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쌍향수雙香樹 푸른 향 서린 천자암天子庵

2013. 4. 16. 16:58나를 찾아 걷는 길/송광사 산내암자를 찾다

송광사 산내암자를 찾다

(2) 쌍향수雙香樹 푸른 향 서린 천자암天子庵         

     - 천자암 쌍향수雙香樹와 송광사 고향수枯香樹

     2013.4.7

 

조계산 선암사 고매를 만나 본 후 산길을 걸어 쌍향수 푸른 향 서린 천자암을 찾기로 한다. 

승선교를 지나니 바람을 타고 오는 진한 삼나무 향으로 코끝이 찡하다.

푸르게 자라는 야생 차밭을 바라보며  용머리 조각의 소맷돌이 지키는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을 넘는다.

범종루 아래로 난 계단을 오르니 '六朝古寺'라 쓰인 장중한 글씨의 현판이 정면으로 보인다.

 

 

 

용조각의 일주문 소맷돌(1)

 

 

  

용조각의 일주문 소맷돌(2)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

 

 

 

중국 육조(六祖) 혜능이 조계산에 살았는데, 선암사가 조계산에 있음을 기리기 위해 김익겸(서포 김만중의 아버지)이 썼다고 전해 진다.

 

 

한달음에 무우전에 도착하니 만개하여 기품있는 암향을 풍기고 있어야 할 선암매는 검은 가지의 앙상한 모습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간 밤의 차가운 비 바람으로 매화는 다 떨어져 날아가고 낙하한 꽃잎마저 흔적이 없다. 가지 끝에 듬성듬성 꽃송이 몇개가 매달려 있다.

800년 수령의 선암 백매와 4-500년 무우전 담장길의 백매.홍매의 검은 가지만 무연히 바라보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대웅전 뒷편의 수령 400년의 고매古梅가 그나마 먼 길을 달려 온 나그네의 심사를 위로한다.

고매의 암향을 맡으며 푸른 하늘에 고고히 피어 있는 홍매를 올려다 본다.

뒤틀린 검은 매화 가지 끝에 옹기종기 붙은 홍매가 아름답다.

옹이 지고 뒤틀린 검은 가지에 피어 있는 담백한 꽃, 그윽히 풍기는 향기가 고매(古梅)가 갖는 멋과 운취다.

 

 

원통전과 달마전 사이에 있는  800년 수령의 선암매

 

 

 

 

 

  

 

 

대웅전 뒷편의 400년 수령의 선암 홍매

 

 

편백나무 숲길을 걸어 천자암을 향한다.

편백나무 숲속에 앉아 나무가 내뿜는 향을 마신다.

 

 

 

 

 

 

 

보리밥집에 도착하니 시각은 오후 2시를 훌쩍 넘어섰다.

쌈밥에 막걸리를 시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한다.

함포고복하니 부러울 것이 없다.

 

어제는 그렇게 강풍과 함께 비가 뿌리더니, 오늘 날씨는 쾌청은 하지만 바람은 여전히 강하게 불어 쌀쌀하기만 하다.

천자암 가는 산기슭에는 지천으로 얼레지가 자라고 있는데 차거운 바람으로 모두 꽃잎을 오무리고 고개를 떨꾸고 있다.

개별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별처럼 반짝인다.

빼욱한 산죽 잎새에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나무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싱그럽다.

 

조계산 산기슭을 멀리 돌아가는 천자암 가는 길은 호젓한 오솔길이다.

오솔길 위에 태양은 그림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산죽잎  흔들리는 그림자 그림도 그린다.

바람이 또 세차게 불어대기 시작한다

 

"무량겁을 두고 정착함 없이 흘러다니는 바람 늘 움직임으로써 살아가는 바람. 바람은 멈추면 죽습니다. 구도의 길도 바람 같은 것이 아닐까요? 끝없이 찾아 나서는데서 삶의 의미를 거듭거듭 다지는 나그네 길."

 

개별꽃

 

 

 

추위에 꽃잎을 오무리고 고개를 떨군 얼레지

 

 

 

 

  

 

 

 

  

 

  

바람에 흔들리는 산죽 잎 그림자

 

 

산모롱이를 돌아드니 나무들 사이로 천자암이 바라 보인다.

장작으로 팰 참나무 토막들이 쌓여 있다.

 

쌍향수 푸른 향 서린 천자암

대웅전과 나한전 사이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곱향나무 두 그루가 다정히 서서 푸른 향을 뿜어내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88호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雙香樹

수령 800년 송광사 천자암 곱향나무 쌍향수는 높이 12m, 가슴높이 둘레 4.1m, 3.3m이다.

두 그루가 쌍으로 나란히 서 있는데 줄기로 용이 칭칭 휘감고 올라가는 듯 신비한 모습을 하고 있다.

 

향나무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조계산에 천자암을 짓고 수도하시던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갔다 오실 때 짚고 온 지팡이를

나란히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담당국사는 왕자의 몸으로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다.

두 그루 향나무가 서 있는 모습이 스승과 제자가 서로 절을 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원규 시인은 '운우지정雲雨之情' 이란 시를 지었다.

 

 

운우지정雲雨之情  /이 원 규

서로 부둥켜안고

칠팔백 년은 족히 살아왔건만

천연기념물 88호

송광사 천자암의 쌍향수

가까이 실눈 뜨고 살펴보면

온몸을 꽈배기처럼 88 꼬면서도

알몸의 살갗 하나 닿지 않았다

 

하늬바람만 불어도서로의 뼈마디 비걱거릴 법도 한데

조계산의 늙은 곱향나무 두 그루

그 참, 절묘하다

굳이 맨살을 맞비비지 않고도

두 몸 아슬아슬한 경계에

저리 희푸른 아침 구름이 오르고

저물녘 향내의 안개비가 내리다니!

 

무산(巫山)의 달뜬 애인이여, 우리 아직 멀었다

 

또 한 한손으로 밀거나 여러 사람이 밀거나 한결같이 움직인다 하고, 쌍향수에 손을 대면 극락에 갈 수 있다하여,

향나무로 다가가 손으로 밀어보니 움직인다.

손을 대었으니 극락으로 갈 수 있겠지.
곱향나무 푸른 향이 좋아 유순한 개 한 마리 쌍향수 밑을 맴돌며 살아가고 있다.

돌계단 바위 아래 보랏빛 제비꽃이 자라고 있다.
쌍향수 푸른 향이 서린 천자암은 싱그러운 기운으로 넘친다.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곱향나무) (松廣寺 天子庵 雙香樹(곱향나무)) 천연기념물  제88호

 

 

 

 

  

 

 

 

  

 

  

 

  

산신각

 

 

 

천자암 전경

 

 

 

바위 밑에 자라는 제비꽃

 

 

 

천자암

 

 

 

천자암의 종각

 

 

 

법왕루

 

 

 

 

 

  법왕루 누각 아래 계단을 내려선다.

종각 옆으로 긴 나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송광사 가는 조붓한 산길을 오르 내린다.

송광사 침계루 앞의 벚나무 휘어진 가지에 오밀조밀한 벚꽃이 환히 피어 있다.

 

 

 

  

 

 

송광사 우화각과 세월각 사이에는 고목枯木이 우뚝 서 있는데 고향수枯香樹라고 부른다.

보조국사가  1200년 전 심은 향나무라 전해진다.

“이 나무가 살아나는 날이면 보조 국사도 환생하여 다시 이 도량에 오실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나무이다.
국사 가신지 800여 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마른 모습으로 서 있다.

새잎이 돋아나 잎이 무성해 져 푸른 향을 뿜을 날은 언제일지....

인암스님은 다음과 읊었다.

 

살아서 푸른 잎도 떨어지는 가을인데

마른 나무 앞에 산 잎 찾는 이 마음

아신 듯 모르시오니 못내 야속합니다

 

香壇白樹 1

국사님 심은 나무 님기닳다 늙엇구나

기달여 애타는 속 이낏 속에 싸엿으라

뵈잖은 굳은 절개를 아는 이는 아느니

 

香壇白樹 2

潔白의 魂

하늘 땅 주야사철 우로은도 입지않고

봄 겨울 오고가도 아랑 곳 없을러니

다물린 침묵의 모습 아는 이가 없어라 

 

 

고향수枯香樹(1)

 

 

 

고향수枯香樹  (2)

 

                                                                                  

노산 이은상 시인이 송광사를 참배 왔을 때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이때 인암스님이 지은 시조 제목은 ‘고향수(枯香樹)’이다. 송광사 일주문 부근, 곧 우화각(羽化閣)과 세월각(洗月閣) 사이에는 바짝 마른 고목 기둥 같은 고향수(枯香樹) 하나가 서 있다. 이 향나무는 보조 국사의 기념 식수인데, 1200년 송광사에 오셔서 불교 중흥의 기치를 높이 세울 당시 보조 국사가 친히 심으신 나무다. 그 후 세월이 흘렀다. 1210년 3월 27일 이른 아침이었다. 보조 국사가 세속의 인연을 다 하였을 때였다.

이때 훌륭한 제자는 스님 주위에 많았으나 함께 따라 죽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헌데 기특한 일이 생겼다. 잘 자라던 향나무가 말라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정말 놀랍구나. 이 향나무는 효자 나무여. 뛰어난 제자들이 많아도 그보다 훨씬 나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향나무는 썩지 않고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에 와서도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우뚝 서 있다. 그 사이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믿음이 생겼다. 보조 국사가 살면 향나무가 살고 보조 국사가 죽으면 향나무도 죽는다는 믿음이다. “이 나무가 살아나는 날이면 보조 국사도 환생하여 다시 이 도량에 오실 것이다.” 이렇게 보조국사와 향나무를 하나로 보아 송광사 대중 스님들은 이 나무를 끔찍히 아낀다.

 

이러한 이야기를 인암 스님은 고향수 안내를 할 때면 항상 하곤 하셨다. 그때가 가을이었던가, 귀한 객손이 송광사를 방문했다. 유명한 시조시인인 노산 이은상 선생과 그 일행이었다. 스님은 평소대로 송광사 안내를 하면서 간간이 자작 시조도 읊었다. 전각 하나 하나에 시조 한 수를 붙여 읊으니 흥겨운 분위기가 저절로 조성되었다. ‘고향수’와 관련된 전설을 소개하고 났을 때였다. 인암 스님이 먼저 시조 한 수를 청했다.  노산 선생은 인암 스님이 얘기한 보조스님과 고향수 관련 설화를 한 수 시조에 담았다.

 

어디메 계시나요 언제 오시나요

말세 창생을 뉘 있어 건지리까

기다려 애타는 마음 임도 하마 아시리

노산 이은상

 

살아서 푸른 잎도 떨어지는 가을인데

마른 나무 앞에 산 잎 찾는 이 마음

아신 듯 모르시오니 못내 야속합니다

인암 스님

<현대불교에서>

 

인암(1908-1986) 스님은 송광사 아랫마을 낙수리에서 1908년 태어나 열여덟에 송광사로 출가 하여 송광사 주지를 역임한 후에는 송광사 말사 주지와 송광사 대중으로 지내셨다. 1960년대에 ‘송광사의 증인’이라는 평을 들었던 인암스님은 송광사 스님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길고 긴 생애를 송광사에 불사르신 송광사의 산 증인이었다. ‘송광사에 출가하고 싶습니다’라는 다음 글은 그 같은 스님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재산 학벌 권력 세력 벌족(閥族)한 집에 가서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내 나라 내 지방 내가 자라난 송광사에 출가하고 싶습니다. 비록 권력 세력 인격은 미약할지라도 마음은 인후(仁厚)하고 마음가짐이 올바르고 서로 아끼고 서로 연민히 생각하고, 높은 언덕 위로 끌어올려  붙들어 세워주실 스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래서 잘 크고 잘 배워서 훌륭하게 되어 내가 자라난 송광사가 으뜸가는 절이 되어 세상에 명성 높은 수도장이 되었으면 하는 염원 뿐입니다." 그가 읊은 시에 그의 생이 보인다.

  

노초절(老初節)

 

박식(薄識)에 무능(無能) 겹쳐

스님 축에도 못 드는데,

부처님께 받은 은혜로
재앙과 재난을 피하고 살아난 몸 

절을 위하는 마음을
생명으로 삼으며
반백 년을 늙었소. 

 

해탈문(解脫門)

 

까닭도 모른는 채 얽힐대로 얽힌 인간

풀면 풀리는 걸 풀 줄 모르는 범부이라

부처님 대자대비로 해탈문을 여소서                                

 

 

능허교凌虛橋 무지개 다리 위의 우화각羽化閣을 통과해 천왕문을 지나니 종고루다.

종고루 옆의 수령 200년 된 백매

만개한 매화가 석양빛을 받아 쏟아지는 눈처럼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송광 고매의 암향暗香 !

그윽한 향기가 은은하다

 

종고루 옆의 수령 200년 된 송광매

 

 

 

 

 

 

 

눈처럼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송광사 매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