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

2010. 12. 27. 17:37좋은 글/좋은 글

 

 

 

 

세모(歲暮)

 

시가(詩歌) 문학의 절정기를 형성했던 당(唐)나라의 시인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이백(李白)의 ‘술잔을 드시오(將進酒)’ 라는 제목의 시 초반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대 보지 못하는가, 고대광실 밝은 거울 속 슬픈 백발은/ 아침에 까만 비단실이더니 저녁에 눈발이 날린 것임을!

(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成雪)”(『중국시가선』, 지영재 편역, 을유)

 

말년(末年)에 접어든 나이, 좋은 집에서 어느 날 꺼내 든 거울 속의 늙은 내 모습, 돌이켜보니 인생은 하루 아침과 저녁의 그 짧음과 같은 것임을….

짧고 덧없는 인생을 돌이켜보는 화자(話者)의 포한(抱恨)이 읽히는 시구다.

 

‘문틈의 하얀 말’도 그런 세월의 또 다른 대명사다.

장자(莊子)는 “어느 날 문득 문의 작은 틈새로 밖을 보는데, 그 사이로 흰색 준마가 스쳐 지나가는 광경. 그 역시 인생일 것이라는 말을 했다. 성어로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고 부르고, 줄여서는 구광(駒光), 구극(駒隙)이라고 적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줄에 해를 매달려고까지 했을까. 거침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부여잡기 위한 안간힘일 게다.

 

성어 ‘장승계일(長繩繫日)’은 시간을 멈춰 곁에 두기가 불가능한 것임을 알면서도 기울여 보는 덧없는 노력의 또 다른 표현이다. 시간을 일컫는 말은 대개 일월(日月), 광음(光陰), 시광(時光), 연화(年華) 등이다.

그 지나쳐 사라짐이 쏜 살과 같다고 하는 표현이 ‘광음사전(光陰似箭)’이다.

흐르는 물에 비유하는 경우는 그보다 더 많다.

아예 물처럼 흐른다고 해서 유년(流年), 유광(流光)이다.

때에 따라서는 흐르는 물 또는 생겼다가 사라지는 파도에 빗대 서천(逝川), 서파(逝波)라고 적는 경우도 있다.

올해도 우리의 오감(五感)은 세월의 빠르기를 실감하고 있다.

 

벌써 세밑인 세모(歲暮)다.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뜻에서 세제(歲除)라고 부르는 섣달 그믐날.

달리 제야(除夜) 또는 제석(除夕)이라고 적기도 하는 그날의 종소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다.

눈 한 번 깜박이고, 들숨과 날숨을 한 번 들였다가 내뿜는 순식(瞬息) 사이에 이미 지나간 2010년이다.

덧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돌아볼 것은 진지하게 돌아보면서 새해를 맞는 게 세밑의 우울함을 극복하는 길일 게다.

<한자로 보는 세상 세모에서  -유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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