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30. 14:13ㆍ사진/야생화
얼레지 꽃
靑山 손병흥
깊은 산골 산모퉁이 돌아 나온 햇살비친 산기슭에 고개 내민
보라색 꽃망울로 수줍은 듯이 살포시 고개 숙인 채 피어난 자태
안타깝게도 꽃술 중앙부분이 이빨문양처럼 생긴 모양새 탓으로
억울하게끔 일명 개 이빨 제비꽃으로도 불려 지게 된 어여쁜 식물
땅속 씨앗에서 싹을 틔운 뒤에 꽃을 피워내기까지 오랜 세월동안
무려 7년 이상이나 걸린다고 하는 인고의 나날을 견뎌낸 봄의 전령사
양지 녘에 햇빛 비칠 때 꽃잎이 치마를 훌렁 걷어 올린 것처럼 보여
너무 흡사하다고 해서 본의 아니게 붙여지게 된 꽃말조차 바람난 여인
봄날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늘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청초한 겸손 지닌
보랏빛 미소로 고개 숙여 하늘거리는 산등성이 산자락에 피어나는 들꽃
그나마 이름만은 다행히 세련되어서 서구적인 냄새 풍기는 호사누리지만
이파리에 진흙탕처럼 마구 뿌려진 얼룩무늬 탓에 지어졌다는 토종 야생화
□얼레지
비교적 높은 산의 숲 속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 '가재무릇'이라고도 한다. 땅속 깊이 들어 있는 길쭉한 모양의 흰색 비늘줄기에서 2개의 잎이 나와 수평으로 퍼진다. 타원형 잎은 가장자리가 밋밋하여 잎 표면에 자주색의 얼룩무늬가 있어 '얼레지'라고 한다. 꽃줄기는 잎과 함께 나와 10-20cm 높이로 곧게 선다. 4월에 꽃줄기 끝에 홍자색 꽃이 밑을 보고 핀다. 6장의 꽃잎은 밑 부분에 W자 무늬가 있고, 꽃이 피면 꽃잎이 뒤로 말린다. 밤이 되면 꽃잎이 오므라든다. 타원형 삭과열매는 3줄로 골이 팬다. 봄에 돋는 잎은 나물로 먹는다. 흰꽃이 피는 것을 '흰얼레지'라고 한다.
봄이 오는 소리
박 인 걸
찬바람 사이로 비친 햇살이
물오른 가지를 쬐일 때
움츠린 진달래 꽃 봉오리에서
실핏줄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눈발이 더러 날리는
춘분으로 가는 길목에
뒤뜰 감나무 가지서
되새 한 쌍이 짝짓는 소리가 들린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묵은 낙엽더미를 헤집고
바스락 바스락 거리며
맑은 얼굴을 내민다.
봄은 이렇게
가녀린 소리로 오지만
생명들의 찬가는
곧 세상을 뒤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