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 16:00ㆍ사진/한국의 산
삼각산(三角山)
삼각산은 198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3년 10월31일에는 명승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삼각산은 거대한 화강암체로서 많은 봉우리들로 형성되어 있는데 최고봉인 백운봉(836.5m)을 비롯하여 인수봉(810.5m), 만경봉(799.5m)의 세봉우리가 3개의 뿔처럼 높이있어 삼각산이라고 하며, 노적봉, 용암봉, 시단봉, 보현봉, 문수봉, 의상봉, 나한봉, 원효봉, 염초봉 등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삼각산과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나누며, 철따라 보여주는 색다른 자태가 아름답다. 백운봉에 올라서 좌측으로는 도봉산의 오봉과 선인봉, 자운봉 등 주봉우리와 능선이 보이고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남쪽 방향은 남산과 한강 그리고 북악산, 인왕산, 관악산 등이 펼쳐져 있으며 맑은날에는 인천 앞바다가 보인다.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사찰과 역사문화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생태, 문화, 역사 탐방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삼각산 일대의 지질 기반은 중생대말에 관입한 대보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맑은 복숭아색을 띠고 있는데, 장구한 세월에 걸친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지표에 노출된 뒤 다시 그 절리와 표면의 풍화작용으로 오늘날과 같은 산모양이 된 것이다. 따라서 그 높이에 비해 산세가 험준하고 경사가 심하며 암벽으로 된 바위 봉우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각 암봉 사이에 흐르는 대표적인 계곡으로는 구천계곡, 소귀천계곡, 육모정계곡 등이 있다. 이들 삼각산에서 발원한 계류는 중랑천, 정릉천, 불광천, 모래내 등을 이루어 한강으로 유입된다.
삼각산과 우리나라 건국과 연관된 최초의 기록은[삼국사기]에 나타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19년 경에 고구려 동명성왕의 아들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에 새 나라(백제)를 건국하고자 내려와 지금의 한강이북 지역을 도읍으로 물색코자 지금의 서울인 한산(漢山)에 이른 후 부아악(負兒岳)에 올랐다고 하는 기록으로 보아, 마치 아기를 업은 어머니 (負兒岳)같이 삼각산은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키는 산으로 우리의 민족사에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특히 부아악은 [북한지(北漢誌)]에 의하면 인수봉(仁壽峯)을 가리키는 이름이 된다. 즉 "인수봉은 삼각산의 제1봉이다. 사면이 순 바위로 깎아질러 섰는데 봉우리 등에 한 바위가 덧붙어서 부아악(負兒岳)이라고 부른다" 라고 하였으며, '부아(화)가 치밀어 솟아 오른 곳' 또는 '불끈 솟아 오른 곳' 이라고도 하였다.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백제는 도읍을 웅진으로 옮기게 되고 백제 26대 성왕이 신라 진흥왕과 손을 잡고 잃어버렸던 한강유역과 부아악을 회복하는데 성공하지만 다시 2년뒤 신라에게 그 땅을 빼앗기고 만다. 삼국시대에는 전략요충지인 부아악을 서로 차지하려는 국경싸움이 끊이질 않아 서기 555년 신라 진흥왕이 삼각산을 국경으로 삼는다는 순수비(巡狩碑)를 비봉에 세우고, 한강 이북 지역을 행정구역상 북한산주(北漢山州)로 지명하고, 명산대천의 하나로서 소사(小祀)를 지냈다. 이렇듯 삼국시대에 이미 삼각산이 백제의 건국이나 신라 강역을 표시하는 중요한 산으로 인식되게 된 것은 이 산이 지리적인 면 역시 중요하게 작용했다. 백제의 역사에 여러 번 등장하는 횡악(橫岳)이란 명칭은 바로 삼각산을 지칭한다. 당시 남북으로 대치하여 공격을 함에 있어서나 방어를 할 때나 삼각산이 중간에 가로 놓여있기 때문에 그 지역 형세에 따라 '가로 횡자' 를 사용하여 횡악(橫岳)이라 부른 것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은 서로 군사적 요충지만 이곳을 확보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였기 때문에 국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삼각산은 지리적인 면, 또 그 형세 등과 아울러 우리 고대사에 매우 중요한 산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인수봉(人壽峰) 810.5m
백운봉(白雲峰) 836.5m
만경봉(萬鏡峰) 799.5m
숨은벽
삼각산에 올라서면 / - 인수봉
유소례
백운대 앞에 서서 오른쪽,
몸짱 인수봉 거만한 콧대가
'네가 내 콧대를 탈 수 있을까'
산꾼들의 오기를 긁는다
오기 왕성한 그대들,
사선을 허리에 매고
오르는 묘기가 아찔하다
간담이 서늘하고
등골에 물기 척척하게 흐른다
더러는
아차, 하는 순간 무덤으로 가는 그분,
'인수봉 잊을 수 없어 곁에 잠들다'
초록빛 그분의 비문에
쓰디쓴 연민의 진액
한 방울 흘려서
무덤 앞, 풀섶에 뿌려놓고
돌아설 때
쓰린 마음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삼각산에 올라서면 / - 백운대
유소례
깔딱 넘어가는 입 안의 단내
가쁜 숨 토막토막 자르며
'깔딱고개' 올라서면
삼각산 세 봉이 버겁게 눈에 차다
우람한 몸통의 백운대가
상좌에 앉아
개미떼처럼 오르는 인파를
품에 끌어 들인다
상큼한 산소의 입자
컬컬한 허파의 때를 벗긴다
거짓을 모르는 저 나무숲에서
사랑이 결핍한 가슴 채우고 싶어라
가위 눌린 발아래 도시,
21세기 도성 서울의
누리끼한 맥을 짚어 본다
걸어가는 앞날이
암울한 미로처럼 어슴푸레하다
뛰어도 길이 늦은데
한사코 뒷걸음질만 친다
칼잡이 시퍼런 칼쏨씨가 위태롭다
백운대 넓은 품에 무릎 꿇고
시름 한 편 기원하고 돌아선다.
삼각산에 올라서면 / - 만경봉
유소례
왼쪽, 만경봉
바위로 엮은 틈새마다
거미줄 뿌리 얽어매
먹이 빨아올리는 절묘한 삶
깎아지른 석벽에
소나무 싸리나무 진달래 억새...
위장을 하고
파수하는 장수의 늠름한 기상 같아라
그 아래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지아비의 무탈을 묵상하는
애절한 아네의 비녀봉이 있다(전설이 있다)
화잠을 머리에 곱게 꽂은
우아한 매무새에 가을 잡배바람이
감겨 바르르 떤다
비녀봉, 진홍색 치마폭에 앉아
커피 한 잔 음미하다가
어둠이 세상을 삼켜도 몰라
더듬거리며 하산하던 밤
잊을 수가 없다 달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