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는 불일암佛日庵

2013. 4. 14. 12:10나를 찾아 걷는 길/송광사 산내암자를 찾다

송광사 산내암자를 찾다

(1)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는 불일암佛日庵

  - 무소유의 길을 걷다.

      2013. 4.8.

  

얼어붙은 대지에 다시 봄이 움트고 있다.

겨울 동안 죽은 듯 잠잠하던 숲이 새소리에 실려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

우리들 안에서도 새로운 봄이 움틀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미루는 버릇과 일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그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봄은 어디서 오는가?

묵은 버릇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시작에서 새 움이 트는 것이다.

< 법정의 숫타니파타 강론집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중에서>

 

여명의 새벽

길에 선다.

송광사 산문山門이 굳게 닫혀 있다.

막 도착한 관리인이 쪽문을 열어 주어 산문 안으로 든다.

 

 

"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처럼"

 

 

'길상다원' 벽에 걸려 있는 연꽃 그림에 눈길이 간다.

연잎 아래 검은 글씨로 자그맣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처럼'이라고 쓰여 있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은 기대에 부푼 설레는 꿈과 희망, 기대, 모험의 바람이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은 이별의 아픔과 섭섭함, 아쉬움, 회고, 반추하는 사색의 바람이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사이에 우리의 전 인생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길 위에 서면,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처럼' 늘 설렘으로 가슴이 뛴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 정 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계곡 따라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황톳길

호젓한 산길이다.

물소리 새소리가 머리를 쇄락하게 한다.

갈림길에서 '광원암 불일암' 가는 이정표 따라 언덕길을 넘어서니 삼나무, 편백나무 향이 코끝에 묻어난다.

불일암 무소유의 길로 들어서기 전에 광원암廣遠庵을 들리기로 한다.

 

광원암은 백제 무녕왕 14년(514) 가규可規스님이 창건하였다.

송광사 보다 250년 먼저 세워진 유서 깊은 절이다.

송광사 제2세 진각혜심眞覺彗諶이 이곳에 머물며 선문염송집 30권을 펴내어 광원유포廣遠流布하였다 하여 광원암廣遠菴으로 불리게 되었다.

 

연못 너머 운치 있는 광원암이 보인다.

꽃망울을 터뜨린 어린 백매白梅가 보인다.

 

경내 한 귀퉁이 돌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네모모양, 둥근 모양의 돌확을 따라 흐른다.

대통을 흐르는 물은 둥근 모양의 돌확으로 낙하하고 있다.

담장 밖 붉은 동백꽃이 절을 환히 밝히고 있다.  

  

진각혜심의 선시가 가슴에 여운을 남긴다.

 

對影

 

池邊獨自坐

池底遇逢僧

默默笑相視   

知君語不應

 

그림자

 

못가에 홀로 앉았네

물밑 한 사내와 서로 만났네

둘이 보며 말없이 미소 짓는 건

말없이 아는 때문

 

 

광원암 전경

 

 

 

꽃망울을 터뜨린 어린 白梅

 

 

  

광원암廣遠庵  본전

 

 

  

 

  

샘물과 돌확

 

 

 

겹동백꽃

 

 

불일암 가는 길은 삼나무. 편백나무 숲이 있는 길이고,

울울한 대숲을 걷는 운치 있는 길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법정法頂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불일암 가는 길

 

 

 

대숲 길

 

 

 

 

 

 

 

 

불일암 입구 대나무로 만든 사립문에 팻말이 걸려 있다.

 

불일암은 정진 중!

참배시간 : 오전 8시-오후 4시

 

 

묵언!

佛日庵 侍子 合掌

  

시간을 보니 7시 20분이다.

수행 정진 중인 스님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발길을 되돌려 대나무 숲 속을 거닌다.

서성이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루터기에 앉아 울울한 대나무 숲 사이로 빛나는 태양을 바라본다.

가만히 사물을 둘러보니,

멈추었던 벌레도 기어가기 시작하고, 자연은 자기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쪼르르르...

투명한 새소리가 대숲을 울린다.

대숲 속에 피어 있는 붉은 동백꽃이 아침 햇살을 받아 선명하다.

 

 

우리처럼 한평생 산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산은 곧 커다란 생명체요, 시들지 않는 영원한 품 속이다. 산에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일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사상이 있고, 종교가 있다.

( 法頂의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법정法頂 (1932.10.8-2010.3.11)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 법정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다가 대학 재학 중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섰다. 오대산의 절을 향해 떠났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로 올라와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뒤

그 자리에서 삭발하고 출가했다. 그다음 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생활을 했으며,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 탑전으로 가서 스승을 모시고 정진했다. 그 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다가 28세 되던 해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70년 대 봉은사 다래헌에서 거주하며 운허스님과 더불어 한글 대장경 역경에 헌신하였고, 함석헌 등과 함께 <씨알의 소리> 발행에 참여했으며 불교신문사 주필을 지냈다. 1975년 모든 직함을 버리고 본래의 수행승으로 돌아가기 위해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며 무소유'의 참된 가치를 널리 알렸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스님은 자신의 삶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1992년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 작은 오두막집에서 홀로 냈다.  2004년에는 그동안 맡아왔던 길상사 회주직을 내놓으시고 세속의 명리와 번잡함을 멀리하여 은둔 수행하시다, 2010년 3월 11일 열반하셨다.

 

스님은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텅 빈 충만,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홀로 사는 즐거움,  맑고 향기롭게,  아름다운 마무리, 내가 사랑한 책들  등의 저술과,  깨들 음의 거울(선가귀감), 진리의 말씀(법구경),  불타 석가모니, 정토삼부경, 숫타니파타,  인연 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의 번역서, 그리고 일기일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一則一切多則一)의 법문집을 남기셨다.

 

 

 

대숲 속에 피어 있는 붉은 동백꽃

 

 

사립문을 들어서니  신우대가 울울하다.

일주문 역할을 하는 신우대 숲 터널을 지난다.

 

불일암 입구의 대나무로 만든 사립문

 

 

  

불일암 일주문 역할을 하는 신우대 숲 터널

 

 

우뚝 히 솟은 태산목 뒤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불일암이 보인다.

고즈넉한 불일암

고요하고 아늑한 암자다.

 

이곳은 송광사 16 국사 중 제7세 자정국사慈靜國師가 창건한 자정암慈靜庵 옛터다.

1975년 폐사지인 이곳에 법정스님은 옛 자장암이 있던 자리에는 텃밭을 만들고 옛 산신각이 있던 자리에 불일암을 지었다.

절을 짓고 '불일암佛日庵'이란 편액을 걸고 18 년간 머물렀다.

"불일佛日"이란 이름은 송광사 

제1세 국사인 지눌知訥의 시호인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에서 따온 것이다.

 

지난해 가을 숲 속에 산 거山居를 마련하여 훌쩍 귀환했다. 마치 한 마리 산짐승이 들에 나가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지친 몸으로 옛 보금자리를 찾아 돌아온 그런 느낌이었다..... 숲에는.... 질서와 휴식이, 그리고 고요와 평화가 있다. 숲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안개와 구름, 달빛과 햇살을 받아들이고, 새와 짐승들에게는 깃들일 보금자리를 베풀어 준다. 숲은 거부하지 않는다. 자신을 할퀴는 폭풍우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것이 숲이 지니고 있는 덕이다..... 지난봄.... 숲에 새 물감이 풀리고 있을 무렵 자연의 조화를 지켜보면서 나는 여러 가지로 배운 바가 많았다.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 빛깔을 잎으로 내뿜고 있었다. 그 어떤 나무도 자기를 닮으라고 보채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저마다 자기 빛깔을 마음껏 발산함으로써 숲은 찬란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 법정의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 >

 

 

 

태산목 뒤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불일암

 

 

석축 아래 수선화가 해맑게 피어 있다.

''묵언'이라 쓴 나무 팻말을 보며 돌계단을 오른다.

정갈한 불일암 뜨락에는 아침 햇살로 긴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푸른 잎이 아침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반짝이는 굴거리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그 아래 쉼터에는 알맞은 크기의 나무토막이 적정한 공간에 알맞게 놓여 있다.

 

불일암 외벽 모서리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작자 미상인 고려 가요 '청산별곡'이 푸른 글씨로 각자 되어 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 살어리랏다 멀 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애 살어리랏다

 

스님이 아끼고 사랑했던 후박厚朴나무 아래에는 스님의 유언에 따라 유골이 묻혀 있다.

꽃 공양 화분에는 해맑은 수선화가  하나 가득 피어 있다.

 

내 삶을 이루는 소박한 행복 세 가지는 스승이자 벗인 책 몇 권, 나의 일손을 기다리는 채소밭, 그리고 오두막 옆 개울물 길어다 마시는 차 한 잔이다.

 

불일암 처마 밑 댓돌 위에는 스님이 만든 빠삐용 의자가 있다.

의자 위에는 '남기고 싶은 말'을 적는 공책과 대나무로 만든 필통, 아크릴함에는 책갈피가 꽂혀 있는데 '책갈피는 불일암 참배 기념으로 

한 장만 가져가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옆 광주리에는 사탕이 담겨 있다.

벽 위에는 저술에 열중하고 있는 법정스님 사진 액자가 걸려 있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나무로 만든 섬돌 위에는 법정스님이 신고 다니던 흰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신발을 바르게 벗는 것은 현재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되돌아보는 일과 같다'라고 했다.

 

뜨락에 자라는  매화나무에는 백매와 만첩홍매가 함께 피어 있다.

동백나무에는 겹동백꽃이 붉게 타고 뚝뚝 떨어진 동백꽃은 지상에서 다시 피고 있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 법정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

 

송광사 제7세 자정국사 부도 묘광탑을 참배하고 돌아서니, 불일암 아늑한 전경이 눈 안에 들어온다.

 

과하지 않은 절제의 아름다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은 암자

 

필요한 것들을 필요한 만큼만 알맞은 공간에 배치하여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불일암佛日庵.

무소유의 길을 보는 주고 있다.

법정의 맑은 향기

맑은 가난이 보여주는 값지고 고귀한 향기이다.

 

묵언默言!

침묵沈默!

'온갖 소음으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지키려면 침묵의 의미를 깨쳐야 한다'

  

홀로 있으면 비로소 귀가 열린다.

내 안의 소리, 사물이 소곤대는 소리

때론 세월이 한숨 쉬는 소리를 듣는다.

듣는다는  것은 곧 내면의 뜰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법정의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 >

 

굴거리나무 아래에 서서 침묵하며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텅 빈 충만을 느끼며.

 

불일암의 편지산정山頂에 떠오른 아침 햇살이 눈부십니다. 겨울 숲처럼 까칠한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며칠 동안 찬바람이 숲을 울리더니 오늘은 잠잠합니다. 이곳 조계산은 단조로운 산이면서도 바람이 많습니다. 처음 자다가도 몇 번씩 깨곤 했지요. 저 아래 골짜기에 자리 잡은 큰 절은 덜하지만, 5리 남짓 올라와 있는 우리 불일암은 시야가 트인 대신 늘 바람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겨울철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바람소리에 나는 문득문득 내 근본을 확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량겁을 두고 정착함 없이 흘러 다니는 바람, 늘 움직임으로써 살아가는 바람, 바람은 멈추면 죽습니다. 그것은 바람이 아니지요. 구도의 길도 바람 같은 것이 아닐까요? 끝없이 찾아 나서는데서 삶의 의미를 거듭거듭 다지는 나그네 길.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란 말도 있듯이 날마다 새롭게 피어날 수 있는 새날이어야지, 그날이 매양 그날이라면 늪에 갇힌 물처럼 썩게 마련입니다. 물도 바람처럼 흘러야 살 수 있습니다. 운수雲水라는 말에는 매인 데 없이 홀가분하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산다는 뜻보다도, 늘 살아서 움직이라는 데 본질적인 의미가 있어야 합니다. 출가 수행자가 산으로 돌아와 기대고 있는 것도 '날마다 좋은 날'을 마련하려는 뜻에서 이지, 편안함과 한가로움을 탐하기 위해서는 결코 아닙니다.   편하고 한가함은 구도가 아닙니다.  (법정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

  

수선화

 

 

  

묵언默言

 

 

 

굴거리나무 아래의 쉼터

 

 

  

청산별곡 현판

 

 

  

불일암佛日庵  본채

 

 

 

'묵언' 팻말너머로 텃밭과 대숲 그리고 해우소가 보인다

 

 

  

대나무가 둘러쳐진 팻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 법정스님 계신 곳 1932.10.8-2010.3.11 스님의 유언에 따라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후박나무 아래 유골을 모셨다."

 

 

 

법정스님이 아끼고 사랑했던 후박厚朴나무

 

 

 

이 후박나무는 원래 '일본목련'이라고 한다. 스님은 당초 7그루를 구하여 5그루는 이곳 불일암에 심고 2그루는 송광사에 심었다고 한다.

 

 

  

스님이 참나무 장작개비로 만든 의자  일명 빠삐용 의자

 

 

 

나무로 만든 섬돌 위의 고무신  ' 신발을 바르게 벗는 것은  현재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되돌아보는 일과 같다. '

 

 

  

매화나무와 불일암

 

 

  

백매

 

 

  

만첩홍매

 

 

  

매화 꽃망울

 

 

  

겹동백꽃

 

 

  

불일암 전경

 

 

  

자정국사 부도 묘광탑 慈靜國師 浮屠 妙光塔     모양새가 단아하고 기품이 있다

 

.

  

태산목

 

 

 

 

 

산기슭 붉은  겹동백꽃이 환하게 웃으며 배웅하는 듯하다

 

 

산기슭에 피어 있는 붉은 겹동백꽃이 환하게 웃으며 나그네를 배웅하는 듯하다. 불일암을 뒤로하고 오솔길을 걸어 감로암을 향한다. 숲 속 군데군데 빨갛게 피어 있는 진달래가 아침 햇살을 받아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을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법정의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

 

 

아침 햇살을 받은 진달래가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