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굴산사지를 찾아서(1)

2010. 11. 3. 12:59문화유적 답사기/강릉굴산사지,보현사를 찾아서

 

강릉 굴산사지를 찾아서(1)

 2010.10.29

 

굴산사지

강원도 기념물 제11호

소재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는 옛적에는 굴산리라 했는데, 황 씨 고씨가 들어와 부락을 형성하고 살 때 마을 뒷산 노송에 학들이 서식해 부락의 자연경치가 절경을 이루고 있어 굴산(고산)리를 학산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마을은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칠성산에서 발원한 학산천(鶴山川)이 마을을 관통하여 동해로 유유히 흘러간다. 이곳에서 영동지방의 수호신 대관령국사성황신이 된 범일국사가 탄생했고, 굴산사지와 1천 년이 넘는 은행나무, 역사가 깃든 왕고개, 등이 있고 강릉 학산 오독떼기가 전승되어 오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굴산사지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2리 윗골마을의 마을회관 일대에 있는 절터이다. 굴산사는 신라 문성왕 13년(851)에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9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 사찰이었다. 굴산사는 고려시대에는 지방호족들의 지원하에 번성한 후 조선 초 이후의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 이후에는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굴산사지당간지주(보물 제86호), 범일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굴산사지부도(보물 제85호), 강릉굴산사지석불좌상(강원도문화재자료 제38호) 등이 남아 있어 굴산사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굴산사지 일대는 현재 주변이 농경지로 변하여 사역의 정확한 범위를 알 수 없었으나,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로 긴급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역의 크기는 동-서 140m, 남-북 250m의 크기로 확인되었다. 또한 토층은 3개층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1·2문화층은 유실되었으나 3문화층은 아직 남아있는 부분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법당지·승방지·회랑지·탑지 등도 확인되었다. 강릉 굴산사지는 우리나라 9산선문의 중심사찰로서,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로 긴급발굴조사를 통해 법당지·승방지·회랑지 등의 유구가 확인된 역사상·학술상 귀중한 유적이다." (문화재청) 

 

굴산사지

 

"굴산사는 신라말기의 승려인 범일스님이 세운 절로 신라 불교 종파인 5교9산중 9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파의 중심사찰이었다. 범일스님은 어려서 불가에 입문하였고 젊어서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후 굴산사를 창건하고 40년을 보내는 동안 신라의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으로 부터 차례로 국사가 되어주기를 권유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오로지 불법과 종풍 선양에만 힘쓰다 입적하였으며 시호를 통효(通曉)라 했다. 이 굴산사는 고려시대에도 번창한 사찰이었으나 고려말기에서 조선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법등이 끊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넓은 옛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보물 제86호)와 부도탑(보물 제8호), 석불좌상 4구, 건물 주춧돌의 석조물이 남아 있으며, 범일스님의 어머니가 우물물을 마시고 범일스님을 낳았다는 전설이 깃든 우물터도 남아 있어 옛 모습을 생각나에 한다." (굴산사지 안내문)

 

굴산사의 유물은 학산천을 사이에 두고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다.

학산천 다리를 건너 얕은 구릉을 넘으니 넓은 평야지대다.

황금으로 물든 너른 들 가운데 거대한 당간지주 2기가 푸른 하늘에 우뚝 솟아 있다.

멀리 백두대간 대관령 선자령 능선이 흐르고 있다.

아 아! 아름다운지고

거대한 당간지주에 세워진 높다란 당간 머리에 달린 당(幢) 깃발이 푸른 하늘에 펄럭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깃대를 고정시켰던 간공(杆孔)

 

 

굴산사당간지주 (보물 제86호)

신라 문성왕(文聖王) 9년(847)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굴산사의 옛터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당간지주이다. 굴산사는 범일국사가 당나라 유학 시 왼쪽 귀가 떨어진 승려가 고향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는 청으로 지은 사찰이라고 한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사찰 앞에 세워지며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당간지주는 현재 밑부분이 묻혀 있어 지주사이의 깃대받침이나 기단(基壇) 등의 구조를 확인할 수가 없다. 두 지주의 4면은 아무런 조각이 없으며, 밑면에는 돌을 다룰 때 생긴 거친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깃대를 고정시켰던 구멍은 상·하 두 군데에 있고, 정상은 끝이 뾰족한 형상이며, 남쪽 지주의 끝부분은 약간 파손되었다. 전반적으로 소박하나 규모가 거대하여 웅장한 조형미를 보인다. (문화재청)

 

강릉굴산사지석불좌상 (강릉시 문화재자료 제38호)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굴산사 절터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이 곳에 전해지는 3구의 석불 가운데 완전한 2구는 작은 암자에서 모시고 있고, 머리 부분이 없어진  1구는 우물에 있다. 석불 3구는 모두 한손이 다른 손의 검지를 감싸고 있는 손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비로자나불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모습으로 아마도 함께 모시기 위해 만든 비로자나삼존불로 생각된다. 얼굴은 둥글고 긴 타원형이며, 어깨는 움츠린 듯하다. 옷의 표현이 두꺼워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으며, 가슴 부근에 있는 손의 모습은 다소 경직되어 보인다. 이 불상은 둥글고 긴 얼굴과 평판적인 신체에 곡선적인 조각 등 고려 전기에 유행한 자연주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또한 지방 조각의 성격도 드러내고 있다.

 

 

 

 

 

 

석불좌상 보호각 주변은 농경지와 마을 집이 있다.

농가 채마밭에 서 있는 감나무에 붉은 감이 석불의 안면 훼손을 보상해 주는 듯하다.

붉게 물든 감잎은 항상 깊은 산골 마을을 연상시키게 한다.

발그레한 감잎의 색은 언제나 푸근한 정감을 느끼게 하고  먼 먼 때 묻지 않은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오-매 단풍 들겠네.

 

장광에 골 붙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 오-매 단풍 들겠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다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오-매 단풍 들겠네."

 

 김영랑 시인의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시가 생각난다.

 

단풍든 감잎과 홍시

 


 

석천(石泉)과 학바위

범일국사와 그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

범일(梵日, 800-889)은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굴산파를 개창한 선승이며, 대관령의 서낭신으로 강릉 일대에서는 신격화된 존재이다. 성은 김 씨, 이름은 품일, 시호는 통효대사, 답호는 연휘이다. 흥덕왕 6년(831년) 2월에 당나라에 유학해 여러 고승을 만난 범일은, 중국 마조선사의 제자인 제안이라는 고승에게서 성불하는 법을 듣는다. 곧 "도는 닦는 것이 아니라 더럽히지 않은 것이다. 부처나 보살에 대한 소견을 내지 않는 평상의 마음이 곧 도"라는 깨우침을 얻은 것이다. 문성왕 6년(844)에 귀국하여 851년까지 백달산에 머무르다가 명주도독의 청으로 굴산사로 옮겨 40여 년 동안 후학을 가르쳤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보현사를 세운 낭원대사 개청(835-930)과 행적(832-916)이 있다. 학산리에 내려오는 그의 탄생설화는 매우 실증적이다. 그 설화 속의 우물 석천(石泉)이 마을 삼거리에 있다.

학산마을에 사는 한 처녀가 석천에서 바가지로 물을 뜨니 물속에 해가 떠 있었다. 물을 버리고 다시 떴는데도 여전히 해가 있었다.  그 물을 마신 뒤로 태기가 있었다. 아이를 낳았으되 아비가 없는 자식이니, 마을 뒷산 학바위 밑에 버렸다. 아이를 낳은 처녀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튿날 그곳에 다시 가보니 뜻밖에도 학과 산짐승들이 모여 젖을 먹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아이를 비범이 여겨 데려다 키웠다. "해가 뜬 물을 마시고 태어난" 그 아이가 바로 범일(梵日)이었다. 큰 스님이 되어 학산에 돌아와 절을 지은 범일은, 난리가 나자 대관령에서 술법을 써 적을 물리쳤다.  그런데 이 난리는 임진왜란을 말하는 것으로, 신라시대 사람이 조선시대에까지 등장하는 것이 괴이하지만 다분히 설화적인 요소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사굴산파의 본산 굴산사를 창건하여 불법을 전파하고 고향을 지킨 그는 죽어서 대관령 서낭신이 되었다. 강릉 단오제 때 '대관령국사서낭신'에게 지내는 제사가 바로 범일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이처럼 범일국사는 강릉 지방에서는 신적인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새로 복원된 석천

 

                                                      

 

 

                                                              

굴산사지에서 전해지는 비로자나삼존불중 머리가 없어진 1구는 석천 위에

모셨고, 완전한 2구는 굴산사 작은 암자에 모셔져 있다.