대중은 이 소리를 듣는가?"

대중은 말이 없었다. 나옹은 그들에게 게송을 올렸다.

 

選佛場中坐

惺惺着眼看

見聞非他物

元是舊主人

 

선불장 안에 앉아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라

보고 듣는 것 다른 물건 아니요

원래 그것은 옛 주인이다.

 

그 뒤에 4년 동안 부지런히 닦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깨친 뒤, 나옹은 다시 묘적암에 와서 기념식수로 회목檜木 4주를 심었는데,

현재 노목으로 남아 나옹화상을 추모케 하고 있다.  그 후 중국으로 유학의 길로 떠나 大都 법원사法源寺로 가서 西天 지공화상指空和尙과 평산 처림선사處林禪師에게 인가를 받고 귀국하여 고려 공민왕의  왕사王師가 되었다

 

 상념에서 깨어나 수풀 속을 내려온다."등산객 출입금지  (등산로 없음) 참배객은 조용히"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묘적암 입구를 지난다.

돌계단을 오르니 묘봉 산기슭에 자리 잡은 아담한 묘적암이 아침해를 고요히 받고 있다.

기왓장과 돌을 넣고 쌓은 흙담이 고졸古拙한 멋을 풍긴다.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한 不二門을 밀고 不二法門으로 들어선다.

묘적암 뜰에는 아침 햇살이 고요히 비치고 있다.

오묘한 적막이 흐르고 있다.

 

기척을 하며 툇마루에 올라 방문을 여니 "누구요?" 하고 방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참배객임을 알린다.

법당의 문수보살에 참배하고 나옹화상 영정에 참배하러 왔다 하니 노스님이 안내해 준다.

절 마당 가운데 놓여 있는 心字岩에도 아침 햇살이 내리고 있다.

마음 心 글자가 마모되어 알아보기 힘들다. 

"心" 字를 열심히 참구 하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사불암四佛岩이 바라다 보인다.

처마 아래 "一默如雷" 편액이 걸려 있어 수행처임을 나타낸다.

"한 번의 침묵은 우레와 같다".

 

<유마힐경維摩詰經 第九 入不二法門品 > 끝 부분을 옮겨 본다.

".........

.........

이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각자가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였습니다. 당신께서 말하실 차례입니다.   어떤 것을 보살이 둘이 아닌 법문에 들어가는 것(入不二法門)이라 하는 것입니까?"  그때 유마힐은 오직 아무런 말 없이 침묵하였다. 문수사리는 감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참으로 훌륭합니다. 문자로도 언어의 설명까지도 전혀 없는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불의의 경지에 깨달아 들어가는 법문입니다." 이와 같이 입불이 법문품을 설할 때, 이곳에 모인 대중들 가운데 5천의 보살들 모두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이것을 유마維摩의 一默,  默不二라고 하며 이것을 찬탄하여 선가禪家에서는 "一默如雷,한 번의 침묵은 우레와 같다"라고 하였다.

 

법당 뒤쪽 산기슭에는 앙증스럽고 예쁜 산신각이 있다.

노루 두 마리가 부스럭거리며 수풀 속에서 뛰어오른다.

참을 미동도 하지 않고않고 맑은 눈망울로 한 곳을 응시하던 노루가  홀연 수풀 속으로 뛰어 사라진다.

 

회암사의 한 방에서 고요히 있으면서 밤낮으로 언제나 앉아 용맹정진하기 4년,

나옹화상은 29세 되던 겨울 눈 쌓인 뜰을 거닐다 매화꽃을 보고 크게 깨치고 오도송을 읊었다.

 

眼耳元來自沒종

箇中誰得悟圓通

空非相處飜身轉

犬吠驢鳴盡豁通

눈과 귀는 원래 자취가 없거늘,
누가 그 가운데서 원만히 깨칠 것인가.
텅 비어 형상 없는 곳에서 몸을 굴리면,
개 짖음과 나귀 울음이 모두 도를 깨침이네.

 

나옹화상이 크게 깨치고 다시 묘적암으로 돌아와 심었다는 회목檜木 네 그루의 자취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움이 더한다.

나옹화상이 여강의 신륵사에서 열반에 든 후 목은 이색이 글을 지어 세운 나옹화상의 비가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회암사에 남아 있다

 

진실로 禪覺이여

기린의 뿔이로다

임금의 스승이요

人天의 눈이로다

 

뭇 승려들 우러르기를

물이 골짝으로 달리는 듯

세우는 것 우뚝하다

 

새매 꿈의 신령 함이여

그의 처음 날 때 있었고

龍神이 護喪함이여

마지막 죽음이 빛났도다

 

하물며 이른바 사리는

그의 靈異를 나타냈나니

강은 넓어 트였는데

달은 밝고 밝았도다

 

空인가 色인가

위아래가 트였나니

아득하여라, 높은 風度

길이 멸하지 않으리라

 

나옹화상이 지은 頌  "산거山居"를 읊으며 그를 그린다.

 

바리 하나, 물병 하나, 가느다란 주장자 하나

깊은 산에 홀로 숨어 자연에 맡겨 두네

광주리 들고 고사리 캐어 뿌리째로 삶나니

누더기로 머리 싸는 것 나는 아직 서툴다

 

내게는 眞空의 일없는 선정이 있어

바위틈에서 돌에 기대어 잠만 자노라

무슨 신기한 일이 있느냐고 어떤 사람이 갑자기 묻는가

한 벌 해어진 옷으로 백 년을 지내노라

 

한종일 소나무 창에는 세상 시끄러움 없는데

석조에는 언제나 들물이 맑다

다리 부러진 솥 안에는 맛이 풍족하거니

무엇하러 명리와 영화를 구하랴

 

흰 구름 무더기 속에 삼간 초막이 있어

앉고 눕고 거닐기에 스스로 한가하네

차가운 시냇물은 반야를 이야기하는데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온몸에 차갑네

 

그윽한 바위에 고요히 앉아 헛이름을 끊었고

돌병풍에 의지하여 세상 인정 버렸다

꽃과 잎은 뜰에 가득한데 사람은 오지 않고

때때로 온갖 새들의 指南하는 소리 듣네

 

깊은 산이라 온종일 오는 사람은 없고

혼자 초막에 앉아 만사를 쉬었노라

석 자쯤의 사립문을 반쯤 밀어 닫아 두고

피곤하면 자고 배고프면 밤 먹으며 시름없이 지내노라

 

나는 산에 살고부터 산이 싫지 않나니

가시 사립과 삘기집이 세상살이와 다르다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추녀 끝에 떨치는데

시냇물 소리는 가슴을 뚫고 담을 씻어 차갑구나

 

시름없이 걸어 나가 시냇가에 다다르면

차갑게 흐르는 물 선정을 연설하네

만나는 물건마다 반연마다 眞體를 나타내니

空劫의 생기기 전 일을 무엇하러 말하랴

 

마애여래좌상 : 연꽃 대좌 위에 가부좌하고 오른손을 위로 올려 진리를 나타내는 손 모양을 하고 왼손은 복부에 놓여 있다. 연꽃무늬 장식이 머리 양쪽에 뿔처럼 솟아 있다.

 

반야샘 전경

 

 

반야샘은 항상 일정한 물을 유지한다고 한다.

 

東峰선사와 東山선사 부도

 

수풀 속에 있는 나옹화상 부도

 

묘적암 입구

 

 

묘 적암이 아침해를 고요히 받고 있다

 

古拙 한 멋을 풍기는 흙담과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한 不二門

 

 

묘적암妙寂庵 편액과 툇마루

 

 

오 묘한 적막이 흐르고 있다

 

"一默如雷" 편액

 

묘적암 절 마당에 있는 心字岩

 

묘적암 법당의 문수보살

 

1803년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 말의 고승인 나옹화상(1320~1376) 영정 화면에는 장삼 위에 가사를 걸친 나옹이 주장자를 들고 염주를 잡은 채 약간 우측을 향하여 가부좌를 하고 있다.왼쪽 어깨에는 금으로 장식된 커다란 가사 고리가 달려 있다. 뒤쪽으로 용장식이 화려한 불자(佛子)가 세워져 있으며 바닥과 벽면이 구분되어 있다. 화면 왼쪽 위에는 影題가 적혀있고 맨 아래에 제작연대와 제작자를 밝힌 화기(畵記)가 있다.

 

 

어깨에는 금으로 장식된 가사 고리가 달려 있다

 

제작연대와 제작자를 밝힌 畵記

 

                     

앙증스럽고 예쁜 산신각

 

묘적암 妙 寂庵 전경

 

 

나옹화상이 참선하였다는 안장바위(鞍岩)에 가기 위해 묘적암 뒤편 등로를 따라 오른다.

중간 갈래길에서 오른편 길로 갔어야 했는데 왼편 길을 택하여 걷다 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

계속 가다 보니 출입금지 금줄너머로 암반과 멋들어진 노송이 보인다.

출입금지 금줄 두 곳을 넘어 정상적인 등로를 찾아 걷는다.

등로에는 기묘한 바위와 소나무가 많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

 

 

기묘한 바위너머로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늘어진 밧줄을 붙잡고 바위에 올라선다.

안장바위가 눈앞에보이고 묘봉이 그 너머로 보인다.

멀리 공덕산도 조망된다.

나옹화상이 참선하던 안장바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아름다운 풍광이 눈 앞에 펼쳐진다.

 

나옹화상이 지은 서왕가西往歌의 일부를 읊조려 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말없이 살라 하네 푸르른 저산들은 티없이 살라하네 드높은 저 하늘은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않고 우주는 나를보고 곳 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 하네

밧줄을 잡고 이 바위를 넘어서면 말안장바위가 보인다

 

안장바위 전경

 

 

안장바위(鞍岩)

아랫마을 농부들이 안장바위에 항상 앉아 있는 나옹선사가  게을러 보여 보기 싫다며 안장바위를 깨뜨려버렸다.

그 뒤 마을에 가뭄과 흉년이 계속되자 나옹선사가 범상치 않음을 알고 안장바위를 다시 붙여놓으니 가뭄과 흉년이 끝났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안장바위 머리 부분엔 지금도 붙인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말안장바위 뒤로 묘봉이 바라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