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天降四佛 地聳雙蓮, 사불산 대승사

2014. 9. 3. 20:48나를 찾아 걷는 길/한국 불교정화의 씨앗이 움튼 대승사

한국불교 정화의 씨앗이 움튼 사불산 대승사

 

(1) 天降四佛 地聳雙蓮, 사불산 대승사

        하늘에서 사 불이 내려오고 땅에서 두 송이의 연꽃이 솟아나다

          2014. 8.29

  

문경 대승사 사면석불 (聞慶 大乘寺 四面石佛)

 

 

 삼국유사 탑상편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 조에 의하면,

"죽령 동쪽 백여리 남짓한 곳에 우뚝 솟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 9년(587)  甲申에 홀연히 4면이 일 장 씩 되는 큰 돌이 하나 나타났다.  그 돌에는 四方如來의 불상이 조각되었으며, 모두 붉은 비단으로 싸여  하늘에서 산 꼭대기로 떨어진 것이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행차하여 공경히 절하고, 그 바위 곁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대승사大乘寺라 하였다. 연경蓮經을 외우는 망명亡名  비구比丘를 청하여 절을 주관케 하고  공양석을 깨끗이 하고 분향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이 산을 역덕산亦德山 또는 사불산四佛山이라 하였는데, 비구가 죽어 장사를 지내자 무덤 위에서 연꽃이 피어났다."고 하였다.

 

"天降四佛 地聳雙蓮",  "하늘에서 사 불이내려오고  땅에서 두 송이의 연꽃이 솟아나다"의 설화가 유래된 곳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8번지 사불산 기슭 해발 600미터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대승사 가는 산길에는 소나무가 울울히 도열하고 있다.

길가에 비석이 하나 보인다.

四佛山大乘寺의 開山祖인 亡名  比丘의 비명이다.

운달산인 퇴경 권상로가 글을 썼다.

그는 본디 상주사람으로 음양을 익혀 화복을 점쳐서 호구지책을 삼고 있었으나, <묘법연화경>을 즐겨 외우며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큰스님만 못지않았다. 하루는 어느 신도집 망자의 제 지내는 자리에 갔는데 모두 곤히 잠든 한밤중에 괴이한 빛이 온 집안에 넘치는지라, 살펴보니 바로 그 비구의 입에서 나는 빛이었다. 먹고살기는 점술에 의해서일 망정 입으로는 늘 염불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탓이라 했으니 그제사 사람들이 그가 예사 도승이 아님을 깨닫고 그를 숭배하여 대승사 주지로 떠받들었다. 그가 죽어 장사를 지내자 무덤에서 연꽃이 피어났다. 그의 이름이 亡名이 아니다. 그 자신 이름을 드러내기를 꺼렸을 뿐 아니라 세상사람들도 그것을 들추지 않았고 또 후세 역사마저도 그 이름을 굳이 밝히려 들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 대강 줄거리이다. <법보신문 >

 

 

 

四佛山大乘寺開山祖亡名比丘之碑銘

 

 

대승사 가는 소나무 숲길   

나무 숲길로 한참을 들어가니 四佛山大乘寺 편액이 걸린 一柱門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뒤를 돌아보니 특이하게도 不貳門 편액이 걸려 있다.

오랜 세월 풍우에 마멸된 돌사자상(?) 뒤로 지붕돌이 깨어진 삼층석탑과 대승사사적비가 보인다.

사적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불산은 본시 공덕산孔德山인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9년 정미(587)에 사면에 불상이 조각된 일좌방장암(一座方丈岩)이 紅紗에 싸여 천상으로부터 공덕산 중복(中腹)에 내려왔다는 소문이 궁중까지 전하여 왕께서 친히 공덕산에 幸行하시니 과연 사불암이 있는지라, 왕께서 大喜하사 信心을 발하여 예배를 무수히 하시고, 岩下에 절을 건립케 하시고 道僧인 亡名 比丘를 주석케 하니 이것이 곧 대승사이다. 이로 인하여 山名은 四佛山으로, 寺名은 대승사(大乘寺)라 칭하게 되었다. 然이나 기지基址가 협소하여 망명 비구는 현 사지寺址에 대가람을 창건하고 대중과 같이 수행하시다가 입적하시다.  망명 비구는 상주출생으로 본명이 亡名이 아니라 익명匿名하고 무명승無名僧으로 상주지방의 小寺에서 음양술수陰陽術數로서 인간의

화복禍福이나 점치고 겨우 의식衣食으로 연명하는 술승術僧으로만 지목받고 수도승修道僧으로서는 보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주내州內 신도가정에서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위하여 설제設齊하고, 여러 고승을 청하여 법요를 행할 시 망명 비구도 말석에 참예케 되어 야심토록 독경하고 파제罷齊 후 소등취침 하려던 중 별안간 기광怪光이 발사하므로 실화로 생각하고 현장을 가보니 망명 비고의 구중口中에서 서상瑞相이 발하는 이유를 물으니 답왈答曰 내가 승수僧數에 참여하고 있으나 떳떳한 정행淨行을 닦지 못하고 술수術數로서 자신지책을 삼는 것이 부끄러워 남 모르게 법화경을 지송持誦하고 도업道業을 자조資助하는 밀행密行을 계속한 소치인가 하므로 비로소 그의 이름이 원근에 전하여 승속僧俗이 흠귀欽歸하였다. 그런데 천강사불(天降四佛)의 기적으로 인하여 왕께서 대승사를 창건케 하고 망명 비구가 입적入寂한 후 사하동구내寺下洞口內에 매장한 총상塚上에서 상련雙蓮이 용출湧出하였으므로 현재까지 천 강 사 불天降四佛하고 지용쌍련地聳雙蓮이라는 높은 도예道譽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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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 2522년 12월 (1978)

 

사불산 대승사 일주문

 

 

일주문 뒤편에 걸려 있는 불이문 편액

 

늘 푸른 잎의 전나무

 

지붕돌이 깨어진 삼층석탑과마모된 돌사자상(?) 1층 탑신에 감 실을 깊게 파고 부처님을 모셨다.

 

 

대승사 寺蹟碑

 

 

재가 불자의 선방인 백련당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니 만세루다.

돌계단 너머로 당당한 대웅전이 바라보인다.

돌계단 오르니 마당 좌우에는 밤에 불을 밝히는 노주석이 있고, 대웅전 기단 중앙 계단 좌측에는 육각형 등주가 서 있다.

좌측 기단 모서리에는 세 개의 옛돌 면석이 끼어 있다.

이 중 두 개의 면석에는 연꽃이 피어나는 형상이 아로새겨져  있어 영화로운 천년 고찰의 향기를 그리워하게 한다..

돌은 오랜 세월 풍우에 씻기여야 깊은 맛이 배어난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꽃을 새겨 넣은 대웅전 꽃살문,

공판에는 생명력이 하늘로 뻗어가는 모습의 고사리 문양이 그려져 있다. 

  

정면 네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楊柳稍頭甘露灑

蓮華香裏碧波寒

七寶池中漂鈺子

九龍口裡浴金仙

 

버들로 머리 감고 감로를 뿌리고

연꽃향 속에 파도가 서늘하여

칠보 연못에 옥동자를 띄우고

아홉 용이 입으로 금빛 신선을 목욕시키네

  

대웅전에 들어 참배하고 가부좌한 뒤 앞을 바라보니 삼존불상 뒤로 화려한 금빛 아미타목각탱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후불탱화를 나무로 깎아 돋을새김, 또는 뚫을 새김으로 표현한 것으로,

중앙에는 광배와 연꽃을 새긴 대좌를 새기고, 여기에 별도의 나무로 깎은 아미타불상을 안치하고 있다.

또한 좌우로 5단에 걸쳐 협시상들을 안치하고 있다. 

만세루

 

대웅전

 

아미타 목각탱 (보물 제575호)&nbsp;원래 이 목각탱은 부석사 무량수전에 있었던 것을&nbsp; 철종 13년(1862)에 &nbsp;대승사로 옮겨&nbsp;놓은 것이다.

 

 

대웅전 내부

 

 

모란 꽃살문

 

 

공판에는 생명력이 하늘로 뻗어가는 모습의 고사리 문양이 그려져 있다.

 

 

좌측 기단 모서리에는 세 개의 옛돌 면석이 끼어 있다. 이 중 두 개의 면석에는 연꽃이 피어나는 형상이 아로새겨져 있어 천년 고찰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대웅전 앞마당의 노주석

 

 

삼성각

 

 

 

응진전

 

응진전

 

응진전의 6백 나한상

사적비寺蹟碑에 의하면 산내에는 구암九庵이 있었다 한다. 상적암上寂庵, 대비암大妃庵, 묘적암妙寂庵, 윤필암潤筆庵, 보현암普賢庵, 문수암文殊庵, 반야암般若庵, 사불암四佛庵, 미륵암彌勒庵 등인데, 현재에는 묘적암, 윤필암, 보현암만 남아 있다. 고전에 의하면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공덕산하功德山下에 미면사米麵寺를 창건하고 원효대사元曉大師는 인근 10리허(許)인 화장사華藏寺에 계시면서 조석으로 상봉하였다 한다. 반야암般若岩에는 이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의 제자 함허 득통선사가 금강경오가해설의를 찬술撰述하였다고 전한다. 선사가 읊은 시에는, 般若峰頭月 大乘殿閣風

반야봉 위의 달이요 대승사 절집에 이는 바람이라는 시귀가 있다.

  

대승선원大乘禪院 1929년 쌍련선원雙蓮禪院으로 문을 열었다. 화재로 선원이 소실되어 1960년에 퇴경 권상로가 새로 지었는데 H자 형의 독 툭한 모습이다, 1995년 월산스님이 대승선원이란 이름으로 다시 개원하였다. 쌍련선원은 한국 불교정화의 씨앗이 움튼 곳이며, 성철. 청담. 서암. 자운. 금오. 월산. 향곡 등 20여 선승들이 수행정진 하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수마를 쫓기 위해 옛 수행자들은 "引錐自刺"  송곳으로 스스로를 찌르며 용맹정진 하였다고 한다.

"鐵樹開花 火中生蓮"  쇠로 된 나무에서 꽃을 피우고 불 속에서 연꽃을 피우는 처절한 마음 가짐으로 용맹정진하는 수행자의 모습은 거룩하다.

수행자의 맑고 푸른 눈은 아름답다.

 

대승선원 정면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다

春水淨如僧眼碧

遠山濃似佛頭靑

萬壑松聲驚鶴夢

一簾月色映禪心

法雨慈雲沾聖澤

松風水月見精華

봄 물은 맑아 스님의 푸른 눈과 같고

먼 산은 부처님의 머리와 같이 푸르네.

만 골짜기의 솔바람은 학의 꿈을 깨우고

한 주렴의 달빛은 선심禪心을 비추지

진리의 비 자비의 구름은 거룩한 은혜로 내리고

솔바람 물속의 달에서 진짜 꽃을 보는구나

                     

선원의 맑은 기운과 푸른 솔바람이 온갖 번뇌를 말끔히 씻어준다.

석양빛을 받은 선원의 문창살이 아름답다.

"天降四佛   地聳雙蓮"  "하늘에서 사 불이 내려오고 땅에서 두 송이의 연꽃이 솟아나다"라는 처마 아래 걸려 있는 편액을 무연히 바라본다.

'삼국유사 탑상 편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 조'를 되새겨 보며.

  

 

H자 형의 대승선원

 

대승선원

대승선원의 아름다운 문창살과  天降四佛 地聳雙蓮  편액

삼국유사의 현장을 찾아 걷는 길은 항상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다.

붉은 비단에 싸여 하늘에서 내려온 사불암四佛岩.

산꼭대기 현장을 찾아 대승사 옆 산길을 따라 돌아 오른다.

함석지붕을 인 샘터가 보인다.

이 물은 마시면 장군과 같은 힘이 난다는 장군수다.

나무 뚜껑을 여니 맑은 물이 가득하다.

지나가던 사람이 마시기에는 부적절하다고 귀띔한다.

옛날 이곳에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장군수 앞 삼거리에서 사불암 이정표 따라 가파른 계단길을 오른다.

 

고요히 귀를 열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오른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놀라 땅을 내려다보니 뱀이 구불구불 두문동 싸리재 고갯길 같이 기어 숲 속으로 사라진다. 

돌부리로 가득한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문득 올려다보니 직립한 커다란 바위가 석양빛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다.

오! ,  사면석불의 거대한 바위 기단석이 석양빛에 물들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붉은 비단으로 싸 놓은 듯 황홀하다.

직립한 기단석 아래 평평한 암반 틈에는 천년송 한 그루가 수행승처럼 침묵하며 참선 수행하고 있다.

늘 푸른 잎을 달고서.

 

가파른 길을 올라 바위 꼭대기에 오르니 소나무 옆 거대한 바위 기단석 위에  사면석불이 우뚝 서 있다.

보각국사 일연이 인각사에서 쓴 "삼국유사 탑상 편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 조"에 쓰인 삼국유사의 현장이다.

 

"죽령 동쪽 백여리 남짓한 곳에 우뚝 솟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 9년(587)  甲申에 홀연히 4면이 일 장 씩 되는 큰 돌이 하나 나타났다. 그 돌에는 四方如來의 불상이 조각되었으며, 모두 붉은 비단으로 싸여  하늘에서 산 꼭대기로 떨어진 것이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행차하여 공경히 절하고, 그 바위 곁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대승사大乘寺라 하였다. 연경蓮經을 외우는 망명亡名  비구比丘를 청하여 절을 주관케 하고  공양석을 깨끗이 하고 분향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이 산을 역덕산亦德山 또는 사불산四佛山이라 하였는데, 비구가 죽어 장사를 지내자 무덤 위에서 연꽃이 피어났다."

 

사면석불을 돌며 바위를 어루만져 본다.

1,400여 년 오랜 세월 풍우한설로 인해 바위에 조각된 불상은 마멸되어 그 형상을 알아보기 어렵고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다.

아! 참으로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 돌아가는 길 / 문정희 >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했던가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고 있는 사면석불 앞에 서서 산 넘어 산 또 산, 아스라이 펼쳐진 망망한 우주 법계를 바라본다.

묘적암과 윤필암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인다.

사면석불에 석양빛이 내리고 하늘에는 노을이 드리워지고 있다.

서산마루에 해가 걸렸다.

 

 

 

함석지붕을 인 샘터 장군수


사면석불의 거대한 바위 기단석이 석양빛에 물들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사방불 바위 기단석과 천년송

 

 

천년송(千年松)

 

문경 대승사 사면석불

 

 

 

 

 

 

문경 대승사 ;사면석불

 

 

 

불상이 새겨진 각 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으며, 사면 모두 불상 1구씩 새겨져 있다.

불상은 높이 295cm, 너비 약 150cm로서 커다란 돌기둥에 새겨진 사방불이다.

전체적으로 훼손이 심하여 세부 문양을 파악하기 어렵다.

모두 여래상인 것으로 보이며, 동쪽과 서쪽은 좌상坐像, 남쪽과 북쪽은 입상立像으로 추정된다.

 

북쪽면
동쪽 면

 

  

남쪽 면
서쪽 면

 

 

  

묘적암과 윤필암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인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렸다

 

 

사방불에 석양빛이 내리고 하늘에는 노을이 드리워지고 있다

 

 

헤드랜턴을 가져가지 않아 서둘러 하산한다.

보제루 앞에 당도하니 하늘의 구름이 아름답다.

선방인 총지암 담장 위로 구름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숙소로 가는 절 마당에서 붉게 물든 구름송이와 점점 까매지는 하늘을 본다. 

 

  

총지암 담장 위로 구름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선방인 총지암

 

절 마당에 바라본 해가 진 저녁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